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35화 (35/323)

35화 단서 (1)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차를 타고 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혹시 알아볼까 봐 차를 근처 공영 주차장에 두고 와서 그랬다.

-교수님, 괜찮아요? 숨소리가 들리는데.

“달리고 있어서 그래. 오랜만에 뛰니까……. 힘드네.”

-아, 가까이 계세요? 다행이다. 감염 같아요.

“아니, 멀어. 그것도 엄청.”

-먼데 뛰어오시려고요?

“아니, 새꺄. 자꾸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고. 환자…… 순규 얘기나 해 봐. 숨 차!”

그래서 달렸다.

다다다 소리를 내면서.

다행한 일은 유현의 피지컬이 어지간한 운동선수 못지않다는 점이었다.

아마 마음먹고 태릉에서 훈련을 받았다면 메달도 따지 않았을까?

실제로 유현이 취미로 배웠던 운동 모두에서 관장들에게 제의를 받아 본 적이 있었을 지경이었다.

이 몸으로 의사질이나 하고 있는 건 죄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그게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아, 네. 지금…… 아니, 오실 때 체온이 42도. 혈압은 110에 70. 심장 박동 수는 121회였습니다. 호흡수는……. 어…… 높았는데.

“일단 넘어가. 근데 체온이 42도?”

-네.

“아니……. 의사라는 놈이 약도 안 먹었대? 뭔 짓이야?”

-먹었다고 했습니다. 타이레놀에 NSAIDs(Non-Steroidal Anti-Inflammatory Drugs, 비스테로이드 소염제) 교차 복용했다고 진술하셨어요.

“근데 열이……? 언제부터 그랬대.”

유현은 공영 주차장에 닿자마자 낮은 담을 훅 하고 뛰어넘고선 차에 올라탔다.

누군가 이 모습을 봤더라면 이유 불문하고 신고했을 텐데.

다행히 늦은 시간이다 보니 아무도 없었다.

부리나케 시동을 걸고 있으려니, 재원의 답이 들려왔다.

-정신과 애도 내려왔는데……. 이순규 교수님 이틀 전부터 병가 내셨었대요.

“병가……?”

-네.

“그럼 최소 3일째라는 얘기네. 약을 교차로 먹었고……. 3일째에도 열이 난다고?”

-네.

이런 망할.

왜 갑자기 이러지?

설마 정말로……. 박기태 환자에게 감염된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주로는 안 좋은 쪽으로 그랬다.

부우웅

하지만 유현은 잡생각이 그렇게 제멋대로 머릿속을 헝클어 두게 두지 않았다.

의사는 무엇인가.

환자를 고쳐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려면 감정에 휩싸이면 안 되었다.

다른 사람은 다 흥분하거나 두려움에 떨어도 의사는 그러면 안 되었다.

특히 유현은 그러한 훈련을 아주 잘 받은 사람이었고, 동시에 타고나기도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기도 했다.

“의식은? 그 정도면 약간 혼탁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 그게. 혈압이 갑자기 뚝 떨어져서요. 지금 처치하고 있습니다.

“혈압이? 이 새꺄. 그럼 그거부터 말했어야지!”

-죄송합니다. 어……. 지금 80에 50입니다. 의식은…… 스투퍼(Stupor, 혼미)? 통증에는 살짝 반응이 있어요.

“스투퍼…….”

혈압이 낮기는 하지만.

나이를 고려했을 때 스투퍼까지 떨어질 수준은 또 아니었다.

의학에 있어서 나이는 깡패이기에,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이순규는 운동을 열심히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하는 인간이었다.

정신과다 보니 시간적 여유도 있고 또 유현과 마찬가지로 결혼도 안 해서 그랬다.

“지금 처치 뭐 입고 하고 있지?”

-아, 네. 혹시 몰라서…… 레벨 D 착용 중입니다.

“그건 잘했네. 일단 나…… 10분이면 가니까. 전화 끊자. 별일 있으면 전화하고.”

-네! 감사합니다!

유현은 ARS-24일 가능성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백신을 맞았다고 해서 배제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지 않나.

돌파 감염은 딱히 박기태 환자에게서 관찰된 변종이 아니더라도 계속 보이고 있었기에 그랬다.

독감처럼 매년 백신을 맞아야 할 거라는 관측도 벗어나지 않았나.

지금 추세라면 분기별로 맞아야 할 판이었다.

‘그나마 순규는 면역 반응이 강하진 않았어……. 맞았을 거야. 병원 지침도 그렇고…….’

일반적인 백신이었다면 딱히 거부감이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mRNA 전사 방식을 이용한 백신은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었다.

감염내과 의사 입장에서 볼 때 그래도 맞는 게 이득이 훨씬 크다고 판단하고 있었지만.

면역 계통 질환자들에게는 그러기도 어려웠다.

자가 면역 질환을 확 끌어올린단 보고가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어서 그랬다.

하여간, 맞았다고 가정한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돌파 감염이라 해도 엇비슷한 항체가 있으면 어지간히 맞서 싸울 수 있을 테니.

‘아니, 아닌가……. 이미 쇼크로 가고 있어.’

유현은 의사로서 또 이순규의 친구로서 생각을 이어 나가면서 차를 급히 몰았다.

끼이익

그러곤 응급실 바로 앞에 차를 세웠다.

시큐리티가 달려오는 일 따위는 없었다.

이제 감염내과 의사가 탄 차에는 따로 표식이 되어 있었고,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표식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보편화된 지 오래라 그랬다.

다다다

유현은 그렇게 차를 앞에다 세우고 안쪽으로 달렸다.

처치실이 분주해 보였다.

“심정지!”

심정지?

심정지라고?

그야말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어서 그대로 달렸다.

“흉부 압박해!”

들어가 보니 이순규 위에 올라탄 양재원이 보였다.

구슬땀을 흘리며 가슴을 눌러 대고 있었다.

완전 정석 그대로.

그러나 오래 지속할 수는 없어 보였다.

저 녀석 체력이 개판이니까.

“내가…… 아니, 잠깐! 재원아 손 떼 봐.”

교대해 주려고 했는데 리듬이 좀 이상했다.

그래서 재원의 손을 멈추었다.

“도…… 돌아왔다.”

“어후.”

“휴우.”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전부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을 목도하는 이들뿐이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얘기였다.

그렇다 보니 다시 뛰기 시작한 심장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유현은 물론이거니와 양재원 그리고 정신과 레지던트. 응급실 의료진도 다 마찬가지였다.

“약은 어디까지 들어갔지?”

“에피 들어갔습니다.”

“혈압은…… 아, 낮네. 이런 제기랄. 항바이러스제는?”

“들어갔습니다. 양성 반응은 아직 확인 못 했는데……. 양 선생이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해서요.”

그중에서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역시나 유현이었다.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둔 친구를 옆에 두고서도 냉정을 잊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야 친구를 살릴 수 있다는 걸 잘 알아서 그랬다.

“잘했네. 검사는 언제 나갔지?”

“오자마자 나갔습니다. 이제 곧…… 아, 떴습니다. 양성……. 양성입니다.”

“ARS-24……라 이거지. 피 검사한 거 유전자 분석 나가라고 해 주고.”

“네, 교수님.”

“어……. 부정맥. 부정맥이다!”

그러나 이순규의 심장은 좀처럼 완전히 나아질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심정지 했던 것을 가까스로 잡아 놓았더니만 이제는 제멋대로 뛰고 있었다.

“맥박 안 잡힙니다!”

“흉부 압박 재개해! 제세동기는!”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럼 한 사이클 돌리고 바로 때려! 준비해!”

“네!”

아니, 뛰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떨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터였다.

이렇게 되면 심장은 피를 제대로 보낼 수가 없었다.

결국, 답은 흉부 압박뿐이었다.

“하나, 둘, 셋, 넷!”

유현은 제일 먼저 뛰어올라 심장을 꾹꾹 눌러 댔다.

정석을 넘어 완벽한 수준의 흉부 압박이었다.

친구들이 농담으로 맨날 저것만 하는 사람처럼 한다고 했을 지경이었다.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 잡히지 않던 맥이 순식간에 정상 혈압으로 잡히고 있었다.

“레디!”

“클리어!”

“슛!”

그사이 제세동기가 충전되고, 슛이 들어갔다.

“돌아…… 아니, 아냐! 다시!”

보람 없이 리듬은 그대로였다.

유현은 다시 이순규의 가슴을 눌러 대기 시작했다.

“교수님, 제가…….”

“아냐, 너 벌써 지쳤어! 인턴 오라고 해! 나도 2사이클 하면 잠시……. 쉬어야 해!”

쿵쿵.

뛰지 않는 심장을 억지로 쥐어짜고 있었다.

“레디!”

“클리어!”

“슛!”

다시 한번 제세동기 텀이 돌아왔고.

전기 충격을 가했다.

띡 띡 띡

이번에는 리듬에 변화가 있었다.

심전도상에서는 심장이 제대로 뛰고 있었다.

“맥은?”

“있습니다!”

“후…….”

잠깐 사이에 사람이 두 번 죽었다 살았다.

당연하게도 숨 막히는 긴장감이 여전히 처치실 내부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 새꺄……. 아프면 미리 왔어야지. 병가를 이틀 전에 냈으면서…….”

유현은 어느새 기관 삽관까지 되어 있는 친구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좀 더 일찍 왔다면 아마 달라지지 않았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다 문득 전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거…….’

기시감이었다.

아니, 데자뷔였다.

유현은 언젠가 이런 생각을, 이런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있었다.

‘박기태…….’

그 환자도 열난 지 3일째 응급실에 들어왔다.

차이가 있다면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는 것 정도일까?

같이 온 구급대원의 말에 의하면 3일 전부터 열이 났었다고 진술했다고 했다.

오는 사이에 의식을 잃었고, 세 번의 심정지를 겪었다.

“어, 어! 또!”

공교롭게도 이순규도 이번이 세 번째.

찝찝하단 생각이 들었으나, 그 생각을 이어 나갈 틈은 없었다.

심정지.

모든 의료진이 투입되어야 할 상황이기에 그랬다.

“하나, 둘, 셋!”

이번에는 유현 대신 응급실 의사가 가슴을 눌렀다.

심장을 대신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그랬다.

제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한 사람이라 해도 금세 체력을 소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제가!”

하지만 유현은 회복이 빨랐고, 두 번째 사이클이 되자마자 나섰다.

“하나, 둘, 셋!”

그렇게 몇 사이클이나 반복했을까.

슬슬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띡 띡 띡

이변이 일었다.

환자의 심장이 되돌아왔다.

그것도 완전히 정상 레벨로.

“후…….”

흉부 압박에 나섰던 의료진의 얼굴은 이미 땀범벅이었다.

양재원은 숫제 널브러져 버렸다.

아는 교수를 넘어 가끔 상담도 받았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보니 저도 모르게 너무 열을 낸 까닭이었다.

그러나 정작 친구인 유현은 수심에 잠긴 채, 가만히 이순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 번의 심정지……. 내가 기억하기로…… 박기태도 세 번째 심정지가 길었어.’

설마.

내 친구도 박기태처럼.

1호처럼 되는 걸까?

‘이상한데……. 2차 감염자들의 양상은…… 다르다고 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박원상의 말에 따르면 이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바이러스는 분명히 변환했다고 들었다.

애초에 그렇게 디자인되었을 가능성이 크거나 혹은 실패작일 거라 들었다.

“뇌 손상이 있는지 없는지도 보도록 하지. 감염 케어도 제가 할 테니, 우리 센터로 올려 줘요.”

“네, 교수님. 혹시 또…….”

“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저는 계속 같이 있을 겁니다.”

“아,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하여간 유현은 불안한 얼굴로 이순규를 바라보았다.

혹 그와 비슷한 코스를 걷게 되면 대체 어찌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너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느라, 한 가지 움직임을 놓쳤을 지경이었다.

누군가.

처치실 안에 있던 누군가가 조용히 빠져나가 휴대폰을 집어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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