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공 행진 (1) >
SBN방송국 예능국 국장실 안.
국장실 테이블 옆에 놓인 티비 앞에 옹기종기 세 사람이 모여 앉아 티비 화면을 주시하고 있다.
장우영 예능국장과 생존의 법칙 김우영 피디, 그리고 최현숙 메인 작가가 그 주인공들이다.
“아, 떨린다 떨려.”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예능국장을 보며, 김우영 피디가 말했다.
“국장님. 가만히 좀 계세요. 그러니까 괜히 저까지 불안해지잖아요!”
“네가 왜 불안해? 발로 붙여놔도 재미있을 거라면서? 담당 피디라면 무조건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지!”
“아, 저야 물론 확신하죠. 무조건 시청률 15프로 넘을 겁니다!”
국장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15프로? 특별 편성 이야기할 때는 17프로라고 이야기했잖아. 왜 그 사이 2프로 줄어든 건데?”
“최소요. 최소! 17프로는 그냥 넘을 거예요. 믿으세요!”
벌써 둘이 티격태격한지 30분이 넘었다.
최현숙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티저 반응도 좋았고, 플레어 어제까지 중국 활동 한다고 기사 계속 터져서 실검에서 내려가질 않고 있고, 또 어제 중국에서 천 억원짜리 영화 캐스팅됐다고 계속 떠들썩하고, 세상에 이 보다 더 좋을 때가 어디 있어요? 틀림없이 시청률 대박 터질 거예요.”
“암. 좋아야지. 나 이번에 나 진짜 예능국장자리까지 걸고 올인 한 거란 말이야. 그거 2시간짜리 편성 빼내는데 드라마국 오국장이 어찌나 쌩 지랄, 난리를 쳤는지 알아?”
생존의 법칙은 원래 1주마다 1회씩. 총 50분으로 방송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플레어 특별 편답게, 총 2주 4회 분량으로 2편씩을 내보내기로 결정 했다.
원래는 생존의 법칙 다음 시간대에 방영하는 다큐멘터리가 폐지되는 바람에 그 시간대에 특별 미니시리즈 4부작짜리를 넣기로 했는데, 그것을 잠시 딜레이 시키기로 했다.
티저 영상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이 워낙 뜨거워 SBN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여태껏 이런 전례가 없을 정도로 아주 특별한 상황임은 분명했다.
“아휴, 왜 이렇게 시작을 안 하냐. 게다가 뭔 놈의 광고는 저리 많이 떠?”
“왜긴요. 국장님이 광고 2배로 늘리라고 했으니까 저렇게 많이 뜨는 거겠죠.”
“아, 그랬나? 쩝... 그러면 어떻게 해! 특별편 들어간다는 기사 나가자마자 거래처 광고주들이 득달같이 전화해서 그 앞에 넣어 달라는데!”
“누가 뭐래요?”
“아······.”
짤막한 탄식을 내뱉은 예능국장이 이번에는 핸드폰을 꺼내 실검을 확인했다. 동공이 확장되더니, 놀란 음성을 토해낸다.
“어? 플레어 실검에서 내려갔네?”
“진짜요? 몇 위인데요?”
다급히 김우영 피디와 최현숙 작가가 실검표를 확인하더니, 한숨을 내셨다.
“1위에서 2위로 내려간 거잖아요. 난 또 뭐라고.”
“이게 안 불안해?”
“네! 전혀 안 불안해요.”
“지금 시청률은 얼마나 나왔어?”
“1분전에 시청률이 11프로였으니까, 아마도 한 12프로 정도 어, 어······ 지금 막 15프로 넘었어요!”
“뭐, 15프로?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국장님 국장님, 시작해요!”
최현숙 작가의 외침에 두 사람의 눈이 티비로 향했다.
*
그림 같이 펼쳐진 해변,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플레어 멤버 다섯 명이 상반신을 벗어젖힌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곧 이어 장요한의 해맑은 미소가 차례대로 뜨더니, 실패, 실패, 실패라는 자막이 큼지막하게 떠오른다.
이내 최강민이 은근슬쩍 장요한을 서포트해주며, 맡은 바의 임무를 연달아 성공하는 장면들이 인서트로 삽입되어 들어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존의 법칙에서만 볼 수 있는 먹거리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특히나 크레이피쉬와 코코넛 크랩과의 대치. 마지막에 쉼 없이 물속으로 쳐 박히는 낚시대를 부여잡고, 고군분투하는 최강민의 모습.
그 위에 초대형급 참치라는 자막이 떡하니 박힌다.
이미 기사를 통해 대형 참치를 잡은 것을 전해들은 시청자들은 대체 그 참치를 어떻게 잡았나 궁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와, 이거 진짜 볼 수밖에 없게 뽑아놨는데?”
국장의 감탄어린 말에 김우영 피디가 이제는 다소 긴장 풀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말했잖아요. 발로 붙여놔도 재미있을 거라고. 워낙 소스들이 재미있어서 이건 될 수밖에 없어요.”
“지금 시청률은 몇이야?”
“잠깐만요.”
시청률을 확인해본 최현숙 작가가 돌고래소리를 냈다.
“꺄아아악! 시청률 18프로 막 넘었어요! 저희 대박 났어요!”
세 사람은 국장, 피디, 메인작가의 체면 따위는 벗어버리고, 아주 난리 법석을 피웠다. 이 정도 기세면 20프로 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한 바탕 흥분의 도가니에서 침착함을 되찾은 세 사람은 이제는 제법 느긋한 마음으로 생존의 법칙을 시청했다.
불 피우며 좋아하는 장요한을 보며, 세 사람이 삼촌미소를 짓고 있다.
“이렇게 보니까 장요한도 괜찮네요. 여태껏 몰랐는데, 빙구미가 좀 있네요?”
“애가 무척 해맑은 것 같죠? 리액션이 좋아서 보는 맛도 있고. 뭘 하던지 반응이 즉각즉각 오니까 눈이 즐겁잖아요.”
김우영 피디와 최현숙 작가가 계속해서 도란도란 대화를 주고받았다.
예능 국장이 티비 속에 떠오른 노아를 가리키며 물었다.
“쟤 막내 이름이 노아라고 했던가? 쟤는 아직 학생이야?”
“고3이에요. 애가 나이에 맞지 않게 참 듬직하죠? 생존의 법칙 찍으면서 요리하는 장면이 많이 나가서 그런가, 이번에 케이블 요리 프로그램하나 고정으로 들어갔어요.”
“그래? 잘됐네.”
“진짜 플레어는 멤버들간의 케미가 좋은 것 같아요. 꽃 미남 청춘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개개인의 장기들이 특화된 느낌? 그런데 가만 보니 그 뒤에는 모두······.”
잠시 말을 끊는 김우영 피디의 말에 국장이 답답한 듯 물었다.
“모두 뭐?”
김우영 피디의 말이 은근해진다.
“이건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 느낌적인 느낌인데요. 모든 일의 뒤에는 최강민이 빅피쳐가 숨겨져 있는 그런 느낌이에요”
“빅픽쳐?”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큰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서 세부적인 것들을 조종하고, 그림이 완성되도록 방향을 이끄는 거요. 왠지 가만 보면 이 모든 것들이 최강민이 의도한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죠.”
“뭐? 에이 설마. 자네가 잘못 본거겠지. 방송 10, 20년차들도 그렇게는 못하겠다. 그리고 이번 분량도 찍으면서 최강민이 거의 다 캐리했다면서? 그렇다면 더 잘할 수도 있었다는 건데······.”
잠시 생각에 잠긴 예능국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도 안 되지. 그게 어디 사람이야?”
“그렇겠죠?”
“암.”
1화 분량이 끝이 나고, 게시판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전국이 조류독감으로 떠들썩한 가운데도 실검1위를 다시 탈환하는 기염을 토해내며, 예능란에는 온통 플레어에 관한 기사로 도배가 됐다.
[커뮤니티 게시판]
-님들 생법 봤어요? 와, 개 쩔.... 진짜 역대급인 듯.
-진짜 꿀잼. 한동안 안보다가 플레어편이라고 해서 봤는데, 개 재밌음.
-아, 빨리빨리 2화도 방송되라. 무슨 광고만 주구장창하고 있네요. 광고만 한 백 개 나올 각.
-ㅋㅋㅋㅋㅋㅋㅋ 워낙 기대가 큰 프로니까 뽕 뽑겠다는 거죠.
-지금 중국에서도 플레어 때문에 다들 난리라던데. 이번에 블록퍼스트급 영화에도 조연으로 캐스팅됐다면서요?
-조연ㄴㄴㄴ 주조연이예요! 나름 비중 있는 역할이래요.
-와, 올해 한해는 플레어 진짜 뭐 있는 듯. 이러다가 연말에 상이라도 뭐 하나 받을 거 같은데요?
곧이어 생존의 법칙. 플레어 특별편 2화 분량이 방송됐다.
그 사이 10초 단위로 걸려오는 축하 전화를 받은 김우영 피디와 최현숙 작가가 상기된 표정으로 닫아놓은 노트북 화면을 다시 펼쳐 시청률 표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황망한 눈으로 국장을 향해 눈을 돌렸다.
“구, 국장님.”
“왜! 왜, 또 무슨 일인데?”
“지금 시청률이······.”
말을 잇지 못하는 두 사람에 국장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노트북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노트북화면에 떠 있는 그래프를 보며, 눈을 껌뻑였다.
“22. 5프로? 이거 고장난거 아니지?”
화면에 떠올라 있는 그래프 수치가 시원스럽게 쭉 뻗어있었다.
*
“요즘 드라마, 예능, 영화까지. 거의 플레어의 한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특히나 이번에 생존의 법칙 특별편을 찍으면서 큰 화제가 됐었죠. 혹시 인기 체감은 하시나요? 그리고, 인기의 비결이 있다면 그것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얼마나 많은 인터뷰를 진행했는지, 어디 매체에서 온지도 모를 기자의 질문에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째 매번 묻는 질문들이 다 비슷비슷하다.
“인기체감은 잘 안되지만,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고, 사랑해주시니 요즘 너무 행복합니다. 그리고 인기의 비결은······ 아무래도 저희 멤버들 덕분인 것 같아요. 늘 같은 자리에서 자신이 할 일을 도맡아해 주는 멤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플레어도 없을 것 같아요.”
“어휴, 어쩜 이렇게 말들도 예쁘게들 잘들 하시는지. 이러니 팬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지금까지 인기와 겸손까지 모두 갖춘 플레어 여러분들을 만나보셨습니다!”
마지막 멘트와 함께 ‘수고 하셨습니다’를 외치고, 우리는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비슷비슷한 인터뷰만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하다보니, 어제 한말을 오전에 한 것 같고, 오전에 한말을 또 오후에 한 것 같고 그렇다.
“오늘도 다들 수고했어. 다들 배고프지? 일단 밥부터 먹자. 초밥? 갈비? 아니면 샤브샤브를 먹으러 갈까?”
차조영 실장의 말에 멤버들 눈이 커진다.
하긴 이틀 동안 차안에서 편의점 음식만 먹어댔으니, 이제는 식당 밥이 그리워질 때도 됐지.
“잠깐만요.”
때마침 핸드폰이 울리기에 꺼내봤더니, 발신자가 어머니였다.
잠깐 통화를 하겠다는 말을 하고, 조용한 공간으로 자리를 옮겨 핸드폰에 귀에 붙였다.
“어, 엄마.”
-강민아. 통장 확인해봤는데, 이게 뭐야?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얼떨떨하다.
아, 드디어 확인을 해보셨구나.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뭐긴요. 아들이 정산해서 받은 돈이죠.”
-오... 오억? 무슨 돈이 이렇게나 많아?
“상반기 활동비 정산 받은 돈이에요. 아마도 하반기 때 정산금은 그것보다 더 많을 지도 몰라요.”
-세상에나······.”
어머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반쯤은 울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네가 그렇게 고생하면서 번 돈은 왜 나를 줘?
“그러면 제가 돈을 벌어서 누굴 줘요? 애인도 마누라도 없는데. 풍족하진 않겠지만 어머니가 쓰시고 싶은 만큼 쓰세요. 원하시면 지금보다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하셔도 좋고. 그동안 제 뒷바라지 할 만큼 하시느라 힘드셨는데.”
-나는 말이지 강민아······. 나는······.
끝내 왈칵하고 터트린 울음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온다.
덩달아 내 마음도 괜히 먹먹해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수 한 번 돼 보겠다고, 5년 가까이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집에 얼굴도 잘 안 비치던 아들이다. 데뷔는 못하고,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B반 연습생. 언제쯤 연예인이 돼서 티비에 나오냐고 하는 친척들의 물음에 대꾸하는 것도 지치셨겠지.
그저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묵묵히 보아오던 어머니다. 간혹 몰래 용돈도 쥐어주시면서.
그런 아들이 이제는 명실공히 탑 스타가 됐다. 대한민국을 들썩이고, 길가는 사람들이 모두가 알아보며 손가락질을 하는.
그 대견함이 얼마나 크고, 자랑스럽겠는가.
-엄마는 말이다. 돈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네가 좋아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한다면 그걸로 좋아.
훌쩍이는 어머니의 물음이 곧 이어 들려왔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니?
내 시선이 자연스레 주차장 한편에서 손짓을 하고 있는 멤버들에게로 향한다. 김태현, 장요한, 박진우와 양손으로 거의 허우적거리며 손짓을 하고 있는 노아까지.
굳이 음성을 듣지 않아도 하는 입을 벙긋거리는 모양새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다.
배고프니까 빨리 밥 먹으러 가자는 소리겠지.
2년 전만해도 결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런 광경들이다.
내 입가에 저도 모르게 잔잔한 미소가 그려졌다.
“네. 행복해요. 엄마.”
< 고공 행진 (1)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