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수락 마을 (2)
유현과 우식이 고양이 사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동안, 다른 인원들 또한 입을 쉬지 않았다.
그저 침묵을 지키고 서 있기에는 너무 참혹한 광경이지 않은가.
그 누구도 이들을 두고 촐싹댄다는 말은 하지 못할 터였다.
“이빨 자국 같은 게 있던데…….”
형사 하나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혼잣말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소리가 컸기에 주변에 있던 이들 모두 그를 돌아보았다.
그중에서 서울에서 같이 내려온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 동참했다.
“그렇지? 그거 착각한 게 아니지?”
“응, 아냐. 근데 그 이빨이…….”
“분명 사람이야. 짐승하고는 달랐어.”
질병관리부 김효상 국장이 비록 위에서 내려온 지시라면서 수배에는 선을 그었지만.
나름 비공개 수사에는 힘을 쓴 참이었다.
그 말은 곧 아무나 팀에 들어온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다들 베테랑 소리쯤은 들어도 남을 정도의 경력을 지니고 있었다.
“네? 사람 이빨 자국이라고요?”
“쉿. 김 순경이라고 했나?”
“아, 네네. 죄송합니다. 근데…… 사람 이빨…….”
“확실한 건 아니니까 너무 그렇게 얘기하지 마. 그렇지 않아도 애들 쫄았는데.”
형사는 호들갑 떨어 대는 김 순경의 입을 틀어막았다.
반강제적으로 끌려온 의경들을 가리키면서였다.
물론 이런저런 훈련은 받았겠지만, 설마하니 고양이를 물어뜯어 죽이고 심지어 그 고기를 먹는 괴물 같은 인간에게 대응하는 법까지 배우진 않았을 거 아닌가.
이미 스산해 보이는 마을 분위기에 겁을 집어먹은 마당에 굳이 그런 얘기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김선태 중령님, 들리십니까?”
-듣고 있습니다.
물론 우식은 알아낸 사항 전부를 다른 조들과 공유했다.
지휘권자로서 응당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까 신원 미상의 2차 감염자 발견했다고 했죠?”
-네.
“지금 그 사람이 있던 집 마당 수색하다가, 고양이 사체를 발견했습니다.”
-사체요?
“네. 이빨 자국이 있어요. 사람 이빨 자국입니다. 아무래도 잡아 뜯은 거 같은데…….”
-고양이를 먹었다, 이 말이죠?
“네.”
끔찍한 얘기를 듣고 있음에도, 김선태는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
다만 예의 그 침착한 태도로 정말 그것이 확실한지에 대해 확인해 올 뿐이었다.
‘2차 감염자의 행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유현은 이미 의심의 수렁에 빠진 참 아닌가.
상대가 계속 그렇게 행동하고 있으니, 점점 더 이상하단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공격성이 장난이 아닐 수도 있어요. 물어뜯으려고 덤빌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숙지하겠습니다.
“중령님.”
-네.
“진짜 이해하고 있는 거 맞죠? 물리면 감염이에요. 그게 아니더라도……. 사람 입에는 각종 균이 있어서 다른 거에라도 감염이 될 수 있단 말입니다. 병사들 조심시켜야 해요.”
-명심하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그사이에도 대화는 이어졌다.
주로 우식이 경고하면 김선태가 태평한 목소리로 그러마 하는 식이었다.
그마저도 그리 길게 이어지진 못했다.
-음, 앞에 뭐가 있군요. 가 봐야겠습니다.
“네? 아, 네. 조심하십시오. 살상은 안 되지만……. 다칠 거 같으면 우리 쪽 안전이 우선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김선태 중령이 무전을 끊어 버려서였다.
유현은 이쯤에서 이상하단 말을 해야 하지 않나 싶었지만, 우식의 얼굴이 그런 말을 감당할 만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제기랄. 저쪽에도 비슷한 2차 감염자가 출몰한 거 같은데요?”
“그렇겠지. 이미 그 환자에게 감염된 사람들은……. 다는 몰라도 일부는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해.”
“큰일이네……. 이거……. 이거 진짜…….”
“침착해. 이미 상부에 보고 들어갔잖아. 기천리 주변으로는 경찰 쫙 깔렸을 거야. 아까 뉴스 보니까 무슨 지명 수배범 든 거처럼 나오던데, 그거 우리 쪽 이야기 아냐?”
“맞아요. 근데 아직 이쪽 상황이 어떤지는 모르죠.”
“전화가 안 터지는구나.”
유현은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이런 곳이 있나 하는 얼굴로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깊은 산 속 골짜기라고 하더니만 진짜로 통화권 이탈이 뜰 줄이야.
한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무서운 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여기 죽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둘 중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유현이었다.
“아무튼, 수색은 계속해야지. 여긴 고양이 사체랑…… 텅 빈 냉장고 말고는 뭐가 없어.”
“아, 네. 알겠습니다.”
“내가 옆 지켜 줄 테니까 너무 쫄지 말고.”
“네, 감사해요. 형.”
“넌 이럴 때는 또 형이라고 하더라.”
“진심이 튀어나오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우식은 유현 덕에 평정심을 되찾은 채 다시 집 밖으로 나섰다.
자기들끼리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주고받던 형사 둘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아까 고양이……. 그거 방금 봤던 그놈이 그런 거겠죠?”
아무래도 같이 다니면서 우식에게 들었던 게 많아서 그런가 이해도가 있었다.
우식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다들 조심합시다. 의경 애들 특히 다치지 않도록 주의시키고요. 이건 물리면 일단 감염 의심이라 답도 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 말에 형사는 우선 의경들에게 다가가 전열을 가다듬었다.
우식은 일행이 다시 완전히 집 밖으로 빠져나온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앞장서서 골목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보니 골몰은 그야말로 옛날 조선 시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좁고 거칠었다.
이따금 나 있는 바퀴 자국의 정체를 궁금해했더니, 어쩐지 처음보다도 더 쫄아 버린 김 순경이 겨우겨우 답해 주었다.
“우마차가 있어요. 여기 의외로 소랑 돼지, 닭 같은 게…… 어.”
“왜요.”
“이상하네, 보통 소리가……. 소리가 나는데…….”
“음.”
우식은 아까 유현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그러곤 유현을 돌아보았다.
유현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고양이처럼 다 죽었거나……. 도망갔을 거야. 아무래도 후자가 더 그럴싸하지.’
동시에 입 모양으로 대꾸를 해 왔는데, 딱히 거절할 만한 근거를 대기 어려웠다.
우식이 생각해도 그럴 거 같았다.
제아무리 사람이 거대해진다 해도 소를 어찌하긴 어렵지 않겠는가.
도구를 쓰면 되지 않나 할 수도 있겠으나, 고양이는 분명 생으로 먹힌 참이었다.
그 말은 곧 2차 감염자들의 의식 수준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 저기 또 움직임이 있어.”
딴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우식의 어깨를, 유현이 내리눌렀다.
뜻이 명확했기에 우식은 곧장 몸을 낮췄다.
그 모습을 확인한 1조 인원 모두가 몸을 수그렸다.
“뭐예요?”
“한 명이 아냐.”
“한 명이……. 아니라고요?”
“거리는 꽤 먼데…….”
“어디 봐 봐요.”
“조심해. 눈에 띄면 공격당할 수도 있어.”
우식은 낮은 담장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유현이 가리켰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과연 몇몇 감염자들이 떠돌고 있었다.
거대한 체구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서였다.
그들이 그저 평범한 노인이었을 거란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적게나마 남아 있는 머리가 하얗게 셌음에도 그랬다.
“어…….”
그때 바닥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유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식은 유현의 감이 예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즉각 반응했다.
“왜, 왜요.”
“바닥이 울려. 이건 뛰는……. 뛰는 거 같은…….”
둘뿐만 아니라 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이쪽이 더 능동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축을 울리는 진동을 확인하자마자 앞을 돌아보았던 것.
“어……. 저것들……. 저것들 몰려온다!”
“어쩌죠? 최우식 과장님?”
지원 나와 있던 형사 다섯 중 오예리를 제외한 넷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어느새 5단 봉 등이 손에 들려 있었다.
전원 유단자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평소라면 아마 든든하기 짝이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열 명이 넘는 거한들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식아, 일단 방어해야 해.”
“어…….”
패닉에 빠져도 이상할 거 없다, 이 말이었다.
유현은 초점이 흐려져 버린 우식을 뒤로하고 목청껏 외쳐 대기 시작했다.
“의경들!”
“네!”
“아까 나눠 준 봉 들어! 앞으로 나서지 말고, 열 맞춰서 대형 지켜! 어차피 골목 좁아서 앞에 몇 명만 깨면 돼!”
“아, 네!”
“형사님들! 형사님들도 일단 뒤로 오시죠! 대열에 껴야 합니다! 둘러싸이면 답 없어요!”
유현은 멀리서 두두두 소리와 함께 달려오고 있는 거한들을 바라보았다.
입을 벌린 채, 침을 질질 흘리고 있어 얼핏 보면 정신이 나갔나 싶지만.
두 눈은 똑바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날 물어뜯으려 했던 그 환자……. 그 환자랑 같아.’
그렇다면 정말 둘러싸이는 순간 끝장일 터였다.
제아무리 유단자고 뭐고 해 봐야 똑같을 게 뻔했다.
해서 유현은 형사들과 우식이 이끌고 있는 대열에 낑겨 들어갔다.
“크아아아아!”
얼마 지나지 않아 거한들이 대열 가까이까지 달려왔다.
워낙에 몸집이 커진 탓에 신발까지 벗어 던진, 그러니까 맨발의 거한들은 아직 나이 어린 의경들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감염된 지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닐 거야.’
하지만 유현에게는 아니었다.
옷이 워낙에 작아서 그렇지, 가까이서 보니 절대적인 체격은 그리 대단치 않았다.
물론 평균치가 180정도 되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유현보다는 작았다.
팍해서 유현은 맨 앞에서 달려오던 2차 감염자의 명치께를 몽둥이 끝으로 푹 하고 찔렀다.
‘느낌이 이상한데?’
보통 사람이라면 고통에 쓰러져야 하는 부위였다.
유명 격투기 선수라 해도 이 부위는 잘못 맞으면 한 방이니까.
하지만 상대는 뒤로 조금 밀려났을 뿐, 별다른 통증을 호소하고 있지 않았다.
‘지방이 두꺼워…….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때문인가.’
교감 신경이 과도하게 항진되어도 통증은 경감될 터였다.
하지만 이 푹신한 느낌은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 이 시발!”
“꺼져, 꺼지라고!”
“침착해, 침착!”
유현이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다른 쪽으로 몇몇 2차 감염자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형사들이 꽤 잘하고 있었다.
유현처럼 한 방에 쭉 밀어내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버티고 있었다.
“봤지? 이렇게 하면 돼! 대형만 안 무너지면 돼!”
유현의 외침에 사기가 오른 형사들까지 봉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감염자들의 접근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형, 이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겨우 정신을 차린 우식이 유현을 향해 방금 자신이 관찰한 바를 얘기해 주었다.
“무슨 소리야?”
“저것들 계속 우리 쪽을 이쪽저쪽 보잖아요. 수를 세는 거 같아요. 그 말은…….”
“아, 도망간다.”
“네. 이성적 판단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수적 열세임을 확인하자마자 뒤돌아 도망가는 감염자들을 보며 유현이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이가 하나 더 있었다.
망원경으로 이쪽을 살피고 있던 김선태 중령이었다.
“의사라더니……. 형사들도 그런데, 저 인간이 너무 잘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더 많이 몰아. 상부 지시야. 3차 감염 가능성 여부를 확인한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