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구출 (3)
군의관이 있으니 의사는 필요 없다는 말이 어떻게 보면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했다.
특히 상대가 군의관으로 군 복무 기간을 채운 의사라면 더더욱 그랬다.
군복을 입혀 놔서 어벙해 보이겠지만, 그래도 전문의이지 않은가.
대학 병원에 있을 땐 중환자실에서 또 병실에서, 수술방에서 날아다녔던 몸들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중령님. 이건 ARS-24 감염입니다. 그것도 변종이에요. 방금 보셨다시피 3차 감염도 가능합니다. 이미 팬데믹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특수한 상황이라면 예외를 두어야만 했다.
일단 군 병원에서 저 환자들을 보겠다는 건 만용이었다.
비록 팬데믹 사태 때 수도 병원이나 대전 병원 심지어 양주 병원까지 동원되어 진료를 본 바 있으나, 그 이후로는 다시 민간에 ARS-24 감염 전반에 대한 사항을 이양한 지 오래였다.
“최우식 과장님.”
우식의 말에는 흠잡을 것이 없다, 이 말이었다.
하지만 군인은 받은 명령을 그대로 이행해야 하는 법.
김선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우식을 재차 뒤로 떠다밀었다.
“어…….”
유현이 잡아 주지 않았다면 볼썽사납게 넘어졌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이렇게 생판 모르는 남에게 완력으로 패대기질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해서 당황스럽기보다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김선태가 말을 이었다.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환자는 우리가 인솔합니다. 병원을 지정해 주시면 됩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이젠 화가 날 지경이었다.
분명 저쪽은 지원 나온 입장이고, 지휘권은 이쪽에 있는데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야, 전화 온다.”
“형 무슨 전화가 급해요, 지금……. 저 새끼들 지금 무작정 태우고 있잖아.”
미리 준비라도 한 건지 군용 수송 트럭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군인들은 그 안으로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감염자들을 거의 반쯤 두들겨 패면서 집어넣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마땅히 데려갈 방도가 없을 것 같긴 했다.
형사들이야 패라고 하면 미련 없이 봉을 휘두르겠지만.
우선 수가 너무 적었다.
“일단 받아 봐. 국장이래.”
“아……. 네. 김선태 중령님 잠시만 계셔 보세요.”
“뭐, 좋을 대로 하시죠.”
김선태는 부하들에게 지시 내리는 시늉조차 하지 않은 채 대꾸했다.
얼굴엔 여전히 여유가 흘러넘쳤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재수 없단 느낌이 들었다.
‘한 대 칠까?’
유현은 겨우 욕구를 내리누르면서, 우식과 국장과의 통화에 집중했다.
-어, 살았어?
“네?”
국장의 첫 말이 상당히 의외였다.
전쟁터에 보낸 것도 아닌데 살았냐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설마……. 국장은 아까 그 일을 알고 있나?’
순식간에 마음이 가라앉은 유현은 국장의 말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살았어? 이게 이상하잖아. 보통 환자 수색이 힘들긴 해도 위험한 일은 아니니까…….’
우식 혼자 움직였다면 위험할 수도 있기는 했다.
세상엔 이상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감염이 확인된 채로 도망 다닌 주제에 잡히기 직전에 이런저런 저항을 해 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방역 담당자나 동행한 수사관이 다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방비를 철저히 하고 움직이는 데다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 위험하지 않았어?
“아, 네네. 위험했습니다. 마침 오예리 형사가 차를 몰고 와 줬고…….”
-어, 그리고?
“현장에 지원 나온 군인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살았습니다. 30사단인가? 후방 사단인 데도 훈련이 되게 잘되어 있습니다.”
-아니, 그건.
김효상 국장은 후방 부대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고도로 훈련된 부대란 얘기를 하려다 말았다.
옆에 있던 박태식이 거칠게 고개를 내저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 옆에 있을 텐데, 이런 얘기를 꺼내 봐야 더 위험해지기만 할 것 같긴 했다.
“네?”
-아냐. 그럼 다친 사람은 없어?
“아……. 아뇨. 여기 순경 한 분이랑 형사 두 분이 다쳤습니다.”
-다쳤다는 게…….
“물렸습니다. 3차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3차 감염이라.
3차 감염이라는 게 단순히 1차 감염자에서부터 2단계를 거쳐서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이 말은 곧 지역 사회로 얼마든지 감염이 뻗어 나갈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특히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확인을 못 했는데……. 아무리 봐도 감염자 중에, 저희가 처음 봤던 환자가 보이질 않아요.”
-뭐? 그 환자는 없어?
“네. 다시 마을로 들어가서 수색을 해 봐야 하겠지만……. 일단 지금은 없습니다.”
-음.
김효상의 머리는 더없이 복잡해졌다.
군에서 왜 우리를 방해할까, 이것만 해도 돌아 버릴 것 같은데.
정작 사라졌던 환자, 그러니까 1차 감염자는 보이지 않고 2차, 3차 감염자들만 우글대고 있다고 하니 더더욱 그랬다.
“그보다, 국장님.”
-어?
안타깝게도 우식이 보고할 사항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식은 김선태를, 아까 자신이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피워 대는 중령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쩐지 고자질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지원 나온 부대가 환자들을 자기들이 인솔하겠다고 합니다. 병원을 지정하면 그리로 가겠다고 하면서요.”
-응? 지금 환자가 모두 몇이지?
“거의 40명은 됩니다. 신규로 발생한 환자도 있고요.”
-음……. 그럼 그게 좋기는 하겠는데. 최우식 과장이 선탑하지. 거기 정유현 교수님도 계신가? 그분한테도 좀…….
“그렇게 말했는데, 군의관이 있으니 상관없다고 하면서 못 타게 합니다.”
-어?
김 국장은 쎄한 느낌에 박태식 의원을 돌아보았다.
애초에 스피커폰으로 걸었기에 박 의원도 전화 내용을 다 듣고 있었다.
“소리 못 듣게 해 봐.”
“아, 네.”
김 국장은 박 의원이 시킨 대로 휴대폰를 조작했다.
“지금 저쪽에서 환자 가로채려 하는 거지?”
“네.”
“아니……. 대체 왜 이러지? 왜 저러는 거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방역을 방해하는 거라고 하기엔……. 이상한데요.”
“방역을 방해할 리는 없어. 어차피 VIP 라인이잖아, 저쪽 다. VIP 업적 중 하나가 방역인데 그걸 자기 손으로 망쳐? 그럴 리가 없지.”
박태식 의원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리고 불과 3선 만에 여당 내에서 존재감을 뽐내게 만들어 준 비상한 머리를 굴려 봤지만 별로 소득이 없었다.
‘군에서 왜……. ARS-24 환자에 관심을 보이지?’
군도 군이지만 이걸 VIP가 승인했다는 것이 더 이상했다.
“언론에 뿌려 볼까요?”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김 국장이 이렇게 말을 해 왔다.
미친 소리라 할 수 있었다.
“돌았어? 뭐라고 뿌리려고? 군에서 성실히 도왔는데 마음에 안 든다고? 지금까지 절차상 잘못한 건 없잖아.”
“방해를…….”
“증거가 없어. 증거가. 애초에 처음 그 환자는 없다잖아. 김 국장. 도대체 상대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VIP야, VIP. 살아 있는 권력이라고.”
“아, 네. 죄송합니다.”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는 아니긴 했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권력의 힘은 어마무시하다고 보면 되었다.
속된 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 하나 치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팬데믹 사태 이후 빠르게 재편되어 가고 있는 세계정세 때문에도 더더욱 그렇게 되고 있었다.
인류는 전례 없는 위기 앞에 네 편 내 편을 나눠 벽을 치기 바빴고, 그 과정에서 각 나라의 지도자에게는 필요에 의해 강력한 힘이 주어졌다.
‘방역을 위해’라는 마법의 구호 한마디면 개인의 자유 정도는 얼마든지 침탈되었다.
“그럼 어떻게…….”
“일단……. 일단은 그렇게 두고. 혹시 지정한 병원으로 안 가는 거 같으면 그때 나서야지. 어차피 지금 최우식 과장 혼자 있는 거 아니지 않아? 형사들도 있고.”
“네, 그렇습니다.”
“근데 그 형사들 다 믿을 만한 건 맞아? 저쪽에 포섭됐을 가능성은 없어?”
“그건…….”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애초에 뒤에서 이런 일이 돌아가고 있는지 꿈에도 몰랐는데.
박태식은 노회한 의원이었다.
“에이, 어쩔 수 없어. 지금은……. 우린 저쪽 꿍꿍이도 몰라. 대충 장단 맞춰 줘. 일단 방역 실패만 안 되면 돼. 그럼 우리는 면피야.”
고민해 봐야 답 안 나오는 문제보다는 이쪽에 피해가 올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집중했다.
그 결과, 어찌 되었건 저쪽도 방역 실패를 야기할 만한 일은 피할 거란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당장 걱정할 것은 없다, 이 말이었다.
“우식이는요?”
“그 친구도 뭐 실수한 거 있어? 없잖아. 안 다쳤고.”
“그…….”
“하여간 원하는 대로 해 주라고 해. 따라붙기는 하고. 무리는 하지 말고. 형사들…… 다 믿을 수는 없어.”
“네, 알겠습니다.”
그에 반해 김효상은 혼란스럽기만 한 상황이었다.
혼자 뭔가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뜻이었다.
해서 김효상은 그저 박태식이 내려 준 결론에 따랐다.
-최우식 과장.
“아, 네. 끊어진 줄 알았는데…….”
-일단은 그렇게 하라고 해.
“네? 하지만 저희가 타지 않으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상태가 위험해 보이는 환자들도…….”
-여러 소리 할 거 없어. 최우식 과장, 자네 의사로 가 있는 거야, 거기?
“아, 그건……. 그건 아닙니다.”
물론 한번 따르기로 한 이상, 그것 정도는 잘 해낼 수 있는 위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방역 전선에 있어 상당한 실적을 낸 바 있다 해도 국장까지는 못 올랐을 터였다.
-그럼 따라. 대신 이상한 곳으로 가지 않는지……. 그건 살펴봐.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선태 중령은 전화가 이어지는 내내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사이 모든 환자들은 이미 수송 차량에 탑승한 상황이었다.
이제 와 되돌릴 수는 없어 보였다.
“어떻게 됐습니까?”
“일단……. 일단은 그렇게 하시죠.”
“아, 지시가 그렇게 내려왔습니까?”
“네.”
“음.”
김선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가 인솔하죠. 병원을 지정해 주십시오.”
“한국대학교 병원, 아선 병원, 태화 의료원, 칠성 병원. 이 네 곳으로 각기 13, 12명씩 이송하겠습니다. 제가 연락하죠.”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커다란 병원들이자, ARS-24 감염자 중 변종이 의심되거나 중증인 경우를 담당하고 있는 병원들이기도 했다.
그 대가로 국가에서 지원을 받고 있었기에 다른 병원들과는 점점 더 격차를 벌리고 있었다.
“한국대학교 병원, 아선 병원, 태화 의료원, 칠성 병원. 네, 확인했습니다.”
“그럼 이동해 주세요. 상태 안 좋은 사람도 있으니…… 군의관한테 잘 좀 보라고 해 주십쇼.”
“걱정 마십쇼. 실력 좋은 친구입니다.”
김선태는 병원 이름을 도로 외워 주고는 곧장 맨 앞에 있는 지프에 올라탔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부관이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전원 삼청동으로 간다. 이미 준비되어 있어.”
“저 사람이 눈치채면 어떻게 하죠?”
“눈치채려면 채라고 해. 어차피 우리가 받은 명령은 여기까지야. 나머지는 딴 애들이 알아서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