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사고 (1)
“2차 감염자 38명, 3차 감염자 3명 확보했습니다. 지금 출발합니다.”
김선태는 명령을 내린 후, 곧장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해킹을 방지하기 위해 오직 통화만 가능케 만들어진 일종의 위성 전화였다.
-최우식 과장은 어떻게 나오지?
“반발이 있긴 했으나, 지정된 병원으로 가겠다고 하니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래? 집요하다고 들었는데.
상대는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김선태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지프차의 백미러를 바라보았다.
의경들이 타고 내려온 버스는 따로 올라갔는지 보이지 않았으나, 우식이 타고 내려온 것으로 확인된 봉고차는 기천리 보건소를 떠난 이후로 계속 보였다.
“미행은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지정된 병원으로 가는지 확인하려는 듯합니다.”
-역시 그렇군.
“예상하셨습니까?”
-긴장 늦추지 말게. 어쩌면 자네가 맡은 작전 중에서 제일 중요한 작전일 수도 있어.
“그 점은 명심하고 있습니다.”
김선태는 통화를 이어 가면서, 자신의 굳건한 팔뚝을 내려다보았다.
거의 모든 작전이 기밀이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을 죽여야 했던 적도 있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함께했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적어도 지난 10년간 있었던, 또는 없던 걸로 된 굵직한 사건들 대부분에 그가 관여했다.
‘그런데도 이게 제일 중요한 작전일 수 있다? 대체 뭘까 이것들이.’
김선태는 팔뚝에서 앞서가고 있는 트럭들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은 두꺼운 비닐로 가렸지만 아마 안에는 사지가 결박된 환자들이 있을 터였다.
‘그냥 아프기만 한 사람들일 리는 없지.’
의료에 대해서라면 문외한이란 말도 모자랄 지경이었지만.
그런 김선태가 보기에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제대로 훈련받지 않았다면 부대원 전부가 온전치 못했을 수도 있어 보일 지경이었다.
-지금 도로 뭐 타고 있지?
“음……. 비봉매봉 도시 고속화 도로입니다.”
“과천봉담 도시 고속화 도로로 갈아타.”
“아, 네.”
돌아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김선태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최우식 과장이라.’
뒤에 따라붙은 차량 때문이지 않겠는가.
“저희가 따로 할 일은 없겠습니까?”
“없어. 그냥 갈아타.”
“알겠습니다.”
김선태는 고개를 끄덕인 후, 뒤편의 봉고 차량을 바라보았다.
SUV 한 대와 함께 달려오고 있었는데 두 차량 모두 보고된 지 오래였다.
“여기서 다시 빠져.”
“네.”
서울로 가려면 이대로 직진하면 될 일이었다.
굳이 따라오겠답시고 따라붙으면 대가를 치르게 될 터였다.
김선태가 완전히 남의 일인 양 태평한 얼굴로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는 사이, 트럭들이 하나둘 옆길로 빠지기 시작했다.
“뭐야, 저거.”
운전석에 앉아 있던 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고속화 도로 타는 사람치고 내비 안 켜고 다니는 사람이 있던가.
형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리로 가면 돌아가는 거지?”
“네, 뭐지? 이 길로 그냥 가면 서울인데? 막히는 것도 아니고.”
“야야. 전화해 봐.”
한눈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 정도는 알아먹을 수 있었다.
해서 우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선태가 보고한 것과는 달리 우식은 유현의 차에 타 있었다.
어차피 한국대학교 병원으로도 환자들이 올 테니,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도 된다는 유현 때문이었다.
-네, 최우식입니다.
“네, 과장님.”
-무슨 일 있습니까?
“그게, 지금 트럭들이 옆길로 빠졌습니다. 우리도 빠질까요? 이상한데.”
-빠져요? 어디로요?
“그게……. 이대로 직진하면 서울인데 옆길로 빠졌어요.”
-아. 길을 모를 가능성은 없을까요?
“운전병이 운전하고 있겠지만……. 장교가 선탑하고 있을 겁니다. 요새 군에서도 다 네톡 쓰고 하는데 N맵이라고 안 쓸까요?”
최우식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형사의 말이 더 논리적이었기에 그랬다.
‘설마……. 진짜 환자를 빼돌리려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왜 그렇게 하겠는가.
하지만 모를 일이었다.
특히 오늘 겪은 일을 떠올려 보면 더더욱 그랬다.
수락 마을에서부터 김효상 국장의 전화, 그리고 수송 문제까지.
무엇 하나 자연스러운 것이 없었다.
-일단……. 일단 따라가 주세요. 도로 어디 타는지 알려 주시면 저희도 그리로 갈게요.
“네? 과장님은 벌써 한참 가셨잖아……. 아, 오 형사도 그냥 지나쳤네. 하긴 어제 밤새고 달리는 거니까 졸리긴 하겠지.”
-오 형사는 제가 그냥 집으로 달리라고 했어요. 형사님이 따라가 주시고, 길만 알려 줘요.
“알겠습니다.”
해서 우식은 형사에게 따라붙기를 요청했다.
형사는 우식과 함께 다니면서 정이 든 데다가 썩 괜찮은 인간이라 생각하게 된 참이었다.
공무원들이 다 이 사람만 같으면 대한민국이 훨씬 살기 좋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피곤한 와중에도, 심지어 동료들이 다친 와중에도, 공식적으론 임무가 끝났음에도 요청을 들어주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끼이익
우식의 결단이 조금 늦었던 탓에 형사들이 탄 봉고는 거의 사잇길을 지나치려다 중간에 끼어들었다.
‘뭐……. 누굴 탓하겠어.’
김선태는 SUV는 가고 봉고만 들어왔다는 것을 즉시 보고했다.
윗선에서는 별로 문제 될 것 없다는 입장이었다.
고속화 도로를 달려도 증거가 남는 시대긴 하지만 그걸 지울 수 있는 힘이 있어서였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람만 없다면 상관없었다.
-저희도 지금 돌아가고 있습니다.
“네네. 일단……. 지금 어디로 가는 건지……. 경로는 다시 비봉매송……. 어.”
-왜요?
“과천봉담 도시 고속화 도로가 잡혔어요. 트럭들도 그리로 달리는 거 같습니다. 근데 이제 이거 너무 티가 나서 따라붙은 거 알 거 같습니다.”
-괜찮아요. 죄지은 것도 아니고. 우리도 길 잘못 들었다고 하면 되지. 과천봉담 도시 고속화 도로 맞죠? 찍었습니다.
“네. 또 특이 사항 있으면 보고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형사의 말대로 트럭들 그리고 지프차가 차례로 줄지어 과천봉담 도시 고속화 도로 쪽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봉고 또한 그리로 향했다.
“여기가 차가 없긴 하네.”
“그러니까요. 안 막히는 곳으로 가려고 그러나?”
“근데 돌아갈 시간에 벌써 갔겠다. 여기서 병원들 그거 얼마나 걸린다고?”
“하긴……. 기껏해야 1시간 반 정도 걸릴까 말까 한데.”
형사들은 지난 몇 개월간 이어진 수색에 더해 아까 있던 육탄전으로 인한 피로감을 잊기 위해 입을 쉬지 않았다.
특히 운전을 맡은 조 형사를 졸지 않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누구라도 당장 눈을 감고 곯아떨어지고 싶을 만큼 피곤했기에 그랬다.
“근데…… 아까 그 수락 마을? 거기 분위기 진짜 묘하지 않았어?”
“묘했지. 얼핏 보면 그냥 시골 마을 같은데……. 보니까 6·25 때도 그냥 넘어갔다던데?”
“그래요?”
“어, 이름이 특이해서 검색해 봤지. 아는 사람은 아는 동네더라고. 화성이면 사실 수도권인데 저런 곳이 있다는 게 이상하잖아.”
“하긴 그것도 그래. 근데…… 그 환자들 말야.”
“아…….”
다행인 것은 얘깃거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랜 형사 생활 중에서도 겪지 못했던 것을 오늘 죄다 겪은 덕이었다.
“눈깔이 돌아가 있던데…….”
“일단 덩치들이 커. 할머니들도 있던데, 무슨 놈의 할머니가 나만 하냐고.”
“그러니까. 옷은 작고……. 진짜 최우식 과장님이나 정유현 교수님 말대로…… 감염된 다음에 커진 건가?”
“못 봤으면 그게 말이 되냐고 하겠는데, 봤으니 뭐……. 뭐라고 하기도 어렵네.”
특히 환자들이 인상적이었다.
노인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커다랗고, 그 체격에 걸맞은 괴력을 뽐내던 이들.
아마 조금만 젊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더라면 전멸을 피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그나마 정유현? 그 교수님이 진짜 잘 싸우던데. 조폭 출신인가?”
“교수님한테 조폭은 무슨. 미쳤어?”
“연장질을 그럼 왜 그렇게 잘해?”
“음.”
유현에 대한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그만큼 아까 유현이 보여 줬던 무위는 예사 것이 아니었다.
밥 먹듯이 폭력범들을 다루는 강력계 형사들보다도 더 살벌한 모습이라니.
동류거나 저쪽 사람이라 해도 전국구라는 말 정도는 붙여 줘야 납득이 갈 것 같았더랬다.
“덕분에 살았지, 음?”
“왜?”
그렇게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으려니, 운전대를 잡고 있던 조 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졸려? 갓길에 세울래? 놓칠 거 같진 않은데.”
“아니, 아냐. 그게 아니라…….”
백미러를 보면서였다.
대체 뭔 일인가 해서 다른 이들도 백미러를 바라보았다.
웬 덤프트럭이 달려오고 있었다.
터널을 앞에 두고 있어 다들 느려지고 있는 와중에 전속력으로.
“저, 저 미친놈이!”
“옆, 옆으로. 어.”
정신을 차려 보니 우측과 좌측 차선에도 모두 트럭이 달리고 있었다.
기가 막히게 조 형사가 몰고 있는 봉고와 속도를 맞춘 채였다.
“죽일 각오로 갑니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그냥 탈선만 시켜.”
“그럼 몇 명은 죽을 수도 있는데요?”
“신경 쓰지 마.”
“네.”
그렇게 사면초가 신세가 되어 버린 봉고를 뒤쫓아 오던 덤프트럭이 박아 버렸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좌우를 막고 달리던 덤프트럭은 속도를 높여 자리를 이탈했다.
뒤쫓아 와 박았던 덤프트럭 또한 봉고가 타선에서 이탈해 터널 입구에 박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내달렸기에 현장에는 완전히 망가져 버린 봉고만 남아 있었다.
“야, 전화 온다.”
유현은 우식의 말에 따라 과천봉담 도시 고속화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우식은 긴장감이 풀려 그런가 잠깐 졸고 있었고.
“어, 네네. 아 깜빡 잠들었네.”
“깜빡? 완전 숙면 취하시던데.”
“죄송해요. 아, 조 형사님이네.”
“받아 봐. 사람 일 시켜 놓고 기다리게 하는 거 예의 아냐.”
“알겠어요.”
우식은 뺨을 탁탁 때린 후, 전화를 받았다.
그러곤 넋 나간 얼굴이 되어 유현을 돌아보았다.
“혀, 형.”
“왜.”
“병원……. 이라는데요?”
“병원? 무슨 소리야, 그게.”
“지금 이송 왔는데 연락처에 제가 있어서 전화했대요.”
“음?”
보통은 가족한테 가지 않나.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네? 사고요? 무슨…….”
사고가 났다고 하는데 꺼내기엔 좀 이상한 말 아니던가.
“어디로 가면 돼?”
“용인……. 용인 세브란스 병원이요.”
“용인 세브란스? 아, 얼마 전에 생긴 곳 말하는 거지?”
“네.”
“길 알아. 저번에 가 봤어. 어떻게 된 거래?”
“자세한 얘기를 안 해요. 일단 바쁜 거 같아서 끊었어요.”
“음.”
유현은 애써 좋지 않은데 라는 말을 씹어 삼켰다.
별것 아닌 일이라면 애써 찾아낸 보호자에게 무슨 일인지 알리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 네. 최우식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우식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까보다도 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수술이요?”
-네. 바로 들어가야 할 거 같은데……. 가족이 없어요. 원무과에 확인해 보니 보호자분이시라는데 맞습니까?
“아, 네네. 맞습니다. 가족 없어요. 고아예요.”
-그럼 동의해 주시겠습니까? 저희 쪽 의료진들은 우선 동의가 없어도…….
“동의합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