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26화 (26/323)

26화 김효상 국장 (2)

김효상은 김선태에 관한 자료를 건네주고는 서둘러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한국대학교 병원이 제법 큰 병원이라지만 그래 봐야 멀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근데…… 왜 이렇게 먼 거 같지…….’

세종시에서 여기까지 차 타고 온 거리보다 걸어서 오는 지금 이 길이 더 긴 느낌이었다.

괜히 누군가 따라붙은 것 같은 느낌마저 받았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자료를 건넨 것임에도 그랬다.

-군인이 환자가 사라지던 날 병원 주차장에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그렇지 않나.

물론 그 군인이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적도 없고, 심지어 보호자 자격으로 온 것도 아니라는 것을 유현이 증명해 주면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겠지만.

‘정유현……. 그 사람이라면 믿을 만하지.’

흔하디흔한 대학 병원 의사는 결코 아니었다.

그 사람의 강단과 판단력 그리고 실행력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 또한 ARS-24의 위력에 초토화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물론 어마어마한 행정력의 소모가 뒷받침되기도 했고 또 국민성 자체가 협조적이어서라고 해석하는 것이 주류 의견이기는 했지만.

글쎄.

현장에 있던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정권의 치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삭제된 영웅들이 몇 있었다.

최우식이 그랬고, 또 정유현이 그랬다.

딸깍

김효상 국장은 복잡한 마음을 안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차에 올라탔다.

“후우.”

그러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이제 세종으로만 가면 된다.

집으로 가면 된다.

나는 가족도 있고, 사회적으로 엮인 사람도 많은 사람이지 않나.

어제…… 고속 도로에서 사망한 이들처럼 함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이런 생각과 함께 액셀을 밟았다.

차는 여느 때처럼 잘 나갔다.

큰마음 먹고 장만한 세단이니 당연히 그래야 했다.

억지로라도 차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후우…….”

그러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일었다.

‘내가…… 핸들을 그렇게 꺾어 놨던가?’

자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해서 애초에 주차할 때 그렇게 핸들을 꺾을 일 자체가 없었더랬다.

그러나 분명 그가 다시 차에 탔을 때 핸들은 완전히 꺾여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뒤를 돌아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과민 반응이었다.

과민 반응.

그래야만 했다.

언젠가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차 안에서 강제로 죽임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운전대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부우우웅

김효상은 그 길로 가까운 졸음 쉼터에 차를 세웠다.

곧장 뒷자리로 향하는 대신, 트렁크에 실려 있던 골프채를 집어 들었다.

“나, 나와!”

그러곤 뒷좌석 문을 열었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후……. 후우.”

일단 안심이었다.

지금은 없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아직 확인할 것이 하나 남아 있었다.

‘블랙박스.’

김효상 국장은 여전히 긴장한 얼굴로 블랙박스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저장 장치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다리에 힘이 탁 하고 풀렸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하……. 이 시발…….”

주르륵 미끄러져 차 옆에 기대앉은 채로 얼마나 있었을까.

새카만 차 한 대가 바로 옆자리로 비집고 들어왔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있으려니 깔끔한 정장 차림의 사내 하나가 내렸다.

그는 망설이는 순간도 없이 김효상에게로 다가왔다.

“불 있습니까?”

담배 하나를 꼬나물고서였다.

“아, 아뇨.”

움찔했지만, 의외로 정상적인 요구를 해 와서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슬슬 이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서, 휴가를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일단 이 파도가 지나길 바라면서.

유현에게도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냥 아무 생각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해야지 않겠나.

박태식 의원은 그저 정치적인 역학 관계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건 좀 다른 느낌이었다.

“아, 그렇지. 담배 안 태우시지.”

그때 정장 차림의 사내가 들고 있던 담배를, 누가 봐도 새것인 담배를 땅바닥에 떨어뜨리며 말했다.

으레 사람이 그러하듯, 김효상의 시선은 담배를 향해 꽂혔다.

상대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김효상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어느 틈엔가 차 문을 열어, 지나는 차량의 시선을 가린 채였다.

“크…… 큭…….”

김효상은 이게 제대로 된 멱살이구나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넥타이를 매서 답답하던 목 근처가 상대의 주먹으로 인해 완전히 틀어 막혀 있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다.

내가 왜 답지 않게 오지랖을 부렸나 싶었다.

사내는 그런 김효상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딱히 얼굴을 가리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김효상 국장. 죽고 싶지 않으면 그냥 얌전히 있는 게 좋아.”

말을 마치면서 멱살을 풀어 주었길래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죽었을 게 뻔했다.

“켈록, 켈록.”

연신 기침이 나와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체격은 김효상 쪽이 훨씬 컸지만,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표정이나 눈빛 그리고 망설임 없는 행동 등이 아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임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거스르면 그 순간 죽을 것 같았다.

아니, 확신할 수 있었다.

죽음이 바로 앞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우리도 쓸데없이 사람 죽이고 싶진 않거든.”

“켈록.”

“엄살 부리지 말고, 대답해.”

“네, 네.”

“좋아.”

“어, 어!”

상대는 무릎을 꿇은 채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김효상의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이건 내가 가져가지. 넌 조용히 가라고.”

돌려달라는 말이 나오진 않았다.

그 안에 있는 자료 그리고 연락처 등등이 잠시 머릿속을 떠돌았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더해도 목숨만큼 귀하진 않았으니까.

심지어 소원해진 마누라 얼굴이 그렇게 보고 싶어졌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김효상은 상대가 천천히 눈앞에서 멀어져, 몰고 왔던 차를 타고 사라지고 나서도 몇 분을 무릎 꿇은 채 있었다.

뱀처럼 생긴 사내의 얼굴이 잔상처럼 기억에 남아서 그랬다.

“어떻게 됐지?”

“괜찮을 겁니다. 새가슴이던데요.”

“그래도 확실히 하려면…….”

“명령 주신다면 다시 가겠습니다.”

“아냐, 자네가 괜찮다고 판단했으면 괜찮은 거겠지. 말썽 안 날 거 같다, 이거잖아?”

“네.”

사내, 국정원 소속 요원 김태평은 잠시 김효상에게서 빼앗은 휴대폰을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뭔 일을 꾸미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골든 트라이앵글, 즉 태국, 라오스, 미얀마의 접경지대 근처에 있던 그를 불러들이길래 내란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더랬다.

심지어 해당 지역에서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음이 분명한 마약 자금줄을 확인한 직후 벌어진 일이라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민간인 협박이 다였다.

그것도 음험한 구석이라고는 단 한 군데도 없어 보이는 아저씨.

“좋아. 그럼 복귀하게.”

“본청인가요?”

“아니, 아니지. 특별한 지시 있기 전까지는……. 삼청동에 있게.”

“알겠습니다.”

아, 일이 더 있긴 했다.

삼청동에 위치한 지구 병원 감시.

말이 감시지 사실상 호위나 다름없었다.

그 안에 드나드는 인원을 모조리 기록하고 조사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그 주변에 있던 이들조차 마찬가지였다.

“아, 맞아. 그 의사는 어때?”

정유현.

그 사람도 거기 있었다.

있는 건 문젠데,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감염내과 의사 아닌가.’

제아무리 공작만 하다 왔다지만 뉴스를 안 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한때 뉴스를 틀었다 하면 나오던 얼굴이 바로 정유현이었다.

일종의 영웅이었다.

애국자였고.

그런 이를 왜 사찰하라는 건지.

“그 의사는 그냥 의사입니다.”

“확실한가? 그 인간……. 수락 마을에도 있었고, 지구 병원 근처에도 있었어. 김효상 국장이 만난 것도 결국, 그 인간 아닌가?”

“속마음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그래 봐야 의사입니다.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일단 지켜보고는 있습니다.”

“확실하게 해야 해. 그 어떤 얘기도 새어 나가서는 안 돼.”

얘기라.

뭔 얘기를 말하는 걸까.

사실 김태평도 작전의 조각만 알 뿐, 전반적인 지도는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마치 처음 입사했을 때로 돌아간 듯한 심정 같았다.

‘이제 겨우 그 신세는 면한다 했더니, 시발.’

김태평은 속마음과는 달리 답은 꼬박꼬박했다.

뭐가 되었건 간에 까라면 까야 하지 않겠나.

외국인 중에서도 요원에 해당하는 놈들을 상대했을 때처럼 진심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하여간 그는 맹세를 한 몸이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미 병동하고 연구실……. 집에는 도청 장치 달아 뒀습니다.”

“잘했어. 팀 잘 이끌어서 잡음 없게 하라고.”

“네.”

김효상 국장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차에 다시 탄 시각.

유현은 여전히 병원에 남아 있었다.

오예리 형사와 함께였다.

“일단 병원 경비팀부터 뒤져야겠죠?”

오예리 형사는 의욕에 불타는 얼굴이었다.

이리저리 다녀 봤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얻는 게 없지 않았나.

동료들이 죽은 마당인데 한 치의 진전도 없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나.

그러다 실마리가 주어졌으니 흥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음.”

반면에 유현은 생각이 좀 달랐다.

우선 혹시 몰라 김효상 국장에게 건 전화가 성사되지 않는 것부터가 좀 그랬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 종합하면 국가 차원에서 벌이는 일이야.’

공권력이 약하다, 약하다 했었지만 그것도 다 옛말이었다.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겪었고, 또 겪고 있는 지금 공권력은 사상 최고의 위치에 서 있었다.

아마 이 사태가 끝난다 해도 이게 어떻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가 가서 뒤지는 건 눈에 띄는 일이 될 겁니다.”

“네? 여기도 다 보고 있을 거라는 말씀이세요?”

“아닐 거…… 같습니까? 뻔히 신상 다 알고 있을 텐데요. 게다가 블랙박스 건을 생각해 보세요. 치밀한 놈들이에요.”

“음.”

다소 찬물을 끼얹는 느낌이었지만, 맞는 말이기도 해서 오예리 형사는 입을 다물었다.

그사이 유현은 지나는 레지던트 하나를 불러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탈원 케이스를 모으려고 하거든. 이날하고 이날. 그리고 이날. 세 개 CCTV 자료 좀 따 줘. 보고 개선할 게 있으면 개선하려고.”

“네, 교수님.”

딱 그날만 집어서 달라고 하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 나름 핑계를 만들었다.

“일단 기다려야겠습니다.”

“아, 네.”

“저는 그 질환에 대해 정리할 게 있어서……. 연구실로 가려는데, 어쩌시겠습니까?”

“아……. 저는……. 저는 그럼 일단 집에서 대기할게요.”

“네. 그렇게 하시죠.”

유현은 오예리 형사를 보내고 연구실에 들렀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과한 생각이겠지만…….’

그래도 여기는 좀 불안했다.

친구 방에서 얘기를 나누는 것이 좋을 거 같았다.

게다가 어차피 물을 것도 있었다.

그 호르몬 상태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는지, 그 상태에서 수명은 어찌 될는지 등등.

“네? 없어요?”

“네. 박원상 교수님……. 출장 중이십니다.”

“어디로요?”

“어……. 아, 여깄다. 해외 학회요.”

“해외?”

“네.”

그러나 친구가 없었다.

교수 회의 때 얘기도 하지 않았던 학회를 핑계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