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32화 (32/323)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저 상대를 짓밟는 것만 중요한 놈들.

진짜 적은 저 밖에 있는데 내부 총질에만 관심을 두는 놈들.

‘들이받을까?’

여기서 미친 척 일어나서 발언할까?

이런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러기엔 김태평도 용기가 부족했다.

내부 총질에 진심인 놈들이 과연 김태평을 용인하겠나.

능력이 아깝네 어쩌네 하는 생각보다는 그저 방해가 된다는 생각만 할 게 뻔했다.

“표정이 안 좋던데. 뭔 일 있나?”

회의실에서 나와 다시 지구 병원을 감시하고 있던 위치로 복귀하는 차 안.

한가람이 김태평에게 말을 걸어왔다.

헛구역질을 할 뻔했다.

뻔히 알고 있을 테니까.

김태평은 삼청동이라는 위치가 얼마나 정보기관 놈들이 활동하기에 제약이 많은지에 대해 이미 여러 번 말한 바 있었다.

“아닙니다, 차장님.”

“그래, 이미 결정된 사안이야. 알지? 원장님……. 다음 총선에서 배지 다실 거야. 내가 차기 원장이고……. 그럼 다음 2차장이 누구겠어. 해외에서 구르던 보람, 이제 한번 느껴 봐야지.”

“그……. 감사합니다.”

“이동할 때가 제일 위험하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삼청동에서 남산 터널이 그렇게 먼 것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 나겠어?”

무슨 일이 나겠어? 라니.

그 무슨 일을 나게 만드는 데 있어서 스페셜리스트가 바로 정보기관 놈들인데.

그리고 지금 그놈들 중에서도 세계 최고라 정평이 난 놈들을 상대해야 하는 참인데.

“이동 시에 제가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자네가? 어려운 일은 아냐. 다만 군대랑 약간 마찰이 있을 수 있는데…….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어차피 말이 통할 상대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애초에 일을 이렇게 만들지 않았겠지.

그렇다면 지금 김태평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X 된 일을 덜 X 되게 하는 것.

‘새끼들이 말도 안 되는 정보라고 생각해서…… 아무 일도 안 하길……. 바라야지.’

그리고 애써 하나 더 보탠다면 의미 없는 기도 정도였다.

그 시각, 유현은 박원상의 집 앞에 있었다.

‘폭발 사고……. 아니지. 그건 폭탄이야. 그럼 한 번쯤 집에 보내지 않을까?’

뉴스에서는 그냥 삼청동 인근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고 그 여파로 군인 둘이 사망했다는 보도만 나오고 있었다.

다들 그런갑다 하고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하필 폭발 사고가 지구 병원 입구에서 터질 일이 있단 말인가?

게다가 유현이 알기로 그 앞을 지키는 헌병은 한 명이었다.

둘이 아니라.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하여간 위험했을 거야. 어쩌면 이미…… 탈취당했을 수도 있고. 그런다고 얘를 보낼지 안 보낼지는 미지수긴 한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박원상의 집 근처를 배회하고 있으려니, 차량 하나가 어둠을 뚫고 단지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검정색 세단.

하얀 아우디가 아니었기에 신경을 끄려는 찰나, 뒷좌석에 앉은 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박원상.’

단지가 고급 단지다 보니 가로등이 많은 게 신의 한 수였다.

아마 그저 어둠 속을 이동했다면 절대 몰랐으리라.

유현은 이미 박원상의 집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파트 안으로 향했다.

미리 자동문 사이에 낑겨 놨던 신문지 덕에 머뭇거림은 없었다.

그대로 12층에 올라온 유현은 입구 쪽에 서 있으려다가 말고 머리를 굴렸다.

‘혼자 올라올까?’

운전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그거 말고도 더 있었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주의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유현은 계단식 복도 뒤편으로 몸을 숨기고, 엘리베이터를 주시했다.

띵이윽고 지하로 내려갔던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두 명이 사람이 내렸다.

하나는 박원상.

다른 하나는 모르는 얼굴.

그러나 딱 봐도 나 수상합니다 라고 쓰여 있는 얼굴이었다.

“교수님.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놀라셨을 텐데 푹 쉬시죠.”

“내일 나가면 또…… 한동안 못 옵니까?”

“아뇨. 2주 뒤까지는 매일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 알겠습니다. 그럼.”

“네, 내일 7시 바로 이 자리에서 뵙겠습니다.”

그 사내는 조용하지만 힘 있는 어조로 말을 전달한 후, 지하로 내려갔다.

박원상은 그러고 나서도 바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원상아.”

유현은 그런 박원상에게 다가갔다.

“어!”

“쉬……. 소리 지르지 말고. 이리로 와.”

협력자의 집에도 도청 장치가 있을까?

사실 유현은 자기 연구실에서도 이렇다 할 도청 장치를 찾아내진 못했다.

하지만 고속 도로에서 사람이 죽었다.

환자는 탈취당했고.

각국에서 전문가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주의하게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부주의한 사람은 못 되었다.

“어……. 어어.”

박원상은 얼떨떨한 얼굴로 유현에게 다가갔다.

놀라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낮에 있던 폭발의 여파로 인해 지금도 손이 벌벌 떨렸다.

마치 지금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일에 대한 벌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오랜 친구 유현을 보고 나니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언제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유현이었던 탓이었다.

“너……. 지구 병원에서 오는 길이냐?”

유현은 그런 박원상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 어……. 맞아.”

“이 시발……. 내가 너 국방부에서 연락 온 거 있냐고 물었을 땐 없다고 했잖아.”

“그땐 없었어. 그 후에 왔어.”

“그럼 나한테 얘기를 해 줬어야 한다는 생각은 안 들었냐?”

“그……. 음. 그게 맞는데……. 일단 가 보기나 하자고 하고 갔지. 근데 갔더니 이건 어디 가서 말을 할 수 없는……. 하, 지금도.”

“내려가면서 얘기해. 설마 계단도 보고 있겠냐?”

“그,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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