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7화 (17/323)

17화 구출 (2)

부우우웅

오예리 형사는 전화를 끊자마자, 휴대폰을 옆자리에 던져 놓고는 시동부터 걸었다.

애초에 짧은 머리라 굳이 묶을 필요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더 단단하게 머리도 묶어 버렸다.

“뭐야, 대체.”

대략 1분 가까이 통화를 한 참이었으나 여전히 뭔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이 되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김효상 국장이라는 사람과 박태식 의원이 우식이 지금 위험에 빠졌으리라 확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말은 곧 같이 들어간 동료들 또한 같은 처지일 거란 얘기이기도 했다.

부우웅

사륜구동 차량은 곧 좁디좁은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바닥엔 오래된 낙엽들 아니, 부엽토가 깔려 있어 딱히 비가 내리지 않았음에도 미끄럽기 그지없었다.

다다다

그뿐만 아니라 낮은 관목에 차가 이리저리 부딪치고 있었다.

“아, 씨 이거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흠집 날 걸 생각하니 욕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후진할 생각이 들진 않았다.

적어도 김효상 국장의 절박함은 진짜였으니까.

언젠가 아이를 잃어버렸던 부모에게서 느꼈던 감정과 닮아 있었으니까.

부우우웅

해서 오 형사는 풀 액셀을 밟았다.

어지간한 차였다면 밟아 봤자 푹 퍼지고 말았을 텐데.

애초에 오프로드를 달리라고 만들어진 차라 그런가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갔다.

쨍굵은 나뭇가지에 앞 유리창이 부딪쳐 금이 간 참사만 제외하면 그럭저럭 수월하게 진입한 참이었다.

“이런 망할.”

진입하고 나서도 길은 영 개판이었다.

아예 차가 다닐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길을 만들었는지 밭과 밭 사이의 길도 좁디좁았다.

그나마 경운기 정도나 다닐 수 있을 정도라고 보면 되었다.

다행인 것은 사륜이라 어찌 되었건 바퀴만 땅에 닿으면 앞으로 나간다는 점이었다.

‘1조……. 1조는 지도에서 좌측.’

오예리 형사는 실시간으로 감가상각 되는 차량을 애써 잊은 채 우식이 있을 것이라 짐작되는 곳으로 향했다.

디디딕

중간중간 바닥에 박힌 돌과 차 바닥이 부딪치는 소리가 마음 아프게 했지만.

‘시발, 국장이랬으니까 돈은 많겠지.’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해도 돈은 받아 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하자 불쾌한 소음과 진동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뭐야, 저거.”

망원경으로 그쪽을 바라보던 김선태는 우식에게 점점 가까이 가고 있는 차량을 발견했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여기서 무슨 방법 있어?”

하다못해 소총이라도 들고 왔다면 모를까.

기껏해야 돌팔매질일 텐데, 저 막장 길도 달리는 차를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지금 상황 어때.”

“방금 둘 물렸습니다. 김 순경? 그 사람이요.”

“그만하면 됐어. 어차피 너무 많으면 통제가 안 돼. 슬슬 우리도 진입하자고. 너무 늦으면 의심받아.”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차피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참이었다.

‘뭐…… 싹 다 없어져도 이상할 거 없긴 하겠지만…….’

애초에 비공개 수사로 결정될 때, 지원 인력 또한 결정된 것 아닌가.

아무렇게나 꾸린 게 아니란 얘기였다.

최우식 과장과 김 순경 그리고 공보의를 제외하면 죄다 가족이 없었다.

우연히 끼어든 정유현이 조금 마음에 걸렸는데, 잠깐 동안 캐 보니 저 양반도 결혼을 안 한 상태였다.

‘그래도 저 인원을 한꺼번에 묻는 건 무리가 있지.’

왜 갑자기 차가 상하는 것도 무릅쓰고 지금 시점에서 달려왔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슬슬 작전을 종료해야 할 시점이었으니 잘됐다 싶기도 했다.

“물렸어?”

“네, 네!”

“뒤로, 뒤로 빠져! 아까 작전 시작 전에 나누어 준 거! 그거 바로 삼키고!”

자못 여유롭기까지 한 김선태 측과는 달리 우식과 유현이 있는 곳은 아비규환이었다.

직선거리로 따지면 불과 1킬로미터도 안 되는 곳이었으나, 완전히 다른 세상 같았다.

“으, 으아아악!”

제아무리 오와 열을 맞추어 대응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일단 이쪽보다 2차 감염자들의 체격이 월등했다.

185에 88킬로인 유현보다도 더 큰 이들이 하나둘 끼어 있을 지경이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이런 시발!”

“끄윽.”

그나마 유현과 형사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특히 유현이 고무적이었는데, 진압용 봉을 능숙하게 휘둘러 가며 2차 감염자들의 명치나 목젖들을 찔러 나갈 때마다 상대는 어김없이 뒤로 물러났다.

“괜찮아? 이런 제기랄.”

유현은 방금도 그렇게 구해 낸 김 순경을 왼팔 하나로 잡아다 뒤로 끌어내었다.

좌측 전완이 심하게 물어뜯긴 상태였다.

감염도 걱정이었지만, 그냥 저 상처만으로도 제때 치료가 안 되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우식아! 지혈 좀 해라!”

“어, 네!”

국가 방역에선 전문가를 넘어 대가 소리를 들어도 모자랄 우식이지만 물리적인 싸움에 있어서는 잉여이지 않던가.

일찌감치 뒤로 물러나 상처 입은 이들에게 대강의 응급 처치를 해 주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니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것 같았으나, 실상은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으, 으으으!”

“뭐야, 왜 그래?”

“여기……. 머리가 너무……. 너무 아파요!”

“기, 기다려 봐!”

주먹다짐으로 다친 게 아니라 물어뜯긴 사람이지 않나.

이미 대학 병원에서 나와 진료에서 한동안 손을 놓고 있던 우식에게는 상처 자체만으로도 벅찼다.

게다가 가지고 있는 약들도 형편없었다.

애초에 감염 관리국에서 예상했던 접촉이라는 게 기침이나 비말에 의한 것들 아니던가.

환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외상이 발생하리라 예상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이…… 이상한데? 혈압이 왜 이렇게 높아져?’

그나마 보건소에 있던 몇 가지 약품을 챙겨 왔지만.

그것만으로는 턱도 없었다.

심지어 방금 물린 사람들 중에선 이상한 증상을 보이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으, 으……. 머리……. 머리!”

보통 드라마에서 보면 혈압이 오르는 상황에서 뒷목을 잡고 쓰러지지 않는가.

의학적인 견지에서 보면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았다.

혈압이 200을 넘나들고 있었다.

‘통증만으로 이렇게까지 혈압이 뛰진 않아, 하지만…….’

혈압 강하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우식은 하는 수 없이 진통소염제를 근육에 주사했다.

“익.”

그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어찌나 힘을 주는지, 어깨 근육이 지나치게 부풀어 있었다.

“어어! 과장님!”

심지어 김 순경은 우식을 깨물려는 시도까지 했더랬다.

형사 하나가 제지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물렸을 터였다.

“어, 감사해요. 이런 망할.”

“대체 뭐죠?”

“감염이……. 감염이 너무 빠른데.”

“3차 감염자라는 겁니까?”

“네. 그렇게밖에는…….”

1차 감염자, 그러니까 유현과 같이 봤던 환자와는 양상이 너무 달랐다.

아무리 ARS-24가 변이가 빠른 바이러스라고는 하지만.

불과 몇 세대 거치지도 않은 채로 이렇게까지 변할 줄이야.

우식은 잠시 놀라움에 몸서리치다가 금세 자신이 처한 상황을 떠올렸다.

“다들! 물린 사람들한테서 물러서!”

그러곤 동료를 살피던 이들을 떼어 냈다.

가뜩이나 앞에서도 하나둘 쓰러져 나오는 상황이지 않은가.

뒤까지 무너져 내리면 제아무리 형사들과 유현이 분투하더라도 아무 소용 없을 터였다.

“왜, 윽. 야, 너 미쳤…….”

최대한 빨리 움직인다고 움직였으나 한 명이 더 물리고 말았다.

‘모두 열……. 그중에 물린 사람이 벌써 셋……. 2차 감염자들도 꽤 무력화됐지만…….’

유현 쪽을 바라보니, 아무래도 상대가 환자란 생각에 어떤 기준 이상으로 모질게 치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우식이 아는 유현이라면 솔직히 저만한 봉으로 마음먹고 후려치면 벌써 여럿 죽었어야 하는데.

지금도 유현에게 얻어맞은 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표정이야 고통에 얼룩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전의를 상실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X됐다……. 얘들아…… 아빠……. 아빠 어떡하냐.’

지금껏 환자를 수색만 해 왔지, 이렇게 공격당할 줄은 상상도 못 해 온 참이었다.

끼이이익

절망에 빠지려는 순간 차량 하나가 2차 감염자 몇을 느린 속도로 치며 멈춰 섰다.

느리다는 게 차 입장에서 느리다는 것이었기에, 치인 감염자들은 속절없이 몇 미터가량 튕겨 나갔다.

“잉.”

“뭐야, 진짜네. 이게 다 시발 뭔 일이야.”

멀리서 공격당하는 것을 보고 달려왔던 오예리는 개인 삼단봉을 꺼내 들고 뛰어내렸다.

남은 인원이 적었다면 차에 태워서 튈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한 손이라도 보태는 게 낫겠다 싶었다.

“어, 잘 왔어요!”

“아니, 지금은 도망…….”

유현이야 잘됐다 싶었지만 우식은 보다 냉정한 편이었다.

여기서 차 타고 몇 명이라도 도망가지 않으면 그냥 죽을 사람 하나 더 늘 것에 불과해 보였다.

“진압해!”

그때 군인들이 뛰어들었다.

선발대는 기껏해야 스무 명도 안 되어 보였는데, 그럼에도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마치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 훈련이라도 받은 듯한 움직임이었다.

“합.”

한 명이 진압봉으로 명치나 가슴을 찔러 움직임을 막으면, 다른 하나가 뛰어들어 허벅지를 내려치고, 또 다른 하나가 경동맥을 압박해 기절시켰다.

일련의 과정이 어찌나 물 흐르듯 이어지는지, 지금까지 두려움을 모르고 덤벼들던 2차 감염자들이 주춤거릴 지경이었다.

“다 잡아들여!”

이리저리 흩어지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이미 우식과 유현이 있던 곳은 군인들에게 완전히 봉쇄된 지 오래였다.

전원이 선발대 이상으로 숙련되어 있었기에 진압은 순식간이었다.

숫자가 비슷했다면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웠겠으나, 지금은 이쪽이 세 배도 넘는 상황 아닌가.

“더, 덕분에 살았습니다.”

우식은 군인들이 밴드 플라스틱을 이용해 쓰러진 감염자들은 물론이고 방금 다친 의경들까지 결박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김선태에게 고개를 숙였다.

김선태는 그런 우식을 희미한 미소를 띤 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휴…….”

진입하기 전처럼 침착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덕분에 우식은 맥이 탈 풀리는 기분까지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속절없이 죽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다 꿈 같았다.

‘할 일은 해야지.’

하지만 그렇게 넋 놓고 있는 것도 잠시였다.

우식은 곧 다리를 탁탁 치고는 허리를 폈다.

“환자들……. 수가 많아서 저희가 다 인솔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그거까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아……. 네, 물론이죠. 안전하지 않을 수 있으니……. 병원을 지정해 주시면 그쪽으로 이송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해 주신다고요? 그럼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아뇨,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증상이 또 나타날지 알 수가 없어요. 특히 우리 쪽 인원은 물린 상처가 만만치가 않습…….”

우식은 이 양반이 대체 왜 이러나 라는 생각으로 환자들에게 다가갔다.

김선태는 막강한 완력으로 그런 우식을 가로막았다.

“저희 쪽에도 군의관이 있습니다. 지정해 주시면 그리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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