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ARS-24 (2)
“안녕하세요, 선배.”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 하나가 인사를 건네왔다.
유현을 따라 감염내과에 남았다가, 질병관리부 특채에 뽑혀 5급 사무관으로 들어가 지금은 4급 서기관이 된 최우식이었다.
이름이 비슷하기도 하거니와 원체 똑똑한 놈이라 특별히 이뻐하기도 했더랬다.
유현 또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아 주었다.
“어. 별일 없어?”
“별일…… 있기야 하죠. 이게 뭘 끝나질 않으니까요.”
우식은 지친 얼굴로 뒤편에 자리한 포스트 팬데믹 시대, 즉 뉴 노멀(New Normal,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기준)에 관해 쓰여 있는 포스터를 가리켰다.
처음 질병관리부에 들어갈 때만 해도 주짓수 동아리 에이스였던 만큼 근육이 좀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날씬함을 넘어 마른 체형을 향해 바뀌어 가고 있었다.
“하긴……. 그래도 이번 달은 브레이크 없었잖아?”
“우리나라는 그런데, 일본하고 중국은 컨트롤이 잘 안 돼요. 그렇다고 입국 제한 걸기엔 경제가 말썽이고……. 입국하는 사람들 전수 조사 이어 나가야 되는데, 그러자니 저희만 죽어 나가죠.”
“지금 ‘내가 그때 그냥 병원 남으라고 했지’라고 말하면 화낼 거지?”
“아뇨. 진짜 남을 걸 그랬어요. 내가 그땐 미쳤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 실적 좋은 모양이던데. 홍보 모델 아냐?”
“재미는 있어요. 너무 힘들어서 그렇지. 아무튼, 같이 들어가시죠. 오늘도 안건이 좀 있어요.”
우식은 자신이 괜히 마른 게 아니라며 넋두리를 늘어놓다가 이내 회의실로 향했다.
질병관리부가 워낙에 중요한 행정부가 되다 보니, 회의실도 좋았다.
테헤란로가 내려다보이는 회의실이라니.
아마 질병관리부처럼 누가 봐도 죽도록 일하는 부가 아니라 다른 부가 이만한 예산을 쓰고 있다면 벌써 여기저기서 태클이 들어왔을 터였다.
“우선 각 나라에서 보고된 변종들입니다.”
잠시 창밖에 시선을 두고 있으려니, 어느새 단상 앞에 선 우식이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사방에 각 대학의 감염내과 교수들, 그중에서도 과장급 인사들이 즐비했다.
벌써 수년째, 매달 이어지고 있는 비슷한 회의였지만 참석 자체는 다들 열심히 하고 있었다.
“흐암.”
“아……. 또 죽었네.”
다만 태도까지 빠릿빠릿하진 않았다.
감염내과 의사가 돼 가지고 사상 초유의 팬데믹 사태를 맞이해 저럴 수가 있나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맨날 같은 소리만 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대한민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방역이 잘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였다.
심지어 바이러스 ARS-24 자체가 동양인, 그중에서도 특히 동아시아인에게만큼은 치명률이 낮다는 보고가 있어 더더욱 회의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먼저 중국입니다.”
그렇다고 질병관리부 소속 공무원들까지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우식은 최선을 다해 준비한 자료를 발표해 나갔다.
유현도 다른 사람이 아닌 후배의 발표이기에 집중해서 들었다.
“기존의 치료제가 잘 듣지 않는 형태의 ARS-24가 발생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다행히 치명률은 높지 않아 대증 치료만으로도 환자는 회복했으나, 새로운 브레이크가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또…….”
변종이라고 해 봐야 아주 드라마틱한 차이를 보이는 녀석은 드물었다.
물론 드물다는 말은 간혹 있기는 있다는 얘기였다.
쾅갑자기 재생된 영상에 졸거나 게임하고 있던 교수들이 화들짝 놀라며 앞을 바라보았다.
우식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또 그러길 바랐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중국 흑룡강성 대병원에서 보고된 케이스입니다. 처음부터 ARS-24로 의심되었던 환자는 아닙니다. 호흡기 증상이 거의 없었고, 발열 및 의식 변화를 주소로 내원한 환자인데…… 치료 도중 갑자기 거친 모습을 보이면서 의료진에게 상해를 입힌 바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그 과정에서 의료진을 물어뜯었다는 건데, 다행히 의료진은 회복 중에 있습니다. 이 영상은 이후 1인실에 격리된 후 녹화된 영상입니다.”
영상 속 남자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중간중간 중국어인지 뭔지 모를 언어를 외치고 있었는데 알아듣기는 어려웠다.
학창 시절 의대생으로서는 실로 드물게 휴학계를 내고 중국 일주에 나섰던 유현에게도 그랬다.
“지금은 어떻게 됐습니까?”
유현이 환자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다른 교수 하나가 손을 들었다.
다들 궁금해하던 주제였기에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우식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마이크를 잡았다.
“저렇게 이상 행동을 보이다 지금은 안정된 상황입니다. 특이할 점은 접촉했던 의료진 중에서도 비슷한 이상 행동을 보인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다만 의료진의 경우엔 이 환자처럼 강한 공격성을 보이진 않았습니다. 영상을 보시죠.”
이번엔 다른 사내가 담긴 영상이 재생되었다.
우식의 말대로 이 사람은 확실히 좀 얌전해 보였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뜻이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하며, 이리저리 아무 데나 침을 뱉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흑룡강성 대병원이면 그래도 3급 병원인데, 그곳에서 일하는 의사가 보일 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전두엽 기능이 약해지는 겁니까?”
다른 교수 하나가 질문을 던졌고, 우식은 별로 당황하는 기색 없이 답했다.
“뇌파 검사가 되어 있지는 않고, 영상 검사만 시행했다고 합니다. CT상에 전두엽이 약간 검게 변한 소견이 보였으나 범위는 좁았습니다. MRI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고요. 회복된 이후에는 정상 소견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사진을 볼 수는 없습니까?”
“안타깝게도 중국 정부에서 그것까지는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변종인데…… 그렇습니까?”
“중국 정부에서는 이미 다 완치가 된 상태라 그렇게 심각하다고 판단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음…….”
질문했던 교수가 뭔가 불만을 토로하며 자리에 앉았다.
중국 정부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협조하지 않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였다.
매번 협약에 따라 투명하게 모든 정보를 WHO을 통해 공개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의사들로서는 불만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었다.
심지어 WHO에 이에 대한 불만을 제기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WHO가 중국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후원금 때문인지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변종은…….”
우식은 계속해서 변종에 대한 보고를 이어 나갔다.
아까와 같이 모두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은 없었다.
아주 사소한 변이들이었다.
가령 기존에 듣던 치료제에 반응이 좀 떨어진다든지, 2차 감염이나 돌파 감염을 좀 더 잘 유발한다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몇 년 전이었다면 모든 언론에서 난리 부르스를 떨 만한 내용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매달 이 비슷한 변종이 몇 개씩 보고되기에 그랬다.
이제 대중들에게 ARS-24는 조금 독한 독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 이것으로 제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그럼…… 교수님들 혹시 보고하실 케이스가 있으십니까? 제가 알기로 아직 접수된 것은 없는데…… 기한 이후로라도 케이스가 생기셨다면 지금 해 주셔도 좋습니다.”
대략 50여 분간 시큰둥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발표 끝에 우식이 교수들을 향해 케이스 발표를 요청했다.
딱히 기대하고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애초에 방역이 잘되고 있어, 일 발생 환자 수가 100명 언저리로 조절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변종이 발견될 확률이 낮았다.
해서 대강 끝내려는데 누군가 손을 들었다.
누군고 하니 정유현이었다.
‘선배?’
저 양반은 장난이나 칠 사람은 아니었다.
평소 아마추어 격투기 대회에 나가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짓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환자와 관련해서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도리어 감염 학계에서 굵직굵직한 업적을 남기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우식이 대학에 남지 않고 정책 쪽으로 빠진 것도 도저히 유현과 같은 학문적 성취는 남길 수 없겠단 생각에서였을 지경이었다.
“아, 한국대학교 병원 정유현 교수님.”
“응?”
정유현이라는 이름에 다른 감염내과 교수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우식과는 달리 그리 호의적이진 않았다.
젊은 나이에 비해 너무 빨리 명성을 얻은 탓이었다.
특히 NEJM 표지에 실렸던 ‘동북아시아인의 유전학적 특성과 ARS-24 감염의 치명률과의 연관성’이라는 논문이 결정적이었다.
나이 많은 감염내과 교수들은 이 논문이 너무 급진적이라 여겼고, 또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실제 방역이 이 논문을 기초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동시에 많은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그랬다.
“아, 죄송합니다. 어제 새로운 케이스를 봐서요. 미처 기한 내에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앞으로 나오시죠.”
해서 우식이 마이크를 건네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교수들은 벌써 자리를 뜨고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에서였는데, 실상은 유현이 잘난 척하는 꼴은 못 봐 주겠다 뭐 이런 뜻이 더 컸다.
“음. 한국대학교 병원 정유현입니다. 케이스 발표하겠습니다.”
물론 유현은 딱히 그따위 것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해서 표정 변화도 없이 즉시 케이스 발표에 들어갔다.
환자의 나이, 성별부터 처음 응급실로 왔던 때의 주된 호소 증상부터 시작했는데, 아까 중국 흑룡강성에서 보고되었던 케이스와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있었다.
유현 또한 아까 그 케이스를 들으며 기시감이 들 지경이었으니 다른 이들 또한 그랬을 터였다.
특히 우식이 그랬다.
“혹시 그 환자도 공격성을 보였습니까?”
해서 제일 궁금했던 것을 물었고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것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러곤 뇌사 판정까지 갔다가 취소된 후 현재는 멀쩡해졌다는 말을 입에 올렸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주로 말도 안 된단 의견이었다.
영상 검사 소견을 첨부했음에도 그랬다.
“그거…… 뭔가 오류가 있었던 건 아닙니까?”
“한국대학교 병원 영상의학과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음……. 정말 이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심지어 우식조차도 의심하고 있었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말하고 있는 유현 또한 납득이 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의학은 논리적인 학문이 아니라, 결국, 통계의 집합이지 않은가.
이미 벌어진 현상이 있다면 그것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왜 일어났는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만 생각하다 보면 발전할 수 없을뿐더러 사고 칠 가능성도 있었다.
아직 현대 의학은 인체에 대한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었기에 그랬다.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했을 뿐입니다.”
“음……. 알겠…… 알겠습니다. 우선 발표는 이것으로 마쳐도 될까요??”
“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서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이에 우식은 발표 후에 다가와 진중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선배, 이거 진짜예요? 오류가 있던 게 아니라?”
“아니라니까. 진짜야.”
“음…….”
“왜. 설마 못 믿겠어?”
“아뇨, 아뇨. 저도 이제 세종 내려가서 상부에 보고해야 되는데……. 이거 자료 좀 더 있으면 주실 수 있어요? 선배? 뭐 해요?”
“아, 미안. 병원에서 전화 왔어. 그 환자 있는 병동이야. 뭔 일 있으면 연락 달라고 했거든. 받고 얘기해도 돼?”
어제 바로 죽었다 살아난 환자 아닌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란 얘기였다.
그래서 그런가, 유현은 일종의 각오라도 한 얼굴을 한 채 우식을 바라보았다.
“아……. 당연하죠.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