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ARS-24 (3)
유현은 전화를 받기 전에 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02-xxx-1542.’
15층 서병동에서 걸려 온 전화라는 뜻이었다.
기억하기로 그 병동엔 현재 어제 죽다 살아난 환자 말고는 유현 담당 환자가 없었다.
‘무슨 일이지?’
아침 일찍 보고 온 마당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이상 소견이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그 전의 상태를 고려하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좋았다.
그런 환자가 몇 시간 사이에 확 안 좋아질 수 있을까?
모를 일이었다.
인류가 경험해 온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는 ARS-24에 의한 팬데믹 사태 이후론 섣부른 판단이 무의미해졌으니까.
“네, 정유현입니다.”
해서 유현은 약간의 마음의 준비를 한 채 전화를 받았다.
-아, 네. 교수님. 저 장효숙입니다.
“어, 수간호사 선생님이 웬일이에요?”
유현이 인턴 돌 때 신규로 온 덕에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은 바 있는 사람이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한 사람은 교수가 되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병동 수간호사가 된 이후에도 나름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래 봐야 워낙에 바쁜 대학 병원 특성상 만나면 인사나 주고받는다 정도이긴 했지만.
아무튼, 수간호사가 직접 전화를 해 온 것은 드문 일이었다.
-아, 오늘 새벽에 올라온 그 환자 때문에요. 박기태.
“너무 급하게 올리나 했는데, 문제 생겼나요?”
-이걸 문제라고 해야 할까 모르겠는데…….
“어떤데요?”
이상한 일이었다.
병동 수간호사쯤 되면.
그러니까 병동 일을 한 지 십수 년이 지나고 나면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내과 병동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 같은 경우엔 더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그런 수간호사가 이리도 망설이며 노티를 해 오다니.
유현은 저도 모르게 휴대폰을 귀에 바짝 댔다.
“뭐야, 뭐예요.”
옆에 있던 우식 또한 그랬다.
유현과 워낙 오래된 사이 아니던가.
표정만 봐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렸다.
“잠깐만, 너는 좀 조용해 봐.”
-옆에 누구 있어요?
“최우식이요.”
-아, 도망간 후배. 맨날 욕하죠?
“내가 언제 그랬다고. 아무튼, 어떤데요?”
다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심각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 와중에 농담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테니.
-그…… 환자 식이 시작했잖아요. 오늘 아침부터.
“네, 그랬죠. 미음으로 시작했죠.”
-네. 근데 이 환자가…… 너무 많이 먹어요. 주치의 선생님이 검사했는데 일단 이상이 있진 않거든요? 근데…… 그 양이 너무 많아요.
“양이 많다? 재원이가 보고 있는 건 맞죠?”
-네. 통증도 없고, 혹시 몰라서 사진도 찍어 봤는데 괜찮아요. 다 괜찮은데, 너무 많이 먹어요.
“으음.”
대체 어느 정도나 먹길래 많이 먹는 걸로 수간호사가 콜을 할까.
유현으로서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해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장효숙 간호사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일단 홀드 시켜 놓긴 했거든요? 컨펌 없이는 식이를 더 진행해서는 안 될 거 같아서요.
“아, 네. 잘하셨어요.”
-근데 식이를 제한하니까 환자가 너무 거칠어져서요. 좀 재워도 될까요? 양재원 선생님이 지금 잡고 있는데, 아시잖아요. 양재원 선생님…….
“허약하지. 음, 깬 지 얼마 안 된 마당에 너무 난동 피워서 좋을 일은 없죠. 뭐가 좋을까…….”
환자가 외상으로 온 것은 아니긴 했다.
그 말은 곧 날뛴다고 어디 벌어질 만한 상처가 있는 건 아니란 얘기.
하지만 혈압 정도는 얼마든지 오를 수 있었고, 허약해진 상황에서 정도 이상의 혈압은 악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확 재우는 건 별로지.’
우선 호흡이 억제될 수 있었다.
또다시 삽관하고 중환자실로 내려가야 할 수도 있단 얘기였다.
‘그건 안 되고, 그래. 그냥 수면제나 주자.’
해서 유현은 수면제 중 호흡 억제가 보고된 바 없는 약을 구두로 처방했다.
어차피 재원이 옆에서 보고 줄 테니 그래도 괜찮을 터였다.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혹시 특이 사항 있으면 연락 드려도 될까요?
“그러시죠. 재원이는 이런 것도 해결이 안 되네.”
-어유……. 근데 와서 보시면 그런 말은 안 나오실 거예요. 어찌나 환자가 거친지…… 저도 처음 봤어요, 저러는 건. 지금 이송 요원님에 인턴 선생님까지 왔는데도 안 돼요.
“흠. 이상하네. 섬망인가.”
-그런 것치고는 요구 사항이 정확해요. 밥을 달래요.
“거참……. 일단 그럼 정신과 협진도 좀 내라고 하시고요. 재우긴 합시다.”
-네, 교수님.
유현은 전화를 끊고서도 한동안 우식을 바라보지 못했다.
유현으로서도 처음 듣는 증상이어서 그랬다.
‘죽다 살아난 환자가 밥을 많이 달라고 하고 안 주니까 난동을 피운다라.’
이런 일이 있던가?
수없이 많은 케이스 리포트를 살펴 온 그로서도 기억이 없었다.
“이 형 또 사람 앞에 두고 생각하네. 로댕이에요? 몸도 조각상 비슷하게 생겨 가지고.”
“아, 미안. 지금 환자가 좀 이상하네, 진짜.”
“나도 듣기는 했어요. 이런 사례는 없었던 거 같은데……. 이게 설마 바이러스 때문일까요?”
“모르지. 어쩌면 영상에서 보이지 않았던 뇌 손상이 있었을 수도 있어.”
“뇌 손상이라.”
현대 의학은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 과학만은 아직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은 분야가 많았다.
일단 실험이 어려웠다.
뇌를 두고 하는 실험이 현대 사회에서 인가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주 사소한 설문지조차도 기관생명윤리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한 시대였다.
“전두엽이 손상되었다면 억제가 좀 풀리잖아. 그게 식욕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공격성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
“아, 그렇긴 하네. 이야, 정유현 안 죽었네. 설마 아직도 감염 내과 말고 다른 것도 파는 거예요?”
“나야 뭐……. 취미랄 게 운동 말고는 없잖아. 퇴근하면 할 게 공부밖에 더 있나.”
“연애를 좀 하라니까요. 형처럼 잘생기고 몸까지 좋은 사람이 왜 사람을 안 만나.”
“넌 결혼해서 좋냐? 맨날 제수씨 험담만 하는 놈이.”
“와……. 그건 반칙이지, 형…….”
유현은 결혼 얘기가 나오자마자 급격하게 얼굴이 어두워진 우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야, 너 세종 언제까지 내려가야 되냐?”
“오늘은 이걸로 끝이죠.”
“아니, 공무원 힘들다 하더니 날로 먹네?”
“와……. 형 나 이거 다 보고서 형식으로 바꿔서 내일 오전에 내야 돼요. 뒤져 진짜.”
“아무튼, 시간 있는 거 아냐. 밥이나 먹고 가자. 계속 먹는 얘기 했더니 배고프네.”
“좋죠. 형이 사는 거죠?”
“교수 월급 빤한 거 알면서.”
“형 나 용돈 20 받아요…….”
“알았다…….”
그래도 대한민국 서기관인데.
용돈이 20이라니.
유현은 다시 한번 후배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건물 뒤쪽에 위치한 노포집(오래된 가게)으로 향했다.
처음 왔을 땐 그저 우연이었는데, 한번 와 보니 맛이 좋아서 매번 질병관리부 관련 출장 시에는 여기에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쩍어찌나 오래된 가게인지, 손이 식탁 위에 붙었다 떨어지는 감촉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니까 위생만 따지고 보면 절대 와서는 안 될 집이다, 이 말인데.
이상하게 끌리는 맛이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유럽 쪽은 또 뒤집어졌다며?”
“아, 프랑스요? 거기야 뭐……. 말을 너무 안 듣잖아요. 거리에 마스크 낀 사람이 없대요. 공무원들이 죽을라 그래. 백신도 안 맞으면서 무슨 깡인지 모르겠어요.”
“그런 거 보면 참 우리나라 사람들은 착해, 그지?”
“그렇죠. 어찌 되었건 공공장소에서는 거의 무조건 끼니까. 손도 열심히 닦고. 근데 그래서 이비인후과랑 소아과 간 친구들은 완전 조졌던데.”
“아……. 어, 통계 보면 환자가 거의 반 토막이더라. 독감은 유행 시즌이 없어졌어. 이제 그거 분류 새로 해야 할 판이야.”
“그럴 만도 하죠. 우리 애도 이제 4살인데 손을 진짜 야무지게 닦는다니까요. 그거 보고 이비인후과 친구가 소름이 끼친대. 이제 다시는 감기 유행이 없을 거 같아서.”
“좋은 일인데, 슬프기도 하네.”
둘은 동업자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물잔을 부딪치고는 방금 나온 제육볶음과 순두부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늘 느끼는 건데 여기 음식은 약간 죄책감이 들어.”
“왜요. 조미료 맛이 너무 강해서?”
“어. 부엌을 내가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부을 거 같아.”
“그래서 맛있잖아요. 세종엔 아직 이런 데가 없어.”
“너 말만 들으면 세종은 무슨 불모지 같다, 야.”
“그렇진 않은데……. 왔다 갔다 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좀 아쉬움이 있죠. 아무튼, 잘 먹었어요. 병원 들어가 봐야죠?”
“그렇지.”
우식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유현을 보며 쯔쯔 혀를 찼다.
4년 차 때까지, 아니, 군의관 마치고 들어온 펠로우 때도 집에 안 가더니 여전히 그러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랫사람들로서는 노티가 편하니 좋은 점도 있었지만.
윗사람이 너무 열심히 하는 게 꼭 바람직한 일만은 아니었다.
“아직도 따로 방 안 구하고 병원에서 틀어박혀 사는 건 아니죠? 레지던트들이 싫어해요.”
“그 정돈 아냐. 잠은 오피스텔에서 자.”
“그게…… 아니다, 이런다고 바뀔 사람이 아니지. 알았어요. 담에…… 담에 언제 보죠?”
“특별한 일 없으면 다음 달이지. 근데 이 케이스 때문에 모르겠네?”
“아, 그렇네. 잘 봐주세요. 진짜 특이한 케이스면 나 또 서울 올라올 수 있으니까.”
“그래. 열심히 볼게.”
유현은 우식을 일별하고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느새 머릿속에는 환자 생각만 가득했다.
어느 정도였나고 하면, 도착하고 나서야 병원 주차장인 것을 깨달았을 지경이었다.
‘무아지경으로 운전하고 왔네. 이런 미친.’
유현은 고개를 털어 내고는 15층 서병동으로 향했다.
“밥, 밥 가져와!”
“섬망은 아니에요. 대화가 되잖아요. 환각이나 환청을 듣는 것도 아니고.”
“밥 가져오라고!”
“그럼 뭔데요, 이게.”
“글쎄요. 일단은 할돌(Haloperidol, 조현병 치료제)을 좀 주고 신경과 협진을…….”
“아, 미치겠네.”
딱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누가 누군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환자는 연신 밥을 외치고 있었고, 정신과는 모르겠다며 안정제를 주자고 하고 있었다.
사이에 낀 양재원은 곤란하다는 얼굴로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그러다 유현을 발견하고는 마치 구세주라도 본 얼굴이 되어 달려왔다.
“교, 교수님!”
“누가 보면 이산가족 상봉하는 줄 알겠네.”
“아니,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야, 교수를 태우냐? 그것도 일하다 온 사람을.”
“너무 이상하다니까요……. 저거 봐요. 저거.”
“음.”
이상하다는 말을 반복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광경이긴 했다.
재원이 보다 못해 뭘 좀 쥐여다 준 모양인데, 식판이 싹 비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환자는 밥만 외치고 있었다.
연기 같지는 않았다.
단지 전두엽으로 인한 억제가 풀려서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배고프다고!
환자는 실제로 식욕을 느끼는 듯했다.
그것도 통제가 되지 않는 수준의 식욕을.
무엇 때문에 그럴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
의학적인 추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