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6화 (16/323)

16화 구출 (1)

“김 국장, 그렇게 안 봤는데……. 매서운 데가 있어?”

“네?”

이제 막 점심이나 먹을까 해서 세종 질병관리부 청사를 나서려던 ARS-24 감염 관리국 국장 김효상은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상대는 더더욱 호탕하게 웃어 댔다.

“제법 의뭉스러운 표정도 지을 줄 알고……. 언제까지고 의사일 줄만 알았는데 고위 공직자 다 됐네. 조만간 배지 달러 가도 되겠어.”

그저 친구 사이인 사람이 이런 말을 하고 있다면 좀 더 웃도록 두어도 좋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김 국장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본래 17개였던 국회 상임위에 최근 추가된, 그러나 힘은 여느 상임위 위에 있다고 해도 좋을 만한 질병관리위원회의 위원이었다.

국회 의원 박태식.

올해 있던 총선에서 또 한 번 당선되면서 3선 의원이 된, 명실공히 여당 중진 의원이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저는 정말 의원님이 무슨 소리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노회한 정치인들이 줄곧 그러하듯, 박태식 또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보통 사람은 아니란 점이었다.

3선부터 중진 의원 소리를 들을 만하다고 하지만, 다시 말하면 3선부터가 진짜 국회 의원이고 또 이제 시작하는 입장이라는 얘기이기도 하지 않은가.

하지만 박태식은 벌써 당내에 박태식파라고 분류될 만한 이들을 여럿 이끌고 있는, 명실공히 차기 당 대표감이었다.

“응? 정말 몰라?”

“네,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도리어 솔직하게 나가는 것이 더 나았다.

타고나길 의사로 타고나, 정치 감각이 없는 김효상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해서 재차 모르겠다는 말을 하자, 그제야 박태식 의원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 떠올랐다.

“흠……. 그럼 국장 동의 없이 작전이 들어갔다, 이건가?”

“네? 혹시 어떤 작전을 말씀하시는 건지 저도 알 수 있을까요?”

만약 숨기려고 했다면 이렇게 앞에서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 터였다.

이렇게 경험 많은 정치인들은 일거수일투족에 우연이라는 요소가 거의 없다는 것을 김효상은 경험을 통해 배웠다.

해서 아예 대놓고 물어보았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네.”

“네, 무슨 말씀 하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잠깐 내 차로 가지.”

“아, 네. 바로 가겠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김효상은 비록 아침도 시원찮게 먹어 배가 슬슬 고파 오는 참이었지만 순순히 박태식의 뒤를 따랐다.

박태식은 차에 오르고 나서도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침내 세종 청사를 완전히 빠져나오고 나서야 김효상을 바라보았다.

“최우식 과장. 자네 밑에서 일하는 친구지?”

“아, 네. 그렇습니다.”

“지금 비공개 환자 수색 작전 맡고 있고.”

“어…….”

“그럴 필요 없어. 다 알아.”

“아, 네.”

김효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태식이 질병관리위원회의 위원으로 정보 접근 권한이 있는 건 맞았다.

아마 공개수사를 비공개 수사로 전환하라는 명령 또한 박태식 선에서 내렸을 가능성이 있었다.

여당에 불리해질 테니까.

“너무 자세한 얘기는 해 줄 수 없지만……. 지금 최우식 과장이 기천리에 가 있지?”

“어……. 네.”

하지만 이미 비공개로 전환되었다면 그다음은 신경 쓸 일이 없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작전을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세부 진행 상황까지 다 알고 있었다.

‘뭐지?’

별일이 아니었다면 굳이 박태식이 자신을 차에 태워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김효상이 알기로 박태식은 쓸데없는 짓을 그리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거기 707부대가 갔어.”

“707이라면……. 특임대……. 아닌가요?”

“알고 있네. 영화를 봤나?”

“그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그 부대가 거길…….”

“이봐, 김효상 국장.”

더듬거리는 김효상의 턱을 박태식이 틀어잡았다.

“네, 네?”

“내가 처음 질병관리위원회 상임 위원 됐을 때……. 그때 자네 아직 민간인 신분이었지?”

“아……. 네.”

왜 이런 얘기를 하나 싶었지만.

그런 말을 도저히 꺼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

김효상은 완전히 박태식에게 압도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자네를 여기로 끌어들인 게 나야. 국장으로 끌어 준 것도 나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도 그래. 자네가 잘해 준 덕에 우리 위원회가 계속 성과가 좋거든. 입법 성과도 좋고 말야.”

“네. 근데…….”

“일단은 내 말을 듣게.”

“아, 네.”

박태식은 쯥 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을 톡톡 두드리고는 말을 이었다.

이미 차는 세종과 오송을 잇는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이 시간에는 인적이 드물어 달리는 차량도 거의 없었다.

“바이러스 아르스 말이야……. 의사인 자네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국회에서는 정치적인 이슈야. 이걸 어떻게 가공하고 또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지지율이 갈린단 말이지.”

김효상은 전혀 그러한 관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감히 그러한 얘기를 꺼낼 수도 없어 잠자코 있었다.

“지금까지는 내가 아주 잘 써먹었어. 박태식 하면 ARS-24 방역의 주역이란 이미지를 심어 줬단 말이야. 우리가 감염 관리 전반을 독점하고 있으니 당연한 건데, 성과가 좋았지.”

이건 맞는 얘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김효상 이하 감염 관리국의 활동을 지원한 공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그게 그거였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말고 다른 놈들도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최우식 과장이 수색하는 건을 알고 있더라고.”

“그게…… 그렇게 큰일입니까?”

“보통 일이면 그렇지. 별로 큰일이 아니지. 그런데 이상해. 방해를 하고 있단 말이지.”

“방해요?”

“그래, 최우식 과장 보고서에 있잖아. 그때 나는 공개수사에 찬성했어, 아니지. 우리 위원회는 찬성했다고. 장관 의견도 같았으니……. 사실상 공개수사가 되는 게 맞았지. 근데 VIP가 튼 거야.”

이 얘기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국장이라는 게 감염 관리국에서나 높지, 밖에서는 하잘것없는 존재였으니까.

“그땐 그냥 정무적인 판단인 줄로만 알았지. 아직 VIP…… 임기도 오래 남았고 들이받아서 좋을 게 없잖아?”

“네.”

“그래도 꺼림칙하긴 했어. 매사에 조심하는 사람이……. 만에 하나 바이러스가 번질 수도 있는데 이걸 공개 전환을 안 해? 그것도 대통령 직권으로? 내가 모르는 뭐가 있나 해서 최우식 과장 뒤를 캐 봤지.”

“아…….”

“방해가 있더라고. 한두 번이면 우연이다 싶은데, 누군가 의도적으로 환자를 숨겨 주는 듯한 느낌이야. 그런데 오늘 내 아는 놈한테 연락이 왔어. 특임대가 움직인다고. 이거 VIP 공개 행사 아니면 안 움직이거든. 근데 오늘은 쉬는 날이잖아?”

“네.”

김효상은 어느새 땀에 젖은 손으로 무릎을 잡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박태식의 손으로도 식은땀이 촉촉히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냐고 했더니, 망설이다가 알려 주더라고.”

“그게 기천리…… 였군요.”

“최우식 과장이 있는 곳이지. 알아보니까 자네가 요청했던 31사단은 움직이지도 않았어. 707이 대신 간 거야.”

“어…….”

“난 그거 자네가 묵인한 거라고 생각했지. 이제 이놈이 컸다고 내 뒤통수를 치는구나. 엄밀히 말하면 나랑 VIP랑 당이 같을 뿐, 가는 길은 다르잖아? 기왕이면 살아 있는 권력이 좋지.”

“아, 아뇨. 아닙니다. 저는…….”

김효상은 잡힌 턱을 필사적으로 뒤흔들었다.

박태식은 자연스럽게 잡았던 턱을 놓으며 웃었다.

“근데, 얘기해 보니까 아니네. 좋아. 김효상 국장. 자네는 나랑 계속 가는 거야.”

“네, 물론입니다.”

“최우식이도 같이 가야지. 자네가 버린 게 아니라면.”

“아, 네네.”

“빨리 전화해 봐. 이미 무슨 일 났을지도 몰라.”

“아, 아!”

김효상은 휴대폰을 집어 들어 우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들리는 것은 신호음이 아니라, 현재는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알림뿐이었다.

“휴대폰, 최우식 과장만 들고 있는 거 아니잖아.”

김효상의 낭패한 얼굴을 바라보던 박태식이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제야 김효상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뒤졌다.

다행히 꽤 자주 통화하던 사이라 그런지 그리 어렵지 않게 번호를 찾을 수 있었다.

-어, 김 국장님.

경찰청 경비국 질병관리과 이사빈 과장이었다.

“응, 급해서 그런데. 지금 최우식 과장 지원 나간 형사들 연락처 좀 받을 수 있나?”

-네? 아……. 네, 뭐. 드릴 수 있습니다. 근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김효상은 바로 말하는 대신 박태식을 바라보았고, 박태식은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로 알아먹은 김효상은 적당히 둘러댔다.

“그런 건 아니고, 연락이 안 돼서. 이놈이 지금 일 제대로 안 되니까 잠적한 건지 뭔지……. 원래 가끔 이럴 때가 있어. 주변인한테 물어봐야 푸시가 되는 그런 타입이야.”

-아……. 그런 친구 있죠. 알겠습니다.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번호를 받은 김효상은 하나하나 빠르게 전화를 걸었다.

박태식도 도왔는데 전원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만 들릴 뿐이었다.

이미 다 틀렸나 하고 있을 때쯤, 박태식이 마지막으로 건 번호로 신호가 갔다.

“이건…….”

“몰라, 기다려 봐.”

제발제발 하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부여잡고 있으려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오예리입니다.

뭔 일이 있었는지 잔뜩 쉬어 있었다.

“어, 나 질병관리부 김효상 국장입니다.”

-김효상……? 아, 과장님 윗분.

“그래요. 지금 최우식 과장 어딨습니까?”

-최우식 과장님은……. 환자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마을로 수색 들어갔습니다.

“군인들이랑 같이 갔습니까?”

-아, 네.

“음.”

김효상은 한숨을 내쉰 후 급히 말을 이었다.

“위험할 수 있어요, 최우식 과장. 지금 당장 데리러 가 줄 수 있습니까?”

-어…….

그에 반해 오예리 형사는 느긋하기 짝이 없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그랬다.

“지금 당장 갈 수 있냐고!”

하지만 김효상이 고함치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조금 달라졌다.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의 걱정은 진짜다 싶어서였다.

직업상 불안하고 초조한 보호자들을 접하기 쉽다 보니 판별이 되었다.

-아……. 네. 원래 차로는 못 간다고 하는데……. SUV라 무리하면 들어갈 수 있을 거 같기도 합니다. 안 되면 중간에 내려서라도 찾아야죠.

“그, 그래요. 그럼 좀 부탁합시다.”

-알겠습니다. 근데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

김효상은 이번에도 박태식을 바라보았다.

박태식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전화를 바꿔 들었다.

“나 국회 의원 박태식입니다. 군인들 말고 최우식 과장하고, 될 수 있으면 형사들 찾아서 나와요. 지금 거기 군인들 말고 모두 몇이나 갔습니까?”

-아……. 거의 한 40명은 갔을 겁니다.

“많이도 갔네……. 하여간 모두 멀쩡히 나올 수 있게 하되 여의치 않으면 최우식 과장하고 형사들만이라도 데리고 나와요.”

-어……. 알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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