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지구 병원 (3)
-뭔 소리냐, 갑자기?
오밤중이라 그런지, 박원상의 목소리는 무척 가라앉아 있었다.
자다 깼을 가능성이 퍽 큰 시간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받았다는 건 하여간 둘의 우정이 보통은 넘는다는 뜻이었다.
의대 6년을 고등학교처럼 다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화 온 거 없어? 국방부 측에서……. 뭐 연구 용역이라든가 이런 거.”
-뭔 소리야. 국방부에서 나한테 왜 연구 용역을 줘. 걔네 무기 만드느라 바쁠 텐데.
“음.”
보아하니 아직 연락은 안 온 모양이었다.
-너 지금 이 소리 하려고 이 시간에 전화한 거냐? 이 새끼 진짜……. 나 불면증 있는 거 몰라?
조금 미안해지려고 하니 이런 소리를 해 댔다.
어디 눕기만 하면 자는 놈이 불면증이라니.
진짜 불면증 환자가 들으면 칼부림 날 소리였다.
유현의 생각이 아니라 정신과 이순규가 맨날 그 소리를 해 댔다.
“불면증은 개뿔이. 자라. 미안하다.”
-낼 커피라도 사.
“갑자기 커피를 왜 사.”
-너 때문에 못 잘 거 아냐. 못 자면 졸리겠지? 그럼 커피 먹어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또 동시에 논리가 정연하기도 했다.
아무튼 간에 근거가 있지 않은가.
근거 중심 의학을 뼛속 깊이 받아들인 의학자로서 이만큼 했으면 받아들여 줘야만 했다.
“알았어, 사 줄게.”
-좋아.
박원상은 유현의 말에 만족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뭔 국방부야, 갑자기.”
다른 부서도 아니고 세상에 국방부라니.
너무 뜬금없이 않은가.
살짝 기분이 나쁘기까지 했다.
그쪽과의 인연은 군의관 3년으로 족할 것 같았으니까.
심지어 그 3년 동안도 그리 잘 지내지 못했더랬다.
받은 징계만 여러 개였다.
“응?”
휴대폰을 던져 놓고 자려는데, 알림 표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메일이었다.
‘뭐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한번 달아난 잠이 쉬이 돌아오진 않았다.
어차피 뒤척일 거 내용이나 확인하자는 생각에 메일을 열었더니, 발신인이 의무사령부로 되어 있었다.
‘미쳤나.’
설마하니 입대 통지서가 두 번 날라오는 참사는 아니겠지 하면서 열어 보니 연구 용역이었다.
그런데 액수가 심상찮았다.
최소 10억이었고, 필요할 시 한도 없이 추가 지급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원래 한국대학교 병원에 교수로 있다 보면 이런저런 국가 연구를 하기 마련인데 이런 파격적인 조건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보이스 피싱인가?’
너무 파격적이다 보니 이런 의심까지 들었다.
‘시발 X됐나.’
해서 박원상은 급하게 휴대폰 보안까지 점검했다.
점검한다고 해 봐야 프로그램 실행해서 검사해 보는 게 다이긴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데다가, 메일 양식이나 첨부된 파일을 보니 확실히 국가 기관에서 보낸 것이 맞아 보였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자세한 협의 사항은 만나서 얘기하자고 쓰여 있다는 점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언제까지 연구하라는 것인지는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
‘10억……. 10억이라?’
다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10억이라는 돈은 매력적이었다.
필요 시 그것보다 더 준다는 조건은 더더욱 그랬고.
그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솔솔 잠이 왔다.
스스로 불면증이라 주장하고 있음에도 그랬다.
박원상이 몰려오는 수마에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쯤, 유현은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통화 중이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우식이 전화를 걸어온 탓이었다.
우식은 다급해 보였다.
-오 형사님이 자기가 혼자서라도 알아보겠대요.
“안 되지, 그건. 죽을 텐데?”
-그래도 안 되겠대……. 벌써 경찰청에는 사고사니까 조사하지 말라는 공문까지 왔대. 그거에 더 열 받는 거 같은데……. 그…….
그러다 말을 줄이는데 어쩐지 쎄한 느낌이 들었다.
“그 뭐.”
-형이 좀 도와줄 수 있어요? 적당히 하는 척하다가……. 형 사람 설득 잘하잖아요.
“미친놈이 내가 그걸 어떻게 해.”
-벌써 번호 줬는데.
“뭐?”
-그럼 어떻게 해요. 혼자 뭐라도 하겠다는데. 일단 지금 어디야……. CCTV 따러 가겠다는 거 간신히 말렸어요.
“하아……. 나 인마 병원 일 해야지.”
-퇴근하고 도우면 되잖아요. 집도 안 가는데……. 학회 시즌도 아니고. 저 좀 도와줘요. 그리고 그러다 뭔가 꼬리라도 밟으면 저도 알려 주고요.
“음.”
사실 유현은 둘을 배제하고 혼자 좀 알아보려고 했던 참이지 않은가.
말을 들어 보니 우식은 유보적이었고, 오예리는 말린다 해도 혼자 뛰쳐나갈 기세였다.
‘어차피 우식이가 문제지, 그 형사는…….’
미안한 얘기지만 오예리 형사는 타인이었다.
도움을 받기는 했으나, 마음의 거리는 여전했다.
‘혼자 산다고 했지.’
게다가 우식처럼 처자식이 딸린 몸도 아니었다.
부담이 덜하다는 얘기였다.
‘형사니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해서 유현은 그러마 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당직 방처럼 꾸며 둔 연구실 잠금장치를 확인하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놈들이 생각이 있다면 여기까지 와서 지랄하진 못하겠지만.
혹 모르는 일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음.”
아침에 일어난 곳이 병원이긴 했지만 여전히 주말이었다.
회진 한번 돌고 나니 할 일이 없어졌다, 이 말이었다.
커피 사 달라고 했던 박원상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병원을 어슬렁거리는 교수가 어디 흔하던가.
“죄송해요, 교수님.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어서요.”
하지만 유현은 혼자가 아니었다.
커피도 마시고 있었다.
오예리 형사가 찾아온 탓이었다.
그녀가 꺼낸 말을 여하간에 충격적이었다.
“자료가 없다, 이 말씀이에요?”
“네. 하필 딱 그 사고가 있었던 날에만 녹화가 안 됐대요. 말이 됩니까?”
“목격자는요?”
“번호판을 본 사람은 있는데……. 조회가 안 돼요. 없는 번호예요.”
“음.”
이미 CCTV 보관소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교통계가 관리하고 있을 텐데, 사실 의미 없는 일일 것이란 건 쉬이 예측할 수 있었다.
경찰서 내부 인사까지 관여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깟 CCTV 하나 제거하지 못할까.
“오 형사님, 어제 들으셔서 알고 있겠지만……. 이거 더 파면 위험할 수 있어요. 저도 그렇고요.”
“알아요. 하지만…… 사람이 죽었는데 그냥 묻어요?”
“그럴 수는 없죠.”
사실 유현은 그 정도는 그냥 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환자를 빼돌리는 행위는 너무 커다란 범죄 행위였다.
무기로 쓰고 싶어 한다는 건 이해하지만, 무기로 쓰고 싶을 만큼이나 위험한 감염자들을 빼돌려서 이상한 짓 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쩐단 말인가.
안타까움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칫하면 또 다른 팬데믹을 맞이할 수 있었다.
높은 확률로 이번 팬데믹은 더 끔찍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말씀인데……. 교수님은 뭐 아시는 거 없어요? 최우식 과장님이랑 얘기해 보니까…… 뭔가 더 아는 거 같은데……. 정 교수님한테 물어보라고만 하더라고요.”
“아, 그 새끼.”
“네?”
“아뇨. 아닙니다. 음.”
유현은 우식 욕을 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커피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좀 걷죠.”
“아, 네.”
어차피 이런 시간에 사람이 있을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았다.
해서 유현은 오 형사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병원 옆에 위치한 산책로로 향했다.
말이 산책로이지 환자들 용으로 만들어 둔 곳이었기에 평탄하기 그지없었다.
“그놈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몰라요. 알 수가 없죠.”
“그렇군요.”
“하지만……. 환자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거 같습니다. 만약 거기가 아니라면, 더 알아낼 방법도 없어요.”
“아……. 거기……. 거기가 어딘데요?”
“지구 병원인데 같이 가 보실래요? 확인해 볼 만한 게 있을 겁니다. 마침 어제가 토요일이었으니까……. 일찍 가면 될 거 같아요.”
“아, 네네. 알겠습니다.”
이동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미행이 따라붙은 낌새는 전혀 없었지만.
바로 어제 교통사고로 사람들이 죽는 걸 본 참 아니던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굳이 운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다.
“와, 엄청 커졌네.”
“여기가 지구 병원인가요?”
“네. 원래는 한 이 정도 크기였는데……. 부지도 넓어지고 위로도 높아졌네요. 확실히…… 이만하면…….”
격리 병실은 전원 1인실로 사용해야 하기에 자리를 많이 잡아먹었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라면 전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50명 아니라 100명도 들어갈 정도?
문제는 안으로 들어갈 방법은 전무하다는 점이었다.
정문 앞에는 헌병이 지키고 서 있었고, 그 후로는 경계 초소까지 있었다.
옛날 한국 같았으면 지금 헌병이 들고 있는 총에 실탄 따위가 들어 있지 않았겠으나, 지금은 들어 있을 터였다.
팬데믹은 실로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음, 이 차. 이 차가 주인이 좋겠는데.”
하지만 꼭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그러지 않더라도 뭐가 드나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으니.
“네?”
유현의 말에 CCTV 위치를 확인하고 있던 오 형사가 반응했다.
“저것들도 다 지워졌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못 지웠겠죠.”
“이거? 아……. 블랙박스.”
“네. 간밤에 이슬비가 왔잖아요. 차 바닥은 말라 있어요. 적어도 밤새 새워져 있었다는 건데……. 이런 차들 중심으로 해서 블랙박스를 요청해 보죠.”
“이건 제가 할게요. 근처에 뺑소니 있었다고 하면 협조할 겁니다.”
“네, 부탁 좀 하겠습니다.”
유현은 몇몇 차를 더 골라 놓고는 지구 병원 쪽을 바라보았다.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1년 365일 외래 환자나 응급실 환자로 북적거리는 한국대학교 병원 정문하고는 느낌이 아예 달랐다.
“네, 아, 감사합니다.”
오예리 형사는 방금 말한 대로 차량에 붙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고는 협조적인 사람들에게 블랙박스를 얻어 내고 있었다.
유현은 그저 옆에 서 있었다.
최대한 방해를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사이 지구 병원 정문으로 트렁크 쪽 경사가 묘하게 완만한 새하얀 아우디 차량 한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박원상의 차였다.
“이제 됐나요?”
“네. 확인해 보시죠.”
“네, 그럴까요, 그럼? 어디 갈 거 없이……. 그냥 여기서 봐도 될 거 같아요.”
“네.”
둘은 서 있던 근처에 있는 담장에 기대 곧장 영상을 틀었다.
언제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강 의심되는 시간대는 있지 않은가.
출발지와 도착지를 알고 있으면 시간 유추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해서 유현은 태블릿을 조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별 소용이 없었다.
“이거……. 왜 이래?”
“어? 고장 났나? 안 되는데. 이거. 새로 산 건데.”
먹통이었다.
혹시나 해서 다른 이의 블랙박스를 받았음에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여러 개의 블랙박스가 망가지는 일이 가능한 걸까.
누군가 의도적으로 망가뜨렸음이 분명했다.
그 의지가 너무 집요해서 살짝 두려움마저 일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