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사고 (3)
“빼돌려요? 왜요?”
정황상 빼돌렸을 가능성이 아주 컸다.
아니, 아마도 그랬을 터였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이 남았다.
대체 왜 환자들을 빼돌린단 말인가.
오랜 시간 방역에 힘써 온, 그렇기에 ARS-24 감염자 치료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는 우식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박원상……. 그 자식이 그랬지. 호르몬이 아주 잘 세팅되어 있었다고……. 포식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관찰 기간이 짧았을 땐 그리 커다란 변화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본 2차 감염자들은 어떠했던가.
평균 연령이 60은 훌쩍 넘어갔을 텐데, 힘들이 아주 대단했다.
그 어떤 무기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젊디젊은 의경들이 쪽도 못 쓰고 당했더랬다.
‘그사이에 젊은 사람들이……. 아니, 더 큰 감염자가 있었더라면…….’
어쩌면 형사나 유현 본인도 위험할 수 있었을 터였다.
만약 이걸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아니, 이 생각을 누군가 힘 있는 사람이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통제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 터였다.
어떤 식으로든 통제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것이 분명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검체로써 데려갔을 가능성이 있어.”
“검체요? 그렇다면 한 명만…… 데려가면 되잖아요?”
치료를 위한 검체라면 그래도 될 터였다.
하지만 이것저것을 실험하기 위해서라면 검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무엇보다……. 군용 목적이라면 다른 곳에 노출하고 싶지 않았겠지.’
변종 감염자들을 일반 병원에서 보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모든 의사들은 각국의 질병관리부 또는 청이 합의한 사안에 따라 결과를 공유하게 될 터였다.
그렇게 되면 각국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조리 비슷한 연구를 시작할 것이 뻔했다.
“치료 목적이 아닐 수도 있어.”
“네?”
“아침을 떠올려 봐. 어떻던? 그 환자들.”
“어떻긴요. 그…….”
“신체는 거대해지고, 흉포해졌어. 그 환자들 원래 나이가 60대를 넘어. 아마 거즘 70세 이상이었을걸? 그런데도 의경들이 당해 내질 못했다고. 심지어 형사도 하나 당했잖아.”
“아……. 그러고 보니……. 그렇죠. 엄청났죠. 근데 그걸……. 군인…… 국방부에서, 설마?”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지금 당장 확신할 수 있는 건 형사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것이었다.
그 생각에 침울해져 있으려니, 휴대폰이 울렸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지만 익숙해진 번호였다.
“네, 최우식입니다.”
-네, 보호자분.
응급실 주치의였다.
“아……. 그런가요…….”
-네. 그……. 장호영 환자는 아직 수술 중입니다.
또 다른 형사 하나가 숨을 거두었다는 얘기를 전해 왔다.
이로써 다섯 명의 형사 중 벌써 4명이 사망했다.
“아, 오예리 형사. 그 사람은 괜찮나?”
“아……. 잠시, 잠시만요.”
유현은 아까 우식이 호명한 이름에 오예리라는 이름이 없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개인적으로는 제일 고마운 사람이었다.
덕분에 죽다 살아나지 않았던가.
“아, 네네. 들어가셨구나.”
-왜요? 왜 그러세요, 최우식 과장님?
전화를 걸자, 오 형사가 전화를 받았다.
다행이라 생각했으나 오예리는 그 순간 우식의 목소리에 실린 불안감을 읽어 냈다.
한 달 넘게 같이 지내 온 사이다 보니 척하면 척이었다.
“그…….”
“말씀드려. 이걸 왜 숨겨. 그렇다고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고.”
망설이고 있자니 유현의 조언이 있었다.
스스로 생각을 이어 나가기에는 벅찬 상황 아닌가.
원래도 믿음직한 형이라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고.
우식은 별말 없이 유현의 말을 따랐다.
“봉고차가 사고가 났어요.”
-네?
“한 분……. 정호영 형사님 말고는 다 돌아가셨습니다.”
-네? 아니……. 이런 시발……. 아니, 지금 어딘데요?
“용인 세브란스입니다.”
-일단 지금 바로 갈게요.
“어…….”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 말을 흐렸다.
그때 유현이 말을 이었다.
“피곤할 테니 운전하지 말고 택시 타라고 해. 카카오 택시는 행선지 보낼 수 있잖아. 그리고 서울에서 이리로 오는 길은 고속 도로 아냐.”
“아, 네. 택시 타고 오세요. 피곤하실 텐데.”
-알겠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통화를 마친 우식은 휴대폰을 더 보기 싫다는 듯 재빨리 주머니에 집어넣으려 했다.
하지만 유현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왜요?”
“국장님도 알아야지. 내가 보기에 그쪽도 뭘 아예 모르는 건 아냐. 아까 전화……. 지금 생각해 봐. 확실히 이상하잖아.”
“아……. 근데 괜찮을까요? 우리 편…….”
“그건 모르겠지만. 하여간 걱정했던 건 맞아.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물었겠어?”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지 않은가.
해서 우식은 즉시 김효상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내 기다리고 있었는지, 국장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됐어?
“사고가 났습니다.”
-사고……? 무슨 소리지?
어리둥절해하는 국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길이 갈렸고, 갑자기 군부대 트럭이 이상한 곳으로 향하길래 따라붙은 봉고가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까지.
물론 그 저변에 깔려 있을 거라 짐작되는 뒷얘기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적의가 있는 거 같지는 않지만 아직 어디 서 있는지 명확하지 않아서였다.
-이런 망할……. 어디라고?
“용인 세브란스입니다.”
-알겠어. 내 가지.
“오시겠다고요?”
-수색 작전……. 그거 내 소관이잖아. 남의 자식들이라고 내버려 둘 수 있어? 청에는 내가 연락할 테니까 자리만 지키고 있어.
“아, 네. 알겠습니다. 국장님.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일단 오겠다고 하니 안심이었다.
우식이 아는 김효상은 자신이 판 벌여 놓은 곳에 얼굴을 들이밀고도 멀쩡할 만한 위인은 아니었기에 그랬다.
유현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무리 공직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지만…….’
그가 아는 김효상은 순진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너무 자세한 얘기는 하지 마. 그쪽에서 묻기 전에는.”
“네. 근데……. 아니, 이게…….”
우식은 전화를 끊자마자 떨려 오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용케 통화 중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싶었다.
오전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일 중 범상한 것들이 하나도 없이 않은가.
흉포했던 감염자들에, 3차 감염자 발생 그리고 고락을 함께했던 형사들의 죽음에 배후는 국방부가 의심된다고?
공직에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의사 마인드에 머물러 있는 우식으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일들이었다.
“환자 52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군 병원이 있을까?”
“네?”
그에 반해 유현은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사람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팬데믹 사태 당시 그렇게 의연한 대처를 할 수 있었던 게 우연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냥 부대로 가지는 못했을 거야. 환자 중에서는 위독한 사람들도 있고……. 검사가 안 돼. 사단…… 대 급에서는 처리가 안 돼. 병원으로 갔을 거야. 민간 병원은 아니겠지. 통제가 안 될 테니까.”
“아……. 그…… 음. 일단 수도 병원이랑 대전? 양주 병원도 가능은 할 거 같은데요.”
“대전이라……. 방향이 너무 다르지 않아?”
“그럼 수도랑 양주요.”
“음.”
유현은 감염 관리 때문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군 병원들을 떠올렸다.
특히 수도 병원은 거리도 가까워서 자주 갔더랬다.
그곳의 시스템은 거의 유현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 유현은 열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 김태순 선생?”
아는 사람이 많다, 이 말이었다.
-정 교수님. 어쩐 일이세요?
“다름이 아니라……. 오늘 혹시 환자들 간 거 있어? ARS-24.”
-네? 아뇨. 군부대는 특별히 지금 뭐 없습니다.
“그래? 한 번만 확인해 줘. 접수 안 하고 그냥 들어갔을 수도 있어.”
-아……. 네.
그중에서도 김태순과는 꽤 가까웠다.
군의관 1년 차 때부터 도움을 아주 많이 준 덕이었다.
이제 곧 전역이라 손을 놓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유현의 부탁은 들어줄 정도였다.
-아뇨, 없어요. 1층 로비에 문의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뭐……. 주차장도 특별히 수송 트럭 같은 건 없고?”
-트럭이요? 요새 애들 다 버스 타고 옵니다. 그런 건 없어요.
“오케이, 알았어. 고마워.”
-네, 근데 무슨…….
유현은 굳이 답을 해 주는 대신, 전화를 끊고 양주 쪽 아는 군의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쪽의 답변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형, 의외로 형 인망이 별로인 거 아닐까요? 아니면 더 은밀하거나.”
“아냐, 거기 내가 많이 가 봤잖아. 그만한 인원이 누구 모르게 드나들 수가 없어.”
“그럼 대전도 걸어 봐요. 아니다, 여긴 제가 할게요.”
유현이 전화를 거는 동안 그나마 멘탈을 회복한 우식이 대전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질병관리부가 세종에 있고, 우식이 그쪽으로 일 년에 절반가량은 출근을 하다 보니 대전에는 좀 아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없대?”
“네, 그런 일은 없다는데요? 이거 그냥 군부대로 빠진 거 아닐까요? 아직도 다른 병원에서는 연락 없죠?”
“어. 없어.”
유현은 혹시 몰라 감염내과 교수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도 ARS-24 감염자들이 오면 연락을 달라고 해 놓은 참이었다.
과장급, 그러니까 시니어급 교수들이 있는 방이라면 와도 씹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곳은 펠로우나 임상 강사 또는 기껏해야 조교수들이 주축을 이루는 방이었다.
유현을 질투하기는커녕 존경하거나 못해도 존중하는 이들이었다.
“음……. 민간도 아니고……. 진짜 군부대로? 그럴 수가 없는데. 설비가…….”
게다가 일반 군부대라는 건 의외로 보안이 허술하지 않은가.
애초에 징집병으로 이루어진 집단에 과한 충성을 바라는 것은 인지 부조화의 결과였다.
큰일을 도모한다면, 그것도 하마터면 방역을 무위로 돌릴 뻔했을 뿐 아니라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갈취했을 정도의 일을 생각한다면 절대 그쪽으로 가진 않았을 거 같았다.
대안이 있어야 할 텐데.
과연 어디로 갔을까.
유현은 미간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찌푸리고 있다가, 이내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아, 깜짝이야. 뭐예요.”
“지구 병원이 있잖아. 삼청동에.”
“지구 병원……? 아…… 거기…….”
병원이라고는 하지만 원래는 그렇게까지 커다란 병원은 아니었더랬다.
VIP 전용 병원이지 않은가.
하지만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병원이 이래서야 되겠냐는 지적이 있었고 그에 따라 대대적인 확장 공사를 마친 마당이었다.
그곳이라면 50명이 넘는 환자도 충분히 수용 가능했다.
무엇보다, VIP 전용 시설이기에 인력도 아주 깐깐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아는 사람 있어요?”
“있기는 한데……. 알려 줄까 모르겠네.”
“혹시 모르니까 전화나 해 봐요.”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