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38화 (38/323)

38화 단서 (4)

“어, 라면 좀 사 올래? 두 개. 육개장 큰 걸로.”

도저히 둘 중 하나가 자리 비우는 게 불안했던 유현은 재원에게 라면을 사 오라고 일렀다.

‘에이…… 씨……. 친구 돌아가신 마당에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평소라면 절대 시키지 않을 일이었다.

사실 대학 병원 교수는 레지던트에게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었지만.

유현은 선을 지키는 사람이라 그랬다.

가까이 지내는 것과 무례한 것을 잘 구분할 줄 안다는 얘기였다.

그런 사람이 돌연 라면 먹고 싶다고, 그것도 두 개나 사 오라고 하니 어쩌겠나.

‘그나저나 평생 식단 비슷하게 하는 사람이……. 진짜 상심이 큰가 보네. 이순규 교수님이 라면을 좋아했었나? 설마 이거 하나는……. 이순규 교수님 거야?’

여기 가지 생각이 미치다 보니 잠깐 마음이 찡했다.

칼도 안 들어갈 거 같은 인상의 정유현에게도 인간성이 남아 있었단 얘기 아닌가.

제자 된 도리로, 심지어 은혜까지 입은 몸으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어……. 핫바도 사 왔어? 계란도?”

“네. 아니, 뭐 라면으로 됩니까. 레지던트도 저녁 제대로 먹었는데 교수님이 이게 뭐예요.”

“뭐……. 그래, 고마워.”

“근데 라면 혼자 두 개 다 드세요?”

“어? 어.”

유현도 오예리 얼굴은 그냥 보여도 되지 않나 싶었던 참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양재원과 나이대가 너무 비슷한 게 문제였다.

아무리 병원이 커도 비슷한 나이대의 레지던트들은 다 알고 지내지 않던가.

게다가 양재원은 모태솔로라 그런가, 여자라면 다 좋아하는 놈이었다.

‘정신과 쪽이면 사실 접점이 없긴 한데……. 이 새끼라면 모르지. 미친놈이니까.’

둘러대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솔직히 라면 정도야 두 개 먹을 수 있는 일 아닌가?

“아…….”

“야, 왜 울어?”

“아니, 아닙니다. 눈이 건조해서.”

“그래? 안과 가 봐 인마. 그러다 각막 손상 온다.”

“네네.”

그랬더니 눈물을 훔치면서 멀어져 갔다.

‘저 새끼 왜 저래.’

유현은 비틀거리며 사라져 가는 재원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재원은 그런 유현을 마주할 수가 없었기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유현과 이순규 사이에 있었을 추억을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내 친구 중 하나가 저렇게 되면 어쩌나 싶기도 했고.

‘에휴……. 같이 있어 준다고 할 걸 그랬나……?’

그래야 했나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아니었다.

왜냐면 저 사람은 이순규가 아니라 정유현이니까.

‘그래, 혼자 두지 뭐. 그래도……. 너무 힘들어하면 잘해 드려야겠다.’

재원은 휴휴 하면서 당직실로 향했다.

병원 편의점에서는 핫바를 안 팔아서 밖에 나가 사 오느라 나갈 타이밍을 살짝 놓쳐서 그랬다.

레지던트로서 이만하면 크나큰 희생을 치른 셈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또 쓰러져 있는 이순규를 생각하면 착잡하고, 그랬다.

‘고백했다 또 차였나…….’

유현은 그렇게 멀어져 간 재원을 바라보다가 이내 라면과 주전부리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5번 베드 앞에 있는 테이블을 두드렸다.

턱으로는 휴게소를 가리키면서였다.

마침 출출해 죽을 것 같던 참이었던 오예리 형사는 즉시 휴게소로 따라 들어갔다.

후루룩

면발 넘어가는 소리가 참 찰졌다.

이게 도청 장치로 듣기에도 그랬다.

“에이 시발……. 존나 맛있게 먹네.”

“아직도 명령 없어요?”

“어. 대기하래.”

“아니, 대체 언제까지…….”

“생각해 보면 사실 우리 여기 4시간도 안 있었어. 밖에 애들은 며칠씩도 있는다잖아.”

밖에 애들이란 해외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말했다.

CIA에서는 국정원이라고 하면 대북 공작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애들이라고 하지만.

나름 동남아나 중앙아시아 측에서의 대한민국의 영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었다.

물론 CIA에서도 근거 없는 비방을 하는 것은 아닌 게 21세기 들어선 지도 한참이건만 국정원은 여전히 구닥다리 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예산이 없어서 그랬다.

“하긴……. 들어 보면 무슨 고생만 하다 오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김태평이 대단하지. 고생만 하는 건 아니잖아.”

“북한에서 척살 1순위가 김태평이라던데.”

“그래서 얼굴도 모르잖아. 이름은 진짜 맞나 싶어.”

“하긴……. 국장님만 알죠?”

“어. 그 위에 몇 분들하고. 하여간 거 의사 양반이 라면 한번 존나 맛있게 먹네……. 먹방해도 되겠어.”

ASMR도 아니고.

귓가를 간지럽히는 면 넘어가는 소리에 정말 환장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현은 라면이라는 음식을 정말 오랜만에 먹는 참이었다.

그리고 라면은 오래 쉬었다가 먹으면 먹을수록 맛있는 법이었고.

“이제 그만 먹냐? 아…… 시바 핫바 먹네.”

“미쳤네, 진짜.”

먹방은 그리 짧지 않았다.

신들린 듯이 먹는데, 이게 도청하고 있는 줄 알고서 이러나 싶을 지경이었다.

덕분에 요원들은 훈련 때를 떠올리면서 간신히 버텨야만 했다.

배고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휴…….”

그 먹방이 끝나고 나자 긴장이 느슨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한창 음식을 때려먹은 유현과 오예리 쪽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렇다고 부주의하게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다.

멀리서 보기엔 그저 동료 의사 또는 선배가 후배에게 뭔가 사 주는 것으로만 보일 따름이었다.

띠그 긴장이 갑자기 훅 하고 올라간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알람이 울렸다.

진원지는 3번 베드.

즉 이순규.

“음?”

긴장을 풀고 있다고는 해도 계속 그쪽을 주시하고 있던 유현은 금세 3번 베드로 달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알람은 심박동 수 때문이었다.

느려지거나 멈춰서는 아니었다.

빨라지고 있었다.

‘혈압도 오른다…….’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건 아마도……. 통증.’

사람이 혈압이 오르는 가장 흔한 원인은 바로 통증 또는 고통이었다.

심리적이건 물리적이건 간에 그랬다.

그리고 이순규의 목에 들어가 있는 플라스틱관, 즉 기관 삽관은 인간으로 하여금 극도의 불편감을 초래하는 술기였다.

구역 반사를 역행하는 짓이지 않나.

‘4시간……. 그래, 그때는 디텍션이 느릴 수…… 있었지.’

박기태 때는 미약하게나마 약을 주입하고 있었다.

완전히 뇌사 판정이 나기 전까지는 살아 있다고 가정해야 하니까.

살아 있는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건 옳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4시간째가 아닌 8시간째에 디텍션이 된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냥 숙주에 따른 차이일 수도 있고.’

박기태와 이순규를 비교하면 체격부터가 달랐다.

지금이야 박기태의 체격이 훨씬 크겠지만 처음 왔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무척 말라 있었다.

무언가, 바이러스가 원하는 무언가를 견디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슈우욱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약을 주입했다.

그러자 치솟던 혈압과 심장 박동 수가 훅 하고 가라앉았다.

사실 이대로 깨워 보는 것도 방법이긴 할 터였다.

의학적으로 보면 그쪽이 더 의미 있는 일일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이순규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

‘골 아파지지. 무조건 탈취하려고 애를 쓸 거야.’

한낮에 2차 감염자를 확보하기 위해서 사람을 죽인 놈들이지 않나.

그런데 박기태와 정확히 같은 임상 경과를 보이는 사람이 있어?

그것도 박기태에게 물린 사람이?

이건 무조건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끌려간 이순규는 정말로 험한 일을 겪게 될 것이 뻔했다.

‘눈치…… 챈 사람이 있을까?’

일부러 담당 간호사의 접근도 만류하고 직접 본 마당이었다.

일단 병동 쪽은 조용했다.

스테이션도 그렇고.

오예리 형사만 의문에 찬 얼굴로 유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만큼 그는 빨리 움직였다.

거의 날 듯이.

“방금 뭐죠?”

“저기 왜 뛰어들어 간 거야? 알람 때문에? 큰일이라도 난 건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거치고는……. 되게 빨리 조용해졌는데요?”

“일단…… 보고를 해 둘까.”

그 움직임이 힌트가 되었다.

요원들이라고 해서 환자가 잘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사실 보인다고 해서 미묘한 활력 징후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덩치가 큰 유현의 움직임만큼은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유현은 분명 당황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뭔가 일이 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네, 그게 좋겠습니다. 나올 때 보니까…… 시치미 뚝 떼는 게……. 뭔가 숨기고 있는 거 같아요.”

“설마……. 우리 접근을 알고 있다고?”

“모르죠. 그럴 리는 없겠지만……. 하여간 그렇게 보이는데요?”

“그래, 뭐. 의심은 좋은 거지. 아무튼…… 보고한다.”

요원 중 하나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곧 김태평이 받았다.

-특이 사항 있나?

벌써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하나도 잠겨 있지 않았다.

작전에 들어가면 그게 무슨 작전이든 간에 잠을 안 잔다더니, 진짜구나 싶었다.

“네, 방금……. 이순규가 있는 베드 쪽으로 정유현이 뛰어들어 갔다 나왔습니다.”

-뛰어들어 가? 그 전에는?

“알람이 울렸습니다.”

-지금은?

“거의 바로 알람이 꺼졌습니다. 알람의 원인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정리하면 알람이 울렸고, 정유현이 뛰어들어 간 뒤 거의 바로 알람이 꺼졌다, 이건가?

“네, 그렇습니다.”

-일단 대기.

“네.”

이번에야말로 철수 또는 탈취하라는 명령이 나올 줄 알았는데.

또다시 대기였다.

하지만 희망은 보였다.

김태평이 전화를 아직 안 끊었다.

그 말은 곧 명령이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요원이 대기하고 있는 사이, 김태평은 김조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김조은입니다.”

-네, 김 팀장입니다.

“아, 네. 어쩐 일로…….”

늦은 시간임에도 깨어 있는 것은 김조은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박원상이 전해 준 힌트 때문이었다.

당연히 박원상도 집에 가지 않고 있었다.

“지금 한국대학교 병원에 1호와 접촉했던 환자가 하나 왔습니다.”

-네? 어떻게……?

“이쪽 의료진 진술입니다.”

-그럼 맞을 텐데.

박원상이 끼어들었다.

한국대가 어떤 병원인가.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병원이었다.

당연히 구성원들도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허튼소리 할 가능성은 없다, 이 말이었다.

“그 환자 응급실에서 심정지 왔고, 심장만 간신히 뛰는 상황으로…… 센터로 옮겨졌습니다.”

-어……. 더 자세히 말해 보시죠.

박원상과 김조은 모두 귀를 기울였다.

심정지.

이건 없었던 에피소드라 그랬다.

아니, 유일한 에피소드였다.

현재까지는, 1호만이 그랬으니까.

“그리고 방금…… 그 환자가 있던 베드에서 알람이 울렸고, 정유현이 뛰어갔습니다. 곧 알람은 꺼졌고요. 의학적으로 어떤 상황일 거 같습니까?”

-의학적으로…….

박원상은 반사적으로 말을 반복해서 되뇌다가, 이내 의학적이라는 말을 지웠다.

그리고 정유현을 떠올렸다.

그 녀석이라면.

주도면밀한 그 친구라면.

밖에 있는 주제에 대강의 의심을, 그것도 정확히 할 수 있는 놈이라면.

-이미 죽었고……. 다시 살아났을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정 교수는 그걸 숨기고 있는 거고요.

“그럼…….”

-그 검체가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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