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사고 (2)
-정유현 교수님?
유현은 정신이 나간 우식을 대신해, 블루투스로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댔다.
현재 대한민국의 ARS-24 감염자들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병원들의 감염내과 교수들이었다.
과장급이랑 바로 통화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유현은 썩 주류 의학에서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열려 있는 사고와 역시나 마찬가지로 지나칠 정도로 빠른 출세는 의사 사회의 기득권에게 미움을 받기 좋았다.
“어, 김충현 교수? 지금 전화 받을 수 있어?”
-네네. 교수님. 주말이니까요. 근데 어디세요? 바람 소리가 나는 거 같은데.
하지만 그와 같은 이유로 후배들에게는 존경을 받고 있었다.
특히 1, 2년 차이의 후배들, 그러니까 같은 현장에서 마주쳤던 이들은 유현을 대부분 인정하고 있었다.
김충현도 그랬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김충현도 올해 조교수를 달았으니, 교수 기수로만 따지면 동기라 할 수 있음에도 깍듯하기 그지없었다.
“운전 중이야. 혹시 얘기 들었나?”
-무슨 얘기 말입니까?
“역시 안 들어갔구나. 저번에 질본에서 브리핑했던 변종 중에 중국에서 발견됐다고 했던 거 혹시 기억해?”
-아, 기억합니다. 근데 걔들 정보 공개 거부했잖아요. 알려진 거라곤 환자가 의사를 공격했다, 그리고 완치됐다. 뭐 이 정도 아닙니까?
맞는 말이었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각국 질병관리부 또는 청에서 요청했던 바를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WHO의 요청도 거부했다.
이번이 처음이라면 이놈들이 웬일이지 싶겠지만.
이미 열 번도 넘게 이래 왔기에 으레 그런 사람들이라 여기고 넘어갔을 만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당 변이랑 유사해 보이는 변종이 진단됐어.”
-네? 아, 전에 이상한 환자 있다고 하더니, 그게 그거예요?
“그래. 그 환자가 도망가면서 비공개 수사 전환됐거든.”
-기밀이었군요. 그걸 알려 주시는 건…….
“오늘 그 환자가 도망갔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2차 감염자를 대거 찾았어. 그 과정에서 3차 감염자도 발생했고. 공격성이 너무 강하고 전염성도 강해.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백 퍼센트야.”
유현은 물린 환자들이 전원 행태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을 상기했다.
행태 변화의 정도나 변화가 일어나기까지 걸린 시간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 누구도 변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전염률 100%……. 비말이에요?
“아니, 직접 전파?”
-직접……? 성병입니까?
“아니, 물어.”
-물어……? 아니, 환자가 물어서 타액으로 전파를 시킨다고요? 그게 말이…….
“정확해. 지금 그 환자들 열두 명이 태화로 가고 있어. 프로토콜 가동하는데, 그걸로는 부족할 거야. 공격 가능성이 있어. 무조건 억제대(환자를 억제할 때 사용하는 끈 등)하고 보호대 착용해. 어느 과에……. 아, 그래 정신과 쪽에 장비가 있을 거야.”
-허.
김충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유현이 하는 말이 어이가 없어서였다.
아마 유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벌써 끊었을 터였다.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해 줘. 물리면 전염이니까 안 물리게 주의해.”
-어어, 끊으려고요?
“의심 환자가 50명이 넘어. 칠성이랑 아선으로도 가.”
-아.
하지만 유현의 말이었다.
이 사람은 적어도 방역에 있어서만큼은 허튼소리를 해 댈 사람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오케이.”
유현은 이후로도 칠성과 아선에도 같은 사안을 전했다.
반응에 얼마간 차이가 있긴 했으나, 하여간 유현이 워낙에 진지했기에 그 누구도 허투루 넘기지는 못했다.
유현은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난 후에야 우식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어깨를 감싸 쥐고 있었다.
“야, 괜찮아?”
“아뇨. 안 괜찮아요. 사고라니……. 이게 우연일까요?”
하필 수상한 모습을 보이던 군부대를 쫓다가 사고가 났다.
단순한 접촉 사고는 아닌 듯했다.
-최우식 씨 되십니까? 정호영 씨 보호자 되실까요? 최근 연락하신 분이 거의 없어서.
이후 이어지는 전화에서 장 형사 말고 다른 형사들의 부고 또는 수술에 들어간다는 말을 계속해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 말은 곧 엄청나게 큰 사고가 일어났다는 얘기였다.
상대방은 어떻게 됐냐고 물으니 뺑소니라고 했다.
뺑소니라.
우식은 자신도 모르게 밖을 내다보았다.
여전히 해가 쨍쨍했다.
“이 시간에…… 고속화 도로에서 사고를 내고 튀는 게 가능해요?”
“거의 불가능하지.”
“이제 보니까……. 갑자기 군부대에서 후방 지원 오겠다고 한 것도 이상하고, 후방 부대라는 사람들이 그런……. 그런 분위기의 인간들이라는 것도 이상해요.”
유현은 간신히 그걸 이제 알았냐는 말을 하려다 참았다.
자책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제 곧 병원이었다.
사람들이 괜찮은지부터 우선 살펴야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유현은 의사 아닌가.
사람이 아프다고 하면 그게 제일 신경이 쓰이는 인간이다, 이 말이었다.
“다 왔어. 일단 사람들 상태부터 보자.”
“어……. 네. 그래, 그래야죠.”
우식도 의사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비록 지금은 진료를 안 보고 있지만.
마인드셋이 일반인들하고는 조금 달랐다.
끼익
해서 둘은 차량을 응급실 근처 주차장에 대자마자 일단 달렸다.
“장덕수, 정호영, 조상덕, 허용석, 이기철 보호자입니다.”
우식은 우선 원무과로 가서 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이 모두를 호명했다.
“어……. 그 다섯이요?”
“다 고아거나 가족이랑 연락을 잘 안 해요. 제가 보호자입니다. 방금 119로 왔을 겁니다. 연락받고 왔어요.”
“아. 아, 그 덤프트럭.”
“네?”
“아, 아뇨. 그……. 네,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환자분…… 음…….”
“안에 있죠?”
“아, 네. 주치의 선생님 계실 겁니다.”
우식은 이상하게 망설이는 원무과 직원을 뒤로한 채 응급실 안으로 향했다.
그사이 유현은 학회에서 만난 적 있는, 지금 이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를 찾아 자초지종을 물었다.
“두 명은 현장에서 즉사……. 하나는 CPR 하면서 왔는데, DOA(Dead On Arrival, 응급실 도착 전 사망) 상태였어요. 나머지 둘도 수술 중인데 위독합니다.”
“허……. 상처가 어떻지?”
“하나는 양측 다리가 니어 엠퓨테이션(Nearly amputation, 거의 절단 상태)이에요. 거기에 복부에도 유리창이 박혀서, 살 수 있을 거 같진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마 여느 보호자였다면 이따위 소리나 해 대는 의사에게 멱살은 못 잡아도 한 소리 했겠지만.
유현은 의사이지 않은가.
그저 의학적인 소견을 늘어놓는데 분노를 일으킬 이유는 전혀 없었다.
다만 이상하다 여길 뿐이었다.
“다른 하나는……. 갈비뼈 쪽으로 다발성 골절이 있는데 그게 폐를 찔렀어요. 급한 대로 박고 올려보냈는데, 어떻게 될지……. 그나마 이 사람이 가망이 있다면 있어요. 하지만 입 열려면 시간 꽤나 걸릴 겁니다.”
“사고가 엄청 크게 났네. 그 구간이 이런 경우가 많나?”
“네? 아뇨. 저희 병원 사실……. 연 지 얼마 안 된 것도 있지만, 이렇게 큰 사고는 처음이에요. 새벽에도 이렇지는 않아요. 제가 출퇴근할 때 다니는 곳인데 거기 뭐 커브 길도 아니고 터널이 긴 것도 아니에요. 졸음운전이면 모르겠는데…….”
“졸음운전 한 사람이 다른 차 박고 그렇게 신속하게 도망갈 수가 있나?”
“그건 모르죠. 경찰 말이 일단 찾아는 본다는데, 아. 이거. 이게 현장 사진이에요. 119 대원이 전해 주고 갔어요.”
유현은 후배가 건넨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어느새 뒤따라와 사고의 전말을 전해 들은 우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난 한 달 넘게 내내 타고 다녔던 봉고의 후미가 아예 뭉개져 있었다.
심지어 전방은 터널 입구 쪽으로 틀어박힌 채였다.
아무리 덤프트럭에 치였다고 해도 이 정도면 정말이지 작정하고 박아야 가능할 것 같았다.
“우식아, 잠깐.”
“아, 네.”
유현은 일단 우식을 밖으로 불렀다.
“이거 네 말대로 우연은 아냐.”
“그럼…….”
“누가 박은 거야. 아까 사진 봤지? 충돌이 두 번 있었어. 앞으로 밀리는 상태에서 한 번 더 친 거야.”
“박고 나서 액셀을 밟았다?”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는 보통 안 그래. 내가 외상 외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응급실에서 일한 게 몇 개월인데. 이건 의도적이야.”
“증거로 채택이 될까요?”
“증거고 나발이고……. 누가 그랬는지도 모르잖아.”
“누구긴요, 그 새끼들이겠죠!”
목적어는 없었지만, 유현은 우식이 누굴 지칭하는지 바로 알아먹었다.
그래서 위험하다 판단했다.
“쉿. 여기 와 있을 수도 있어. 너는 그냥 사람들이 걱정돼서 온 걸로 해. 아무것도 몰라야 해.”
“아니……. 사람이 죽었는데…….”
“네 처랑 자식 생각해.”
“아. 아!”
경고를 하자 우식은 그제야 집에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를 듣고도 안심이 안 되는지 영상 통화까지 하고서야 바닥에 주저앉았다.
유현의 예상대로 아직은 괜찮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누가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그러니까 오히려 괜찮아.’
이쪽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건 저쪽도 알고 있을 터였다.
구태여 쑤셔 파지 않는 이상에야 그럴 게 뻔했다.
물론 악의를 가지고 있다면야 얘기가 다를 텐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우리가 지금 살아 있고, 또…….’
물어본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주워들은 것만으로도 우식이 함께 다녔다던 형사들의 공통점을 알 수 있었다.
바로 고아거나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가족이 없는, 혼자 사는 이들이라는 것.
고된 형사 일하기에 최적의 조건 아닌가 싶겠지만 그들만으로 이루어진 팀을 대 보라고 하면 아마 그리 흔하지는 않을 터였다.
‘애초에 사라져도 되는 이들로 조직이 된 거야. 그 말은 아주 윗선에서 결정된 일이라는 건데……. 그만한 사람들이 쓸데없이 사람을 죽일 리는 없어. 특히 우식이는 가족이 있고……. 나는……. 나는 좀 조심을 해야겠군.’
완전히 자의로 이 작전에 참여했으니 계획된 인물은 아니겠지만.
하여간 유현도 가족 없이 홀로 사는 이였다.
주의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렇게 각오를 다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 사람들은 왜 죽은 걸까.
무언가 봐서는 안 될 것을 봤거나, 보게 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설마.”
“왜요?”
“잠깐만. 지금……. 지금 몇 시지?”
“이제 4시 넘었죠. 여기 오느라 시간이…….”
“그럼 병원 도착했어도 한참 전에 도착했어야지?”
“아……. 네. 네, 그렇죠.”
“기다려 봐.”
유현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전화를 걸었다.
태화, 칠성, 아선.
모두의 답은 같았다.
환자는 왔다.
“변종이 아냐.”
“네?”
“그냥……. 그냥 환자들이래. 열두 명.”
“아니, 그럼…….”
“빼돌렸어, 이 새끼들이 환자들을 빼돌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