41화 진화 (1)
유현과 오예리 형사가 간신히 이순규를 지켰음에 안도하고 있을 때.
청송 교도소는 때아닌 분주함에 휩싸여 있었다.
“아니, 시발. 죄수는 잠도 못 자?”
누군가를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죄 없는 사람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잠에 빠져 있던 사형수 몇이 불만을 토로했다.
“어디 가는 건데?”
“설마…… 설마 집행인가?”
“지랄 마. 우리나라 사형 불법인데.”
“조용.”
어차피 끝난 인생이라는 생각에 교도관에게도 함부로 굴던 이들이었다.
옛날 같았으면 꿈도 못 꿀 일이었겠지만.
지금은 소위 인권이라는 방패막이에 의해 반성하지 않는 죄수들도 보호받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익숙한 교도관이 아닌 새카만 정장 차림의 무리를 마주하게 되자, 그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압박감 때문이었다.
‘저 눈…….’
무엇보다도 눈알이 이상했다.
교도관들하고는 뭔가 좀 달랐다.
‘실험체 후보들인가.’
여러 가지 차이가 있겠지만, 제일 큰 것은 역시 정장 무리는 이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일 터였다.
원래 그런 성향의 사람들을 뽑아 두는 곳이고 또 그래도 마땅할 만한 죄인들이란 생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애초에 그런 마인드 세팅이 아니고서는 버티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실험실 환경이라 더 그랬다.
“의무 기록 좀 보죠.”
그중 가장 비인간적인 표정을 짓고 있던 이, 그러니까 김태평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교도관 중 하나가 두려운 얼굴을 한 채 다가와 서류를 건넸다.
옆에는 공중 보건 의사도 끌려와 있었다.
“어떻습니까. 건강 상태는.”
김태평은 의무 기록을 대강 훑어보면서 공보의를 바라보았다.
공보의는 최선을 다해 답했다.
무슨 언질을 들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본능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고 있었다.
‘엮이면 위험해…….’
빨리 눈앞에서 사라져 줬으면 좋겠단 생각이 드는 사람.
그게 눈앞의 인간들이었다.
“그럼…… 481, 791, 11. 이렇게가 비교적 건강하군요?”
“아, 네. 기저 질환이 있기는 한데 관리가 아주 잘 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한 명만 더 추천해 주신다면?”
“아……. 129번입니다.”
“좋군요. 감사합니다.”
“네네.”
해서 되도록 빨리 네 명을 짚었다.
김태평은 슥 하고 고개를 돌려, 죄수 쪽을 바라보았다.
‘인간 말종들…….’
대한민국에서 사형을 선고받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살인이 기본이었다.
게다가 그 방법이나 동기 또한 끔찍해야만 했다.
한두 번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눈앞에 있는 놈들은 전원 그랬다.
“481, 791, 11, 129번 앞으로.”
물론 그래서 끌고 가는 건 아니었다.
단지 명령이 있었다.
때문에 김태평의 목소리에는 물기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지는 않았다.
어딘지 모를 분노가 내재되어 있었다.
‘병신들……. 그거 하나 못해서 나를 이런 잡일에 동원되게 해?’
한국대학교 병원을 떠올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오늘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세상에 요원이라는 놈들이 의사한테 막혀서 일을 그르칠 줄이야.
보고에 의하면 딱히 준비하고 있던 거 같지도 않았다.
전기도 순조롭게 나갔고.
정유현이라는 인간은 무장조차 하지 않았다.
‘하여간……. 현장에 나가 본 놈들 아니면 다 쓸모없다니까.’
그놈들 대신 지금 여기에 있는 녀석들이 갔으면 어찌 되었을까.
지금쯤 그 환자는 병실이 아니라 실험실에 있을 터였다.
개인으로 생각하면 불행일 테지만.
-국가를 위한 일이야.
아직까지 김태평은 국가를 위한단 말에 전도되어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그냥 사람이 아니라 감염인 아닌가.
얘기를 들어 보니 어차피 죽게 될 거라고 했다.
죄가 있어서 죽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죽을 사람이라는 생각은 죄책감을 덜어 주는 데 있어 거의 만능이었다.
“어…….”
“아니, 우리 어디로.”
“조용.”
하여간 김태평의 말이 떨어지자 나머지 정장들이 움직여 죄수들을 끌고 나왔다.
흉악범이라고 해서 진짜 무서워할 만한 놈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대개는 자기보다 약한 이들을 대상으로만 범죄를 일으킨, 비겁한 놈들이기에 그랬다.
때문에 지금처럼 딱 봐도 무서워 보이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오히려 더 빌빌 기었다.
“다 태웠나?”
“네.”
“가지.”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호송 차량에 태우는 건 무척 수월했다.
김태평은 빠짐없이 태운 것을 확인하고는, 출발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죄수 넷이 삼청동 지구 병원으로 향했다.
“또?”
“네.”
그리고 그러한 움직임은 각국 정보 기관에 의해 바로 발각되었다.
딱히 숨기고자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뭔가 진전이 있는 건 아닐까요?”
“내부에서는 별말이 없어. 아니, 말이 나올 수가 없지. 그 후로 너무 경계가 강화돼서.”
“음……. 혹시 이전 계획도 뻥카인 건 아닐까요?”
“아니, 그건 아냐. 윗대가리들 답답한 건 우리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지.”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 하오린은 손가락을 내저었다.
위를 가리키면서였다.
아무리 MSS 요원이라지만 걸리면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음에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듣는 이들도 윗대가리들 답답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라 그랬다.
특히 이번 작전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랬다.
“애초에 1호…… 그거 내다 버린 게 누구야. 나는 분명히 죽을 때까지 지켜보자고 했다고. 윗놈들……. 성과에 눈이 뒤집혀 가지고 성질만 급하고. 버릴 땐 언제고 여기까지 기어들어 와 있게 하냐고.”
“덕분에 작전이 더 커지긴 하지 않았습니까. 일단…… 우리는 기다려야죠, 뭐.”
“그래, 그래야지. 근데 또 호송 차량이 들어갔다 이거지…….”
“실험이겠죠?”
“그렇겠지.”
“음.”
하오린과 장웨이는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설마설마했더랬다.
대한민국은 그래도 중국하고는 좀 다른 나라니까.
중국이야 인체 실험이니 뭐니 하는 게 워낙에 많은 나라이지 않나.
쉬쉬하고 있지만 육군 병원에서 진행 중인 실험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닐 지경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놈들도 급해. 서두르고 있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전하기 전에 뭔가 성과가 나오면 이전 계획은 폐기되겠지.”
“그럼 나가리 되는 건데요.”
“무슨 수를 써서든……. 알아보는 게 좋겠어. 왔다 갔다 한 통신 다 분석해 봐.”
“네.”
“그리고…….”
“네?”
“아냐. 저쪽 윗대가리들도 병신들이길 빌어 보자고.”
하오린은 후 하고 한숨을 쉬고는 밖을 내다보았다.
벌써 몇 달째 보고 있는 똑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느낌마저 같지는 않았다.
코앞에 미국, 영국 심지어 러시아의 정보 기관들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국정원에서도 에이스라 꼽히는 놈이 들어왔다더니, 요사이 부쩍 감시가 삼엄해진 느낌이었다.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었다.
‘이러다…… 이전은 이전대로 하는데…… 딴 놈들이 갈취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리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무리해서 남의 집 앞마당에서 폭탄도 터뜨리고 온갖 지랄을 했는데 그 성과를 뺏겨?
이건 문책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죽을 터였다.
아니, 죽지도 못할 수도 있었다.
중국엔 죽음보다 더 끔찍한 수용소들이 여럿 있었다.
‘아니, 아냐. 잘될 거야. 우리만큼 깊숙이 파고든 놈들은 없을 테니까.’
하오린은 담배를 입에 물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불 피울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일단 주변을 좀 더 캐 보긴 해야겠어.’
혹시 모를 일이었다.
누군가 이전 계획을 알고 있다면.
그건 대비해야 할 일이었으니.
“양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요?”
세계 각국 정보 기관의 눈과 귀가 집중된 상황에서, 김조은 박사와 박원상 교수는 실험을 감행하고 있었다.
“음…….”
“일단 상처 내고 뿌리는 방식으로 가지. 어차피 바이러스 특성에 대한 연구는 유전자 단위에서 따로 하고 있으니까……. 실험은 이대로 가자고.”
박원상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김조은 박사가 지시를 내렸다.
딱히 책잡을 것 없는 지시였다.
대안이 없지 않나.
일단 질러 보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게다가…….
-청송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검체는 아직 얼마든지 구해 올 수 있습니다.
아까 마주했던, 이름도 밝히지 않았던 이가 이렇게 말을 했더랬다.
‘얼마든지…….’
달리 말하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단 얘기였다.
누군가의 생사를 단지 수치로 계산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무조건 성공해야 해.’
드문드문 죄책감이 휩쓸려 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걸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의미한 희생이 아니게 하면 되지 않을까.
박원상은 그런 생각으로 애써 버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면 돼……. 나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아니지. 내가 아니면 더 많은 희생을 치뤄야 했을 거야. 그래……. 그런 거야.’
자기 합리화는 금세 끝났다.
두 연구 책임자의 허가에 실험은 곧 재개되었다.
푹1호의 팔에서 피가 뽑혀 나오고, 방금 온 이 중 11번이 끌려왔다.
“잠, 잠깐! 이거 뭔데!”
난동을 부려 봐도 별 소용은 없었다.
양팔과 다리가 묶인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으니까.
심지어 머리도 붙잡혀 있어서 뭘 할 수가 없었다.
“팔에 상처 내.”
“네.”
“어어! 이 시발! 당신들! 이거! 이거 불법이야!”
불법을 저지른 당사자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불법이라는 외침만큼 공허한 것이 있을까?
그 아이러니함 덕분에 실험에 참가한 이들의 마음속을 드나들던 죄책감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아니, 그 전에 이미 이 행위 자체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들은 세계 최초라는 말에 잡아먹힌 지 오래였다.
“으, 으아아아악!”
간호 장교 하나가 11번의 팔에 침을 푹푹 찔렀다.
그리 깊숙이 찌를 필요는 없었지만, 많이 찌를 필요는 있었다.
어찌 되었건 환자의 혈액과 완전히 접촉했다는 확신은 들어야 하지 않겠나.
“으, 으아아아!”
당연히 11번은 고통에 휩싸였다.
몸부림치려 애쓰는 사이, 1호의 혈액이 그의 상처 위로 뿌려졌다.
내막을 알고 있다면 이때 더 몸부림을 치는 것이 옳을 텐데.
고통에 눈을 감고 있느라 눈치채지도 못했다.
“재현이 되어야 할 텐데요.”
“넷 중 하나만 되면 됩니다.”
“아……. 그럼?”
“아까 들으셨지 않습니까. 검체는 얼마든지 있다고. 오늘 저 넷 모두 실행하죠.”
“아, 네. 그러죠.”
다만 그걸 보고 있던 이들의 심정은 크게 달랐다.
“이 미친놈들아! 뭘 뿌린 거야!”
“개, 개새끼들아!”
“이거……. 이거 놔!”
마지막에 뿌린 것.
누군가의 피.
어떻게 봐도 수상해 보이는 환경.
인체 실험의 현장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어마어마한 소란이 일었으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휠체어에 묶인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실험자의 의지뿐이었고, 박원상과 김조은 모두 흔들리지 않았다.
“실험 재개합니다. 481번,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