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9화 (9/323)

9화 각자의 생각 (1)

“못 찾았습니다.”

“아니, 인력이 몇인데…….”

“이게…… 지형이 산이 끼어 있어서요.”

보고가 다시 들어온 것은 30분 정도가 지나서였다.

다행히 차에서 수거한 블랙박스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었으나, 문제는 실제로 환자는 찾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한국대학교 병원 부지 자체가 산을 끼고 있어서일 가능성이 있었다.

만약 이 산을 타고 넘어갔다면 더 수색을 한다고 해도 무리일 터였다.

이제는 전국 수배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그거 네 권한으로 가능해?”

유현의 말에 우식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질병관리부 권한이 커졌다 해도 우식은 이제 겨우 4급 서기관 아닌가.

수배까지는 무리였다.

허가가 있어야만 했다.

아니, 애초에 수배를 내리는 것은 윗선에서 판단해야만 했다.

그렇다 해도 걱정이 들거나 하진 않았다.

이건 수배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으니까.

“없긴 한데, 연락하면 될 거예요. 바로 연락드려야죠. 어차피 아까 보고드렸으니까…… 후속 보고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래. 말 안 통하는 양반들도 아니라며?”

“그렇죠. 저희는 실전을 겪었으니까.”

팬데믹 사태가 터졌을 때까지만 해도 질병관리본부는 보건복지부 산하의 작은 기관 아니었던가.

그러던 것이 질병관리청을 거쳐 이제는 당당한 행정부 일원이 된 참이었다.

그 과정에서 소속 인원들이 얼마나 혹독한 시간을 가졌던가.

소속감은 물론이거니와 자부심 또한 대단했다.

“네, 국장님.”

우식은 곧장 감염 관리국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또한 의사 출신으로, 팬데믹 사태 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인물이었다.

누구보다 현장을 이해하고 있는 관리자라 그런지 밑에서도 평이 좋았다.

-놓쳤다고? 아니…… 병원에서 그게 말이 돼? 한국대학교 병원이 무슨 동네 병원도 아니고…….

우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한국대학교 병원에서 수련받은 입장에서도 이 병원에서 10분 안에 튀어 나가는 게 쉽게 느껴지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미 벌어진 현상 아닌가.

아닐 거란 가정은 전혀 의미 없는 일이었다.

“환자 행태가 특이합니다. 사실 증상이라고 해 봐야…….”

-배고픔이라고 보고했었지? 그것참…….

“이상한 일인데, 실제로 보면 그렇습니다. 아시잖습니까? ARS-24…… 이상한 거.”

-그거야 그렇지. 이상한 놈이지, 정말.

일반적인 바이러스였다면 전 세계 석학들이 머리를 모은 지도 벌써 3년이 훌쩍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 이렇게 맹위를 떨치진 못할 터였다.

관련 사망자만 벌써 전 세계적으로 5천만을 넘어가지 않았던가.

주로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어 버렸거나, 애초에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나라에서 발생한 사망자들이라지만, 인류에게 있어 뼈 아픈 시련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괜히 어느 연구소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바이러스가 아니냐 하는 음모론이 도는 게 아니란 얘기였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 수배가 필요할 거 같습니다. 사진은 보내 드렸죠?”

-어? 어, 그래. 나도 수배는 보고가 필요해서……. 근데 되겠지. 그냥 바이러스 감염자도 아니고 변종이잖아?

“네네. 제 생각에는 흑룡강성에서 보고되었던 변종하고 같은 종이거나…… 적어도 비슷한 종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직 정보 공유된 건 없죠?”

-없어. 콕 집어서 요청했는데, 모른대.

“개새끼들.”

-욕은 하지 말고. 그놈들 그러는 거 어디 하루 이틀이야?

ARS-24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이해 인류는 그간의 갈등을 넘어 협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능력의 부족해서인 국가들도 있었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숨기는 국가들도 있었다.

-아무튼, 보고하고 바로 알려 줄게. 어차피 수배는 여기서 내려야 하는 거니까.

“네.”

-혹시 모르니까 그쪽 인력으로 수색은 계속하고.

“네네. 기자들 좀 떴는데……. 뭐라고 하죠?”

-아……. 언론 대응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 말실수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워낙 예민한 사항이잖아, 알지?

“네, 국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식은 국장과의 통화를 마치고 보안팀과 경찰 담당자에게 다가갔다.

지시받은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뒤로 벌써 냄새를 맡고 붙은 기자들이 보였으나 애써 무시했다.

언론이라는 것이 늘 공정하고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 정도는 지난 3년간 혹독하게 배우지 않았던가.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을 뽑기 위해 잘못된 내용을, 심지어 거짓된 보도를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일단 보안팀께서는 병원 내부 수색 계속해 주세요.”

“아, 네.”

“물론 이미 나갔을 확률이 높은데…… 아직 인상착의가 완전히 식별된 건 아니니까요.”

“네네.”

“수색할 때 감염이나 공격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지겹겠지만, 꼭 지켜 주세요.”

“물론입니다. 저희도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입니다. 주의 사항은 숙지하고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우선 보안팀장부터 병원 안으로 들여보냈다.

어차피 경찰이 아니라 외부에서는 물리적인 구속력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 아닌가.

설마 도망간 환자 붙잡다가 일어난 실랑이에 법적 문제가 생길까 싶겠지만.

그런 일이 늘상 벌어지는 곳이 바로 이 사회였다.

도망간 주제에 좀 넘어졌다고 고소를 남발했던 민원인을 아직도 기억했다.

“그리고…… 과장님.”

“네.”

“일단 근처 탐문 수색 지속해 주세요. 해 지기 전에 산 쪽도 수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 안으로 도망갔으면…… 환자 생명도 위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음은 경찰 순서였다.

아까 한바탕해서 그런가 고분고분했다.

아마 서장과 통화하겠다는 내용이 주효했을 터였다.

우식만 해도 그렇지 않겠는가.

이름 물어보고 국장과 통화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잘못한 게 없어도 손이 떨릴 거 같았다.

“우리도 찾아보자.”

“아……. 네, 선배.”

유현은 대화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지극히 합리적인 제안이었기에 우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유현이 길 쪽이 아니라 산으로 향했을 때는 조금 당황스럽단 표정을 지었다.

“혀, 형? 산으로 가요?”

학생 때 호칭을 썼을 정도였다.

물론 유현은 퉁명스럽기만 했다.

“길로 도망갔으면 벌써 목격자 있었지. 이쪽으로 갔을 거야.”

“그…….”

“뭐, 설마. 흉내만 내려고?”

“저는 전화 받아야 되잖아요……. 안 터지면 어떻게 해요.”

“기억 안 나냐? 우리 레지던트 때…… 여기 무슨 두릅인가 캔다고 교수님이랑 같이 들어갔던 거? 그때 전화 안 되디?”

“아…….”

이 양반은 왜 이렇게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은 걸까.

우식은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산 쪽으로 향했다.

환자나 보호자가 쉬이 오르지 못하도록 담장이 처져 있었기에 처음부터 힘겨웠다.

“웃차.”

“와, 날 한 손으로 당기네…….”

하지만 먼저 올라가 있던 유현이 돕자 순간이었다.

“넌 살 좀 찌워야겠다. 몇 키로야? 60은 되냐?”

“65요. 왜요.”

“너무 가벼우니까 그렇지.”

“형……. 제 나이 되면 살 안 찌는 게 더 중요해요. 운동도 안 하는데 살까지 찌면 만병의 근원이지.”

“그렇긴 하지.”

유현은 산 쪽으로 향하면서 우식을 잡아끌었다.

“환자분! 여기서 돌아오시면 처벌 없습니다!”

“환자분! 밤에 산은 위험합니다!”

여기저기서 미리 들어간 경찰 관계자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중간중간 앳된 목소리도 끼어 있었는데, 아마도 의경들일 터였다.

“환자분! 저 정유현입니다! 환자분 치료하고 있는 의사요! 빨리 오십쇼!”

유현이 거기에 한몫 보탰다.

체격만 좋은 게 아니라 목청도 좋았기에 산이 쩌렁쩌렁 울렸다.

어찌나 인상적이었는지, 강남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들마저 잠시 시선을 빼앗겼을 정도였다.

“환자분!”

그에 비하면 우식은 거의 뭐 속삭이는 수준이었다.

유현은 그런 우식을 향해 뭐라 하려다가, 오래된 낙엽을 밟고 휘청이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보아하니 그냥 멀쩡히 따라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것 같았다.

‘옛날엔 그래도 운동 좀 하더니……. 같이 근무하면 좀 시키는 건데, 애 아빠한테 그런 거 시킬 수도 없고.’

유현이 애써 꼰대 같은 생각을 지우고 있으려니 우식의 휴대폰이 울렸다.

국장이었다.

생각보다는 조금 답이 느린 편이었다.

변종 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이 도망간 상황 아닌가.

만약 이 바이러스가 기존의 백신을 회피한다면, 또 다른 팬데믹이 일어날 수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노상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3년 만의 일일 터였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서둘러도 모자랄 거 같은데, 이상한 일이었다.

“네, 국장님.”

하지만 수배 자체가 내려지지 않을 거란 생각은 없었다.

덕분에 우식은 별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고, 이어지는 국장의 말에 크게 놀랐다.

“네? 수배를…… 안 내린다고요?”

-그래, 위에서 내려온 결정이야. 변경될 거 같진 않아.

“아니……. 변종 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된다는 말은 하셨습니까?”

-했지. 그래서 안 된다는 거 같아.

“그게 무슨…….”

-생각해 봐. 이제 겨우 경제 살아나서 돌아가는 상황이야. 그런데 수배가 내려 봐. 이거 또 얼어붙을 거라고.

“아니…….”

경제가 중요하기는 했다.

병원 안에 있을 땐, 의사나 간호사와 같은 의료인들만 사람을 살린다고 생각했지만.

공직에 나서고 보니 무엇보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다름 아닌 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가 보건 위기 위에 있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적어도 우식은 그렇게 생각했다.

-최우식 과장.

“아, 네.”

하지만 국장의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었다.

그는 더없이 진중해진 목소리로 우식을 부르곤, 말을 이었다.

-대신 인력 지원이 될 거야. 따로 추적하도록 해.

“아니…….”

-그리고 기자들한테는 입도 벙끗하지 마. 일단 선 닿는 언론사들은 죄다 대응 들어갈 거야. 이것도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위에서 하는 거야.

“위라는 게…….”

-어디긴 어디야. VIP지. 곧 총선이잖아. 이런 거 터지면 어디 되겠어?

“하…….”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어쩔 수 없어. 나라고 좋아서 이러겠어?

말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아마도 염증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국장은 최일선에서 싸웠던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위의 명을 감히 어길 생각 또한 못 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선 자리가 달라졌고, 바라보는 시야도 달라졌기에 그랬다.

우식은 이제야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국장은 더 이상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최우식 과장. 잘 들어. 이거 잘되면 특진이야. 안 되면…….

“옷 벗습니까?”

-그건 아냐. 내가 지켜 줄게. 하지만…….

“승진은 물 건너가겠네요.”

-아니라고 할 수 없지.

“하…….”

-아, 그리고.

“그리고요?”

-정 교수 포함해서 나머지 한국대 병원 관계자들도 입단속 잘 시켜. 물론 따로 다 연락이 갈 텐데……. 그래도 자네 입으로 듣는 게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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