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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36화 (36/323)

36화 단서 (2)

-그래요? 박기태 환자와 접촉력이 있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돈 앞에 장사 없다는 소리도 있지 않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방금 전화기를 든 간호사는 이 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상대가 들이밀었던 명찰이나 명함에는 분명 질병관리청이라고 쓰여 있었으니까.

한국대 병원의 정보를 미리 알려 주는 것이 방역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어떻게든 바로바로 알려 주는 것이 옳은 일일 터였다.

저기 보이는 정유현 교수처럼 정보를 독점하려고 하는 게 오히려 잘못이란 얘기였다.

덕분에 간호사는 별반 망설임 없이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경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간호사에게 명함을 주었던, 실은 국정원 요원인 김태평은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물었다.

이미 군에서 국정원으로 완전히 연구 주도권이 넘어온 마당이다 보니 사소한 작전마저도 이쪽이 담당하게 된 까닭이었다.

사실 이게 더 어울리기는 했다.

김선태 중령만 떠올려 봐도 간단하지 않나.

그는 물론 유능한 사람이지만 공작에까지 능하냐고 한다면 글쎄올시다였다.

아마 이런 전화에서도 그 특유의 피 냄새를 풍겼을 것이 뻔했다.

그는 누군가를 죽여야만 할 때 고려할 만한 인물이지, 세세한 공작에 어울릴 만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

-심정지 왔기는 한데……. CPR. 아, 그. 심폐 소생술 해서 돌아왔습니다.

“그래요? 죽었다 살아난 겁니까?”

-아……. 꼭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흔한 일이에요.

간호사는 부정했지만, 김태평은 바로 어제 김조은 박사에게 전해 들었던 내용을 떠올렸다.

-죽었다 살아나는 것……. 그것이 키야. 앞으로 질병관리청에 보고되는 모든 ARS-24 관련 자료 수집해서 죽었다 살아나는 케이스 또는 죽을 거 같은 케이스가 있는지 알아봐 줘요.

그 말을 듣고 하루 만에 이런 내용이 와?

느낌이 좋아야 하는데 뭔가 좀 쎄한 기분도 들었다.

일이 술술 풀리는 느낌이지 않은가.

이럴 때일수록 긴장해야 했다.

특히 내가 뭘 잘한 것도 아닌데 일이 스스로 풀려 나갈 때는 더더욱 그래야만 했다.

공작은 이럴 때 괴물이 되어 돌아올 때가 있었다.

“지금은 어떻죠?”

-아……. 지금은 중환자실. 아니네. 감염관리센터 내에 있는 중환자실로 갑니다. 거기서부터는 제가…… 그, 직접은 보지 못하고요. 기록 봐야 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네.

감염관리센터라.

김태평은 이미 부하 직원들을 시켜 한 바퀴씩 돌았던 바 있었다.

생각보다 정유현이 조심성이 있는 건지 아니면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 건지는 몰라도 연구실 내에서는 이렇다 할 정보를 전혀 얻을 수 없었지만.

센터 전체로 범위를 확대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특히 박기태 환자를 빼돌린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이 주효했다.

‘도청 장치 쫙 깔려 있지……. 죽었다 살아난다면, 그걸 숨기기는 어려울 거야. 게다가…….’

이건 김태평도 몰랐던 사실인데, 생각보다 중환자실에서 의료진들은 제일 부주의해지는 편이었다.

환자를 보는 데 있어서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환자들이 모두 의식이 없어서 그런가, 비밀스러운 얘기들이 돌았다.

박기태에 대한 소문도 바로 여기서 습득한 바 있었다.

‘좋아. 기다려 볼까.’

김태평은 그런 생각을 하며 김조은 박사의 번호를 눌렀다가, 이내 지웠다.

확실해졌을 때 보고하는 것이 좋겠다 여겨서였다.

게다가 그쪽 라인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외부에서 있었던 침입.

그 경로가 좀 이상했다.

‘병원에도 내통자가 있는데 거기라고 없을 거라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위성을 이용하면 병원 정문에서 입구까지의 길을 알아내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부에서도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

게다가 통신선.

그 오래된, 아무렇게나 지은 건물의 통신선을 귀신같이 잘라서 잘랐다?

솔직히 김태평은 그걸 자른 놈은 내부인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막 지은 건물이다 보니 하필 근처에 CCTV도 없어서 확인이 불가했지만.

그래서 더더욱 의심이 짙어지고 있었다.

“CT 되나?”

“아, 네. 바로 됩니다.”

“그래……. 그럼 내가 앰부 짤 테니까, 바로 찍죠.”

“네? 교수님이요? 그냥 인턴…….”

“순규 제 친구예요. 남 손에 맡기기 싫어요.”

“아, 알겠습니다. 그럼…… 이거라도.”

“네.”

김태평이 유의미한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깊숙이 파내고 있는 동안, 유현은 중환자실에서 이순규를 보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의사 가운을 걸치고 협진이나 봤을 이 의사는 이제 환자복을 걸친 채 누워 있었다.

푸슈슉

그것도 벤틸레이터(Ventilator), 즉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저걸 끊으면 그대로 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근거 없는 생각은 아니었다.

동공 반사.

그게 없었다.

‘나만 확인하긴 했어……. 근데 확실히 없었어.’

중환자실로 이송되는 동안, 환자 머리 쪽에 있었던 유현은 홀로 동공 반사를 보았더랬다.

주변에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엘리베이터 안이라는, 농담으로라도 조명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공간에서는 옆에서 힐끔 보는 것만으로 동공 반사를 확인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교수인 유현이 직접 아직 괜찮다고 했으니 그 누구도 의심할 생각은 못 했을 터였다.

김태평이 심어 놓은 프락치 간호사도 마찬가지였다.

애써 이송을 따라왔지만, 그것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순규야…….’

동공 반사가 없다는 건.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유현은 애써 그 생각을 지운 채, 앰부를 쥐어짜면서 CT실 안으로 들어섰다.

위이잉

곧 기기가 돌아가고 영상이 찍혔다.

워낙에 CT가 신속한 검사인 데다가 머리는 부위도 작고 움직임도 없는 곳이다 보니 금세 끝이 났다.

그렇게 검사가 끝나자마자 유현은 원래 자리로 환자를 옮겼다.

그러곤 영상을 확인했다.

‘Corticomedullary Differentiation(피질 수질 접합부의 경계)이…….’

이게 구분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다.

다시 말하면 Corticomedullary Differentiation의 소실.

명백한 뇌사 소견이란 얘기였다.

“이런 시발…….”

유현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욕설이 흘러나왔다.

옆에 있던 재원은 정반대로 입을 꾹 다물었다.

‘뇌사…….’

뭘 몰라봐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잘 알아봐서 그랬다.

다시 말하면 자기 교수의 친구가 방금 죽었다는 얘기였다.

‘이걸 어쩌냐…… 이거…….’

재원은 노심초사하는 얼굴로 유현을 돌아보았다.

대체 어떤 심경일까.

한눈에 알아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의사들은 포커페이스를 익히기 마련인데, 이 인간은 더더욱 그런 편이라 그랬다.

“저, 교수님. 이거…….”

“이게 뭔가요?”

“응급실에서 올라왔습니다. 이순규 교수님 개인 물품입니다. 옷에 들어 있었어요.”

“아.”

그때 간호사 하나가 조심스레 다가와 물품 바구니를 건넸다.

혼자 사는 사람이다 보니 딱히 이렇다 할 보호자가 없지 않겠나.

그렇다 보니 주치의이자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정유현에게 물건이 전달되었다.

“음.”

유현은 겨우 영상에서 눈을 뗀 후 물건을 돌아보았다.

차 키, 지갑 그리고 동전 몇 개가 다였다.

습관처럼, 그러니까 임종한 환자의 물품을 다룰 때처럼 지갑 안쪽을 열어 보았더니 어떤 증서가 나왔다.

-장기 기증 서약 증서.

신분증 옆에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아……. 그때…….’

그제야 기억났다.

의대 동기들과 함께 장기 기증 서약을 했던 일이.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라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기억이 돌아올 줄이야.

“양 선생.”

그걸 한참 더듬고 있던 유현이 재원을 불렀다.

평소와는 달리 목소리가 무척 가라앉아 있었다.

재원은 그게 어쩐지 울음을 참는 것처럼 느껴져 그저 고개만 숙였다.

“코디 연락은 좀 미루지.”

“네?”

“일단 이대로 좀 더 지켜보자는 얘기야.”

“어……. 네.”

“아직 모를 일이니까.”

“네, 교수님.”

친구의 죽음이 판단력을 흐트러뜨린 걸까?

재원은 언제고 냉철했던 교수가 말도 안 되는 희망을 품었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모를 일이라니.

죽었다 살아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박기태 환자는……. 에러 아니었나? 영상에서 그렇게 말하던데.’

그날 영상 기기 고장이 있었다는 식의 공문을 전해 받은 바 있었다.

벌써 관련 자료가 다 사라지고 난 다음이라는 것이 좀 석연찮게 느껴졌지만.

영상의학과가 원래 그렇게 빠릿빠릿하지는 않은 편이기도 해서 그냥 그런갑다 넘어갔더랬다.

게다가 의학적으로 볼 때 사람이 죽었다 살아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적을 바라기에도 너무 터무니없는 상황이라는 얘기였다.

‘그래……. 마음 추스를 시간이 있어야지. 게다가 이분 가족도 없고…….’

하지만 그 말은 속으로만 꾹꾹 눌러 담았다.

정유현은 때로 과격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건 좋은 교수 아니던가.

졸국 할 수 있도록 논문도 도와줬던 바 있어서 양재원에게는 어찌 되었건 은인이었다.

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유현이 종잇조각 하나를 슥 하고 밀었다.

-이 일은 함구하도록 할 것.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대체 뭔 소리?

하는 얼굴로 유현을 바라보았으나, 유현은 어느새 몸을 일으켜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어려운 대상이었는데 친구가 죽은 마당이라 그 어떤 말도 못 하고 그저 서 있어야만 했다.

‘뭐……. 뇌사 판정 위원회 열릴까 봐 그러시는 거겠지.’

지정의와 주치의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영원히는 아닐지라도 며칠 정도는 덮을 수 있을 터였다.

그때쯤 되면 마음도 추슬러지겠지.

재원은 그렇게 믿으며 잠시 유현의 말을 따르기로 작정했다.

“네, 긴히 요청드릴 일이 있어서요.”

그 시각 유현은 선불폰으로 오예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의 모든 시간 깨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오예리는 즉각 전화에 답했다.

-네, 어떤 일이죠?

“일단 지금 어디죠?”

-밖이죠. 안에서는 이 전화는 절대 안 받아요.

“잘하셨습니다. 음.”

유현은 잠시 감정을 추슬렀다.

아무리 해야 할 일 앞에 냉정해지는 성정이라지만, 숨이 멎은 친구를 보면서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박기태 환자와 접촉한 환자가……. 지금 저희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네? 어떻게……?

“꽤 오래전에 접촉했어요. 벌써 한 달 전 정도?”

-한 달? 근데 감염이 된 거예요?

“네. 어찌 된 영문인지는 저도 모릅니다만……. 박기태와 아주 비슷한 임상 경과를 밟고 있어요.”

-그들이 알고 있나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만……. 모를 거 같진 않아요. 다만 병원이니만큼 무력을 쓰기는 어려울 겁니다. 일부러 중환자실 가운데 놓았거든요.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죠.”

-지켜 달라……. 그 말씀이시죠?

“네. 가능할까요?”

유현의 말에 오예리 형사는 씨익 웃었다.

마침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물론이죠. 지금 바로 갈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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