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성동격서 (2)
“야, 우식아.”
“네, 형. 가만히 있으라더니……. 꼭 여기까지 날 불렀어야 했어요?”
테러.
이 끔찍한 행위를 떠올린 유현은 사라진 학계 인사가 박원상만이 아니란 사실 또한 그리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대한민국 얘기가 아니었다.
중국, 일본,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 등.
당장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회의록에 올라와 있던 ARS-24 전문가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핑계는 비슷했다.
“원상이 알지?”
“알죠. 호르몬 광신도.”
“걔가 해외 학회 핑계로 병원에 안 나와. 어제부터.”
“어……? 그게 뭐……. 이제 해외 학회 열렸잖아요. 변종, 변종 하는 거야 우리네 얘기고. 일반인들이야 백신 패스만 있으면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된 지가 언젠데.”
병만 사람을 죽이는가?
당연히 아니었다.
당장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전쟁과 기근이 그 몇 배의 인구를 집어삼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경제가 무너지게 되면 팬데믹보다도 더 끔찍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때문에 변종이 계속 나오고 있는 와중임에도 일단 각국은 문호를 다시 개방했다.
“없어, 그런 학회.”
“네? 학회가…… 없어요?”
“그래. 지금 이 변종 바이러스에서……. 호르몬의 변화가 가장 큰 특징이지? 이거 우리나라 최고가 누구야. 아니지, 거의 세계 최고라고 해도 좋아. 박원상……이지.”
“누가 그럼 이걸 연구라도 한다는 거예요? 군에서? 무기화를 한다고요? 설마.”
“야, 이거 왜 이래. 모르쇠 치지 마.”
1년 전부터 ARS-24 관련한 전문가들의 증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학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기가 더 어려울 정도로 노골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팬데믹으로 신음했던 국가들은 이제 모두 바이러스 감염병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알게 되지 않았나.
상식적으로는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는 방향으로 나가야겠으나, 인류가 늘 그렇게만 움직였다면 핵폭탄 따위는 개발되지 않았을 터였다.
“ARS-24가 중국의 한 연구실에서 유출되었다는 가설……. 한 번은 들어 봤지?”
“그건 가설일…… 뿐이잖아요. 중국의 국가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래, 아직도 그래. 아직도 가설일 뿐이야.”
“아직……도?”
“그 점이 매력적이지 않겠냐?. 핵은 누가 버튼을 눌렀는지 모두가 알지만. 바이러스는……. 글쎄. 어디서 어떻게 퍼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 그저 병만 남아. 심지어 발원지를 조작한다면 억울한 상대를 만들 수도 있어.”
“어…….”
바이러스의 무기화.
강대국치고 이거 한번 생각해 보지 않는 곳이 있을까.
단순히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마비시킬 수 있는 무기.
정권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패권주의를 꿈꾸는 나라에서 이걸 그냥 놓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유현은 일선에서 환자를 치료하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을 놓은 적이 없었다.
어쩐지 이 비극이 영원한 비극의 서막 같다는 생각이 그의 사고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럼…… 진짜로…….”
“그래. 지금 혹시 몰라서 내가 박기태……. 박기태인지 누구인지 이제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 환자에 대해 질병관리부 서버에 올렸던 보고서 확인했는데, 지워졌어.”
“병원 기록도 날아갔다면서요. 그거야 당연히 날렸겠지.”
“문제는……. 정확히 그날 이후로 정기적으로 미팅하던 각국의 ARS-24 전문가들이 없어졌어. 특별하게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그날 이후로 미팅에 참석한 사람들이…… 대체됐어.”
“어……?”
“어쩌면 이거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 아니, 아니야. 다른 나라는 훨씬 빨리 시작했을 거라고.”
“이거……. 이래서 전화로는 안 된다고 했구나.”
우식은 지금 유현과 함께 한강 다리 밑에 있었다.
팬데믹 사태가 한창일 때는 어디가 되었건 아무도 나다니지 못했으나, 지금의 한강 변은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거기에 위에는 철로까지 놓여 있어 도청을 시도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무슨 짓을 벌이기도 어려워 보였고.
유현은 우식을 따라 다시금 자신이 선정한 공간을 확인한 후 말을 이었다.
“어. 사라진 환자들……. 그 환자들로 연구를 하는 걸 거야. 단순한 바이러스가 아니잖아. 세상에 숙주가 상대를 물도록 조종해서 100% 타액 전파를 꾀하는 바이러스가……. 말이 되냐?”
“말이 안 되지……. 어쩌면 그럼.”
“이것도 연구의 산물일 수도 있어. 아무튼, 무기화하려는 거야.”
“박원상 선배가 거기 낑겨 들어갔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 새끼는 뭐 호르몬 얘기만 나오면 눈알 돌아가잖아. 학자로서의 흥미만 생각하면 가능하지. 게다가 목적을 모른다면……. 그리고 우리가 겪은 일을 모르니까.”
“음. 그렇구나. 하긴……. 근데 그럼……. 진짜 우리 손을 떠난 건가.”
나라에서 바이러스를 무기화하려고 한다.
그것도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거대화된 정부가.
이걸 개인이 막을 수 있는가.
불가했다.
우식은 유현의 말을 들으면서 점점 지금껏 억지로 쌓아 왔던 분노가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반대로 유현의 눈은 타오르고 있었다.
“그 환자들은 우리 손을 떠났지.”
“그 환자들은……?”
“내가 설마 이런 얘기나 하려고 만났겠어?”
“그럼요?”
이 인간이 왜 이러나 싶었다.
원래도 좀 회의적이지 않았나?
거기서 이렇게 거대한 음모가, 심지어 전 세계적인 음모가 섞여 있다는 걸 알았으면 조용히 빠지기나 할 것이지…….
대체 왜?
학창 시절부터 누구보다 합리적이었던 것이 정유현이었던지라, 우식의 의문은 더해져만 가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분노마저 느껴져서 더더욱 그랬다.
“바이러스를 무기화하는 건 안 돼. 이건 안 되는 거잖아.”
“이미 일은 벌어지고 있다며. 그 병원을 날릴 수도 없고.”
“결과물은 날릴 수 있어.”
“결과물……?”
어리둥절한 얼굴로 유현을 보고 있자니, 유현이 아까부터 들고 있던 작은 아이스박스를 툭툭 두드렸다.
“이 안에 박기태 환자 혈액이 있어.”
“혈액이? 분석 안 한 상태로?”
“어. ARS-24 환자는 무조건 이렇게 하라고 했거든. 내 개인 연구용으로.”
박기태 환자에 대한 기록만 말살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 믿었을 터였다.
실제로 전자화되어 기록된 모든 문서가 날아가는 바람에 유현도 한동안 막막함을 느꼈더랬다.
하지만 수기로 저장해 둔 이 혈액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
다름 아닌 유현의 연구실에 비치된 냉장고 안에.
“이 안에 바이러스도 있을 거야. 세대를 거듭하면서 또 다른 변종이 생길 수는 있겠지만……. 점핑은 쉽게 일어나는 게 아니지. 게다가 연구하는 놈들……. 이 환자 특성을 잃고 싶지 않을 테니 큰 틀에서는 변형 못 시켜.”
“이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만들면 되겠구나.”
팬데믹 사태는 결국, 백신 사업에 대한 어마어마한 투자로 이어진 지 오래였다.
급기야 이제는 변종이 나와도 대략 한 달의 시간만 있으면 백신을 만들 수 있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개발과 대량 생산은 아예 다른 얘기니 여전히 위협적이긴 했지만.
하여간 그만한 발전을 이루었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백신 개발 회사는 믿을 수가 없다는 거야. 어디까지 손이 뻗어 있는지 알 수가 없잖아. 애초에……. 학교에만 사라진 전문가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긴……. 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질병관리부 내에 있는 연구소에서 할 수는 있을 거 같은데.”
“그래. 그래서 널 만난 거야.”
“형은 다 계획이 있구나.”
우식의 감탄하는 얼굴을 보면서, 유현은 아이스박스를 건넸다.
“근데 너 휴가니까……. 요주의 인물이기도 하고. 네가 전달하지는 마. 무조건 걸린다, 이거.”
“그렇죠. 당연하죠. 근데…… 해 줄 만한 애가 있어요.”
“믿을 수 있는 애야?”
“네.”
“일단 혹시 모르니까 다 주진 마. 내가 샘플 두 개로 나눠 담아 놨으니까.”
“아, 네. 철두철미하시네.”
사실 세 개로 나눠 담아서 하나는 여전히 연구실에 두고 있는 유현은, 철두철미하다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철두철미해야만 하는 사안이었다.
이미 인류는 ARS-24에 의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지 않았나.
단순히 수백만이 죽었다느니 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뉴노멀이라는 말처럼, 다시는 전처럼 돌아갈 수 없었다.
여기서 또.
아니, 더 무서운 형태의 팬데믹이 찾아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끝장…….’
유현은 잠시 고개를 가로저은 채, 우식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을 붙들면서였다.
“모쪼록 해내길 바라. 네 손에 인류가 달렸다.”
“그렇게 말하니까 못 할 거 같잖아요.”
“차 안 타고 왔지? 기차 타고 온 거지?”
“어. 차를……. 그 꼴을 보고 어떻게 몰고 다녀요. 뒤질 수도 있는데.”
“그래, 설마 기차를 폭파시키진 않겠지. 우리 일단 조용히……. 지내고 있으니까.”
“아씨. 왜 그런 말을 해. 나 존나 후달리잖아.”
“하여간, 역에 바래다줄게. 이상한 새끼 있으면 죽여 패면 되지.”
“하아.”
그러곤 우식을 일으켜 세웠다.
지하철을 타고 수서역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따라붙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도 없었다.
아니, 없는 듯했다.
하지만 우식은 불안한 마음에 아이스박스를 부여잡고 이리저리 바라보면서 걸었다.
“야, 그냥 좀 편하게 걸어. 시발, 너무 수상해 보이잖아.”
“불안한 걸 어째요.”
“억지로라도 가슴을 펴라고. 지금 편 거야? 아, 편 거구나. 이건 내가 미안하다.”
“와……. 지는 타고났다고…….”
“노력의 산물이거든?”
“웃기지 마요. 약 빤 애들도 형만큼 프레임이 좋지는 않아.”
“아무튼, 가자고.”
유현은 그런 우식을 단도리한 채 걸었다.
최소한의 경계를 하면서였다.
* * *
“그건 그럼 삼청동……. 지구 병원에 있는 건가?”
“네, 1호는 그곳에 있습니다.”
“1호?”
“한국 애들이 그렇게 부릅니다.”
“아……. 그렇군. 그게 잭팟이 될 줄이야……. 폐기 대상이었던 거 아니었나?”
MSS.
정식 명칭 Ministry State Security.
중국이 CIA를 본떠 만든 이 조직의 일부가 한국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거의 올려지고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지워진 한 문서 때문이었다.
“죽었다 살아날 줄은 몰랐습니다.”
“같은 실험실에서 나온 실험체 중에는 그런 결과가 없나?”
“없습니다. 변이가 그 안에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들었습니다. 현재로서는 2차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실험체도 1호뿐이라고 들었습니다.”
2차 감염.
이제 의료에 문외한인 사람도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개념이었다.
MSS 왕링은 어금니를 으득 깨물고는 부하 직원을 바라보았다.
“그렇군……. 탈취할 수 있을 가능성은?”
“현재로써는 전무합니다. 보안이 철통같습니다. 확인한 경찰 인원만 근처에 500명이 넘습니다. 경찰 기동대까지 있어서……. 무장이 제한되는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상대가 어렵습니다.”
“500? 왜 그렇게 많아.”
“청와대가 근처에 있어서요.”
“머리 잘 썼구만. 그래도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 1호라고? 그거……. 원래 우리 자산이잖아.”
“어떻게든 계책을 짜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