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115화 (115/124)

< 또 다른 예능 (12) >

꾀죄죄한 거지몰골을 한 다섯 명이 아직은 어둑한 어둠속을 해치며,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참치를 잡으려면 요트를 타고 족히 1시간을 넘게 이동해야하는데, 물때를 맞추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했다.

“와, 형. 저 완전 기대돼요. 진짜진짜진짜 꼭 잡았으면 좋겠어요!”

요트에 오르기 전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장요한을 보며, 김우영 피디가 손을 흔들어 준다.

어, 왜 같이 안가지?

“피디님은 같이 안가세요?”

“아, 저는 멀미를 심하게 해서요.”

“멀미요?”

“다녀오세요. 저는 여기에 있는 편이 더 나을 테니까.

그때만 해도 피디가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잘 몰랐다.

요트에 타기 전에 혹시 할지도 모를 멀미에 대비해서 닥터가 마시는 멀미약을 나눠줬으니까. 그걸 마시면 천하무적이 될 줄 알았지.

헌데, 그 생각은 출발 30분 만에 바뀌었다.

멤버 다섯 명을 태운 제법 큰 요트가 시원하게 물살을 가로지르며, 남태평양 한가운데로 돌진한다.

좋다. 물때도 좋고, 바람도 좋고, 햇볕도 적당히 구름에 가려져서 다 좋은데······.

요트가 너무 빠르게 나아가는 터라 출렁이는 게 장난이 아니다.

장요한과 노아는 속이 울렁거린다며, 선실에 앉아 꼼짝도 안하고 있고, 그나마 멀미를 하지 않은 멤버만이 난간을 꼭 잡고 동상처럼 앉아 있다.

그리고.

포인트 지점에 도착할 때쯤에는 장요한과 노아는 선실바닥에 넝마가 된 채 널브러졌다.

“우웁, 형 저 죽을 것 같아요.”

“저두요.”

후다닥.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선 장요한이 난간을 잡고 고개를 내밀고, 시원하게 안에 있는 것을 게워낸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장요한이 돌아오자 노아가 후다닥 뛰쳐나가 또 게워내고 있고.

번갈아가면서 아주 난리도 아니다.

둘 얼굴이 아주 하얗게 떠서 달덩이가 됐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무리인거 같으니까 세 사람이서 낚시를 시작해보도록 하죠.”

선장의 말에 장요한이 핏기 없는 얼굴로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으으윽, 참치 꼭 잡고 싶었는데. 형이 제 몫까지······.”

털썩.

전장 터에서 적군의 화살을 맞고, 쓰러지는 장수처럼 장요한이 선실바닥위로 장렬하게 전사했다. 입술만 달싹거릴 뿐 미동도 하지 않는다.

급하게 의사가 다가와 몸 상태를 체크했는데, 토악질을 많이 해서 탈수현상이 온 거라고, 팔에 수액을 놔줬다.

“넌 괜찮아?”

다행히 노아는 그 지경까지는 아니었지만, 애가 바닥에 붙어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

“괘, 괜찮은 거 같아요. 헌데 움직일 수가 없어요. 머리가 어지러워서. 형은 괜찮아요?”

“나야 뭐. 그러면 쉬고 있어. 형들이 참치 잡아줄 테니까.”

고개를 끄덕인 노아마저도 장렬하게 눈을 감고 전사했다.

선실 밖으로 나가자 애들이 걱정된 표정으로 달라붙는다.

“애들은 좀 어때요?”

“뭐, 잠든 것 같아. 일단 우리끼리라도 낚시해보자고.”

제작진 측에서 준비해놓은 낚시 대를 받아들고, 가짜미끼를 달았다.

우리가 할 낚시는 트롤링낚시다.

트롤링낚시란 배에 속도를 가하여 인조미끼를 바다에 끌고 가면서 낚는 낚시 방법인데, 주로 대형어종을 잡기 위해 많이들 사용한다.

어군탐지기를 통해 고기의 유무를 파악하며, 선장이 낚시를 위해 계속해서 요트를 움직인다.

헌데, 어째 입질이 도통 없다.

30분, 1시간이 넘도록.

원래 참치 낚시가 어렵기는 하나, 어찌된 게 잡어 하나도 낚이지가 않는다.

-영삼아 고기는 좀 보여?

-참치를 대상어종으로 하려면 포인트가 이 지점이 아닙니다.

-그러면?

-좌표 상으로는 124° 23. 7509E 방향으로 1.200m 정도 이동을 하셔야······.

아, 그러니까 결국 포인트가 아닌 곳에서 삽질을 하고 있다는 소리네.

보아하니 선장도 1시간이나 넘는 시간동안 입질한번 못 받고 있으니, 당황하는 눈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제작진측도 마찬가지다. 이래가지고는 참치는커녕 잡고기 한 마리도 못 잡고 가게 생겼으니······.

통역관과 바쁘게 몇 번 말이 오고 갔다.

알고 봤더니, 원래 오늘 나오기로 한 선장이 자신의 친형인데, 갑자기 건강상의 이유로 일을 못나오게 돼서 자신이 나오게 됐다고 한다. 낚시 배를 몇 번 운영해보기는 했지만, 참치 낚시의 전문가는 아니라면서······.

형이 좌표까지 일러주면서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되고 있다면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바다는 늘 같은 좌표를 찍고 온다고 해도, 물때나 조류의 세기, 파고등의 영향으로 시시각각 포인트가 바뀔 수도 있다. 노련한 낚시 배 선장이라면 새들의 움직임이나 조류의 움직임, 보일링 등으로 즉각적인 상황판단을 하여, 포인트를 옮겨 다니기도 한다.

잘못하면 그냥 허공, 아니 바다 위에서 삽질을 하고 있게 된 터라 잠자코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바다낚시는 포인트 선정이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내가 통역관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동하는 게 좋겠다고 대신 말 좀 전해주세요. 저쪽 방향으로 1km지점에 갈매기 떼가 보이는 게 아무래도 저쪽이 포인트 인 것 같다고.”

통역관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내가 가리킨 방향을 쳐다봤다.

물론 1km밖에 있는 갈매기가 여기서 보일 리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이동을 하지.

통역관의 말을 들은 선장이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내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망원경을 꺼내들어 살폈다.

그러더니.

“오, 갈매기 떼다!”

바로 방향을 틀어 그곳으로 돌진한다.

대형어종을 낚시할 때는 갈매기 떼 무리를 잘 찾으면 포인트 지점을 찾을 수가 있는데, 그 이유는 수많은 무리의 갈매기 떼들이 파도 표면에 대형어종의 먹이활동 정중앙을 맴돌며 베이트 피시의 찌꺼기를 사냥하기 때문이다.

베이트 피시는 대형어종들의 미끼가 되는 작은 물고기들이고, 보일링 현상은 그런 물고기들이 수면 위에서 몸을 뒤집으면서 내는 파문인데, 보통 이러한 현상들이 보이는 곳이 핫 플레이스다.

“바로 여기다. 여기가 명당이었어!”

낚시의 낚자도 모르는 김태현이 여기는 뭔가 느낌이 좋다며 의욕적으로 낚시대를 집어 던졌다.

박진우도 덩달아 입질이 오나 낚시대 끝 초릿대를 거의 노려보듯 쳐다보고.

나는 수면위에 보이는 베이트 피시 어종들을 자세히 살폈다.

“혹시, 미끼 이거 말고 다른 종류도 있나요?”

제작진 중에서 그나마 바다낚시 경험이 있는 이가 한 명 동행을 했는데, 사용하고 있는 낚시장비들은 그가 직접 모두 채비해서 준거다.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 최강민씨 낚시하실 줄 아세요?”

“조금요. 그냥 어깨너머로 배웠어요.”

그 어깨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영삼이다.

보통 어깨가 아니지.

“베이트 피시의 크기에 맞춰서 미끼를 바꿔보게요. 너무 크거나 작거나 하면 아무래도 참치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니까.”

“아. 맞네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스텝이 무릎을 탁 친다.

나는 그가 내민 가짜미끼 중 크기에 맞는 걸 골라서 능숙한 솜씨로 떼어내 다시 달았다.

다시 그의 눈이 커진다.

“무슨 매듭을 그렇게 빨리 묶어요? 방금 거의 3초도 안 걸린 거 같았는데. 최강민씨 이제 봤더니 완전 꾼이었네. 꾼!”

멋쩍은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 한 채, 나는 캐스팅을 했다.

헌데, 뭔가 툭툭 건드는 느낌은 오는데, 쉽사리 물어주질 않는다.

가만 보니 베이트 피시의 양이 너무 많아서 가짜 미끼가 파묻히는 모양새다. 선장이 신이 나서 여기가 황금어장이라면서 계속해서 빙빙 돌며, 이 부근에서만 요트를 몰고 있다.

으, 이래서 안 물었구나.

옆에 있는 스텝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저기요. 선장님한테 이쪽 말고, 저쪽으로 배를 몰아달라고 해주실 수 있어요?”

“어, 왜요? 제가 보기에는 여기가 명당 포인트 지점 같은데.”

“여기는 보일이 너무 불규칙하게 일어나서요. 그리고 양이 너무 많아서 가짜미끼를 발견하기 어려워 보여요. 아, 저기쯤이 괜찮아 보이네요.”

영삼이를 통해 스캔한 장소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가장 이상적인 환경은 일정한 무리가 반복하여 같은 장소에서 보일을 일으키는 것인데 이런 보일을 발견했을 때가 참치를 공략하기 가장 쉬운 때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낚시는 포인트 선정이 다다.

통역관의 말을 건네 들은 선장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내가 말한 장소로 요트를 몰아간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은 왜 명당자리를 놔두고, 저런 곳으로 가냐는 그런 표정이다.

그리고 잠시 후.

틱.

틱.

틱. 푸아아악!

걸어놓은 낚시대 초릿대 끝이 거의 수직에 가까운 모양새로 꾹꾹 수면 쪽으로 쳐 박혔다.

됐다. 걸렸다!

내가 황급히 낚시대를 들고, 릴링을 했다.

우와아아아아. 힘이 장난이 아니다. 릴이 안 감긴다.

듣자하니 2미터까지는 거뜬히 올릴 수 있을 장비로 채비했다고 하는데, 농담이 아니라 줄이 아니라 내 팔이 끊어질 것 같다.

옆에서는 멤버들과 스텝들이 아주 난리법석이다. 이거는 틀림없는 대형 참치가 분명하다면서 있는 대로 설레발을 친다.

녀석도 자신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걸 인지한 듯 있는 힘껏 힘을 써가며, 달아나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내 몸이 움찔움찔 앞으로 끌려간다. 자칫 넋 놓고 있다가는 낚시대와 함께 수면 아래로 딸려가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팔 끝에 힘을 꾹 주고, 팔로 버텼다.

“이거 장담컨대 최하 미터급 같은데요?”

낚시대가 거의 부러질 듯 휘었지만, 다행히 부러지진 않았다.

그러고 버티기를 10분.

20분. 30분.

녀석도 이제는 조금 지쳤는지 서서히 수면위로 딸려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침내.

녀석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참치였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선장이 긴 장대같이 생긴 갈고리로 참치의 아가미에 걸고 있는 힘껏 끌어 당겼다. 헌데 힘이 딸린지 뭐라 뭐라고 하자 눈치껏 스텝들이 달라붙었다.

장정 3명이 달라붙은 다음에야 겨우 요트 위로 올릴 수가 있었다.

요트 위로 끌어올려진 녀석이 날 뛰자 바닥에서 묵직한 진동음이 느껴질 정도다.

길이를 재본다고 줄자를 가지고온 스텝이 놀란 듯 소리쳤다.

“길이가 무려 2. 2미터예요! 이정도면 거의 220KG는 넘을 거 같은 데요!?”

내가 참치를 잡았다는 소식에 선실에서 기절하듯 누워있던 장요한과 노아가 비척비척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바닥에서 육중한 소리를 내고 있는 참치를 보며 눈이 동그래진다.

“우와와아아. 뭐가 이렇게 커요? 이거 타고 다녀도 되겠는데요? 나보다도 큰 거 같아요!”

“저 태어나서 살아있는 참치 처음 봐요! 참치가 이렇게 생겼구나.”

기절한 듯 누워있던 장요한이 이제야 좀 살아난 듯 참치 옆으로 누워 키재기를 해본다고 누웠다가 참치 꼬랑지에 얻어맞았다. 그 모습을 보고 다들 함박웃음을 터트린다. 예전부터 느끼는 거였지만 역시 장요한은 예능이랑 잘 맞았다. 굳이 시키지 않아도 예능적인 그림을 알아서 만들어주는 걸 보니.

그때 통역관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여기 선장님이 그러는데요. 이정도 크기의 참치라면 거의 3억 정도한다는데요? 2미터가 넘는 참치는 여기서도 귀하다면서.”

“3, 3억이요!?”

와, 비싸다. 연예인 때려치우고 여기에서 그냥 참치 잡이로 살아갈까 고민할 만큼.

그리고 그날 저녁.

마지막 날의 만찬을 즐기기 위해 생존캠프에서 만든 나무 테이블 위에 3억짜리 참치가 해체되어 속살을 내비쳤다.

출연자, 제작진, 생존 캠프에 와있는 모든 사람들이 달려들어 너나 할 것 없이 참치 회를 마음껏 즐겼다.

한쪽 구석에서 오늘 찍힌 영상을 모니터링 하고 있던 카메라 감독에게 다가가 김우영 피디가 회를 몇 점 입속에 구겨 넣어주며 물었다. 카메라 감독과 김우영 피디는 형님, 동생하는 사이로 김우영 피디가 2살 나이가 더 어렸다.

“형님. 여기서 뭘 하고 계세요? 같이 좀 드시지 않고.”

입속에 들어간 회 덕분에 삼일동안 다듬지 않아 까칠하게 자리 잡은 수염 턱이 위아래로 정신없이 움직였다.

카메라 감독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대답했다.

“가만 있어봐. 참치 잡은 모습이 아주 기깔나게 뽑혔으니까. 와, 진짜 내가 찍은 거지만 너무 잘 찍었네. 우리나라 예능프로에서 이렇게 큰 고기를 잡은 출연자가 있었나?”

“없죠. 낚시 프로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인데. 아까 형님도 들었잖아요. 3억짜리 참치라고.”

“이거 스틸컷 몇 장 뽑아가지고 홍보기사로 돌리면 아주 죽이겠지?”

“난리 나겠죠. 최강민 낚시하는 거보니까 거의 프로수준이던데, 낚시광고 CF도 들어올지도 몰라요.”

“우리나라 낚시에서 낚시를 즐기는 낚시인이 700만이라고 하던데, 그 사람이 다 우리 프로 챙겨보면 시청률이 얼마야?”

가만히 계산을 해보던 두 사람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 또 다른 예능 (12)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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