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단서 (6)
“순규가…… 그렇게 됐다고?”
“박 교수님. 환자 아는 사람입니까?”
“네. 제 친구예요.”
“음.”
김조은은 심경이 복잡해 보이는 박원상을 보면서 잠시 침음을 흘렸다.
딱히 안쓰럽다거나, 안되었다거나 하는 생각 때문은 아니었다.
이미 인간성 따위는 개나 줘 버린 지 오래지 않나.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연구밖에 없었다.
그 흥미에 모든 것을 희생시키고 있었다.
‘이러면 나가린데……?’
아깐 분명히 뭔가 아는 눈치이지 않았나.
국정원 측에서 일을 좀 잘해 주었다면 베스트였겠지만.
이미 물 건너간 참이었다.
‘병신들이……. 병원 하나 못 터나.’
무슨 대기업 연구 비밀을 털라고 한 건가?
그저 환자 하나 빼 오는 것이 뭐 어려운 일이라고.
‘차라리…… 김선태. 그 양반이 나았지.’
지나치게 군인 티가 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대하기 불편하긴 했지만.
여태 단 한 번도 맡은 바 임무를 실패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마 연구실 방위도 그 사람이 맡고 있었다면 옮길 일도 없지 않았을까?
‘아니, 아냐. 엎질러진 물이야. 후회는 효율적이지 않지.’
국정원 요원들의 세련된 방식 그리고 의무사령부의 회유에 넘어가 이쪽으로 노선을 튼 것이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갈 길이 멀지 않나.
어떻게든 박원상을 설득해서…….
“이유를 알 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박원상이 스스로 충격에서 벗어 나왔다.
친구가 1호처럼 되어 가고 있다는, 누구라도 경악에 빠져야 할 만한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서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긴 했다.
김조은 박사는 이미 박원상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의 인간성이 어느 정도 마모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챘으니까.
그 정도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하여간 벌써? 하고 놀랄 필요는 없었다.
“오. 어떻습니까?”
그저 연구를 이어 나가면 될 일이었다.
괜히 친구 얘기를 해서 죄책감을 건드릴 필요는 없지 않겠나.
그건 나중에 박원상이 온전히 혼자 감내해야 할 일이었다.
“이순규는 주먹으로 1호를 친 적이 있어요. 정확히…… 입술 부근이었죠.”
“입술?”
“네. 입술이기는 한데, 안쪽 이도 좀 건드린 거 같았어요. 확실히……. 주먹을 아파하고 있었거든요.”
“당시 상처가 있었나요? 혈액에 의해 전파가 된 건가?”
김조은의 말에 박원상은 고개를 저었다.
당시 자신은 몰라도 정유현은 꽤나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나.
1호의 특수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정유현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혹 친구가 감염되었을까 봐 아주 꼼꼼히 살폈더랬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육안으로 보기에는 멀쩡했어요.”
“하지만 상처가 났었군. 아니면 그 이후로 또 접촉이 있었다거나……?”
“아뇨. 그럴 수는 없습니다. 1호는 계속 센터 내에 있었으니까요. 도주하거나 하는 환자들이 있어서, 센터는 구조가 꽤 복잡해요. 외부인이 들어오거나 하기 매우 어려워요. 협진 의뢰가 있지 않고서는……. 개인적으로 오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럼 그때가 맞겠군요. 육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통해…… 감염이 이루어졌다, 뭐 이렇게 보는 게 타당하겠죠?”
“네. 단순히 같이 지냈던 것만으로 감염이……. 그러니까 공기 감염이 이루어졌다면 정유현이 누구보다 먼저 걸렸어야죠.”
“그렇군요. 음.”
둘의 대화가 잠시 끊겼다.
생각에 잠겨서 그랬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 혈액 감염. 그랬더니…… 2차 감염임에도 불구하고 변이가 일어나지 않았어. 이게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박원상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곤 바이러스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이 바이러스라면, 이라고 가정한 채였다.
우스운 일이었지만 상대가 평범한 바이러스가 아니라 ARS-24라면 그렇게만 볼 것도 아니었다.
이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초토화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여전히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나.
‘차이가 있다면 타액과 혈액……. 타액과 혈액……? 아닌데. 아냐. 결정적인 차이는 이런 게 아냐.’
어차피 감염이 되면 바이러스가 혈액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게다가 이미 박원상은 김조은 박사의 연구 일지를 보지 않았나.
1호의 혈액을 뽑아 다른 환자에게 주사했던 사례가 있었다.
그것 또한 다른 2차 감염자와 같은 경과를 보였다.
이순규와는 달랐다.
“음.”
“커피라도 한잔하시죠. 시간도 늦었는데.”
“그럴까요? 그래야 할 거 같습니다.”
다르다.
뭔가 다른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박원상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사이 김조은은 능숙하게 커피를 내려 박원상에게 건네주었다.
‘이 인간……. 나름 똑똑한 인간이지.’
유전학 박사인 자신으로서는 사실 이 이상 추론하는 건 무리였다.
바이러스의 행태라든지 하는 건 전문 분야가 아니지 않나.
그 유전자를 분석하고 대응하거나 조작하는 거야 잘할 수 있었지만.
그 전 단계까지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이에게 의존해야 했다.
그중 박원상은 퍽 특별한 인간이었다.
‘이 사람이 들어오고 나서 연구가 확 진전되고 있어.’
이 인간이라면 뭐라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김조은 본인도 고민을 하기는 하겠지만.
어쩐지 박원상의 입에서 유의미한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어, 괜찮으세요?”
한 잔을 거의 원샷 하길래, 다시 한 잔을 따라 주려는데.
방울이 튀어 박원상의 손등에 닿았다.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뜨거운 상태였기에 김조은은 미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박원상은 그렇게까지 뜨겁지 않았다.
아니, 별 느낌이 없었다.
“아, 네. 방울이 작아서.”
“아, 그렇군요.”
“아!”
“역시 뜨거우신가요?”
“아니, 아냐. 아니…….”
김조은은 이 인간이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다.
너무 급하게 카페인을 먹어서 심장이 뛰나 싶기도 했다.
왜냐면 박원상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이기 시작해서 그랬다.
다른 이들도 박원상의 돌발 행동에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작아서…….’
박원상은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팔짱을 낀 채 이리저리 방황했다.
이러면 머리가 잘 도는 느낌이 있어서 그랬다.
은연중에 정유현을 따라 하는 것이었으나, 그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학생 때부터 있던 습관이라고 여기고 있을 뿐이었다.
“작아. 그래. 그거다.”
그러다 마침내 결론에 닿았다.
“네? 작아요?”
“네. 잘 생각해 보세요. 1호는 원래 물어서 타액을 전파하죠. 100% 감염을 위해서요.”
“네, 그렇습니다.”
“그에 비해 이순규는 어땠죠? 작은 상처를 통해 극미량의 바이러스만 들어갔을 겁니다.”
“음……. 그렇죠.”
“바이러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통상적인 감염에 비해 지극히 불리한 상황이에요. 양이 너무 적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번식하겠군……. 변이보다는 번식에 초점을 두겠어. 생존이 우선 목표가 되니까.”
“네, 그러다 보니 1호와 같은 형태의 경과를 밟게 된 것이죠. 멀리 보면 당연히 다른 2차 감염자들과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이 유리합니다. 아니, 유리해 보이죠. 호르몬 균형이 그쪽이 숙주가 더 오래 살 거 같으니까.”
확실히 기존의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1호는 말이 안 되는 존재였다.
저렇게 되면 금세 죽어야 했다.
하지만 1호는 살아 있었다.
다른 2차 감염자들보다도 더 쌩쌩하게.
“그렇군요. 음, 그래요. 이건…… 일종의 설계 오류로군요.”
“설계 오류?”
“아, 유전학적인 용어입니다.”
“아, 네.”
김조은은 박원상의 말에 대강 얼버무린 후, 1호가 발견되었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국정원은 대북 관련 공작을 하던 중,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첩보를 들었다.
흑룡강성 인근에서 ARS-24를 이용한 모종의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첩보.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으나, 그렇다고 총력을 기울이기도 뭐했기에 요원 몇을 보냈는데 그게 잭팟이었다.
실패로 오인되어 황무지에 버려진 1호를 발견했던 것.
물론 김조은을 비롯한 다른 연구진들도 1호를 실패라고 오인해 한국대에 보내긴 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잭팟이었다.
‘그쪽 연구진들도 1호와 같은 결괏값을 기대하지는 않았던 거야. 애초에 디자인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바이러스가 나온 거지. 그래서 확보하려고 애쓰는 것이고…….’
단지 죽었다 살아났을 뿐 아니라, 다른 감염자들에 비해 월등히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바로 2차 감염 시의 열화였는데.
이제 그것도 해결이 될 것 같았다.
변이보다 번식에 집중시키면 될 일 아닌가.
그건 유전자 조작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리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다.
다른 개체도 아니고, ARS-24에 대한 조작이라면 더더욱 자신이었다.
“바로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박 교수님은 1호의 호르몬 수치 한 번만 더 확인해서 전달해 주세요. 일반적인 체격의 성인에게 통용될 수 있는 수치를 확인해 주시면 더더욱 감사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죠.”
아직은 가설이었다.
이론적인 근거도 위태로운 가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연구실에는 활력이 돌았다.
멈춰 있던 연구가 앞으로 전진하게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휴…….”
“또 오려나요?”
그 시각 유현은 아직 센터에 있었다.
다소 지친 얼굴을 하고서였다.
뒤를 돌아보니 오예리 형사 또한 어지간히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툰 시간은 짧았지만, 본격적인 습격이지 않았나.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아뇨. 전력선 끊긴 걸 확인했어요. 시큐리티가 한동안 24시간 감시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둘도 못 뚫었는데……. 이걸 뚫을 수는 없죠.”
“그래도…….”
“물론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신경은 계속 쓸 겁니다. 그래도 자기는 자아죠. 이러다 우리 둘이 먼저 죽겠어요.”
“아, 네. 아유. 무슨 범인 잡을 때보다 더 힘드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만은 든든했다.
원래 병원 로비 그리고 주요 통로를 지키는 시큐리티가 센터 내를 채우고 있어서 그랬다.
그 수는 무려 5명.
딱 3호 베드를 지켜야 한다고는 말하지 못했지만.
워낙에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만들어진 센터인 데다가, 살짝 미로처럼 길이 꼬여 있다 보니 그 숫자만으로 이미 길이 턱 막혀 있었다.
처음부터 불렀으면 간호사들이나 레지던트들의 원성을 들었을 것이 뻔했을 정도로 답답했다.
하지만 전기가 나가고 괴한의 습격을 받은 직후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그럼 오늘은 이마 해산할까요?”
“네, 좋죠.”
유현은 자신을 따라 몸을 일으키는 오예리 형사를 가만히 보다가, 병동에 비치되어 있던 반창고 하나를 건네주었다.
“일단 이거 붙여요.”
“네?”
“아까 손등. 살짝 까진 거 아니에요?”
“아…….”
오예리는 반창고를 받으면서 정유현을 바라보았다.
‘진짜 살짝 까진 건데……. 어떻게 알았지?’
하도 싸움을 잘해서 자꾸 잊는데, 역시 의사는 의사인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