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31화 (31/323)

31화 성동격서 (5)

회의실은 삼청동 인근 안가에서 열렸다.

원래 국정원 보고는 청와대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금 사안이 일반적이지 않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참가 인원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대통령, 국정원장 그리고 이름 모를 장성 하나에 의무사령관까지.

높은 사람들만 열거해도 이 정도였다.

“일단 가스 유출로 인한 폭발 사고로 발표 나갔습니다. 헌병에 대해서는……. 유가족 위로금 1억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언론에서 냄새 맡은 거 같지는 않고?”

“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발표하고 있는 이는 김태평의 상관, 즉 제2차장 한가람이었다.

국내 정치질을 통해 올라온 사람답게 하여간 내부 통제 하나는 일품이었다.

“보도 제한을 걸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잘 통제되고 있습니다.”

“그건……. 정말 다행이군.”

대통령은 후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지지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런 짓을 하지 않아도, 이미 지지율은 꽤 높은 상황이지 않나.

ARS-24로 인해 나라 여럿 작살 나고 있던 와중에 꽤나 잘 버텨 온 덕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있었다.

‘핵 개발은 어차피 요원한 일…….’

유엔 상임 이사국의 명단이 곧 핵보유국의 명단이지 않나.

파키스탄과 인도를 제외하면 그 후로 핵 개발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북한이 있기는 한데…….

‘그거 감행하다가 경제 제재당하면 정권도 끝이고, 더 나아가 차기 집권도 물 건너가는 거지.’

북한, 이란이 어떤 꼴이 났는지 보면 핵을 건드리는 건 정말 무리수였다.

그에 비해 이 바이오 생화학 무기는 아예 다른 특성을 갖고 있었다.

우선 연구 개발에 드는 용역이 훨씬 적었다.

물론 들켰을 때 국제 사회의 비난은 더 격렬할 수도 있겠지만.

여차하면 병원 전체를 소각하고 모르쇠 칠 수 있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었다.

이러한 자잘한 위험에 비해 이것을 무기화해서 보유할 경우의 이점은 상상 이상이었다.

‘핵과 준하는 비대칭 전력…….’

현 의무사령관의 비공식 대담을 통해 들은 발표에 눈이 뜨이지 않을 대통령이 있을까?

게다가 이 무기에 대한 연구는 말만 안 했을 뿐, 각국에서 이미 다 진행 중이었다.

고무적인 것은 대한민국이 1호 실험체를 확보함으로써 압도적인 선두에 나섰다는 점이었다.

개 같은 놈들이 득달같이 냄새를 맡고 달려들고 있지만, 이것만 극복하면 끝이었다.

대통령은 그렇게 굳게 믿었다.

“문제는 지구 병원에 있습니다. 지구 병원을 개조하기는 했습니다만……. 여전히 방어전에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대통령이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2차장 한가람이 용기백배한 얼굴이 되어 말을 이었다.

“그럼 어떻게……?”

“남산 지하에 시설이 있습니다.”

“안기부 터 말하는 건가? 그거 부순 지가 언젠데…….”

군사 정권의 잔재라 할 수 있는 것은 깨끗이 치워 나가고 있는 상황 아닌가.

실제로 지금 이 자리에 앉은 국정원의 권한마저도 축소되어 가고 있었더랬다.

팬데믹으로 인해 급변하는 세계정세가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쯤 그 존재 의의조차도 희미해졌을 터였다.

차장은 대통령의 질문에 바로 답하는 대신 국정원장을 바라보았다.

국정원장은 조용히 몸을 일으킨 후, 입을 열었다.

“안기부 터나 별관이 민간에 공개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남산 터널 밑으로 시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원래 버려져 있던 곳인데……. 현재 지구 병원급으로 개조하는 데 2주면 충분할 거란 분석이 있습니다.”

“그럼 그쪽으로 이…… 실험체들을 옮기자, 뭐 이런 얘기요?”

“그렇습니다, 각하. 그 주변은 지구 병원처럼 감시가 수월하지도 않고 입구도 가려져 있어 방어에 용이합니다.”

“음.”

남산 지하 시설이라.

대통령은 잠시 눈을 감았다.

‘나도 몰랐던 곳이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더 안전하지 않을까?

여차하면 잘라 내기도 쉽고.

지구 병원은 아무래도 좀 찜찜한 것이 사실이었다.

일단 계속 영문도 모르는 옛 군 장성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다 보니 통제도 쉽지 않았다.

아마 국정원의 도움 없이 그저 군바리들만 있었다면 무조건 들켰을 터였다.

즉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 말에 잠자코 듣고 있던 김태평이 눈을 부릅떴다.

‘이 미친…….’

오늘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누군가 무력으로 침입하려 했으니까.

하지만 실패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결과였다.

시도는 언제나 할 수 있지 않겠나?

그걸 막아 냈다는 것, 또 시설의 노출은 아예 없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동할 때가 제일 위험하다는 걸…… 모르나?’

김태평은 저도 모르게 한가람을 노려보았다.

꽤 노골적인 시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가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군 장성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김태평은 이게 왜 이렇게 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군부 영향력을 최소화하려고…… 저 지랄이구나.’

애초에 특임대를 배제하는 것부터가 이상하더니만.

하여간 정치질만 해서 올라가는 새끼들은 이런 게 문제였다.

뭐가 진짜 중요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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