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수락 마을 (1)
수락 마을은 물이 좋습니다.
지하수가 깨끗할뿐더러 양도 많아 모든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가축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작물들도 아주 잘 자랍니다.
오세요, 수락 마을에!
유현은 마을 어귀에 적혀 있는 문구 뒤로 아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어, 어디요.”
우식을 비롯해서 그와 가까이 있던 인원 모두가 본능적으로 몸을 숙이며 물었다.
제법 젊은 편에 속하는 김 순경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공보의에 서울에서 내려온 형사들까지 몇 있었음에도 누구도 무언가를 보지 못했다.
“안 보여? 저기. 지금도 움직이는데. 되게 빨라.”
“고양이…… 같은 거 아니에요?”
“사람만 한 고양이라면 지금 당장 도망가도 늦지 않을까?”
하지만 유현은 움직이는 물체를 똑똑히 보고 있었다.
정확히 뭐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절대 바람에 휘날리는 무언가는 아니었다.
지금 이 일대에 강풍이 부는 것도 아니거니와 강풍이 분다고 해 봐야 저렇게 커다란 것이 저렇게 빨리 움직이지는 못할 것 같았다.
“이런 시발. 그렇게 커요? 그런데 왜……. 아.”
“봤어?”
“네……. 저거…… 저거……?”
“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유현과 우식 그리고 나머지 1조 인원 모두 상대가 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키가 거의 190은 되어 보이는, 머리가 모두 벗어진 사내였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옷이 굉장히 작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 옷을 억지로 걸친 것 같았다.
“저거 피……. 피야?”
또 입가부터 해서 가슴팍까지 붉게 피 칠갑을 하고 있었다.
“형 턱이…….”
“어, 나도 보고 있어.”
거기까지가 일반인들이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었다고 한다면, 의사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특징도 있었다.
사내는 말단 비대증 환자가 보이는 특징, 그러니까 비대한 턱과 커다란 손 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정도가 워낙 심해서 자연적인 병이 아니라 누군가 성장 호르몬 등을 강제로 주입시킨 듯한 양상이었다.
그러니까, 병원에서 탈출한 환자와 정확히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 말이었다.
“그 환자는 아니죠?”
“아냐. 얼굴이 변형되긴 하겠지만……. 절대 아냐.”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 환자는 아니에요.”
“그렇다면 감염이야. 감염체가 같은 특성을 보이고 있어.”
변종 바이러스가 직접적인 타액 접촉을 통해 다른 누군가를 감염시켰고, 2차 감염자가 도망간 환자와 똑같은 특성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건 단지 이상 행태를 보이던 환자의 도주 정도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변종 바이러스도 맞고, 그 바이러스가 성공적으로 2차 감염을 일으켰다는 거 아닌가.
또 다른 팬데믹 사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다.
“2, 3, 4, 5조 듣고 있습니까? 1조 최우식입니다.”
당연하게도 최우식은 즉시 무전기를 켜고 다른 조를 호출했다.
단지 공격할 가능성만 있는 게 아니라, 감염까지 될 가능성도 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한 참이었다.
물론 다들 바이러스 감염자를 대할 때의 주의점이야 숙지하고 있겠지만.
지휘를 맡은 사람으로서 한 번은 더 주지시킬 필요가 있었다.
특히 군인들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네, 듣고 있습니다. 김선태입니다.
“아, 중령님. 지금 마을 좌측 외곽에서 감염자를 발견했습니다.”
-도망친 환자인가요?
으레 할 수 있는 질문 같기도 했다.
하지만 유현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지금 시점에서 감염자라고 하면 당연히 그 환자를 생각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김선태 중령은 꼭 다른 감염자가 있는 것처럼 묻고 있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쩐지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뇨. 2차 감염자입니다.”
-2차 감염이요? 지금 거기 있나요?
유현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에도 대화는 이어졌다.
우식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둘이 세운 소설 같은 가설이 진짜였다는 것이 판명 나고 있지 않은가.
그리 좋은 가설은 아니었기 때문에, 우식은 손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아뇨……. 한 50미터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군요. 문제는 없습니까?
반면 유현은 신경이 굵은 사람이었다.
아니, 대범한 사람이라고 하는 게 맞을 터였다.
애초에 그러지 않았다면 팬데믹 사태를 겪고도 일선에서 계속 감염내과 의사로 일할 수 있었을까.
해서 대화에서 이상한 점을 아주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상한데…….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질 않고, 문제가 있냐고 물어봐?’
지금까지 ARS-24 변종이 아주 많이 나오긴 했지만, 그중에서 단 한 번도 외형의 변화를 일으켰던 적은 없었다.
그 말은 곧 눈으로 감염자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상하네.’
그런데 김선태 중령은 꼭 분간할 수 있는 지금 현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 굴고 있었다.
군인이라 바이러스 감염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김선태 중령이 그렇게 무지할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아직은 아무 움직임이 없습니다. 천천히 다가가 보려고 합니다만……. 피 칠갑을 하고 있어서 조심하고 있습니다.”
-피 칠갑이라. 그렇군요. 공격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니……. 역시 그런가 봅니다.
“네, 주의하셔야 합니다. 공격당하면 감염까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치료는 가능합니까?
“그것도 알 수 없습니다. ARS-24에서 변이된 변종 중엔 아직도 치료법이 없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암울한 현실이었다.
세상에 21세기에 치료법이 없는 병이 전 세계에 퍼져 나갈 줄이야.
그나마 대개 변종으로 갈수록 치명률이 낮아진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이론적으로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긴 했다.
너무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숙주에게도 좋지 않지만, 또 바이러스에게도 좋지 않았다.
숙주가 너무 빨리 죽어 버리면 바이러스도 그만큼 번식할 기회를 잃게 되니까.
인류를 가장 오랫동안 괴롭혀 온 감염병일수록 그 경과가 지지부진하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쉬울 터였다.
그게 아니라면 에볼라 또한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었다.
초기 에볼라는 사망률이 99%였는데 지금은 70%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던가.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이 얘긴가요?
“네, 그렇습니다. 최대한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주의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네, 질문 있으시면 하시죠.”
-2차 감염자들 제압이 필요합니까?
“아.”
우식은 당장 대답하는 대신, 눈앞에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머리카락 한 올 남지 않은 채 벌게진 눈으로 이쪽저쪽을 살피던 사내는 이제 우식이 서 있는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그냥 이대로 달려든다면 좀비 영화가 따로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가는데.”
하지만 사내는 이쪽으로 달려드는 대신 뒤돌아 반대편으로 뛰었다.
“음, 일단 이쪽은 도주했습니다. 잡는 과정에서는 제압이 필요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반항하지 않을 수도 있겠어요.”
-알겠습니다. 명심하죠.
“네, 중령님.”
그것을 본 우식은 중령에게 조금은 유보적으로 대답해 주었다.
그런다고 중령이 강압적으로 나가지 않을까 싶기는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말이라도 해 놓은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협조적이야?”
“아, 네.”
유현은 우식이 전화를 끊자마자 말을 걸었다.
시선은 여전히 거구의 사내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면서였다.
때문에 우식도 유현이 아니라 그의 시선을 따라 앞쪽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한동안 방치된 밭과 비어 버린 집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골목 안쪽으로 가야 뭐가 나와도 나올 것 같았다.
“방역복 이거 방호도 되냐?”
“아뇨, 그런 기능은 전혀 없죠.”
“아까 그 피 칠갑하고 있던 게 마음에 걸리는데…….”
“자기 피는 아니겠죠? 그렇다고 하기엔 움직임이 너무 좋았어요.”
“응, 아닐 거야. 왜냐면…… 입 안에도 피가 있었는데, 딱히 침을 뱉지 않더라고.”
“아…….”
피 칠갑을 할 만큼 피가 났는데, 진원지가 입 안이라면 그걸 뱉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길 수가 없을 터였다.
둘의 추리력이 특별히 뛰어난 게 아니라 그냥 사람 몸이 그렇게 생겨 먹었다.
특히 피는 과량으로 섭취하게 되면 그것이 암만 자기 피라 해도 안에 들어 있는 철분 때문에 구역, 구토를 유발하는 법이었다.
그 말은 즉 입 안에 있는 피가 남의 피거나 또는 자기 피더라도 피 칠갑을 할 만큼 많이 난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였고, 적어도 상체에 묻어 있던 피는 남의 피란 뜻이 되었다.
“다들 주의합시다. 봉이라도 휘두르시고요.”
“네, 근데…… 그럼 2, 3, 4, 5조가 진입하고 들어가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요?”
우식의 말에 형사 중 하나가 이렇게 대꾸했다.
다시 말하면 군인들이 좀 몸으로 방어하고, 우리는 나중에 안전해지면 들어가자 뭐 이런 뜻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너나 뒤로 빠지든지.”
그 말에 타박이 이어졌다.
대다수의 형사들은 고작해야 징집병일 뿐인 병사들보다 자신들이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빴다.
아까 본 병사들이 정말로 병사들은 맞나 싶을 정도로 삼엄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들었죠? 무리는 안 할 겁니다. 그래도 뒤로 너무 빠질 수는 없어요, 조심스럽게 들어갑니다.”
“네…….”
“길 안내만 좀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우식은 다행히 형사들의 사기가 높다는 것에 안도하며 앞으로 걸었다.
사내와 대치하고 있을 때만 해도 거리감이 꽤 느껴졌으나 막상 걸으니 또 금방이었다.
덕분에 유현과 우식은 아까 사내가 서 있던 곳을 유심히 바라볼 수 있었다.
‘문이 작아. 오래전에 지은 집이야……. 그 사람 키가 확실히 감염되고 나서 큰 모양인데.’
아마 그 키로 오래 살 거였으면 천장은 어떻게 못 하더라도 문만큼은 크게 만들었을 터였다.
“여기, 뭐가 있습니다. 이거……. 이거 고양이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집 안을 살피고 있는데, 뒷마당 쪽에서 형사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가가 보니, 피에 젖은 동물 가죽이 놓여 있었다.
힘으로 잡아 찢은 듯 모양이 온전치 못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산전수전 다 겪은 바 있는 형사는 두려움이라기보다는 호기심에 젖은 눈으로 물어 왔다.
반면 무슨 일이 있었을지 예상할 수 있는 우식과 유현은 대번에 답해 주지 못했다.
그저 서로 눈을 마주쳤을 뿐이었다.
‘잡아먹은 거 같지?’
‘네, 산 채로요.’
‘공격성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데?’
‘전두엽 억제가 같이 일어났다면 가능해요. 아까 그 사람…….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보이지 않았어요?’
‘그건……. 그건 그래. 이런 망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