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화 (1/323)

1화 ARS-24 (1)

“이상한데…….”

한국대학교 병원 감염내과 과장 정유현.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그는 격리실 창문 너머에 누워 있는 환자를 손쉽게 내다볼 수 있었다.

‘말이 안 되는데…….’

환자가 어레스트 상태로 응급실로 실려 온 것이 벌써 7일 전.

오자마자 시행한 CPR을 통해 심장 박동은 일부 돌아왔으나, 머리에 발병한 뇌염이 문제였다.

바이러스는 환자의 심장과 뇌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통상적인 ARS-24 감염과는 조금 다른 질병 경과였다.

호흡기가 아니라 심장과 머리라니.

다 같이 망가졌다면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오로지 심장과 뇌만 망가져 있었다.

“영상 띄워 봐.”

“네, 교수님.”

유현의 말에 늦은 시간까지 집에 못 가고 대기 중이던 레지던트가 부리나케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자 곧 감염내과 정유현 교수 앞으로 입원한 환자, 박기태의 영상들이 떴다.

애초에 뇌사 판정을 받게 할 생각이었기에 CT와 MRI 모두 촬영되어 있었다.

-Corticomedullary Differentiation(겉질 속질 분화)이 소실되어 있어 뇌사에 합당한 소견임.

CT 판독은 아주 명확하게 뇌사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현이 보기에도 그랬다.

‘MRI도…… 겉질(Cortex)과 속질(Medullar)이 구분이 안 돼.’

그외 전반적인 부종 등, 어떻게 봐도 뇌사에 합당했다.

끼이익

그렇다면 방금 들려온 이 소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무리 객관적인 검사들이 죽음을 시사한다고 해도, 환자가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뇌사 판정 위원회는 취소해야만 했다.

유현은 그 후 내내 환자 옆에 붙어 있던 참이었다.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고서였다.

‘돌겠네.’

환장하게 된 것은 레지던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교수가 집에 가야 주치의도 집에 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해서 제발 이제 그만 가자는 기도만 하염없이 올리고 있었다.

“재원아.”

“네?”

그때 유현이 레지던트를 불렀다.

피곤함에 찌든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재원이라는 레지던트와는 정반대되는 얼굴이었다.

“일단 CT랑 MRI 다시 찍어 보자. 혹시 소견이 변했을 수도 있어.”

“하지만 교수님……. 이거…… 제가 봐도 뇌사가 맞아요. 여기서 회복이 된다는 건…….”

“손가락 움직이잖아. 내가 말했지? 의학은 어찌 되었건 각 현상을 통계적으로 정리해 나가는 학문이야. 얼마든지 예외는 있을 수 있어.”

“으음……. 알겠…… 알겠습니다.”

애초에 조교수로 임용된 것이 올해라, 바로 작년까지는 펠로우와 레지던트 관계였던 둘이었다.

특히 유현이 군대 갔다 와서 펠로우 1년 차로 일할 때, 레지던트 1년 차로 들어온 재원은 꽤 끈끈한 사이였다.

덕분에 재원은 투덜거리긴 했지만 곧 시킨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현 또한 몸을 일으켰다.

제자에게만 일을 시키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혹 영상 소견이 변한다면 그 자리에 꼭 있고 싶었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최초의 순간일 테니까.

‘그냥…… 오류…… 같기는 한데.’

신경과 친구에게 물어보니, 간혹 뇌가 죽고 나서도 척수 반사 같은 것이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아마도 그런 것 아니겠냐는 말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들렸지만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럼 찍겠습니다.”

늦은 시간이면서 동시에 응급실에 환자가 몰려오기에는 또 이른 시간이라 CT는 별 예약 없이도 바로 찍을 수 있었다.

유현은 방사선사의 조작과 함께 기기로 빨려들어 가는 환자를 바라보았다.

그 옆에 서서 말없이 앰부(Ambu, 수동식 인공호흡기)를 짜고 있는 재원도 그랬다.

‘이게 뭔 짓이냐……. 여기서 변화가 있으면 진짜 내가…….’

차이가 있다면 재원은 아주 부정적이었고, 유현은 그나마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영상 올라옵니다.”

CT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방금 찍은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

그걸 본 유현은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분명 뇌사에 합당했었는데, 지금은 거의 정상이라고 해도 좋을 상태가 되어 있었다.

‘다시…… 살아났어?’

혹시 모른다고 했지만.

이쯤 되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잉?”

뒤따라 나온 재원 또한 비슷한 반응이었다.

“이거 이 환자 거 맞아요?”

“네, 맞습니다.”

“허…….”

CT 찍은 사람이 확인을 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믿기 어렵다는 얼굴이었다.

“야, 재원아.”

충격에서 먼저 벗어난 것은 유현이었다.

“네?”

“이거…… 이거 대박이다. 일단…… 일단 케이스…… 케이스 리포트 하자. 이건 내면 무조건 실려. 어디라도 실려.”

“아? 아! 네, 네!”

희귀하다는 말조차 부족할 일 아니던가.

문자 그대로 죽었다 살아나다니.

덕분에 재원은 죽상이 되어 환자를 끌고 갔던 것과는 달리 돌아올 때는 밝은 낯이 되어 있었다.

“위닝도 고려해야겠어.”

“네, 교수님.”

“너 왜 이렇게 신났냐? 논문 해결돼서?”

“네? 네. 그렇죠. 이제 케이스 리포트만 내도 전문의 시험 볼 수 있잖아요. 근데 이런 케이스면…… 뭐 나중에도 도움 되지 않을까요?”

“너 무슨 과 남고 싶다고?”

“소화기죠. 내시경이라도 해야 페이가 세다더라고요.”

“참, 넌 실업계지. 대학 병원 남을 생각은 전혀 없고?”

“지금 시간을 보세요. 10시가 넘었는데 퇴근도 못 하시고…… 제가 남고 싶겠습니까?”

“그것도 그렇네.”

유현은 재원의 말에 낄낄 웃었다.

그러곤 아까 그 자리로 돌아온 환자에게 다가가 약을 줄였다.

그러자 반응이 있었다.

자발 호흡이 돌아오고 있었다.

영상에서 확인했던 것을 실제로도 확인하게 된 셈이었다.

“정말…… 살았네, 이거.”

“대박…….”

“일단 내가 세팅 바꾸고 있을 테니까…… 너는 조금 쉬다가 2시쯤 와. 새벽에 보려면 힘들 거 아냐.”

“와……. 이런 식이에요?”

“그럼 네가 내일 외래 보고 질병관리부 갈래?”

“아뇨, 그건…… 그건 안 되죠.”

재원에게는 다행이게도 환자는 약을 줄이는 족족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교대하기 한참 전에 벌써 입에 끼워 넣었던 관을 빼낼 수 있을 지경이었다.

“박기태 환자분?”

유현은 관을 빼자마자 환자의 이름부터 불렀다.

얼굴과 옆의 모니터, 더 자세히 말하자면 산소 포화도를 면밀히 살피면서였다.

혹 떨어지기 시작하면 냅다 플라스틴 관을 다시 꽂을 생각이었다.

‘음…….’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포화도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기에 유현은 우선 잠자코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길 잠시, 갑자기 환자가 유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고 했다.

“뭐야, 왜 그러세요. 여기 병원입니다.”

유현은 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해 온 주짓수 등의 운동으로 인해 단련된 단단한 팔뚝으로 환자의 손목을 잡았다.

애초에 죽다 살아난 입장에서 이 힘을 견딜 수는 없었다.

유현은 그리 어렵지 않게 환자를 제압한 채 포화도와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뭐지? 눈빛이…… 아니, 착각인가.’

아주 잠깐 뜻 모를 적대감이 느껴졌지만, 곧 해소되었다.

환자는 마치 단 한 번도 유현을 공격한 적이 없다는 듯 평온한 말투로 대답해 왔다.

“아……. 네. 그……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환자분. 여기 어딘 거 같으세요?”

“병원…… 병원입니다.”

“저는 누구 같아요?”

“의사…… 아, 정 교수님.”

간단한 검사를 통해 유현은 환자의 의식 수준이 완전히 회복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삽관을 고민해야 할 정도가 아니라, 이쯤 되면 일반 병실로 올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아냐, 그건 아니지.’

유현은 이내 이 환자가 ARS-24 바이러스 감염자라는 것을 떠올렸다.

일반적인 호흡기계 ARS-24 감염자라면야 이제 조금 느슨하게 관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환자의 경우엔 머리 쪽으로 엄청난 친밀도를 가지고 있는 형태의 바이러스로 생각되었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가해한 일도 아마도 그 바이러스 때문일 터였다.

‘아마도…… 변종…… 그것도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지.’

유현은 자신이 입고 있는 보호의를 다시 한번 확인한 후, 환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답답하시겠지만, 조금만 더 이곳에서 치료받으실 겁니다. 괜찮으시겠죠?”

“아……. 네. 그럼요. 물론입니다.”

환자는 어렵사리 본인이 죽다 살아났다는 사실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천성이 부드러운 편이거나.

아무튼, 유현은 환자의 동의를 구한 후 격리 병실을 빠져나왔다.

“완전히 자발 호흡이 있는데…… 그럼 어떻게 할까요?”

“주치의는 자리 지킬 필요 없이, 콜만 받으면 되겠어요. 대신이라고 하면 뭣한데……. 뇌척수액 검사랑 랩이나 한 번 더 긁죠. 감염이 정말 좋아진 건지 확인해 봐야 하니까.”

“네, 교수님.”

“그리고 이 환자에 대해서는 일단 함구하세요. 초기 검사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는데, 그럼 병원만 독박이니까요.”

“네. 당연하죠. 환자 얘기를 어디 가서 하겠어요.”

“네, 그럼…… 평안한 밤 되시길.”

그러곤 담당 간호사에게도 지시를 내린 후 아예 중환자실에서 나왔다.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으나 머릿속은 더없이 복잡한 상태였다.

‘머리…… 뇌에 친화도를 보이는 바이러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환자……. 이거 내일 미팅 때 할 말이 좀 많겠는데.’

그냥 떠들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믿지 못할 얘기 아닌가.

덕분에 유현은 그 후로도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대가는 바로 다음 날 치러야만 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교수님, 웬일이세요? 외래 보시는 중간중간 하품을 다 하시고.”

평소 강철 체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로서는 실로 드문 일이었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원에게 유현은 그저 웃어 보였다.

‘괜히 이상한 소리 해서 불안하게 만들 필요 없지.’

환자가 하나 있는데 죽었다 살아났다, 이딴 얘기를 해서 뭐 하는가.

“그냥, 어제 재밌는 미드가 있어서 보다 보니.”

“와……. 교수님도 미드 같은 거 보시는구나.”

“왜?”

“유튜브도 의학 채널만 보잖아요. 아예 노는 방법을 모르는 줄 알았죠.”

“그럴 리가 있나. 아무튼, 나 오후에는 출장이 있어서 오늘 밥은 대강 때울게. 이걸로 맛있는 거 먹어.”

“오, 감사합니다.”

유현은 법인 카드를 들고 기뻐하는 사원을 뒤로하고 로비로 빠져나와 택시에 올랐다.

“질병관리부요.”

“네, 알겠습니다.”

워낙에 유명한 건물이다 보니 기사는 내비도 찍지 않고 바로 출발했다.

강북에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단 금방이었다.

‘언제 봐도…… 으리으리하구만…….’

유현은 잠시 문 앞에 서서 위를 바라보았다.

이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컨테이너 박스나 쓰던 질병관리본부라니.

전례 없는 팬데믹 사태를 거치면서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청을 거쳐 아예 장관까지 있는 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볼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거 덕분에 감염내과가 제일 인기 있는 분과 중 하나가 됐지.’

Acute Respiratory Syncytial Virus, ARSV.

넘버링이 붙으며 ARS-24, 세간에서는 ‘아르스 이십사’라 불렀다.

바이러스 ARS-24는 팬데믹에 그치지 않고 엔데믹(Endemic, 풍토병화)이 된 지 오래였다.

심지어 변이가 심해서 다시 또 어떤 변종이 나타나 팬데믹 사태를 재현할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처음 만들어진 백신은 아무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팬데믹이 어떻게 사회를 박살 내고 또 경제를 파탄 내는지,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알게 된 마당이었다.

어찌 보면 그 팬데믹을 해결하기 위한 질병관리부가 국가 예산을 엄청나게 타 먹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란 얘기였다.

‘어쩌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환자가…… 그 변종의 증거일 수도…… 있지.’

유현은 잠시 박기태 환자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털어 내고는 안으로 향했다.

월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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