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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5화 (25/323)

25화 김효상 국장 (1)

유현이 오예리 형사와 영상 확인하고 있으려니, 전화기가 울렸다.

우식이었다.

‘아, 이 자식은 일단 아무 생각 말고 있으라니까.’

잃을 거 없거나 적은 놈들끼리 알아서 좀 해 보겠다는데 왜 이런단 말인가.

처자식도 있는 놈이 조심성 없이.

“어, 왜?”

그렇다고 안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식은 집요한 놈이었다.

지금 안 받아 봐야 하루 종일 전화하고 또 지가 아는 번호 아무에게라도 연락을 해서 결국엔 통화를 해낼 터였다.

-바로 받네요?

“어, 습관이지. 환자 콜이면 어떡해.”

-병원은 아닌 거 같은데요? 왜 이렇게 시끄러워.

“잠깐 나왔어. 왜. 좀 쉬라니까.”

-그……. 지금 옆에 누구 있어요? 아니면 혼자예요?

“음.”

우식의 말에 유현은 바로 옆을 바라보았다.

오예리 형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이 사람이야 뭐…….’

이제 내부인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우식과 공유하고 있는 정보를 다 알고 있지는 않겠지만.

이제 우식이 모르는 것도 하나쯤 알게 된 마당이었다.

옆에 있어도 상관없겠다 싶었다.

“오 형사 있어.”

-아, 상관없죠. 다름이 아니라……. 김효상 국장님 알죠?

“알지. 같이 봤잖아. 그 전부터도 알고는 있었어. 그 사람.”

-지금 서울에 있는데……. 만나 보고 싶대요. 얘기를 좀 들어 보고 싶다고.

“얘기를? 너 어디까지 얘기했는데.”

설마 이놈이 물색없이 다 털어놨나 싶었다.

김효상 국장이 꽤 믿을 만한 사람 같기는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 아닌가.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누구보다 우식이 위험할 수 있었다.

-별 얘기 안 했어요. 환자 탈취 가능성 정도?

하지만 우식도 바보는 아니었다.

일단 김효상 국장도 알고 있을 만한 얘기만 전달해 준 모양이었다.

“으음.”

-국장님도 괴로운가 봐요. 사람이 죽었잖아요. 그리고 자기 딴에 뭔가 좀 알아낸 모양이에요. 근데 저한테는 말을 안 해 주시네요.

“만나 보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어찌 됐건 이 일에서 너보다는 위에 있는 사람이잖아.”

-그렇죠.

“대신 약속 장소는 내가 정해.”

-아, 네네. 어디로 오라고 할까요?

“병원. 병원 1층 카페에서 보자고 해.”

-아, 거기……. 거긴 뭔 일 날 수가 없지. 알겠어요. 그렇게 전할게요.

우식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때까지 쥐죽은 듯 조용히 있던 오예리 형사가 입을 열었다.

“김효상 국장……. 그 사람은 정말 연관 없는 거 맞을까요? 그 사람이 우리 팀 조직했다고 들었는데.”

“조직까지 한 건 아닐 겁니다. 조직하라는 명령을 내렸겠죠.”

“그럼……. 설마 우리 과장님이……?”

“아뇨, 아뇨. 그 사람도 아닐 거예요.”

유현은 안치실에서 과장이라는 사람이 보였던 반응을 떠올렸다.

만약 그게 연기였다면 경찰이 아니라 배우를 해야 했을 터였다.

관찰력이나 기억력이 남들보다 특히 좋은 편인 유현이 보기에, 그건 진짜였다.

손의 떨림이나 다리의 떨림 그리고 그 표정.

병원에 있다 보면 싫어도 익숙해지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을 때의 반응이었다.

“그럼 대체 누가…….”

“누군진 몰라도 우리보단 훨씬 위에 있는 사람이겠죠. 아무튼, 가시죠. 같이 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뭘 알아냈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 네.”

유현은 고개를 젓다가 이내 오예리 형사와 함께 다시 지하철에 탑승했다.

연신 누군가 따라오지 않는지 살피면서였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일단……. 우리 따위는 신경 안 쓴다 이건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증거 없이 살인을 했고, 환자는 감쪽같이 빼돌린 마당 아닌가.

심지어 각 병원에는 뭐가 되었건 간에 ARS-24 감염자들이 딱 예정되었던 수대로 도달한 마당이었다.

여기서 사실은 그 환자들이 아니라 공격 성향을 보이는 환자들이 갈 예정이었는데 군에서 빼돌렸다는 얘기를 하면 그 누가 믿어 줄까?

심지어 환자 기록도 다 지워진 마당이었다.

‘개새끼들.’

누구는 방역을 위해 헌신과 봉사를 다 하고 있는데, 누구는 그 방역을 저지하고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사람까지 죽여?

때려죽일 놈들이지 않은가.

“저, 교수님.”

“응, 네?”

“다 와 가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방금 얼굴 되게 무서웠어요. 그……. 감염자들하고 싸울 때도 그렇고, 예전에 한가닥 하셨나 봐요?”

“아…….”

한가닥이라.

표현이 좀 저렴하긴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유현은 이곳저곳에서 의학이 아니라 다른 걸로 활약했던 기억이 있었다.

“아닙니다, 하하.”

자세히 언급할 만한 일은 아니었기에,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곧 지하철에서 내렸다.

“이름만 한국대학교 병원역이고 여기서 꽤 멉니다.”

“아, 그렇군요. 아깐 버스 타고 와서 몰랐네. 얼마나 먼데요?”

“빠른 걸음으로 한 20분?”

“사기네.”

“그렇죠? 로비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역 이름은 그래요. 많이들 낚이죠.”

일반인들에게도 궂은 날씨에는 먼 거리였다

환자들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거리였기에, 병원에서는 평일 진료 시간에 한해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차피 병원은 산 근처에 있어 병원 이용객 외에는 탈 사람이 없으니 큰 손해는 아니었다.

“원래는 여기서 탈 수 있는데, 오늘은 주말이니까……. 걸어가죠.”

“네.”

해서 둘은 걸었다.

말없이 걷다 보니 어색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또 할 말이 있진 않았다.

특히 옆에 선 오예리 형사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만 들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오 형사 또한 어제 경찰청 과장이라는 사람이 보여 줬던 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위로……. 내가 잘 못하는 거지.’

보통 유현 정도 경력을 지닌 내과 의사들은 안 좋은 소식 전하기의 달인이기도 했다.

내과라는 곳이 원체 그렇지 않은가.

하루아침에 인생이 뒤바뀔 만한 선고를 내려야 할 때도 많았다.

제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해도 많이 하다 보면 능숙해지는 법인데, 안타깝게도 유현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여전히 어렵기만 했다.

“교수님은…….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오히려 먼저 입을 연 것은 오 형사였다.

고개를 돌려 보니, 상실의 표정을 애써 지우고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미소를 어쩐지 오래 들여다보긴 어려울 것 같아, 유현은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네?”

“왜 이렇게까지 하시냐고요. 따지고 보면……. 완전 남의 일이잖아요.”

남의 일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긴 했다.

적어도 환자 치료가 아닌 방역 그 자체는 공무원들의 일이었으니까.

“박기태 환자가 제 환자였지 않습니까. 도망가게 둔 책임이 있죠.”

“아마 국방부에서 돕지 않았을까요? 손쓸 도리가 없었을 텐데.”

“알 수 없는 일이죠.”

유현은 환자가 도망갔던 날을 떠올렸다.

조력자가 있어야 가능해 보이는 도주이기는 했다.

한국대학교 병원은 워낙에 큰 병원이기도 했지만, 증축을 거듭한 탓에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도 해서였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눈으로 확인한 건 아니었으니.

“그리고 우식이가 그쪽으로 가게 된 거 어찌 보면 제가 만든 일이에요. 진로 상담 왔을 때……. 저도 국가직 공무원 전망이 좋아 보였거든요. 뭐가 되었던 우리 세대는 ARS-24의 영향력 아래 살 거 같기도 하고…….”

“계속 변종이 나오니까요?”

“그렇죠. 자연적으로도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세요. 이게 끝나겠어요? 미친놈들이지. 누군 끝내려고 아등바등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남의 일은 아니긴 하네요. 그래도…… 위험할 텐데.”

“괜찮습니다. 충분히 조심하고 있어요. 그리고 선은 안 넘을 생각입니다. 저도 오래 살고 싶어요.”

“잘 생각하셨어요.”

오 형사 덕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금세 병원 로비였다.

평일이라면 북적거렸을 테지만 주말이라 그런가 카페도 어느 정도 자리가 있었다.

그중 한 곳에 김효상이 앉아 있었다.

마스크에 모자까지 쓰고 있었는데, 모자랑 겉옷이 너무 안 어울려서 오히려 더 눈에 띄었다.

“국장님?”

“어? 아, 네네. 정 교수님. 이쪽은……. 어제…….”

유현이 다가가 인사를 걸자 화들짝 놀라는 꼴이 뭔가 꾸미고 있어 보이진 않았다.

도리어 겁을 먹은 듯했다.

“네, 오예리 형사입니다.”

“그렇군요. 그것참……. 어제 일은…….”

“아닙니다. 저는…….”

“아, 참. 커피. 커피 드시죠.”

김효상은 허둥지둥 카운터로 달려가 커피를 시킨 후 돌아왔다.

‘이 사람 어지간히 정신없는가 본데.’

아무래도 둘 중 누구에게도 뭘 마실 거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듯했다.

음료야 상관없었기에, 유현은 그냥 이대로 대화를 이어 나가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국장님.”

“아, 네.”

“저를 보자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네네. 그게……. 근데 여기서……”

“괜찮아요. 오히려 그렇게 하면 더 수상해 보여요. 아무도 신경 안 씁니다.”

유현은 주변을 가리켰다.

다들 자기 할 일 하느라 바빴다.

적어도 대학 병원 내에 있는 카페에는 여유를 즐기러 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였다.

누군가를 위로하러 또는 위로한 후, 또는 당직이나 회진을 준비하기 전 힘내러 오는 곳이었다.

“그, 그렇군요. 음.”

김효상 또한 의사였기에 아주 모르진 않았다.

병원을 떠난 지 오래된 탓에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잠시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슥 하고 품 안에 있던 사진을 건넸다.

화질은 그렇게 좋지 않았지만, 사진 속 사내가 누군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김선태……?”

옷차림새를 보면 지금으로부터 몇 개월 전 사진 같았다.

주변 배경은 병원 근처.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박기태 환자 도주한 날입니까?”

“아……. 네.”

“이걸 어떻게……?”

“어제 그 일 있고 나서 이 과장이 보고서에 올렸던 자료 싹 다 검토했습니다. 그때 주차되어 있던 차량 블랙박스도 다 털었거든요. 그랬더니 이 사람이 나오더군요.”

“우연일 리는 없겠군요.”

“네. 정황상 증거일 뿐이지만……. 이제 이자가 환자들을 빼돌렸다는 증거만 나오면, 내부적으로 압박할 근거는 충분해집니다. 법적으로 걸기는 어렵겠지만…….”

“그걸 국장님이 해 보시려고요?”

유현은 지금도 손을 떨고 있는 김 국장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럴 만한 깜냥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저 혼자서는 안 되죠. 하지만…… 박태식 의원이랑 함께라면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당내에서도 계파 갈등이 있다고 들었어요. 지금 VIP……. 비주류 출신이지 않습니까? 빈틈을 노리고 싶어 하는데, 이게 무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환자들은요?”

“당연히 제대로 된 시설로 돌려보내야죠. 방역 차원이 아니라 인원 문제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이걸로 해야 할 일은?”

유현은 품 안의 태블릿 피시를 쓰다듬으며 김효상을 내려다보았다.

김효상은 연식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답했다.

“이 사람이 진료받은 적이 없다는 증거. 그리고 면회 온 적도 없다는 증거를 찾아 주세요. 다 정황상의 증거일 뿐이지만……. 그럼 더 그럴싸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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