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지구 병원 (2)
국장은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다만 참담한 얼굴로 형사들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할 따름이었다.
도리어 그 모습이 더 정중해 보였기에 같이 온 경찰청 과장도 한마디 말도 붙이지 못했다.
아니, 아마 무례한 모습만 보였더라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터였다.
“왜……. 왜 이런 일이…….”
구석에 허물진 채 앉아 있었으니까.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가까이 지낸 모양이었다.
그 옆에 선 오예리는 주먹이 하얘지도록 힘을 주고 있었는데 용케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최우식은 오예리의 평소 성정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지금 심정이 어떨지 쉬이 가늠이 가지 않았다.
뭐가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까 입술을 달싹이고 있으려니 김효상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가족들은, 가족들은 연락했나?”
김 국장은 굳이 과장을 위로하는 대신, 조용히 안치실을 빠져나와 최우식에게 물었다.
“없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게.”
“가족…… 없어요. 저 사람들.”
“뭐?”
김효상은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한 얼굴이 되었다.
안치실까지 따라 들어가는 대신 밖에서 대기 중이던 박태식 의원 또한 비슷한 얼굴이 되었다.
무언가 좋지 못한 생각이 떠올랐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일 같은데, 너무나도 설득력이 있어서였다.
“당할 수밖에 없었군.”
제일 먼저 충격에서 빠져나온 것은 박태식이었다.
뭐가 되었건 이 일의 시작은 저 꼭대기였다.
살아 있는 권력의 의지가 확고한 이상 거기에 뻗대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설마 죽일까? 하는 생각 따위는 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 바로 저 방 안에 증거가 차고 넘쳤다.
“최우식 과장. 일단 이걸로 저기, 오예리 형사하고 정 교수님하고 밥이나 먹게. 그리고 오늘 일은 함구하도록 해.”
해서 박태식은 이 일은 기억 저편에 묻기로 했다.
금배지를 달고 제일 먼저 배운 일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일이 바로 이 망각이었다.
괜히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 갖고 기억하고 있다가 입 한번 잘못 놀려서 훅 가는 것들이 어디 한둘이란 말인가.
“그래도……!”
바로 이런 눈을 하고 있다가 날아간 놈들이 많았다.
박태식은 한숨과 함께 우식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래도가 아냐. 자네가 뭘 할 수 있어. 나도……. 감이 안 잡히는 일이야. 나서지 말고 조용히 있어. 휴가 줄 테니까. 김 국장, 그렇게 해 줄 수 있지?”
“아, 물론입니다.”
김효상 또한 박태식과 뜻을 같이했다.
올라오면서 충분히 대화를 나눴고, 이 자리에서 팀원 모두가 고아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걸 듣고 나니 더더욱 확고해졌다.
“어차피 한 달 넘게 비공개 수사에 임했고, 공도 세웠습니다. 2주 휴가 내리도록 지시하겠습니다.”
“좋아. 최우식 과장. 이거 내 번호야. 혹시 딴생각 들면 전화해. 오늘은 그냥 먹고 쉬고. 처자식 생각도 해야지. 앞길 창창한 사람이 말야. 나나 김 국장이나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그래, 이 과장. 오늘은 그냥 좀 쉬어.”
해서 김 국장은 박태식과 함께 최우식을 위로했다.
우식은 뭘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가슴을 움켜쥐었지만,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아마 자신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 터였다.
입을 벌려 봐야 짐승 울음만 나오지 않았을까.
“그럼……. 우리는 이만 가 보겠네. 뭔가 정리할 일이 있을 거야.”
박태식은 김효상과 더불어 최우식의 어깨를 몇 번인가 더 두드리다가, 유현과 눈을 마주치고 나서야 병원을 떠났다.
유현의 흔들림 없는 눈을 마주하고 보니 적어도 사고는 안 치겠다 싶어서였다.
설마 사고 칠 사람이 저런 눈을 할 수 있을까?
정치하면서 오만 미친놈들을 봤지만 그럴 수 있는 놈은 단연코 하나도 없었다.
착각이었다.
‘개새끼들.’
유현은 형사들의 시신과 사라진 환자들을 떠올리며 욕을 주워 넘겼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지구 병원으로 달려갈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한참 들었던 것처럼, 그건 미친 짓이었다.
오늘은 그저 먹고 쉬는 것이 제일 나을 것 같았다.
‘우식이는 안 돼.’
게다가 최우식은 홑몸이 아니었다.
이 녀석 결혼식에 사회 봤던 일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제수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 최우식 또한 온몸을 다해 사랑하고 있었다.
“야, 오예리 형사님이랑 해서……. 뭐나 좀 먹자. 일단 먹고 생각해.”
“형까지 그래요? 여기서 어떻게…….”
“그럼 뭐 어쩌려고. 우리가 정말 뭘 할 수 있냐. 오늘만 해도……. 우리가 뭘 할 수 있었어.”
“그건……. 그건…….”
“일단 와. 일단 먹자고.”
유현은 우식과 도무지 주먹을 펴질 못하고 있는 오예리 형사와 함께 병원 근처 맛집으로 향했다.
팬데믹 이후 모든 병원은 전문가에게 감염 관리 실태 점검을 받아야 하는데, 유현이 그 위원 중 하나였다.
여러 번 와 본 적이 있다, 이 말인데.
그때마다 자랑스레 데려갔던 집이 있었다.
돼지갈비에 냉면이 기가 막힌 곳이었는데, 반응은 별로 신통치가 못했다.
맛이 변해서가 아니라 너무 침울해서였다.
“하아.”
“후우.”
다들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그에 반해 유현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국방부에서 환자들을 데려갔다는 건 거의 확실해. 뭐 국방부가 아니더라도 그만한 인원을……. 훈련받은 인원을 동원할 수 있는 놈들이면 비슷한 놈들이겠지.’
보아하니 경찰청 인원마저 조정할 수 있는 놈들이지 않은가.
어디까지 선이 닿아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장·차관, 어쩌면 대통령까지 올라가야 할 수도 있었다.
어찌 그럴 수 있나 할 필요는 없었다.
험악한 시절이었다.
인류가 그토록 없애고자 갈망했던 세 가지, 전쟁, 기아, 전염병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반세기를 끝으로 전염병이 창궐하자마자 다른 것들도 꿈틀거렸다.
‘환자까지 데려갔다는 건 군사 목적 연구를 하겠단 거겠지?’
유현은 도통 아무것도 못 먹고 있는 우식의 밥그릇 위에 고기를 얹어 주고는 생각을 이어 나갔다.
군사 목적 연구가 아무래도 그럴싸한 이유였다.
원래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모든 정보는 온 인류의 평화를 위해 공유하게 되어 있지 않은가.
중국같이 협조를 아예 안 하는 나라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은 엄연한 자유세계에 속한 국가였다.
국제 공조 체계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즉 환자가 민간 병원에 있으면 무조건 정보가 유출된다, 이 말이었다.
그걸 오늘 틀어막았다 이건데, 그럼 이미 병원에 쌓인 정보는 그냥 놔뒀을까?
“아, 재원아. 병원이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유현은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네? 네, 당직이죠.
“지금 박기태 환자 의무 기록 들어가지나 봐 봐.”
-네? 무슨 말씀이세요?
“검색해서 들어가 보라고.”
-아……. 그……. 네.
주치의 양재원은 당연하게도 뭔 말인지 잘 못 알아먹었다.
하지만 교수가 시키는데 뭐 어쩌겠는가.
죽으라는 것만 아니면 들어야 했다.
근데 그럴 수가 없었다.
-어…….
“왜.”
-이게 왜 이러지.
“안 들어가져?”
-네. 잘못된 등록 번호라고 하는데요?
“이름으로 쳐 봐. 잘못 쳤을 수도 있잖아.”
-네.
등록 번호를 잘못 기입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은데.
양재원은 속으로 이런저런 불만을 집어삼키면서 이름 검색을 시도했다.
박기태란 이름이 그렇게 흔한 이름은 아니지만 한국대학교 병원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병원이지 않은가.
열 명도 넘게 나왔다.
하지만 그중 환자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혹시 몰라 일일이 다 쳐서 들어가 보았으나 같은 경과를 보인 사람도 없었다.
-어…….
“왜.”
-없어요, 그 환자 기록이.
“없어? 마지막으로 확인한 게 언젠데?”
-네? 아니……. 퇴원…… 아니지. 탈원 하고 나서는 확인 안 했죠.
“음.”
사실 이게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퇴원한 환자 기록을 뒤진단 말인가.
양재원을 탓할 일이 아니라, 대체 놈들이 언제 이걸 털었는지를 궁금해해야 할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는지가 더 궁금했다.
‘우리 의무 기록 DB가 그렇게 허술하지가 않은데…….’
의무 기록은 보안이 생명 아닌가.
병원 내에 쓰이는 모든 컴퓨터에 따로 보안 프로그램이 깔려 있을 지경이었다.
그거 때문에 연구 자료도 쉽게 빼 갈 수가 없어 애로 사항이 꽃 피는 데도 계속 쓰고 있었다.
의무 기록이 털리거나 변경되는 건 어찌 보면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어서였다.
‘그걸 뚫고 지웠다……. 아무도 모르게. 음.’
어지간한 인력으로는 무리였다.
하여간 대단한 놈들이 붙은 게 뻔했다.
“형, 어디 다녀와요?”
“어? 아, 화장실.”
“화장실? 변비예요? 뭐 이렇게 오래 걸려.”
전화를 하고 오니, 우식이 물었다.
갈비를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나서 그런가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변비……. 그래, 변빈가 보다.”
유현은 그냥 그렇게 둘러대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먼저 우식과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래서 넌 집으로 가지?”
“아……. 네, 그래야죠.”
이제 보니 우식이 나아 보이는 건 갈비 때문도, 시간이 지나서도 아닌 듯했다.
아내와 통화했는지 휴대폰이 나와 있었다.
그래, 이놈은 집에 가야 했다.
“오 형사님은 어떻게…….”
“저는……. 일단……. 장례 절차 알아보려고요.”
“그거 아까 경찰청 과장님이 싹 정리하고 가신 거 같던데.”
“그, 그래요?”
“네. 정신없어 보여서 얘기 안 했어요.”
실은 국장이 알아서 했지만, 그게 그거 아니겠는가.
유현은 우선 오예리도 집으로 보내고자 했다.
딱히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무용한 죽음을 맞이하는 건 별로 반갑지 않았다.
“그럼 저도……. 일단은 집으로 가야죠…….”
“그래요. 올 때 그냥 왔죠? 제가 데려다줄게요.”
“아, 안 그러셔도…….”
“아뇨, 그게 나을 겁니다. 우식아, 너도 바로 가. 택시 타.”
“네.”
해서 유현은 우식은 세종으로 보내고, 오예리 형사를 신림동 집에 데려다주고는 병원으로 돌아왔다.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역시나 노트북에 따로 백업해 둔 자료였다.
그것까지는 건들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대로 있었다.
‘이걸 어디다 올리는 건 자살행위지.’
어쩌면 이 자료의 존재가 구명줄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해서 유현은 USB에 따로 담아 품 안에 갈무리한 후, 눈을 감았다.
‘연구……. 무기화시키려는 목적이겠지.’
오전에 봤던 2차 감염자들이 눈에 선했다.
호르몬에 의해 커다랗게 변한 이들.
그렇게까지 놀라지 않았던 건, 박원상 덕이라 할 수 있었다.
녀석의 말에 따르면, 1차 감염자 박기태의 농도로 호르몬이 2주 이상 지속되면 보통 괴물처럼 강해진다고 했더랬다.
하지만 그들은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 그 정도는 아니었다.
‘더 강했으면 큰일 날 뻔……. 더 강해?’
쓸 만해지려면 더 강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호르몬이 더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호르몬은 정말 예민한 문제라 농도 조절이 지극히 어려웠다.
군에서 그게 가능할까?
아닐 것 같았다.
무조건 외주를 줘야 할 텐데, 유현은 어쩐지 그 대상이 누가 될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