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행방 (3)
김선태 중령은 거친 인상과는 달리 굉장히 협조적이었다.
아니, 협조적이라는 말도 좀 모자라 보일 지경이었다.
“굳이 민간인까지 동원할 필요 있겠습니까? 저희 중대면 충분할 거 같은데요.”
아예 보건소 인원은 공보의만 데려가고, 나머지는 제외하자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데려온 인원이 좀 적었다면 별 고민이 안 되었을 테지만.
정말 중대 전체를 데려온 마당이었다.
160명가량 되는 인원이 보건소 앞 주차장에 모여 있다 보니 우글거린단 느낌마저 주었다.
우식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하긴 보건소 인원들이라고 해 봐야…… 몇 명 되지도 않긴 하죠.”
“네. 저희 쪽 애들하고 서울에서 오신 형사분들. 그리고 길잡이로…… 파출소 인원까지만 해도 충분할 겁니다. 게다가 우리는 통제도 아주 잘되는 편입니다.”
“네, 뭐……. 그렇게 보입니다.”
우식은 다시 보건소 앞 주차장을 바라보았다.
160명의 인원이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었는데, 흐트러진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
‘원래 이런가?’
군의관 시절을 떠올려 봐도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우식이 본 군인들이라고 해 봐야 의무병이 다였기에 그랬다.
심지어 우식은 한국대학교 출신에 군 펠로우까지 하고 군대를 갔기 때문에 복무를 수도 병원에서 한 사람이었다.
군대라기보다는 병원에 더 가까운 부대였기에 이런 모습은 아예 처음이었다.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반면 유현은 전방에서 1년인가 구르고 수도 병원으로 간 케이스였다.
제아무리 한국대학교 출신이라고 해도 군대는 운빨이지 않은가.
때문에 유현은 그래도 일반적인 군대의 모습을 자신보다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런 유현도 무척이나 생경하다는 얼굴로 중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잠시 넋을 놓고 있으려니, 김선태 중령이 다시 한번 말을 걸어왔다.
말투야 여전히 공손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쩐지 고압적인 느낌이 들었다.
“보건소 인원 배제하고, 우리 인원들로 채워서 가는 거…….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었습니다. 최우식 과장님.”
물론 잠시뿐이었다.
뭐지 하는 사이, 김선태 중령은 처음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네, 별문제 없을 거 같습니다. 아니지. 그게 더 나을 거 같군요. 들으셨겠지만, 지금 저희가 찾으려는 환자가 공격성을 띠고 있어서요.”
“네,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장도 하고 온 참입니다.”
“무장이요? 총기 사용은…….”
“총이라뇨. 민가에서 그랬다간 난리 나죠. 진압용 봉입니다. 사법법을 간단히 교육하고 왔으니, 별문제 없을 겁니다.”
“아…….”
진압용 봉이라.
없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그 환자……. 호르몬 농도가 지속되고 있다면, 살아 있다면 엄청 커졌을 거야.
어제 유현이 했던 말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랬다.
생각해 보면 지금 환자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에 남성 호르몬에 성장 호르몬까지 한계치를 넘어 맞고 있는 셈 아닌가.
죽었어야 정상이겠지만.
만약 살아 있다면, 과연 지금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쉬이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 진입합니까?”
“아, 네. 지체할 거 없죠. 경찰 측 준비되면 바로 진입할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저도 준비시키겠습니다.”
“네, 중령님.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과장님.”
우식은 경례 대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곤 중대원에게 돌아가는 김선태 중령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둘이 대화 나누는 동안 빠져 있던 유현이 끼어들었다.
“군인 맞아? 보통 중령들은 안 저러던데.”
“왜요?”
“너무 정중하잖아. 내가 본 중령들은…… 안 저렇거든.”
“제가 공무원이라서 그렇지 않을까요?”
“그런가.”
유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뒤편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지원 온 부대의 지휘관이 세련된 것이 별로 문제 될 것은 없지 않은가.
중요한 건 앞으로의 일이었다.
“과장님.”
우식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마을로 통하는 길목에 다다르자, 밤새워 지키고 있던 오예리 형사가 다가왔다.
정말 밤을 꼬박 새웠는지 눈 밑이 거뭇해져 있었다.
워낙에 하얀 얼굴이라 티가 더 났다.
“아이고, 형사님 괜찮으세요?”
유현이야 별로 친분이 없는 사이지만, 우식은 그간 계속 같이 다니면서 많이 친해진 모양이었다.
인사치레가 아니라 목소리에 진짜 걱정이 담겨 있었다.
“네, 이 정도야 뭐……. 다행히 밤새 뭐 이상한 일은 없었습니다. 개미 새끼 하나 지나가지 않더라고요.”
“그렇군요. 형사님은 그럼 잠깐 쉬세요.”
“네? 에이, 하루 샌 거 가지고요.”
“아뇨, 아뇨. 어차피 여기 일차 수색했는데 이상 징후 있으면 주변 탐문 계속해야 할 거예요. 너무 무리하시다 아프기라도 하면 오히려 골 아파요.”
“아…….”
유현이 협박을 섞은 설득에 능하다면 우식은 논리적인 설득에 능한 사람이었다.
유현은 우식과 둘이 의국 후배를 다룰 때 배드캅, 굳캅으로 역할 분담을 했던 기억이 나 고개를 돌리고 미소 지었다.
“그리고 저기 보이세요?”
“아, 군에서 지원이 왔군요. 특수 부대가 왔나?”
“아뇨, 그냥 후방 부대라던데…….”
“그래요? 군기가 너무 세 보이는데. 무슨 위장 크림을 저렇게 발랐대요? 체격들은 또 왜 저렇게 좋고?”
“잘된 일이죠, 뭐. 저렇게 많이 왔으니 형사님 좀 쉬셔도 됩니다.”
“음, 그럴까요?”
그사이 우식은 오예리 형사 설득에 성공했다.
그렇지 않아도 피곤했던 오 형사는 곧 차 안에 들어가 의자를 젖힌 후 드러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진짜 억지로라도 가려 했던 것이 분명했다.
“성실한 사람이네.”
“아, 네. 선배. 되게 열심이에요. 사명감이 있어요.”
“좋은 일이지. 아무튼, 이제 슬슬 다 왔네. 인솔해야지?”
“네. 확실히 깜깜할 때보다는 훨씬 낫네요.”
어젯밤에 손전등 켜고 모였을 땐 비장감이 느껴졌는데.
환한 대낮에, 그것도 건장한 군인들에게 둘러싸인 지금은 피크닉이라도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환자가 얼마나 커졌을까에 대한 걱정도 더는 들지 않았다.
기껏해야 한 명일 거 아닌가.
감염이 이루어졌고, 2차 감염자가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해도 별로 일이 틀어질 거 같진 않았다.
‘가구 구성원의 평균 나이대가 60이 넘는다고 했지.’
그 나이에 그만 한 호르몬이 쏟아지면 그대로 사망이었다.
우식은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불안감을 소거시킨 후, 확성기를 집어 들었다.
“자, 이제 곧 진입할 겁니다. 지도 나눠 드렸죠? 5조로 나누어서 진입하는데……. 1조는 저랑 형사님들이 맡을 겁니다. 외곽으로 돌 거라 위험하진 않을 거예요. 거의 지휘를 맡게 될 겁니다. 나머지 4조는…….”
“저희 중대에서 소대별로 나누어 맡았습니다.”
“네. 든든하네요. 그럼 갑시다.”
그러곤 지시를 내렸다.
진입 자체는 순식간이었다.
공보의 말로는 꽤 작고 험하다고 했는데, 막상 걸어 보니 그럴 만한 길이 아니었다.
‘하긴, 공보의가 그렇게 체력이 좋아 보이진 않았어.’
평생 해 본 운동이라고는 훈련소에서 한 게 전부이지 않을까?
“왜 그렇게 숨차 하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유현이 허리께를 확 밀어 주면서 말을 걸어왔다.
“네?”
“왜 이렇게 헐떡거리냐고.”
“아……. 올라오다 보니 좀 가파르긴 하네요. 차가 왜 못 들어가는지 알겠어요. 대체 이런 데 왜 사는 거지?”
“그냥 계속 살던 데 사는 거겠지. 아까 동사무소 직원한테 물어보니까, 평범한 집성촌이라고 했어. 어쩌면 우리 너무 오버했던 걸지도 몰라.”
유현은 계속 우식이 잘 오를 수 있도록 허리를 밀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경찰들은 그래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군인들은 대화는커녕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약간은 으스스해질 지경이었다.
동시에 든든했다.
“그래도 잘됐죠. 놓칠 거 같지가 않아요.”
“그렇지? 군기가 장난 아니네, 진짜.”
유현은 잠시 자신이 있던 부대의 병사들을 떠올렸다.
나름 군기가 센 부대였기는 했다.
하지만 이 정도였나?
절대 아니라 할 수 있었다.
“후, 저기 보이시죠?”
올라오는 내내 헐떡거리는 걸 넘어, 땀까지 줄줄 흘리던 공보의가 앞을 가리켰다.
언덕이 끝나자마자 산 중턱에 탁 트인 공터가 있었는데, 마을은 거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있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밭이 좀 산발적으로 있는 거지 집들은 모여 있어요. 보이시죠?”
김 순경 또한 밭은 숨을 쉬면서 말을 거들었다.
듣고 보니 과연 집들은 싹 모여 있었다.
그럼 거기만 가면 되나 하고 있을 때쯤 숨을 가다듬은 김 순경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 시간이면 아마…… 마을 분들은 밭에 있을 겁니다.”
“그럼 수색 반경은 결국, 지도에서 나눴던 대로 가긴 가야겠네요.”
“네. 그래 봐야 끝에서 끝까지 얼마 안 돼서요.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여기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은 여기뿐이고요?”
“네, 그렇습니다. 뭐……. 야산으로 가면 갈 수야 있는데, 여기가 보기엔 저래 보여도 만만한 산이 아니에요. 가끔 멧돼지 나와서 포수분들 부르면 혀를 내둘러요.”
“그렇군요. 그럼 일단 아까 나눈 대로 가겠습니다. 파출소 분들은…… 김 순경님이 여기 남고, 나머지는 다른 조로 가시죠.”
“네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김 순경은 우식의 말에 따라 인원을 다시 쪼갰다.
우식은 잠시 인원이 나뉘는 것을 보고 있다가, 이내 진입 명령을 내렸다.
이번엔 확성기까지 쓰진 않았다.
만약 여기서 또 환자를 놓치게 된다면 골치 아프게 될 것이 뻔했다.
“흐음.”
처음엔 우르르 몰려 나가는 느낌이 있었지만, 곧 각자 맡은 길을 따라 걷게 되었다.
유현은 밭의 좌측 끝단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요?”
“내가 서울 토박이긴 한데……. 알지, 박원상.”
“아, 알죠.”
“걘 완전 깡촌 출신이잖아. 내가 걔랑 진짜 친해서 방학마다 놀러 갔거든. 신기하잖아, 시골.”
“그렇죠.”
“근데 보통…… 이런 시골은 밥때 되면 아직도 가마 떼는 곳들이 있어서 연기가 올라오거든?”
“어…….”
유현의 말에 고개를 돌려 보니, 과연 집들에 굴뚝이 있었다.
그런데 연기 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시간이 어중간한가 해서 봤더니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밥때가 다가오고 있다, 이 말이었다.
“그리고 동물을 그렇게 키우더라고. 특히 닭이랑 개.”
“어…….”
“근데 지금 소리 들리냐?”
“아뇨.”
“쥐죽은 듯이 조용하지?”
“네.”
“이상한데?”
유현은 자기가 얘기를 꺼냈으면서도 이상하단 생각이 들어서 눈살을 찌푸렸다.
버려진 마을처럼 조용했는데, 밭을 보면 그럴 리가 없어 보였다.
잡초가 어느 정도 자라 있긴 했지만.
작물이 가득하지 않은가.
자연적으로 자라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누군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성을 다해 돌봤단 뜻이었다.
“갑자기 다들 야반도주했을 리는 없잖아. 길도 저거 하나라며?”
“쎄한데요…….”
“잠깐.”
“왜요?”
“저기, 뭐가 움직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