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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5화 (5/323)

5화 ARS-24 (5)

“다 떴다는 게 무슨 소리야?”

유현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되묻고 있는 박원상 때문에 한숨을 내쉬었다.

시선은 모니터를 향해 박아 둔 채였다.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눈앞에 뜬 수치들은 예사롭지 않은 수준을 훌쩍 넘어가 있었다.

“말 그대로야. 다 떴어. 꼭 누가 호르몬 주사라도 놔준 것처럼…… 엄청나게 떠 있다고.”

“아……. 아니, 그게 가능할 수가 없는데. 그중 하나라도 정상 범위 넘어가서 떠 있으면 이상한 거라고.”

“그렇지가 않다니까? 빨리 좀 와 봐.”

“알았어, 알았어. 외래 마무리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빨리 와.”

“알았다고.”

유현이 몇 번인가 더 강조를 하고 나서야 박원상도 뭔 사태인지 이해를 했는지 다급히 답을 해 왔다.

다만 외래 중인 모양이니 당장 달려오진 않을 거 같았다.

본의 아니게 시간이 비게 된 유현은 환자가 있는 병실을 바라보았다.

격리 병실이기에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먹는 양이 줄지를 않아.’

방금 전에 본 환자는 그때도 여전히 먹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유일한 지상 과제인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잘만 이어졌다.

-상태는 좋습니다. 아픈 곳도 없고요. 그냥 배가 고파요.

아픈 곳이 없다는 건 아마도 사실일 터였다.

간호 기록에도 꾸준히 그렇게 적혀 있는 데다가, 진통제 비슷한 것은 하나도 들어가고 있지 않았으니까.

아니, 이제는 약이 아예 안 들어가고 있었다.

배고픔을 제외하면 그 어떤 특이 증상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우우웅

대체 뭐지 하고 있으려니 휴대폰이 울렸다.

질병관리본부의 최우식이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얘가 뭔 일인가 싶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봤어?”

-네. 이거 뭐예요?

방금 검사 결과를 사진으로 찍어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변종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우식이었기에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뭐긴 뭐야. 내가 말했잖아. 환자 행태가 이상하다고. 토의를 해 봤는데, 호르몬 교란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원래 안 이러던 사람이 갑자기 이러는 건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관련 검사를 다 나가 봤는데…….”

-이게 싹 다 올라갔다 이거죠?

“응. 전례를 찾아보고 있는데……. 내가 내분비내과가 아니라서 못 찾는 건지 아니면 진짜 없는 건지 모르겠네.”

-박원상 선배가 같이 보는 거죠?

“응.”

-그 선배도 모르는 일이면 최초라고 단정 지어도 될 거 같은데요. 음.

수화기 너머로 터져 나온 신음이 심상치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해외에서 유입되는 신규 감염자들 때문에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는 마당 아니던가.

근데 국내에서 변종까지 발생해?

머리가 지끈거릴 터였다.

-근데…… 다른 증상은 아예 없다고 하셨죠?

“응. 증상도 없고…… 영상 검사도 다 깨끗해. 피 검사도…… 그래. 호르몬 빼고는 정상이야.”

-유일한 증상이 배고픔이다, 이거네요?

“어. 아, 좀 공격적이라는 보고가 있는데…… 내 앞에서는 안 그래. 일단 먹을 거를 주면 얌전해진다고 하고.”

-남성 호르몬이 이렇게 떴으면 가능하긴 하죠. 이거…… 그냥 보고하기도 애매한데요? 아무리 변종이라고 해도 지금까지는 뭔가 연결 고리가 있었는데 이건 너무 달라요.

“나도 그래서 고민이야. 아예 다른 병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처음에는 당연히 ARS-24의 변종으로 확신하고 있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대학 교수들 중에서도 공부 정말 많이 하는 편에 속하는 유현으로서도 이러한 증상은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제가 출장 신청 내서 올라갈게요. 그…… 질병관리부 서울 지부에서 볼 수 있을까요?

“저녁에는 돼.”

-역시. 그럼 그때 볼게요.

“알았어.”

유현은 약속을 잡고는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품속에 넣으면서 고개를 돌려 보니, 재원이 와 있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얼굴이 핼쑥했다.

다른 직군이라면 모를까 레지던트이기에 그런갑다 싶기는 했다.

원래 병원에서 상주하다시피 하는 레지던트들은 남들보다 창백하기 마련이고 또 자주 아팠으니.

“어, 왔어?”

“너무 심드렁한 거 아니에요? 저 진짜 죽을 뻔했다고요.”

“죽어……? 뭔 소리야.”

“아니, 저 환자 미쳤어요.”

“저 환자? 왜?”

“아까…… 아까 막 절 물려고 그랬다니까요? 그나마 보호의 입고 있었고 인턴도 있었으니 망정이지…… 어휴…….”

“물어?”

기시감이 들었다.

분명 환자는 처음 깨어났을 때 유현을 공격하려 든 적이 있었다.

무위로 돌아간 후에는 금세 정상으로 돌아간 데다가, 당시엔 죽다 살아난 참이라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더랬다.

“네. 근데 또 물어보니까 안 그랬대요. 아예 기억을 못 하는 사람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래서?”

“이것도 정신과에 알렸죠. 아, 오셨네.”

“응? 아, 순규 왔네. 야, 들었지? 좀 잘 봐줘.”

엘리베이터 쪽에서 소란이 이나 싶더니 이내 두 명의 의사가 나타났다.

정신건강의학과 이순규 교수와 레지던트였다.

유현의 말에 이 교수는 허허 웃었다.

학생 때부터 사람 좋은 걸로 유명하더니 결국, 정신과 의사가 되었더랬다.

“어, 뭐…… 좀 특이하더라. 일단 얘기를 좀 해 보고 말해 줄게.”

“오래 걸려?”

“처음부터 그렇게 많이 얘기 안 해 줄걸. 어차피 하루 이틀 입원할 거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응. 그럼 보러 간다.”

“공격적이래, 조심해.”

“어유, 야. 다 알아서 하지. 우리가 이런 건 전문이야, 모르냐?”

이 교수는 손을 흔들고는 레지던트를 대동하고 병실 안으로 향했다.

보호의와 N95 마스크 그리고 장갑을 착용하고서였다.

‘아직 외래 끝날 시간 되려면 30분은 있으니까…… 괜찮겠지.’

아마 박원상이 왔는데 면담 중이면 되게 뭐라고 할 게 뻔했다.

지는 맨날 늦는 주제에 남이 늦으면 화내는 사람의 전형이 바로 그이지 않던가.

물론 그래 봐야 암 바(Arm bar) 한번 걸면 바로 조용해지긴 하겠지만.

“으아악!”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는데, 병실 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뭐야.”

“어……. 또 물려고 했나?”

재원의 말에 유현은 즉시 몸을 일으켰다.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ARS-24는 타액 전파야.’

크게 다쳤을 거란 생각이 들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누군가를 물어서 사냥하게끔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기에는 목도 너무 짧을뿐더러 이의 형태 또한 불리했다.

하지만 ARS-24 감염자에게 물리는 거라면 상처가 크건 작건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어? 가 보자. 뭐 해, 인마.”

“네? 아, 전 좀 무서운데.”

“무섭긴, 너 미쳤어?”

“그…… 크게 다쳤을 리는 없어요. 다리는 묶어 놨어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냐.”

해서 유현은 주춤거리는 재원을 끌고 병실로 내달렸다.

재원이 나름 저항을 해 보았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체격부터가 달랐다.

“야, 괜찮아?”

“아……. 놀래라. 갑자기 달려들어 가지고…….”

“물린 게 아니네? 피는 누구 피야.”

“환자분.”

“네가 쳤어?”

안에 들어가 보니 환자가 입술에서 피를 질질 흘리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서였다.

“어? 어. 몸 지키겠다고 복싱 배웠는데 환자를 쳤네.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네? 아뇨. 그…… 무슨 일이 있었나요?”

“기억 안 나세요? 방금…….”

“전혀…… 전혀 모르겠습니다.”

“음.”

이 교수는 피 묻은 장갑을 내려다보며 신음을 흘렸다.

그가 전해 들었던 환자의 증상은 배고픔, 공격성 이렇게 둘뿐이었는데, 방금 하나가 추가되었다.

“이게 뭔 일이래.”

마침 도착한 박원상이 피 묻은 이순규와 환자의 입술을 치료해 주고 있는 유현을 보며 중얼거렸다.

많이 황당해 보였는데, 그럴 만도 했다.

급하다고 해서 왔더니 환자가 다쳤으니까.

“기억 상실이 있네…….”

일행은 환자의 입술을 대강 치료하고서 스테이션으로 모였다.

이 교수는 아까 있던 일을 떠올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유현은 그런 이 교수를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박원상은 이렇게 이순규만 볼 거면 뭐 하러 나를 불렀냐고 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분위기가 너무 심각했다.

눈치 없는 놈이 되기는 싫었기에 일단은 잠자코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나한테도 그런 거 같아.”

“어? 이 중요한 일을 왜 얘기를 안 했어.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아냐.”

“그땐 환자가 죽었다 살아났을 때라고. 그런 게 중요하게 보였겠냐?”

“아……. 그거.”

이 교수는 정말로 환자가 죽었다 살았다고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딱히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괜히 맞을 필요는 없지.’

설마 나이 들어서 때릴 리는 없겠지만.

어린 시절 겪은 기억은 오래가는 법이었다.

그게 고통스러울수록 더했다.

“아무튼, 그럼 이게 세 번째…… 정형화된 패턴이라고 봐야겠는데…… 너도 물려고 했어?”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랬던 거 같아.”

“그리고 나서는 기억을 못 했어?”

“어? 어. 확실히…… 그런 반응이었어. 기억을 아예 못하는 거 같더라고.”

“공교로운데…….”

아까 자신을 물려고 할 때의 공격성은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아마 다리가 자유로웠거나, 옆에 레지던트가 환자의 팔을 밀쳐 내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어디라도 물어뜯겼으리라.

‘그러고 나서 그 사실을 완전히 잊어?’

기억 상실이라는 진단명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또 직접 본 적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단기 기억 상실이 전향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다.

“그…… 분위기 너무 심각한데 끼어드는 거 같아서 미안한데.”

침묵이 지속되자 지루했는지, 박원상이 입을 열었다.

유현에게는 정신과적인 문제도 중요했지만 이쪽도 중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 얘기해 봐. 환자 얘기지? 아니면 뒤진다?”

“아, 당연히 환자 얘기지. 내가 미쳤냐? 이런 상황에 딴 얘기하게.”

“그래, 그럼 해 봐.”

“일단…… 지금 이 환자 호르몬 말야.”

“어.”

“호르몬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다 튀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거 잘 보면 되게 잘 세팅된 값이야.”

“세팅……?”

“우리나라는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많이 하잖아? 그 사람들 대상으로 연구한 값이 있는데 경향이 지금 이 환자랑 비슷해.”

“그런…… 그런 몸은 아니었는데.”

응급실로 실려 온 환자라 제대로 움직이는 걸 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근육질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정도는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더랬다.

“전에 약을 하진 않았을 거야. 아니, 그럴 수가 없어.”

“무슨 소리야?”

“저 환자 수치 절댓값이 연구 당시 채취했던 검체들보다 거의 열 배는 넘어. 오래 못 살아 이 정도면.”

“허…….”

“그리고 말야.”

박원상은 잠깐 병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환자…… 너랑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커진 거 같진 않아?”

“몸무게야 늘었지. 엄청 먹는데…….”

“아니, 키 말야. 아까 보니까 키가 좀 더 큰 거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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