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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0화 (10/323)

10화 각자의 생각 (2)

우식은 전화를 끊은 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현은 처음엔 이놈이 숨이 차서 이러나 싶었지만, 그 시간이 5분이 넘어갔을 무렵엔 그게 아니라 무언가 충격을 받아서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야, 뭐야. 왜 그래?”

“그…….”

해서 물어보니, 우식은 질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유현은 우식이 자신을 좋아하면서 동시에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오히려 뭔 일이 반드시 생겼구나 싶었다.

생각해 보면 이놈이 감히 질문을 씹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까닭이었다.

언제였더라.

그래, 누가 봐도 안 될 거 같은 사람한테 들이댔다가 가차 없이 차였을 때였다.

솔직히 말하면 가당치도 않았기에 위로의 말도 잘 나오지 않았지만.

순전히 후배 위하는 마음에서 어깨를 토닥여 준 기억이 있었다.

“뭔데. 설마…… 수배 거부야?”

갑자기 제가 사실 숨겨 둔 애인이 있어요, 이럴 리는 없지 않은가.

유현이 아는 우식은 연애 전선에 있어 순진하기만 한 친구였다.

그렇다면 지금 이럴 만한 일은 하나뿐이었다.

“그…… 네.”

“아니, 왜?”

빗나가길 바랐던 예상이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어.’

왜냐고 묻고 있긴 하지만.

유현은 지난 팬데믹 사태 때 일선에서 뛰었던 사람 아닌가.

그저 삶과 죽음이라고만 생각했던 감염병에 대한 방역이 실은 수많은 사회적 이권이 얽혀 있었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위에서……. 위에서 거부했다고 합니다.”

“변종 바이러스라는 건 알고?”

“의증에 불과하지 않냐고……. 그러는데요.”

“진단이 다 의증에서 시작하지, 그럼. 이미 검사 맡겨 놨는데, 거기서도 변종으로 나오면 그때는 할 거래?”

“음.”

우식은 곰곰이 아까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언제나 현장을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던 국장은 어느새 흔해 빠진 관리자로 화한 채, 소리만 질러 댔더랬다.

현장에 현장의 고뇌가 있다면, 이쪽에도 이쪽의 고뇌가 있다고 하면서였다.

“안 해 주겠네. 기자라도 알아봐야 하나? 그래도 믿을 만한 기자 한둘쯤은 있는데.”

“아뇨……. 지금 각 보도 지침 내려갔을 거래요.”

“하.”

보도 지침.

쌍팔년도에나 있었을 법한 이 해묵은 단어가 다시 쓰이게 된 것도 벌써 3년 전이었다.

당시에는 누구나 필요성을 느꼈더랬다.

특히 현장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했다.

언론에서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바람에 사회에 혼란을 야기하거나 방역에 방해가 됐기에 그랬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이런 식으로 또 다른 쓰임새를 드러낼 줄은 몰랐다.

“그럼 안 되겠는데……. 방역 관련 보도 지침은 어기면 바로 구금이잖아.”

“네, 판례가 없는 것도 아니고…… 몸 사릴 거예요. 게다가…….”

“게다가?”

“저희가 내린 가설을 위에서는 싹 무시하고 있더라고요.”

“음.”

무시한다면 어디까지일까.

유현이 보기에도 지금 우식과 둘이 합의 본 가설엔 남들이 믿기 어려워할 만한 지점들이 좀 많았다.

가령 환자가 죽었다 살아났다거나.

바이러스에 의해 행태 변화를 일으킨 숙주의 행동이 지나치게 정밀해서, 마치 바이러스 그 자체의 의지를 실현시키고 있는 것 같다거나 하는 지점들이 그랬다.

또 물어뜯는 방식의 감염, 그러니까 타액의 직접 전파를 이용한 감염 방식을 채택한 바이러스가 있다는 것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바이러스 입장에서 보면 비말 감염에 비해 너무 번거로운 방식이 되기 때문이었다.

우식은 유현이 다시 한번 둘이 내린 가설을 검증하는 동안 고민을 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엔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거 같아요. 죽었다 살아난 것, 바이러스가 직접 전파를 위해 호르몬 조절에 들어간 것, 숙주의 생존을 위해 도망갔다는 것 등등…….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느슨하게 나올 수가 없어요.”

“이런 제길. 아니, 지금 국장……. 김효상 아냐?”

“네. 맞아요. 김효상 선생님.”

“그 인간…… 원래 안 그랬는데?”

“말이 안 통해요. 의사가 아니라 그냥 공무원이랑 얘기하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래? 설마 이렇게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진 않았을 거 아냐.”

이제 유현과 우식은 뒷산 규모 정도 되는 병원 부지 내 산의 꼭대기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주변 지대가 낮은 데다가, 높은 건물도 별로 없어서 상당히 멀리까지 보였다.

SRT가 지나는 수서역도 있었고, 시내로 바로 갈 수 있는 버스 정류장도 보였다.

만약 환자가 이곳에 도달했다면, 환자 또한 같은 광경을 보았으리라.

그 말은 곧 어디로 갔을지 쉬이 짐작이 안 된단 뜻이기도 했다.

“일단…… 지원해 줄 테니까 개인적으로 쫓아 보래요. 개인적이라고는 해도 오늘…… 처음 지원받은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음……. 아주 손 놓고 있을 거란 건 아니라 이건데. 음.”

경찰력이 더해진다면, 일단 SRT가 됐건 어디가 됐건 CCTV를 즉각 들여다볼 수 있다는 얘기가 되었다.

옛날 같았으면 업장에 따라 뻗대는 곳들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ARS-24 관련 역학 조사를 한다는데 감히 고개를 저어?

심하게는 구치소에 갇힐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그래도 수배를 내리는 것만큼 효과가 있는 건 아닐 터였다.

“일단…… 저는 팀 꾸려서 SRT 수서역부터 가 볼게요. 만약 저리로 갔으면 큰일이에요. 나머지 인원은 여기 있으라고 하고.”

“그래.”

“선배는……. 선배가 와 주면 어지간한 형사들보단 나을 거 같은데…… 음.”

인사치레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유현의 피지컬은 예사 피지컬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이 양반은 현직 감염내과 의사라 감염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우식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와 준다면 정말로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아니다, 이것까지 도와주실 순 없겠죠?”

하지만 현직 감염내과 의사라는 게 걸리기도 했다.

이미 보고 있는 환자도 적지 않을 것 아닌가.

휴가 한번 내는 것도 한두 달 전에 내야만 한다는 것을 우식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아냐 근무가 있으니까. 그래도 주말엔 도와줄 수 있어.”

“말만이라도 감사하네요.”

“아냐, 아냐. 진짜야.”

물론 유현은 언제고 도움을 줄 참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가 보던 환자가 도망간 마당 아닌가.

주의를 줬음에도, 또 결박을 하고 있었음에도 예상을 뒤엎고 도망간 것이니 할 수 없는 일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유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당장 우식을 따라나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유현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저 관심을 가지고 우식에게 진행 상황을 묻는 것뿐이었다.

유현은 병원 근처에 마련한 오피스텔 침대에 누운 채 우식과 아까 나누었던 톡을 들여다보았다.

이후 삼성역으로 향하는 버스 CCTV에서 환자를 발견했으나, 환자가 내린 후로는 또 오리무중이었다.

다행한 것은 그나마 우식의 설득 끝에 보건소 및 경찰서로의 수배는 가능해졌다는 점이었다.

-지금 이 상황은…… 대한민국이라는 숙주가 그 환자……. 변종 바이러스에게 이미 감염이 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최대한 다른 곳까지 감염시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높으신 분들과의 화상 회의에서 우식이 유현이 해 준 말을 격앙된 목소리로 읊은 덕이라 할 수 있었다.

‘어찌 되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현은 쉬이 안심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환자가 보이는 행태가 너무 이상해서였다.

게다가 이와 비슷한 환자를 중국에서 먼저 봤음에도 정보 공개를 꺼리고 있다는 점이 유현을 더 불안케 했다.

ARS-24가 처음 중국에서 발생했다는 점, 그리고 동양인에게서 훨씬 적은 치명률을 보인다는 점, 중국이 그 많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가장 빨리 팬데믹 사태를 극복했다는 점을 들어 ARS-24가 중국의 연구소에서 기원한 것이란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유현이야 그런 음모론을 그리 신뢰하지 않았지만.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었다.

“어, 무슨 일이야.”

-네, 교수님. 그…… 폐렴으로 입원해서 지금 중환자실에 계시는 강순자 여자 62세 환자분 말입니다.

“응, 듣고 있어.”

하지만 유현에게는 봐야 할 환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계속 이 생각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 말이었다.

퇴근한 다음이라 해서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유현은 전화가 울리기가 무섭게 몸을 일으키고 외투부터 챙겨 입고 있었다.

-혈압이 점점 떨어지고…… 소변량이 줄어드는 게 쇼크로 가는 거 같아서요.

“그래? 그럼 패혈증 프로토콜 따라서 일단 보고 있어. 나 가는 중이야.”

-네, 교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직 레지던트에게 온전히 맡겨도 되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유현의 성격이 이를 허락지 않았다.

나이가 더 든다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아직은 가능하면 더 환자 곁에 있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 환자가 나빠졌을 때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울 거 같았다.

-아, 선배.

“어어. 뭐 변한 거 있어?”

바쁘게 지내던 중 우식에게 톡이 아니라, 전화가 온 것은 환자가 탈출한 후 대략 3주일이 더 흐른 다음이었다.

그사이에 지역별 감염자 추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유현은 그 어떤 지역에서도 이렇다 할 증가세를 보이지 않는 데다가,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보도도 아예 없고, 우식이 공유해 주는 자료에서도 그래서 자신의 가설이 틀린 것은 아닌가 하고 있던 참이었다.

심지어 우식도 마지막 한 주 정도는 톡이 없었더랬다.

-선배,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어.”

-환자 신원이…… 박기태, 맞아요?

“응? 그렇지. 내가 주민 번호도 다 줬잖아. 나 아니더라도 병원 차원에서 공유해 줬을 텐데.”

-네, 나이랑 얼굴이 비슷해서…… 저나 팀원으로 오신 형사분들도 다 맞는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뭐야……. 아냐?”

이건 또 무슨 소릴까.

유현은 팔뚝에 돋아난 소름을 애써 비벼 가면서 후미진 곳으로 이동했다.

어차피 금요일 밤에는 병원에도 사람이 없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혹시 사망했을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호르몬 수치도 그렇고. 그래서 지역 경찰에 무연고 사망자 포함해서 싹 수배했는데……. 이게 오류가 있었나, 기간이 잘못 입력된 거예요. 그래서 이전 거까지 나왔는데, 거기에 얼굴이 똑같은 사람이 있어요. 아니지, 주민 등록상 사진으로 보면 죽은 사람이 박기태야.

“어……? 그게 언젠데?”

-벌써 두 달도 넘었어요. 내원 시점에서 봐도 한 달은 넘었지.

“허…….”

일단…… SRT 수서역 CCTV에서는 못 찾았어요.

모르겠네요. 일단 버스 쪽도 알아보려고요. 워낙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 시간이 걸리긴 할 텐데, 다행히 버스 회사에서는 적극 지원한다고 해서요.

어떻게 됐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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