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116화 (116/124)

< 이제는 데뷔 2년차 (1) >

“자, 커피 사왔으니까 한잔씩들 마시고들 해.”

김관수 본부장이 한 손에 커피 박스를 흔든 채 홍보팀 문을 열고 소리쳤다.

“올, 본부장님이 웬일이에요? 커피도 다 사가지고 오시고?”

“장 팀장. 내가 언제는 안 사다준 것처럼 말한다. 내가 불철주야 노고가 큰 우리 홍보팀 직원들 커피 사 먹이는 게 내 낙인 거 몰라서 그래?”

김관수 본부장과 장선영 팀장의 대화도중 직원들이 일어나 박스 안에 든 커피를 쏙쏙 뽑아가며 인사를 덧붙인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응, 그래그래.”

카페인 금단 현상에 시달린 것처럼 직원들이 한 모금씩 마시더니 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마지막 하나 남은 커피를 김관수 본부장이 빼 장 팀장에게 내밀었다.

“장 팀장은 샷 추가해서. 맞지?”

장 팀장이 웃으면서 건네주는 커피를 받아들었다.

“너무 오랜만에 오시니까 그렇죠.”

“어휴, 말도 마. 요즘에 한창 바빴잖아. 강동운 음주운전 사건 터지는 바람에 이번에 영화 들어가기로 한 ‘두 명의 형제들’ 제작배급사, 투자자들 찾아다니며 읍소하고, 술 접대하느라 아주 위가 남아나질 않을 지경이니까? 다행히 크랭크직전이라 망정이지 하

마터면 진짜 위약금만 수십억 날릴 뻔했다. 지금 와서 생각만 하면······ 으으으.”

몸서리를 치는 김관수 본부장을 보며, 장팀장도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R&N의 간판급 스타 중 한명인 강동운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되는 바람에 며칠간 회사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저희도 그것 때문에 아주 전화기가 불이 났었죠. 그래서 강동운씨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어떻게 하긴 뭐. 뻔하지. 자숙한다고 모든 활동 다 끊고, 휴식하기로 했는데. 아주 미치지. 계약 새로 갱신한지 1년도 채 안됐는데 이러다가는 그냥 2년 쌩으로 날릴 판국이야.”

“어마어마하네요. 재계약하면서 들인 돈이 얼만데.”

“어휴,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자고. 생각만 하면 속만 쓰리니. 아참, 그보다도 이번에 플레어 애들 또 한 건 했다면서? 아주 여기저기에서 소식 들리고 난리도 아니던데.”

김관수 본부장이 화제전환을 하자 미간을 찡그리던 장선영 팀장 얼굴에도 화색이 돋았다. 조금 전까지와는 표정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아, 이번에 생존의 법칙 찍은 거요?”

“그래, 그거. 도대체 뭘 어쨌기에 다들 그 난리야? 아주 가는 곳마다 죄다 그 이야기뿐이야.”

“아직 티저 영상 못 보셨어요? 생존의 법칙에서 티저 영상 찍어서 올려놓은 거 있는데. 한 번 보실래요?”

장선영 팀장이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더니, 생존의 법칙 티저 영상을 재생시켰다.

“특별 편이라서 그런지 SBN에서도 신경을 많이 썼더라고요. 티저도 멤버들 별로 만들어서 올려놨는데, 강민이야 워낙 잘해서 잘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장요한 편이 특히 꿀잼이더라고요.”

“그래? 한번 틀어봐.”

첫날 게를 잡기 위해 다이빙을 하며 몸을 날리는 장요한의 모습.

손톱만한 소라를 잡으며 깨방정을 떠는 모습.

열혈 불 피우는 모습.

코코넛크랩을 보고 자지러지는 모습.

그걸 잡고 의기양양해하는 모습들이 차례대로 나왔다.

교차편집을 기가 막히게 잘해났다. 장요한의 해맑은 표정과 시무룩해하는 표정, 우쭐거리는 모습들이 극대화시킬 수 있게. 1초에 표정 변화가 몇 번이나 이루어지는지 모른다.

“이제 이 부분이 하이라이트예요. 이거 보고 저도 한참 웃었잖아요.”

아직 영상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화면을 쳐다보는 장선영 팀장의 얼굴에는 벌써 웃음기가 서려있다.

“뭔데?”

김관수 본부장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노트북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곧이어 장요한이 참치꼬리에 맞고 쓰러지는 모습 나왔다.

퍽소리가 났다. 장요한이 데굴데굴 구른다. 표정과 행동. 그 생생함이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완전히 할리우드 액션배우 연기 저리가라다.

“그런데 이거 참치야? 남태평양 가서 참치를 잡은 거야? 그런데 얘는 왜 갑자기 참치한테 얻어 맞았대?”

“누가 더 큰지 재보려고 했다가 맞았대요. 그러니까 그게 웃긴 거죠. 애가 완전히 엉뚱하면서 귀엽잖아요. 시청자들 반응도 이게 제일 좋아요. 팬들이 이거 보고 별명까지 지어줬어요. 장댕댕이라고.”

“장댕댕?”

“어, 댕댕이 뜻 모르세요? 멍멍이랑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는데, 멍멍이의 ㅁ을 떨어트리면 대자와 비슷해서 댕댕이라고 불러요. 뭐, 귀여운 강아지? 그런 뜻이에요.”

“아.”

김관수는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뒷덜미를 벅벅 긁었다.

“요즘 애들은 뭔 신조어를 그렇게 만드는지 몰라. 당최 따라갈 수가 있어야지.”

“아무튼 이번 티저 반응이 생각보다 훨씬 좋아요. 요한이도 이번 기회에 캐릭터 확실히 잡은 것 같고, 노아도 요리하는 모습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요리관련 된 프로에서 입질도 오고 있는 것 같고요.”

“그래?”

“그리고 역시나 가장 좋은 반응은 강민이가 하드 캐리하는 모습들이에요. 같이 따라간 생존전문가가 인터뷰를 한 게 있는데, 자기도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자기가 배워야할게 더 많았다면서. 한 번 다른 애들 영상도 봐보실래요?”

*

플레어 멤버 다섯 명을 태운 승합차가 지방 팬미팅 행사 때문에 이동 중이다.

“으아아아.”

맨 뒤 좌석에서 구겨져서 자고 있던 장요한이 폴더처럼 구겨진 몸을 바로 폈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관절에서 우드득우드득 소리가 난다.

“차라리 정글이 그립다! 나 돌아갈래 정글로!!!”

장요한이 사자의 포효처럼 울부짖었다.

남태평양 무인도에서 돌아온 지 벌써 2주란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요한은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도 여전히 정신을 거기에다가 놔두고 왔나보다. 걸핏하면 지금처럼 정글정글거리고 있다.

“안 되겠다. 힐링힐링.”

중얼거리던 장요한이 어느 틈엔가 태블릿을 꺼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는 자신의 티저 영상을 돌려보고 있다.

얼굴에는 금세 웃음기가 자리 잡는다.

그걸 본 박진우가 혀를 내찼다.

“쯧쯧. 오늘은 왜 또 안보나 했다. 야, 그러다가 화면 닳겠다. 봤던 거 또 보고 읽었던 댓글 또 읽고. 아예 논문이라도 쓰지 그러냐?”

“흥, 신경 끄시지. 너는 안보는 것처럼 말하는데, 너도 이따금씩 돌려보는 거 나도 다 알고 있거든?”

“내가?”

“어. 어. 어! 삼일 전에,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볼 거잖아!”

“야! 넘겨짚지 말아줄래? 어제 보긴 봤지만······.”

“뭐야! 보긴 봤구만!”

장요한 얼굴에 ‘요놈 걸렸다.’ 하는 회심의 미소가 번지자 박진우가 그제야 한숨을 내셨다.

“어휴, 됐다. 됐어. 그래 많이 봐라. 많이 보세요. 장댕댕씨.”

어느 틈엔가 뒷좌석에 있던 노아가 앞으로 상체를 내밀며, 내 쪽을 쳐다보고 있다. 그때 일을 떠올리는 듯 정신이 왠지 현실 너머 아득한 곳에 있는 표정이다.

“왜?”

“그냥요.”

그러면서 입맛을 다시며 쩝쩝거리고 있다.

배가 고프나?

“그때 먹었던 음식들이 참 맛있었는데.”

아. 정글이야기구나.

자고 있는 줄 알았던 김태현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치? 나도 종종 생각나더라.”

“뭐가 제일 맛있었는데?”

“다요. 생선, 크레이피쉬, 코코넛크랩, 하다못해 카사바까지요. 혹시 그거 여기서도 먹어볼 수 있을까요?”

“있지.”

대답은 운전석에서 들려왔다.

차조영 실장이 운전을 하며 백미러를 힐끔 보며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생선구이, 랍스타 정도는 가능하지. 말 나온 김에 우리 랍스타나 먹으러 갈까? 스케줄도 다 끝났겠다 내가 새벽까지 하는 가게 하나를 알고 있는데.”

“진짜요!?”

“어, 막 고급스러운 집은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기분정도는 낼 수 있을 거야. 어때?”

노아가 대꾸했지만, 난리는 주위에서 났다.

멤버들이 벌떡 일어나 고고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 먹은 맛이 안 날지도 몰라. 음식이라는 건 환경적인 분위기도 무시하지 못할 테니까. 아참, 그리고 노아야. 이거.”

차조영 실장이 생각났다는 듯이 보조석 의자에 올려놓은 서류 봉투를 짚어 뒤로 팔을 뻗었다. 내가 그걸 받으며 물었다.

“이게 뭐에요?”

“노아 앞으로 들어온 거야.”

“저요!?”

노아뿐만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눈도 다 같이 커졌다. 다들 차조영실장이 봉투를 내밀기에 당연히 내거인줄 알았을 테니까.

실제로 그동안은 드라마, 영화 출연제의나 섭외 건이 들어오면 대부분이 다 내 앞으로 들어온 거였다. 멤버들이 단체로 나가는 방송 같은 경우는 직접 말해주는 것이 보편적이었고. 노아 같은 경우는 차조영 실장이나 박호영 팀장이 직접 발로 뛰어 스케줄을 잡아다주곤 했는데, 여지껏 이런 식으로 방송관계자들이 노아를 따로 지목해서 섭외 요청을 한 적은 처음이었다.

“야, 뭐해? 빨리 뜯어봐!”

장요한이 손에 들고 있는 태블릿을 밀어낸 채 호들갑을 떨었다.

어째 자기 일처럼 좋아한다.

차조영 실장의 보충 설명이 이어졌다.

“요리 프로그램인데 지상파는 아니고, 케이블에서 진행하는 거야. 파일럿으로 2회분정도 찍어보고, 반응 괜찮으면 정규 편성 받아서 해볼 거라고 하더라고. 담당 피디가 민병진 피디인데, 그 사람 예능 쪽에서 꽤 실력 괜찮아.”

“아, 그 맛집대 맛집 담당했던 피디님이요?”

“그래 맞아. 그분. 이번에 생존의 법칙 티저 영상을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다이렉트로 연락이 왔더라고. 요리 전문가 한 분이랑 같이 진행을 하는 건데, 그 분이 일러주는 레시피 대로 네가 직접 카메라 앞에서 요리를 하면서 어려운 점이나 주의해야할 것, 노하우나 팁 같은 것도 일러주고 하는 요리 초보자들을 상대로 하는 프로그램이래. 포맷은 괜찮은 것 같은데, 한 번 내가 준거 봐보고 마음에 들면······.”

“저 이거 할래요.”

차조영 실장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노아가 대뜸 대답했다.

“어? 그래도 파일럿이라고는 하지만, 잘하면 정규편성을 받을 수도 있는 거니까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하는 편이······.”

“저한테 처음 들어온 프로잖아요. 그러니까 뭐든 열심히 할래요. 제가 이것저것 가릴 처지는 아니잖아요.”

“얌마 네 처지가 어때서! 멤버들 중 인기는 네가 제일 많은데!”

장요한이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허나 그 같은 위로에도 노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지껏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도, 제가 부족한 탓인지 고정자리 한 번 들어오지 않고, 또 매번 팀에 얹혀 들어가고, 리액션 부족하다고 매번 꾸중이나 듣고, 형들 없고 대기실에서는 완전 찬밥 신세고. 작가 분들이 이야기 하는 거 들었는데 저는 노잼이라고, 대사도 주지 말랬어요. 그냥 리액션 컷이나 넣으면 된다면서.”

“진짜! 그런 일이 있었어? 그때 왜 말을 안했어?”

축 처져있던 노아가 생기 담긴 눈동자를 치켜들었다.

“그런데 드디어 저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어요. 저는 이게 저에게 온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할래요.”

“그래. 해.”

옆자리에 앉은 김태현이 끼어들었다.

언제부턴가 노아를 쳐다보고 있는 눈이 따스함으로 일렁였다. 무릎 위에 있는 손을 노아의 머리위로 얹고, 먼지 쓸 듯 헝클어트렸다.

“형들이 적극적으로 서포트 해줄게. 그리고 이건 형이 노파심 때문에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너 팀에서 묻어가는 그런 존재 아니야. 네가 팀에서 해주는 역할이 얼마나 큰데. 나도 네 모습 보면서 자극 많이 받아.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되는데?”

“절요? 제가 왜요?”

“뭐든지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노력도 많이 하고. 그런 네 이미지 때문에 플레어 이미지도 좋아졌고. 안 그래?”

“암, 그렇지.”

박진우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친다.

“그건 순전히 강민이형 때문에······.”

“저 형이야 뭐, 천상계에 있는 그런 분이시니까 예외로 치고. 우리 같은 서민들이야 호수에 떠있는 오리처럼 열심히 발 저어야지. 뭐 가끔씩은 덕도 좀 보고.”

“맞아. 맞아.”

“저 형은 똥색도 아마 황금색일 거야. 황금 알을 낳는 오리처럼. 인간이 아닌 거지.”

박진우가 툭 던진 말에 모두들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고 있다.

그 뒤로 한참동안이나 내 험담이 이어졌다.

대부분 대화 내용들이 비방용이었지만, 그 와중에 긴장으로 뒤덮여 있던 노아의 응어리가 조금씩 풀어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헌데, 마음 한편으로는 노아에 대한 걱정이 들긴 한다.

열심히 하려는 것도 좋지만 생각처럼 일이 잘 안 풀렸을 때의 일도 염두 해 두어야 하니까.

기대가 큰만큼 실망도 클까봐 나는 그게 걱정이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더욱 좋겠지만.

“자, 다 왔다!”

“와, 랍스타다!”

달리던 승합차가 멈춰서고, 차조영 실장의 외침에 멤버들이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나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의 씨앗을 잠시 경계선 너머로 넣어두며, 차에서 내렸다.

그래. 잘 되겠지. 잘 될 거야, 라고 대뇌이면서.

< 이제는 데뷔 2년차 (1)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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