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이변 (3)
프로토콜 1209에 따라 한국대학교 병원은 완전히 폐쇄 조치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밖으로 도망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아닌가.
근처 주차되어 있던 모든 차량의 블랙박스 및 CCTV에 대한 검토도 시작되었다.
“내부 수색 중이죠?”
아무렇게나 차를 세워 둔 유현은 경비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 보안팀 직원에게 물었다.
유현이 가죽 재킷을 입고 있던 탓에 바로 답이 날아들지는 않았다.
“여기, 감염내과 정유현입니다.”
하지만 직원 카드를 들이밀자, 즉시 입을 열었다.
다른 과도 아니고 감염내과 아닌가.
게다가 정유현에 관한 얘기는 그도 들어 본 적 있었다.
한창 팬데믹으로 인해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냐 마냐 하는 기로에 섰을 때, 정말이지 밤낮없이 병원을 지켰던 양반 아닌가.
몇 번인가 언론의 주목도 받았더랬다.
“아, 교수님. 아직…… 수색 중입니다.”
“주의 사항은 전달받았죠?”
“네? 아, 네. 환자가 공격적일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주의하고 있습니다.”
말은 주의하고 있다고 하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방심만 하나 가득 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환자 아닌가.
아파서 입원한 사람이 위험하다고 하면 그 누가 말을 들어 먹을까.
변종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위험이라면야 조심하겠지만.
신체적인 위협이 될 거라고 생각할 리가 없었다.
이들은 일반인들도 아니고 보안 요원이었으니까.
“음, 다시 한번 주의 주세요. 환자가 증세가 공격성 표출이니까요. 다른 데 아픈 곳이 없고, 또…….”
해서 유현은 재차 설명에 들어갔다.
중간에 환자의 생김새를 떠올렸는데, 확실히 처음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와 지금의 모습은 천양지차였다.
“건장한 편이에요.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다행히 보안 요원은 유현의 말을 허투루 듣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건 교수 아닌가.
병원에서만큼은 끗발 날리는 사람이었다.
“선배, 경찰 쪽도 수색에 나섰어요. 병원 내부는 아무래도 보안 요원이 나을 거 같아서, 외부 수색에 좀 더 힘을 기울이기로 했어요.”
“잘했어. 벌써 수색 들어간 지가 10분인데 발견 못 했으면 이미 나갔을 수도 있지.”
“병원이 큰데……. 그럴 수 있을까요?”
“글쎄. 알 수 없는 일이야. 1층 로비에서 환자나 보호자 탐문하고 있나?”
“당연하죠. 제가 만든 프로토콜이에요.”
우식은 자부심에 찬 얼굴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유현은 단 한 가닥도 없는 흰머리가 잔뜩 있었다.
원래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이 공무원 인생에서 유리하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우식의 나이에 이렇게까지 하얗게 세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가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띠띠띠
그때 보안 요원이 들고 있던 무전기에 신호가 들어왔다.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딱히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이 이어지는 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팀장님.
“어, 말해.”
-별관 후문 쪽인데요, 여기서 비슷한 인상착의를 봤다는 진술이 있습니다. 근데…….
별관 후문 쪽 통로는 담배 피우러 나가는 전공의들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딱히 숨겨져 있거나 해서는 아니었다.
어차피 복도를 따라 걸으면 본관 정문으로 통하기에 환자들 입장에서는 굳이 힘들여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어서였다.
게다가 나갈 때마다 높은 확률로 담배 냄새가 나서 선호도가 떨어졌다.
그 말은 그쪽으로 나갔다면 별다른 제지 없이 아예 병원 부지를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당연하게도 팀장을 포함한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어? 어디로 갔대?”
-밖으로요.
“아까 방송 들었을 때는 뭐 하고 이제 와서 말한대?”
-그게 그 환자가 환자복이 아니라…… 일상복을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화장실에서 환자복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뭐? 일상복?”
-네.
이상한 일이었다.
일상복이 어디서 나서 입었을까?
밖에서 잠기는 격리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것부터 해서…….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유현이 턱을 짚고 고민에 빠진 사이, 우식은 바깥에 있을 경찰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환자가 밖으로 나간 거 같습니다. 바깥쪽 탐문에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합니다.”
-네? 나가요? 바로 폐쇄하지 않았나요?
경찰 관계자, 즉 강남 경찰서 생활안전과 과장 박철민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되물어 왔다.
한국대 병원 전경을 바라보면서였다.
이렇게 큰 병원에서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병원에 익숙한 사람도 아니고 응급실로 실려 왔던 환자가 탈출할 수 있다고?
도망은커녕 엘리베이터 잘못 타면 지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과장님, 정황상 그렇습니다. 안에 있을 가능성이 작아요. 일상복을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략적으로 전해 들은 인상착의는…… 검정 라운드 티에 청바지입니다.”
-거참…….
해서 박철민은 뜨뜨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는데, 우식으로서는 기가 차는 일이었다.
“과장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네? 그건 왜…….
“이 환자 변종이 의심되는 환자입니다. 못 찾으면 국가 재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책임지실 수 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면 최선을 다하세요. 지원 요청하시고. 저는 서장님하고 다시 통화하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제 입에서 나쁜 소리 안 나가게 하고 싶으면 그냥 지금 네 하시면 됩니다.”
-아, 네네. 알겠습니다. 네.
이미 질병관리부의 권한은, 그것도 이러한 감염 관련한 재난 앞에서의 권한은 그 어떤 부서보다 위에 올라간 지 오래지 않은가.
실제로 대한민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혹독한 팬데믹을 겪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법적으로는 그런 데도 불구하고 아직 이렇게 삐딱하게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천성이 싫은 소리 잘 못하는 우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야……. 우리 우식이 세졌네.”
“네? 아뇨, 뭐. 이 일 하다 보니까……. 내부 수색은 어찌 되고 있대요?”
“그래도 계속 진행해야지. 그리고…… 혹시 공격당한 사람이 있는지도 봐야 해. 마주친 간호사도 공격을 안 했다고 하니…… 괜찮을 거 같긴 한데.”
유현은 환자를 떠올렸다.
바로 낮까지만 해도 세 번이나 상대를 물려고 하지 않았던가.
만약 그것이 유현의 가설대로 바이러스를 전파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한다면, 탈출 시 공격을 통해 두 명을 제압한 와중에도 물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마침 우식도 비슷한 생각이 든 참이었다.
“네, 선배. 이상하다는 생각 하시는 거죠?”
“어, 이상해. 환자의 행태가 일관되지 않잖아. 왜 이번엔 감염시키지 않고 도망쳤을까?”
“이건 진짜 좀 황당하실 수 있는 말인데요.”
“말해 봐. 어차피 너 표정 보니까 뭐라고 해도 말할 거 같은데.”
“네, 사실 그래요.”
해서 둘은 환자가 있다고 생각되는 곳, 그러니까 병원 밖으로 이동하면서 말을 이었다.
위이이이잉
멀리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방금 요청한 지원 병력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다 우식이 작성한 프로토콜대로였다.
환자가 병원 밖으로 나갔을 경우엔 버스 한 대 분량의 병력이 추가되어야만 했고, 실제로 추가되었다.
“바이러스…….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애들도 위기 상황에서는 전파보다는 생존을 택하잖아요.”
“바이오 필름 말하는 거야?”
“네.”
바이오 필름이란 면역 세포 등, 감염원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일종의 캡슐을 뜻했다.
감염원은 그 안에서 조용히 번식하며 숨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다 일정 개체 수를 돌파하면 다시 밖으로 나와 숙주의 몸속을 돌아다녔다.
“바이오 필름이랑 이게 뭔 상관이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바이러스가 만약 이 병원이라는 통제된 환경이 감염 전파에 유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미친놈인가 싶은데. 바이러스가 무슨 주변 환경에 대해 그렇게까지 인지할 수 있겠어. 말이 안 되지.”
“만약 가능하다면요.”
“음…… 불가능한 전제를 두고 얘기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유현은 뼛속까지 이과생이었다.
해서 이런 종류의 논쟁은 시간 낭비라 여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아까 우식이 보여 줬던 영상뿐 아니라, 당장 지금 도망간 환자도 유현의 상식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지 않은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멀쩡히 살아나 담당 간호사를 공격하고 도망간 마당이었다.
상상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발생 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이번만큼은 예외로 하지. 그래, 네 말대로 바이러스가 그렇게 판단했다고 하면…… 차라리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도주에 쓰겠지. 바이오 필름을 사회를 대상으로 만들 수는 없을 테니까. 탈출할 거야. 이건 오히려…….”
“기생충 약을 복용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네요.”
이제 대한민국에서는 기생충 감염이 더 이상 흔한 일이 아니지만.
아프리카를 비롯한 개발 도상국에서는 여전히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그쪽으로 봉사 활동을 가게 되면 최우선으로 삼는 과업 중 하나가 바로 기생충 박멸이었는데, 주로 위장관에 살고 있던 기생충들은 약을 먹으면 안에서 죽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밖으로 탈주해 왔다.
그래서 변 중 절반 이상이 아니, 태반이 기생충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유현이나 우식이나 아직도 학창 시절 기생충학 교수가 산처럼 쌓아 올린, 살아 꿈틀거리는 기생충 더미 앞에서 찍은 사진을 잊지 못했다.
“그래, 바이러스가 만약 나나…… 다른 의료진을 기생충 약처럼 위협적인 존재라고 인식했다면 무조건 도주했겠지.”
“빨리 잡아야겠는데요?”
“그래, 만약 그렇다면 이…….”
유현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이미 환자는 바이러스 그 자체라고 봐야 해.’
환자가 사람이 아니란 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잔인할뿐더러 의사가 할 만한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식은 딱히 유현을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도리어 공감하고 있었다.
‘선배나 내가 내린 가설이 사실이라면…… 이건 위기야. 사람의 몸을 한 바이러스라니……. 말도 안 되는…….’
한편으로는 정말이지 상상의 영역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유현의 말에 따르면 환자는 죽었다 살아나지 않았던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환자의 뇌가 죽었다 살았다.
뇌사 판정 위원회에 심의를 올렸다가 거절당했다는 말이 기억났다.
그때 바이러스에 의해 뇌가 잠식되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알 수 없었다.
ARS-24가 출현한 지 이제 벌써 3년이지만 여전히 인류가 이 바이러스에 대해 파악한 것은 극히 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