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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1화 (11/323)

11화 행방 (1)

박기태가 박기태가 아니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릴까.

유현이 그래도 꽤 진료 경험이 많은 사람이지만.

이런 것은 또 처음 겪는 일이었다.

우식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이어지는 목소리에 황당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제가 형이랑 봤던 그 환자는 박기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 거예요.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 보험 도용이에요.

“보험 도용이라니……. 난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아, 형 개원의가 아니지, 참. 이게 원래 개원가에서는 꽤 문제가 되는 내용인데…….

대학 병원 교수로 있다 보면 의학적인 부분에서만큼은 가장 앞서 나가게 되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좀 뒤처지는 수밖에 없었다.

속된 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책상물림이 된다고 해야 할까?

우식은 그런 유현을 십분 이해한다는 얼굴이었다.

-그 왜…… 교포들 있잖아요. 아니면 조선족이나 재일 동포들.

“어, 있지. 그게 뭐.”

-그 사람들이 로컬에서는 먼저 넘어와서 의료 보험 획득한 사람 건강 보험으로 진료를 본단 말이에요. 이게 원래도 문제였는데……. 팬데믹 때는 진짜 장난 아니었어요. 선배야…… 일선에서 환자 보느라 몰랐겠지만, 우리는 행정 하는데 이 문제로 골머리 썩었거든.

“그럼……. 박기태 환자가…… 아니지. 그 사람이 아니지. 그 환자가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거야?”

-그럴 가능성이 제일 커요. 우리나라 사람이면 생계 곤란이라도 어차피 기초 수급 대상자 되면 공짜인데 굳이 도용을 하겠어요?

“그렇군…….”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은가.

대한민국처럼 의료 복지가 잘되어 있는 곳에서 자국민이 굳이 남의, 그것도 죽은 사람의 건강 보험을 도용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잠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으려니 우식이 또다시 질문을 해 왔다.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환자 이상한 점은 없었어요? 말씨라든가……. 이게 혹시 외국에서 밀입국한 사람이면 진짜 큰일이에요. 그럼 이 사람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니까.

“아냐, 아냐. 말씨는 완전히 우리나라 사람이었어.”

-조금도 티가 안 났어요?

“그런 건 없었어. 이상한 점이라면 휴대폰이 제일 이상했지. 보호자한테 연락하려고 봤는데 연락처가 본인 전화번호 달랑 하나만 있었다고 했거든. 소지품도 현금 몇만 원이랑 신분증이 다였고.”

-하……. X됐네.

우식은 선배와의 통화라는 것도 잊은 채 쌍욕을 내뱉었다.

물론 유현도 그 사실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뭐지, 시발?”

화를 내기는커녕 욕에 동참했다.

나이 먹고 이런 욕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바로 튀어나왔다.

-아무튼, 선배는 아는 게 없다는 거죠?

“없지. 일단 접수처 통해서 알아보기는 할 텐데……. 글쎄…….”

한국대학교 병원이 대학 병원이지, 국기 기관 같은 곳은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신분을 속여서 들어올 만한 곳이 아닌 만큼, 확인 작업도 상대적으로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금 이 환자는 무연고 사망자의 신분증을, 그것도 워낙에 닮아서 딱히 위조할 필요도 없는 사람의 신분증을 들고 온 참이었다.

병원 아니라 경찰서라 해도 속았을 터였다.

실제로 그 비슷한 수준의 수사력을 갖추고 있는 질병관리부 소속 감염관리과에서조차 놓치지 않았던가.

-아, 그럼 그건 일단 두고……. 빨리, 빨리 밟아요.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숙지하고 있는 우식은 굳이 의미 없는 비난 대신 누군가를 채근했다.

유현으로서는 궁금증이 일 수밖에 없었다.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해 대다가 갑자기 밟으라니.

이건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누구한테 밟으라는 거야?”

-아……. 저 지금 차 안이에요. 일단 목격자 증언이 있는데, 이게 중복 증언이 있어서. 확인해 보려고 이동 중이에요.

“어디로?”

-말해도 어딘지 모르시겠지만, 기천 보건 지소 쪽에서 제보가 들어왔어요.

“응, 모르겠네. 어디쯤이야 그게.”

-화성시 근방인데……. 그래, 형도 올 수 있으면 올래요? 보건 지소에서도 협조하겠다고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감염내과 의사만큼 도움이 되진 않겠지. 오 형사님, 정 교수님 와도 되죠?

감염내과는 원래 사양길을 걷고 있는 분과였더랬다.

실제 대한민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감염으로 인한 사망이 꾸준히 줄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무시했던 감염내과 의사들이 실은 대단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모든 국가 기관들이 깨달은 지 오래였다.

-물론이죠! 도와주시면 감사하죠.

지금 우식을 도와 환자를 추적하고 있는 오 형사, 그러니까 오예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나 갈 수 있지. 근데 지금 나가면 막힐 거 같은데.”

-괜찮아요. 어차피 우리도 여기서 수색할 준비 하고 어쩌고 하면 시간 엄청 걸릴 거예요. 증언이…… 원래 이전에 들어왔던 건데 이번에 후향적 분석하면서 얻어 걸린 거라.

“알았어. 바로 갈게.”

-그리고 형 잘 밟잖아요. 빨랑 와요. 사이렌 켜고.

“승인된 거야?”

-네. 제가 승인합니다.

“오케이.”

유현은 전화를 끊자마자 일단 주차장으로 향했다.

병동과 원무과에 박기태 환자에 대한 일을 알리면서였다.

둘 다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였고, 확인해 보겠단 답을 해 왔다.

별로 기대가 되진 않았다.

일 잘한다고 해 봐야 병원 사람들인데 사람 찾는 일을 하면 얼마나 하겠는가.

‘일단 거기나 가자.’

유현은 우식이 보내 준 주소를 찍고 액셀을 밟았다.

생각대로 길이 좀 밀렸지만 사이렌을 켜니 한결 나았다.

그리고 일단 서울을 벗어나니, 제법 달린다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있으려니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우식이었다.

“어, 뭐 진전 있어?”

-일단…… 진술자를 찾았어요. 아무래도 환자가 완전 산골로 간 거 같은데……. 차도 들어가기 어렵대요.

“살아는 있는 거야?”

-의외로 민가가 20호 이상 있나 봐요. 보건소 공보의가 그러는데,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왕진을 다닌대요. 거기서 나오기가 좀 어려워서.

“아니, 대한민국에 그런 데가 있어?”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네. 종교 단체 뭐 이런 건가 했는데, 그런 건 또 아니래요. 그냥 집성촌이라는데…….

“알았어. 나 거의 다 와 가.”

-그래요? 이 형 하여간 속도 엄청 낸다니까. 설마 지금 이 소리 형인가?

“맞을걸.”

유현은 일찍 해가 지는 시골의 전형적인 읍내로 들어서며 답했다.

여기서부터는 함부로 속도를 냈다간 길 가는 노인들을 칠 수도 있었다.

해서 속도를 줄이고 동시에 하이빔을 쐈다.

멀리서도 잘 보이게 됐다, 이 말이었다.

-와……. 다 왔네. 잘됐네. 그럼 같이 가요. 어차피 차로는 못 간대요.

“알았어. 나 주차한다. 보건소에 대면 되겠지?”

-설마 딱지 떼겠어요? 당연히 되지.

“너 오늘 묘하게 까분다? 흥분했어?”

-흥분했죠. 내내 깜깜 무소식이다가 오늘 갑자기 새로운 소식이 두 개나 들어왔는데.

확실히 들어 보니 흥분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해서 유현은 팰까 하던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그래도 4급 서기관인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두들겨 패는 건 어떻게 봐도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미 밖은 어두워진 지 오래였다.

괜한 일로 힘 뺄 필요는 없었다.

정말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었으니까.

“알았어. 나 내리니까, 전화 끊는다.”

-네, 때리지 마요.

“안 때려.”

유현은 전화를 끊자마자 보건소로 달렸다.

으레 시골 풍경이 그러하듯 근처에 있는 건물 중에서는 보건소가 제일 크고 멋졌다.

눈에 띈다 이 말이었다.

“아, 왔어요.”

“안녕하십니까, 정유현 교수님. 존경합니다.”

우식과 함께 있던 공보의가 유현을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날 아나 하는 표정을 지었더니, 공보의 대신 우식이 답했다.

“한국대학교 출신이래요.”

“아, 그래? 고생하네.”

“아닙니다!”

공보의라는 건, 길게 잡아 봐야 졸업한 지 3년 됐다는 소리니 유현에게 배웠단 뜻이었다.

그제야 유현은 깍듯한 모습이 이해가 갔다.

“길을…… 이 친구가 아나?”

“네. 제가 2달마다 갑니다. 여기 김 순경님도 같이 가실 겁니다.”

“그래, 그럼 가면 돼?”

유현의 말에 우식이 몇 가지 물품을 건네주었다.

밤 중 수색은 위험한 일이지 않은가.

게다가 설명을 들어 보니 지금 가야 할 곳은 산 중턱 즈음이었다.

제아무리 유현이 체력이 좋다고 해도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했다.

“이거 손전등 켜시고. 딱 봤는데 아무도 안 보인다 싶으면 불어요. 방역 수칙이야 누구보다 잘 아실 테니……. 착용하시고요.”

“아, 오케이.”

“자, 그럼 주목하십쇼!”

우식은 유현이 보안경, 마스크 그리고 덧가운에 장갑까지 착용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목청을 올렸다.

그와 동시에 서울에서 내려온 경찰들 그리고 기천 보건소 지원들과 차출되어 온 파출소 소속 순경들이 우식을 바라보았다.

질병관리부의 위엄이 새삼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다니.

-야, 너 집에 돈이 좀 있냐?

유현은 감염내과 지원할 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지급받은 장비는 다 착용한 채였다.

놀라운 속도에 누군가가 입을 쩍 하고 벌렸지만, 사실 특별할 것은 없는 재주였다.

그냥 매일매일 몇 년을 하다 보면 누구나 다 이렇게 될 터였다.

“이제 수락 마을 수색 작전 개시하겠습니다! 밤중이다 보니…… 좀 위험할 수 있는데, 나눠 드린 손전등 무조건 켜서 사용하시고요. 들어 보니 그렇게 넓은 곳은 아니니, 시간 자체가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다만, 환자 성향이 공격성이 있을 수 있고…….”

우식은 다음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가 그냥 질렀다.

어차피 같이 다니던 경찰들에게도 있는 말 없는 말 다 해 놓은 마당 아닌가.

‘그래, 지침에 시발 기자들한테 말하지 말랬지, 수색 참여 인원들한테까지 숨기라고 하진 않았잖아.’

물론 위에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우식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조차 비밀을 지키고 싶진 않았다.

그건 의사로서의 윤리에도 어긋나는 일 아닌가.

막말로 이런 걸로 자르면 침 한번 뱉어 주고 개원하면 그만이었다.

“환자나 감염자가 공격성을 띨 수 있습니다. 물려고 달려들 수 있는데……. 자, 나눠 드린 팔 토시 있죠? 이거 꼭 착용하고 계시고……. 형사님들, 봉 잘 써 주세요.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먼저 상대 제압하고, 죽진 않았나 보세요. 책임은 제가 집니다.”

“네!”

이런 말을 들었다고 정말 상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두들겨 팰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책임자가 이렇게까지 말해 주면 훨씬 일이 편해지는 법이었다.

형사들의 목소리에 힘이 담기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 그럼 갑시다. 앞장서 주세요.”

“네.”

우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보의와 기천 파출소 김 순경이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손전등 서른 개가량이 켜졌는데,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장관이었다.

“어유……. 뭔 일 났나.”

“이게 뭔 일이래.”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수색대는 그들을 뒤로하고 캄캄한 산을 향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리를 보다가 이내 전화기를 집어 드는 이가 하나 있었다.

“지금 들어가는데요. 이대로면 실험체 뺏길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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