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공 행진 (2) >
R&N에 위치한 대형 회의실.
정기적으로 하는 분기별 성과 보고가 한창이다.
“보시는 바와 같이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던 주가가 이 무렵부터 서서히 상승폭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이번 분기에는 급등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작년 대비, 주가 상승률이 약 5.7%프로 상승하고, 순이익이 250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브리핑을 하는 직원의 말과 같이 그가 가리킨 어느 지점부터 그래프가 점점 상승하다 급등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정도운 대표가 느긋하게 다리를 꼰 자세로 관망하듯 말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그건 저희 측에서 꾸준한 영업력을 바탕으로 유망한 인재들을 꾸준히 영입한 것이 표면에 드러나면서부터······.”
“유망한 인재? 누구?”
정도운 물음에 대답한 것은 다름 아닌 본부장이었다.
“아, 거참. 플레어 때문이라고 하면 되는 걸 어렵게도 돌려서 말하네. 그래프 상승하는 지점이 아마 플레어 1집 발표이후부터 일거고, 저기 급상승하는 지점이 플레어가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2집 낼 무렵 아니야?”
“네, 네. 맞습니다.”
직원이 바로 인정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어라는 이름이 가진 상승효과를 어느 정도는 기대했지만, 객관적인 수치로 보니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그 이상이다.
R&N의 대표 보이그룹인 본투비도 새로운 앨범을 낼 때마다 미약하게 회사 주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흠. 플레어라는 그룹하나로 우리 회사 주가가 1년 만에 이렇게 까지나 올랐단 말이지?”
“아마 더 오르겠죠. 중국에서 반응도 장난이 아니라고 하니깐요. 더군다나 이번에 최강민이 찍기로 한 그 영화가 천홍 그룹에서 벼르고 만드는 영화랍니다. 첫 영화인데도 투자금액이 무려 천억이래요. 천억. 뭐, 원래 영화 배급하던 회사이니 홍보나 프로모션
도 빵빵하게 돌릴 거고. 만약 여기서 평타라도 치면 자타공인 한류스타가 되는 거죠. 아마 조만간 전세기를 뽑아야할지도 몰라요. 중국 스케줄이 많아지면.”
“흐음. 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정도운 대표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김본부장. 전세기 한 대 가격이 얼마 정도나 되지?”
“음. 13석인 XRS같은 경우는 대충 500억에서 600억 원 정도 합니다.”
“그러면 한 번 견적 뽑아봐.”
“네, 제가 한번 견적을······ 네? 진짜로 전세기를 구입하시려고요? 하지만 아직 그건 조금 이른 것 같은데요? 더군다나 이제 데뷔한지 2년차인데, 아직 본투비도 전용 전세기가 없는데.”
툭하고 내뱉은 정도운 대표의 말에 김관수 본부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도운 대표는 마치 그 같은 반응이 재미있기라도 한 듯 양손으로 깍지를 꾀며, 턱을 받쳤다.
“자네가 방금 그랬잖아. 중국 스케줄이 많아지면 전세기를 뽑아야 할지도 모른다며?”
“그건 어디까지나 최강민이 이번 영화가 잘된다는 전제조건하에······.”
“그러니까 한 번 견적이나 뽑아보라고. 과연 이번 한중합작 영화를 멋지게 성공시키는지 못시키는지 보고 결정을 할 테니까.”
*
방송가의 12월은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나 다름없다.
연예인들이 가장 바쁜 달이기도 하다.
각 방송사마다 가요대전, 연기대상, 연예대상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가요대전 같은 경우는 볼거리의 향연이다.
한 해 동안 가장 인기가 좋았던 그룹, 가수들이 총 출동돼서 유행했던 곡을 리메이크하든가 혹은 각색을 해서 자신들만의 색깔로 부르기도 하는 둥,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플레어에게도 각 방송국 3사에서 진행하는 가요대전의 출연 요청이 들어왔다.
그것도 떡하니 하이라이트 무대를 장식해달라는 정중한 부탁과 함께.
“음. 예상을 하긴 했지만.”
거의 하루차이를 두고, 동시에 들어온 출연 요청이라 차조영 실장과, 박호영 팀장이 고민에 빠졌다.
어느 곳 하나라도 조금 빠지거나 인지도가 떨어지거나 하면 모르겠는데, 방송국 3사에서 진행하는 가요프로그램의 인지도도 비슷하고, 파워도 비슷하다. 그렇다고 어느 방송국 거는 해주고, 어느 방송국 거는 안 해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이라는 게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연결 되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섭섭한 감정이라도 쌓이게 된다면 그게 또 뒤끝으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시 이 바닥은 인기가 다구만. 작년에는 마치 짠 듯이 출연 요청하나 없더니.”
다소 허탈한 듯 중얼거리는 박호영 팀장의 말에 차조영 실장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작년에야 워낙 신인이었으니까요. 뭐. 그나저나 이걸 어쩌죠? SBN꺼는 무조건 해줘야할 것 같긴 한데. 워낙 빵터진 프로그램들이 많았잖아요. 최근 찍은 생존의 법칙도 SBN꺼고.”
“그렇긴 하지.”
“그런데 이게 하이라이트 무대라 본인 곡 말고, 다른 그룹의 노래를 불러야하는 거잖아요. 어휴, 지금 애들 스케줄도 가뜩이나 빡빡한데, 다른 곡 연습에 안무까지······. 잠 줄이면서 연습한다고 해도 꼬박 2주는 연습해야 할 텐데. 그런데 이걸 또 승낙하면 KBN
이랑 YWN꺼는 어떻게 해요? 타 방송국 하이라이트 무대는 서주면서 자기네 거는 왜 안 해주냐고 담당 피디가 지랄지랄 할텐데.”
“그런데 원래 SBN 하이라이트 무대는 보이그룹 트리플이 서기로 한 거 아니었어?”
“네, 내부적으로는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막판에 바뀌었나 봐요. 요즘 워낙 우리 애들이 핫해야죠.”
박호영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인기가 너무 많아도 문제네. 뭐, 일단 애들이랑 한번 상의해보도록 하자고. 뭐, 어차피 애들이 결정해야할 문제니까.”
*
“다 할래요! 당연히 다 해야죠!”
진짜 고민하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차조영 실장의 말에 장요한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남들은 못해서 안달인데,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는데, 이걸 마다해요?”
“야, 너는······.”
옆에서 앉아 있던 박진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너 이거 감당은 되겠어? 말이 세 곡이지, 이거 노래 연습하고, 안무다 외우려면 꼬박 한 달이야. 한 달. 벌써 12월 달인데, 우리 스케줄에 이게 가당키나 하겠냐?”
“돼! 무조건 돼! 안될 건 또 뭐야? 지금보다 잠 더 줄이고, 틈틈이 연습하면 돼지. 정 안되면 차안에서라도 할 거야! 무조건 할 거야!”
잠자코 생각에 잠겨있던 노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다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진짜 남들은 아무리 노력하고, 하고 싶어도 기회가 닿지 못해서 못하는 자리잖아요. 가수라면 누구나 꿈꾸고, 서고 싶어 하는 무대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걸 거절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더군다나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모두 가요대전 무대에 서고 싶어 했잖아요.”
그랬다.
생각해보니 작년 이맘때쯤 혹시나 가요대전에 우리를 불러주지 않을까, 뭐 그런 기대를 하긴 했었지.
그때야 막 데뷔하고, 무대에 서서 노래할 기회가 많지 않았으니까.
지금이야 몸을 쪼개서 활동하고 싶을 정도로 스케줄이 넘치게 들어오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티비로 가요대전을 보며, 우리는 언제 저런 무대에 한번 서볼까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를 했었다.
“강민이 생각은 어때?”
불쑥 차조영 실장의 물음이 나에게로 향했다.
“네가 그래도 제일 형이고, 리더니 네 생각도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멤버들의 눈도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로 고정됐다.
왠지 입술이 바싹바싹 메마르는 느낌이다.
옆에 놓인 생수로 목구멍을 축인 다음 나는 내 생각을 말했다.
“저는 다 하고 싶어요. 내일부터 당장 연습에 들어가고, 지금보다 잠 좀 덜자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요?”
박진우가 한숨을 쉰다.
아이고, 이형이 사고 치네. 이런 표정
사실 가요대전 무대서는 게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돈도 안 되고, 비효율적이긴 하지. 딱 한번 부르기 위해 춤, 노래,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 그렇다고 출연료를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러한 무대에 서는 것은 돈 이외에 그 어떤 값진 것들이 있다.
내 말에 차조영 실장이 웃으며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러면 내가 최대한 불필요한 스케줄 줄여보고, 미룰 수 있는 스케줄은 다음 달로 한 번 미뤄볼게. 이번 달에는 최대한 가요대전 무대에 집중할 수 있게.”
*
방송국 3사의 가요대전 출연을 모두 승낙한 뒤, 우리의 앞에는 그야말로 살인적인 스케줄이 기다렸다.
마치 쭉 펼쳐진 가시밭길 옆에서 저승사자가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는 듯 했다. 매일이 가시밭길이다. 어떻게 된 게 단 5분도 마음 편히 쉴 틈이 없어.
그리고 그날 저녁. 장요한이 축 늘어진 몸뚱아리를 비비적거리며,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신발을 벗었다.
“형, 제가 만약 이대로 죽으면 과로사라고 전해주세요.”
그러면서 숙소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거실위에서 그대로 털썩 쓰러졌다. 미동조차 없다. 설마 저대로 자는 건가?
그걸 본 박진우가 귀찮다는 듯 발로 톡톡 건드리며 흔들어 깨웠다.
“얀마. 씻고 자. 너 메이크업한 상태로 잠들면 얼굴에 여드름 난다?”
“아······. 그러면 안 되지. 내 얼굴은 팬들 건데.”
그러면서 주춤주춤 일어서더니 화장실로 들어간다.
장요한 뿐만이 아니다. 멤버들 얼굴들이 모두 피곤이라는 물에 절여놓은 오이 같다. 그나마 멤버들 중에서는 내 상태가 제일 괜찮은 편인데, 이제는 나도 슬슬 체력이 떨어져가는 게 느껴질 정도다.
다행히 그러한 노력 덕분인지 곡 연습과 안무를 익히는 건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찬바람이 불고, 두터운 옷깃으로 목을 감싸던 12월 25일.
KBN프리즘 타워에서 진행되는 첫 가요대전 무대의 막이 올랐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데뷔한 알투원이라고 합니다!”
대기실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노크소리가 들려오고, 뭔가 싶어 봤더니 올 초에 데뷔한 5인조 데뷔그룹이 박력 있게 고개를 쳐 박고 인사를 건네 온다.
이제 열아홉에서 스무 살로 넘어간다고 하는데, 그룹 멤버들 전원이 고등학생으로 이루어져있다.
“아, 그래요. 반가워요.”
“선배님들 방송하시는 모습은 모니터링으로 잘 보고 있습니다. 특히 최강민 선배님이 제 롤 모델이십니다!”
최근 인기가 급등한다고는 하지만 무슨 롤 모델씩이나.
이제 고작 데뷔 2년차인데.
헌데, 알투원의 리더라는 녀석이 나를 보는 눈이 반짝반짝하다.
그 모습을 보고 차조영 실장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롤 모델? 이야, 벌써 롤 모델로 삼은 가수가 다 나왔네. 그래, 어느 부분이 가장 본받고 싶은데?”
“음. 인물도 좋으시고, 작곡도 하시고, 리더쉽도 뛰어나시고, 예능감도 좋으신 것 같고. 못하시는 게 없는 만능인이시잖아요. 저도 꼭 선배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숨고를 틈도 없이 알투원의 리더가 기다렸다는 듯이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마치 눈빛이 노아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힐끔 노아를 쳐다봤더니, 노아가 잔뜩 경계어린 표정으로 알투원의 리더를 쳐다보고 있다.
아니야, 너보다는 내가 훨씬훨씬 더 존경해. 뭐 그런 표정.
그 후로도 이름도 외우기 힘든 그룹들이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특히 여자 걸 그룹들이.
프리티걸, 여걸파이브, G7, 캣우먼등.
우리와 데뷔시기가 비슷하던가 아니면 올해 데뷔한 신인 걸 그룹들.
대부분이 가요대전 무대에 오르지는 못하고, 스케줄도 없으니 가요계 선배들 독려 차 얼굴도장을 찍으러 다니는 중인 것 같은데. 졸지에 우리 대기실은 걸 그룹들 화합의 장이 됐다.
걸그룹 여자애들이 쉬지 않고 들락날락 거린다.
장요한 녀석이 좋아서 죽으려고 든다. 매일 5인조 남자그룹 속에서 땀 냄새만 맡다가 맡기만해도 나긋나긋해지는 여자향수냄새가 가득 나니 좋을 수밖에.
장요한 뿐만이 아니라 박진우도 어딘가 모르게 무게를 잡고 있고, 원래 말수가 없던 김태현은 부쩍 더 말수가 없어졌다. 설마, 의식을 하는 건가?
그때 가요대전 스텝이 노크를 하며 소리쳤다.
“플레어님들. 리허설 무대 갈게요!”
< 고공 행진 (2)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