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단서 (3)
오예리 형사는 그야말로 날아왔는지 불과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병동 앞에 당도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들어와서 센터 내에 있어도 좋았겠지만.
이제는 시절이 많이 변한 참이었다.
팬데믹을 겪은 이후 병원은 이전보다 훨씬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다.
“이거…… 순규 명찰이에요. 들고 있으면 일단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아, 네.”
“이건 가운. 걸치고 있으세요. 그럼 다들 의사인 줄 알 겁니다.”
“그럴까요? 제가 이게.”
하지만 내부인이 작정하고 뚫으려고 하면 방법이 없지만은 않았다.
그중에서도 유현은 철두철미한 편이다 보니 이미 명찰과 가운을 모두 준비해 둔 참이었다.
다만 오예리 형사는 좀 황당한 기분이었다.
주니까 받았고, 받은 김에 걸치긴 했는데 영 어색해서 그랬다.
세상에 내가 의사 가운을 걸칠 날이 올 줄이야.
‘무슨 코스프레 하는 것도 아니고…….’
뭐 이런 생각만 들었다.
“걱정 마세요. 머리 묶고 뭔가 바쁜 것처럼 허둥대고 있으면 아무도 말 안 겁니다. 정 그러시면 전화기 붙들고 있어도 되고요.”
“정말요? 그래도 된다고요?”
“네. 여기 한국대예요. 의사 수만 거의 천 명이에요. 얼굴 다 알고 지낼 수가 없어요. 저도 모르는 얼굴이 얼마나 많은데요. 게다가 다 바쁜 곳이라 그냥 바쁜 척하고 있으면 그런갑다 하고 넘어갑니다.”
“음……. 알겠습니다. 잠복을 하다 하다 이제는 병원에서 하게 생겼네요.”
“하여간 들어가면 도청이 될 수도 있으니 여기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네.”
황당한 마음은 잠시뿐이었다.
도청이라는 말에 저절로 머리가 차가워졌다.
동료들의 죽음도 함께 떠올라서 그랬다.
가족이 없는 오예리 형사에게 있어 그들은 가족이었다.
소중한 가족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아무 책임 없이 지내고 있을 그들에게 뭔가 할 수 있다면, 집중해야만 했다.
“환자는 3번 베드에 있어요. 3번 베드는 격리실이라 유리로 된 방 안에 있습니다. 제 허가를 받은 간호사와 레지던트만 들락거릴 수 있게 조치를 취해 놨으니……. 사실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다는 거죠?”
“네. 그때…… 박기태 환자에게 물렸던 환자들을 데려가기 위해 무슨 짓을 했나 떠올려 보면…….”
유현의 말에 오예리 형사의 이가 빠드득 갈렸다.
개자식들.
속으로 욕을 해 대면서, 그러나 겉으로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어떤 짓이든 할 수 있겠죠.”
“네.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싶기는 한데……. 전기가 나가거나 할 수도 있습니다.”
“네? 여기 중환자실인데요?”
“사람 죽어 나가는 거……. 신경 쓰는 놈들 같았어요?”
“아.”
무도한 놈들이라는 생각은 했더랬다.
대한민국 경찰을 한국에서 백주 대낮에 살해한 놈들이지 않나.
하지만 이런 방법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정 교수님…… 의사 안 했으면 진짜 위험했겠는데.’
철저한 것도 정도가 있지.
그렇게까지 생각을 한다고?
빈말로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은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저도 같이 있을 겁니다. 안에서는 아는 척하지 말고 있다가…… 1시간마다 밖으로 나와서 의사소통하죠. 혹 급하게 말해야 할 것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오예리 형사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유현은 계속 말을 이었다.
여전히 신중한 얼굴이었다.
오예리 형사야 지금 쓰러진 환자가 친구 사이라는 것을 모르기에 그냥 있었지만.
아마 전후 사정을 아는 사람이 이 광경을 봤다면 정유현은 역시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라는 말을 했을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저 냉정을 지켜야 할 때 그럴 수 있는 인간일 뿐이지만.
하여간 겉으로 볼 때는 그랬다.
“그래, 저기 보이죠. 5번 방 옆에 테이블. 거기를 두드리죠. 그럼 나오겠습니다.”
“아, 네. 그게 좋겠네요. 그럼…….”
“먼저 들어가시죠. 자리 잡고 나면,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네.”
유현은 오예리 형사가 먼저 들어가도록 하고는 잠시 주변을 살펴보다가 따라 들어갔다.
마음만은 긴박하기 짝이 없었지만, 상황은 지난하기 짝이 없었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모두 아는 얼굴들뿐이었다.
‘이게 다 오바하는 것일 수도 있지.’
어쩌면 도청 장치 따위는 없을 수도 있었다.
아니, 있다고 해도 여기까지는 손을 뻗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이순규는 앰뷸런스를 타고 온 것도 아니고, 제 발로 왔으니까.
중간에 정보를 탈취당할 염려가 없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이순규가 박기태와 접촉했다는 걸 아는 사람도 드물었다.
‘응급실에 내부인이 있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럴 낌새가 있었나?
없다고 하기엔 좀 애매했다.
당시 유현은 오로지 이순규를 살리는 데만 주력하고 있었으니까.
혼란한 틈을 타 연락을 취한 인간이 없었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은……. 기다려야겠지. 형사가 있으니까 나 혼자만 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유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이순규 쪽을 바라보았다.
전혀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일부러 재우는 약을 안 쓰고 있음에도 그랬다.
만약 의식이 조금이라도 돌아온다면, 입 안부터 목구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물감으로 인해 켈록거려야만 했다.
‘그때……. 이변이 생겼던 건 분명 8시간 후였어.’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긴 했다.
만약 박기태 환자와 정확히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 거라면 필시 그쯤에 변화를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한 가지 이상한 일은 대체 왜 이순규만 저렇게 되었냐는 점이었다.
분명 수락 마을에서 보았던 2차 감염자들, 그러니까 그곳에 살던 노인들은 박기태와는 완전히 다른 임상 경과를 밟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게다가 추후 검사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박기태 환자를 감염시킨 바이러스와 조금 다른 형태의 바이러스만이 검출되었다고 했다.
‘순규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나? 유전자? 아니면…… 유발 인자?’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고민을 해 본다 해도 별 소용이 없을 테고.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순규야, 미안하다…….’
그건 바로 검체 확보일 터였다.
유현은 잠시 이순규가 있는 방 안에 들어가 피를 채취했다.
안에 들어가 있을 바이러스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병원 검사실에 돌리는 것은 안 될 일이었다.
이미 한번 탈취당한 적이 있으니.
기록마저 말살당하지 않았나?
‘이건 일단 냉장고에 넣어 둬야겠네.’
다행한 일은 센터 내에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보관하기 위한 냉장고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그냥 냉장고를 사 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해서 검체 보관용으로 신청해서 받았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저 안에 넣어 두면 꽤 오랜 시간 혈액을 보관할 수 있을 터였다.
“별일 없었죠?”
“네. 아무 일도.”
“어쩌면 괜히 헛걸음시킨 걸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 뭐……. 어차피 방에 있어 봐야 할 일도 없는걸요. 청에서는 위로 휴가랍시고 2달을 줬는데……. 거부권이 없어요. 사실상의 징계예요.”
“거참. 그럴 수가 있나.”
“최근 벌어지는 일 중에 이해되는 일이 있었나요.”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유현은 이 바이러스를, 저주스럽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끔찍한 ARS-24를 무기화시키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미 몇 년간 어마어마한 일을 겪지 않았나.
인류는 이제 그 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란 비관적인 관측이 나왔고, 얼마간 사실임이 입증되어 가고 있었다.
만약 거기에서 한층 더 진화된…….
그러니까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나오게 되면 어찌 될까.
‘시발.’
상상도 하기 싫었다.
“일단 들어갈까요?”
“아, 네. 다음 시간에는 라면이라도 드시죠.”
“네. 교대로……. 교대로 하죠.”
“네.”
유현은 더 골똘히 그들의 의도에 대해 생각하면 마음만 다칠 것 같아 그만두었다.
대신 안에 들어가 멍때리기로 작정했다.
내과 의사 노릇 한 것이 다행이었다.
내과는 약 쓰고, 검사하고 기다리는 것이 일이었으니까.
지금처럼 기다리기만 하는 건, 어찌 보면 제일 자신 있는 일 중 하나였다.
“언제까지 지켜볼까요?”
그런 유현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국정원 요원들이었다.
타이밍이 엇나가는 바람에 오예리의 존재는 놓쳤으나, 어찌 되었건 센터 내의 정유현을 주목해야 한다는 말은 지키고 있었다.
-흔해 빠진 2차 감염자라면 신경 쓸 필요 없어. 어차피…… 연구실에서도 2차 감염자들을 대상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그럼…… 철수합니까?”
그들은 센터 주변 그리고 병원 기반 설비 근처에 포진한 채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되는 명령은 둘 중 하나였다.
철수 또는 탈취.
-일단 대기.
“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대기였다.
솔직히 좀 짜증이 났지만 뭐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는 게 조직의 생리인 것을.
그나마 김태평 밑에 있으니 이만한 임무라도 맡는 것일 터였다.
“평생 본청에서 서류 작업이나 하다가 갈 줄 알았더니…….”
“그러니까요. 김태평 그 사람. 원래 같으면 자기 직속만 챙긴다고 하던데……. 연구실 쪽에 문제가 생긴 건 맞나 보죠?”
“어……. 국장님 말로는 외국 정보 조직이 관여한 거 같다고 하던데.”
“설마 여기도 와 있는 건 아니겠죠?”
“설마……. 정보가 샜겠냐? 직통으로 우리한테 온 건데.”
“그건 그래요.”
현장 일을 주로 하던 요원들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축소되어 가고 있던 국정원인데, 갑자기 연구실 쪽에 일이 났으니 유능한 요원들은 그쪽으로 미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골든 트라이앵글 근처에서 북한의 자금 출처를 잡아내던 김태평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던 것과 정확히 같은 이치였다.
소위 말하는 땜빵들로 채워졌다는 얘긴데.
그럼에도 긴장감이 감돌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건 상대는 민간인, 그중에서도 샌님일 것이 뻔한 의사였으니까.
“체격이 좋기는 한데…….”
“그렇다고 총 쏘거나 무기 쓰는 건 안 돼. 맨손으로 제압하고…… 탈취할 거야. 우리가 한둘도 아니고 인마. 설마 이게 안 되겠냐?”
“그것도 그렇죠. 나름 훈련도 받았는데.”
“그나저나……. 대체 언제 명이 떨어지는 거냐. 대기……. 이게 제일 X 같은 건데.”
“언제까지라는 얘기도 없었죠?”
“없었지.”
“에이…….”
“그래도 지휘자가 김태평이야. 임시라도…… 그 인간 말이라면 들어야지.”
“그것도 그렇죠…….”
그럼에도 일단 시키는 대로, 그러니까 에프엠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바로 김태평 때문이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 정도가 아니라 전래 동화에나 나오는 호랑이급으로 전락해 버린 국정원 내부에서 그나마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 아닌가.
아니, 그의 개인적인 성과만 따지고 보면 군사 정권 시절 국정원도 부럽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유현과 국정원 요원들의 기다림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