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성동격서 (4)
김태평은 헌병이 지키고 있던, 이제는 피 웅덩이만 남은 곳을 지나쳐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차량용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원래 열려 있었던 듯했다.
바닥에 뭔가 끌린 자국조차 남아 있질 않았다.
‘무신경한 새끼들…….’
엄청 중요한 거라고 하지 않았나?
아니,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중요한 게 맞을 터였다.
이제 요원 생활도 10년 넘게 해 먹은 거 같은데, 이렇게 많은 나라의 정보기관이 한데 모인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 그러니까 CIA도 이 근처에 터를 잡았다.
‘모르는 줄 알겠지?’
원래 지들만 잘난 줄 아는 게 CIA지 않나.
국정원의 존재 가치는 대북 관련한 것 말고는 없다고 생각하는 놈들이었다.
지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죄다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은 아마 꿈에도 모를 터였다.
‘그렇게 보고를 올렸으면……. 존나 잘해야 할 거 아냐!’
김태평은 팀원들과 함께 권총으로 무장한 채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 입구까지는 아무 흔적이 없었으나 그 안쪽으로 시신 한 구가 보였다.
이번에도 또 병사였다.
실탄이 있었을까?
아무래도 없었을 것 같은데.
빈총일 거란 생각 따위는 못 했을 상대가 일단 사살하고 넘어간 모양이었다.
“이쪽으로!”
김태평은 이미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일단 시신을 떠나 지하로 향했다.
이 소동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지하엔 불이 다 들어와 있었다.
정체불명의 침입이라면 일단 소등하고 대기해야 하는 게 국룰 아닌가.
우리에게는 길이 익숙할지 몰라도 상대에게는 아닐 텐데.
“정지.”
지하에서 또 지하로 향하는 유일한 길인 엘리베이터 앞에는 그나마 병사들과 요원 몇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이 징집병인 오합지졸이었지만.
몇 명은 이미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는 사수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일단 되었다.
김태평은 그중 말이 통할 것 같은 상대, 즉 요원으로 보이는 녀석에게 말했다.
“김태평이다! 상대는?”
“아……. 살았다.”
“상대는 어찌 됐냐고!”
“교전 시작하고 바로 이탈했습니다!”
“뭐? 이탈?”
“네!”
지켜야 할 대상, 즉 잭팟은 안전했다.
남은 건 쳐들어온 놈들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또 소탕하는 것일 텐데.
말을 들어 보니 이미 이탈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흩어져서 찾아! 너, 너는 나랑 보안팀으로 간다. 여기 CCTV 있지? 지금 간다고 연락해.”
“아, 네. 근데…….”
“근데?”
“통신선이 끊어진 건지……. 지금 다 먹통입니다.”
그래, 아무리 개판이라고 해도 이 상황에서 병원 연락이 하나도 안 되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하여간 통신선이라니.
김태평의 미간에 가는 주름이 잡혔다.
‘설마 안에서 샜나.’
한국 군대 하면 당나라 군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적어도 이곳, 지구 병원은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병원이지 않나.
지금과는 달리 군사 정권 시대까지는 군 병원이 민간보다 더 좋은 시설과 인력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안보 위협이 거셌던 상황.
허투루 지은 건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일단은……. 일단은 가능성일 뿐이지.’
제아무리 정보기관들이 뛰어나다 해도 이 오래된 건물의 통신선이 어디 있는지 바로 알아낼 수 있을까?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김태평은 우선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훈련받은 사람인 만큼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덕에 금세 보안실에 당도했다.
앞장서던 녀석이 보안실 통신 상황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여기……. 일단 지금은 다 먹통입니다.”
“너 앵무새야? 시발 새끼야. CCTV 찾으러 온 거잖아!! 당했으면 누가 쳤는지는 알아야지!”
“아, 네. 죄송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당황했던 이들이 김태평의 호통에 더 부산스러워졌다.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얼마 지나지 않아 김태평은 녹화본을 곧 입수할 수 있었다.
“틀어.”
“네!”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녹화본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시작은 병원 입구.
-정지!
웬 검정 차량이 말도 없이 다가오자, 헌병이 손을 뻗어 정지를 외쳤다.
-더 다가오면…….
그리고 경고의 문구를 날리려 했으나 그건 실패했다.
차량에서 날아온 수류탄 때문이었다.
쾅그렇게 CCTV도 아웃.
“다음.”
“네, 네. 그……. 아, 네. 여기.”
김태평은 머릿속으로 상대를 그리며 물었다.
그의 말에 따라 다음 CCTV 영상이 돌아갔다.
다다다다
차에서 내렸는지 5명의 괴한이 병원 입구로 내달리고 있었다.
‘사주 경계 좋고……. 이거 요원 아닌데…….’
무장도 그렇고.
움직임도 그렇고.
이건 군인이었다.
그것도 고도로 훈련받은 특수 부대.
“다음.”
“네.”
입구까지는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병신 새끼들이……. 평상시처럼 보이게 한답시고 진짜 평상시처럼 하고 있네.’
이 작전에서 국정원의 역할은 그저 보조였다.
대부분은 국방부, 그중에서도 지금은 의무사령부에서 통제하고 있었다.
하다못해 특임대만이라도 이 자리에 있었으면 지금쯤 한둘은 잡아 놓고 심문하고 있을 텐데.
탕원내에 있던 병사는 단 한 방에 무너졌다.
“으아아!”
“도, 도망쳐!”
동시에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원무과 직원부터 해서 의료진까지 그래도 모두 군인은 군인일 텐데.
움직임을 보니 그저 한심할 따름이었다.
‘하긴……. 이들은 작전을 알지도 못하지.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데.’
상대는 역시나 아무 제지도 없이 지하로 향했다.
‘알고 있어……. 지하에 있다는 걸.’
통신선은 타이밍상 진입도 하기 전에 끊긴 듯했다.
게다가 지하로 망설임 없이 돌입하는 상대를 보니 확실히 내부 협력자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었다.
요새는 별의별 장비가 다 있으니까.
당장 김태평만 해도 미얀마에서 귀국하기 전, 북한 놈들 상대할 때는 유리창을 통해 도청했더랬다.
별다른 장치를 설치하지 않고도 그저 유리창의 진동만으로도 대강의 대화를 다 전해 들을 수 있는 기술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탕타타탕
그렇게 파죽지세로 몰려가던 놈들이 정작 지하에 돌입하고 나서는 진짜 싸우는 시늉만 하고 빠져나갔다.
상대한 병사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시늉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지만.
이만한 무장에, 이만한 훈련을 받은 인원들이라면 솔직히 뚫는 게 불가능하진 않았을 터였다.
게다가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았다면 어지간한 피해는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상한데……. 느낌이…….’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지는 상황이었다.
일단 처음부터 좀 이상했다.
‘굳이 폭탄을 터뜨릴 이유가 있어?’
잠입이라면 모름지기 밤에, 조용히 해야 하는 법이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이었다면 또 모르겠는데 이놈들은 그냥 움직이는 것만 봐도 프로였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 왔다 이 새끼들아 하고 폭탄을 후려갈기고 지하실까지 갔다가 튀었다고?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건 분명…….
뒤에 뭔가 더 있다고 봐야만 했다.
부우웅
그때 전화가 울렸다.
“네, 김태평입니다.”
-어……. 김 팀장. 지금 좀 와야 할 거 같은데.
“저 지금 현장입니다. 여기 정리도 아직…….”
-그래, 그 현장 얘기하려고 이러는 거야. 육본에서도 올라오고 있어.
“네……?”
-일단 거기는 걱정 말라고. 벌써 경찰 쫙 깔렸어. 기동 타격대도 다 들어갈 거고. 수색도 알아서 한다니까 일단은 그냥 둬. 어차피 안에는 안 털렸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바로 위 상관 놈이었다.
신뢰가 가냐고 하면 글쎄올시다인 놈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정치질에 도가 튼 놈치고 진짜 실력자는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빨리 와. 주소는 보냈어.
“알겠습니다.”
하지만 진짜건 가짜건 상관은 상관이었다.
게다가 밖을 내다보니 확실히 부산스러워진 상황이었다.
국정원의 협력은 비공식 사안이니만큼 이쯤에서 빠지는 것이 나아 보였다.
방금 들은 것처럼 뭘 뺏기거나 한 것도 없지 않나.
비록 둘이 죽기는 했지만…….
이 일 하다 보면 사람 죽어 나가는 데에는 무감해지기 마련이었다.
부우웅
해서 김태평은 차량을 타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유현은 형사 둘과 함께 근처 카페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방금 경찰이 와서 뭘 묻는 바람에 좀 찝찝해질 뻔했는데, 다행히 오예리 형사 후배가 경찰 배지를 보여 준 덕에 그냥 넘어갔다.
“와……. 엄청 빠르네. 의경들 저렇게 빠릿빠릿한 거 오랜만에 보는데.”
그 후배 또한 창문을 통해 전경을 바라보다가 한마디 했다.
둘 다 거기에 대해서는 이견은 없었다.
“별일은 없었던 거 같네요.”
다만 유현은 거기서 한 발짝 더 나갈 수 있었다.
“네? 어떻게 그걸 확신하세요?”
“뭔가 사라졌다면…… 들어오는 인원만큼 나가는 인원도 있지 않았을까요? 근데 지금은 몰려들기만 하잖아요. 기껏해야…… 그래, 저기 검정 차량. 쟤 하나 나가네.”
“아……. 그렇게 들으니까 또 그렇긴 하네요.”
오예리 형사는 그럴싸한 생각이라고 여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건 안 될 일이었다.
특히 유현은 더더욱 그랬다.
해서 아까부터 여럿에게 연락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혹시 몰라 선불 폰을 쓰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제일 궁금한 놈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박원상 이 새끼……. 진짜 안에서 정신 못 차리고 연구나 하고 있나?’
그럼 안 되는데.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해서 유현은 우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날 만나서 전화기를 따로 건넸기 때문에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어, 형.
“바로 받네?”
-휴가라고 쓰고 징계라……. 달리 할 게 없어요.
“제수씨는 뭐래?”
-일단 보너스 받고 쉬는 중이라고 했죠. 걔도 교육부 공무원이라 바빠서……. 다행히 뭘 묻지는 않았어요.
“그래, 다행이네. 음……. 그래, 그건 어떻게 됐어.”
폭탄이 터졌다.
서울 한복판에서.
그리고 각국 전문가들이 사라졌다.
유현이 죽었다 살아난 환자를 리포트 한 바로 다음부터 급격히 사라졌다.
그들이 다 어디로 갔겠나.
설마하니 은퇴했단 생각을 하는 순진한 인간은 없으리라 여겼다.
대한민국 국방부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적들을 걱정해야 한단 뜻이었다.
지금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들이야 각국의…… 질병관리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혹은 정보기관들이겠지만.
유현이 진짜 걱정하는 건 따로 있었다.
-일단 자료 넘어갔어요. 지금 배양 중일 거예요. 왜요? 뭔 일 있어요?
“뭐……. 불안해서 그렇지.”
-백신 만들어 두면 뭐, 괜찮죠. 문제는 면역 획득률이 아니겠어요? 물리적인 방식으로 100% 감염률을 보이는 바이러스라……. 결국에는 치료제나 중화제도 나와야 할 텐데…….
“그래, 그게 제일 문제야.”
테러.
바이오 테러가 일어나면 어찌 될까?
과연 나쁜 놈들이 본격적으로 노리기 시작하면, 저기 있는 저 경찰들이 막을 수 있을까?
‘어려울 거 같은데…….’
유현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가로저으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