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114화 (114/124)

< 또 다른 예능 (11) >

크기가 엄청 크긴 하다.

실제로 보니 위협감도 장난이 아니다.

입에서는 뭔가 괴물생명체 같은 소리를 끊임없이 내고 있는데, 특히나 저 커다란 집게발에 걸렸다가는 뭐든 간에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 미리 가지고온 그물망으로 녀석을 포획하듯 감싸들었다.

엄청나게 무겁다.

마치 20킬로그램짜리 덤벨을 드는 것 같다.

원래는 두 마리를 잡아가려고 했지만, 눈앞에 있는 녀석의 크기를 보니, 한 마리로도 충분해 보인다.

그리고 생존 캠프에도 낮에 사냥해 놓은 것들이 있으니······.

“한 마리면 충분한 거 같은데 이만 돌아갈까?”

멤버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구동성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특히나 장요한 녀석이 한결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거의 소리 지르듯 대답했다.

“네!”

코코넛크랩은 혼자 들기에 워낙 무거운 탓에 장요한과 박진우가 사이좋게 나눠 들기로 했다.

돌아가는 도중에도 장요한의 입이 쉬질 않는다.

조금 전 모두가 봤던 그 장면들을 굳이, 누가 묻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영웅담처럼 늘어놓는다.

“내가 처음 이 녀석과 눈이 딱 마주쳤는데, 어땠는지 알아? 녀석의 눈에서 광선이 막막······.”

“어.”

“그리고 집게발 힘이 얼마나 쌨냐면, 이봐이봐. 막대기 끝이 다 부러진 거. 네가 진짜 그 무지막지한 힘을 직접 느껴봤어야 했는데.”

“어어어어어······.”

고저 없는 박진우의 대답이 계속해서 가른다. 질리지도 않은지 비슷비슷한 말만 열 번째 늘어놓는 중이다.

올라간 어깨가 아주 하늘까지 닿겠다.

“내가 어제 꿈자리가 좋더라고! 이 녀석을 잡으려고 그렇게 꿈자리가 좋았나?”

뿌듯한 표정으로 이따금씩 코코넛크랩을 쳐다보며 실실거리는 장요한을 보며, 박진우가 남몰래 한숨을 내쉰다.

표정을 엿봤는데, ‘그래, 좀 머저리 같더라도 축 쳐져있는 것보단 낫지.’ 라고 얼굴에 쓰여 있다.

캠프에 도착해서는 모두가 손이 바빠졌다.

저녁 만찬을 위해서다.

아참, 그전에 일단 받을 것부터 받고.

“피디님? 약속한 거 주셔야죠?”

내가 손을 내밀자 김우영 피디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조연출에게 손짓 했다. 이내 조연출이 전에 보여줬던 양념박스를 가지고와 내게 내밀었다.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로 성공하셨네요. 잠깐, 잠깐만요.”

그 와중에 김우영 피디가 자세를 고친다. 카메라를 보더니 손을 올리고, VJ가 자신의 얼굴을 화면에 담자 손으로 임팩트를 주며 내리친다.

“플레어. 육해공 미션 성공으로 양념을 지급해드리겠습니다!”

곧이어 조촐한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자막이나 리액션컷이라도 넣으려고 하는 건가?

뭐, 아무튼 그건 알아서 연출하라고 내버려두고.

나는 양념만 받으면 되는 거니까.

“형, 그런데 어떻게 요리를 하실 거예요?”

노아가 묻는다.

역시나 요리에 제일 관심을 보이는 건 멤버들 중 노아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눈에 호기심이 잔뜩 담겨 있다.

다른 멤버들은 어떤 식으로 요리를 할까보다는 언제 먹을까가 더 관심사인데, 노아는 조금 달랐다. 항상 먹는 것보다 어떤 재료로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관심이 더 많았다.

“요리하는 게 재미있어?”

“네.”

대답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왜? 누가 해주는 거 그냥 편하게 먹는 게 더 좋지 않아?”

“그것도 그렇지만 저는 제가 해준 걸 먹고 좋아해주는 모습을 보는 게 더 기뻐요. 뭐랄까. 제 마음이 행복해지는 기분이에요.”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행복한 표정이다.

아. 얘는 기본적으로 남에게 베푸는 걸 좋아하는 애구나. 역시나 심성이 착한 애다.

“그런데 만약에··· 누가 네가 해준 음식이 맛이 없다고 하면?”

“왜요? 제가 그동안 해준 게 맛이 없었어요?”

불쑥 내가 던진 질문에 노아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만난 듯 마구 흔들린다. 또 저 조그만 머리통으로 온갖 쓸데없는 생각을 다 하고 있겠지.

불신의 늪에서 허우적되기 전에 내가 재빨리 노아를 그곳에서 건져냈다.

“아니! 그렇다는 게 아니고.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의심 섞인 눈으로 한참동안 나를 쳐다보며 고민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면 제가 더 잘하도록 노력해야죠. 저 서울로 돌아가면 요리 학원이라도 다닐까요?”

“시간이 돼?”

“지금보다 잠을 더 줄이면 되죠.”

내가 손사레를 쳤다.

됐다. 너랑 무슨 말을 하겠니.

지금도 숙소에서 자는 시간이 하루에 3, 4시간 될까말까인데, 여기서 더 줄이면 그게 사람이 사는 거겠니?

그나저나 진짜 요리프로그램 같은 거 섭외하나 안 들어오나? 진짜 애 적성 잘 살리면서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다 지금 장면을 찍고 있는 카메라 세 대가 눈에 들어왔다.

녹화 분량이 티비에 나가고, 어느 정도 이슈몰이에 성공만 된다면 틀림없이 노아에게도 확실한 캐릭터가 생길지 모른다.

현재 멤버들 중에서 고정 스케줄이 없는 건 노아뿐이다. 학교생활을 병행해서 시간이 쉽게 안 난 탓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딱히 먹힐만한 캐릭터를 잡지 못한 게 이유다.

멤버들 중 가장 잠을 덜자고, 노력을 많이 하는 노력 형이기는 하나 연예계라는 게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이뤄낼 수는 없다. 노력한만큼 인기를 얻을 수 있다면 아마도 인기 없는 연예인은 애초에 없겠지.

연예계에서 성공을 하려면 뭔가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그런 이미지가 있어야한다.

팬들 층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노아가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걸 알고 있으니. 이것을 요리관련 제작자들에게만 어필할 수만 있다면······.

생각에 거기까지에 미친 내가 돌아보며 노아에게 물었다.

“노아야. 네가 한번 여기 있는 거 다 요리해볼래? 별로 어렵지는 않은데.”

“네. 좋아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

“야생 닭은 비린내가 날수 있으니까. 비린내를 한번 잡아보자. 레몬이나 우유 같은 게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이 없으니······.”

노아가 모닥불 옆에 있는 코코넛을 집어 들었다.

“형, 이건 어때요? 생존의 법칙에서 코코넛을 요리하는데 사용하면 잡냄새도 없애주고, 달짝지근해져서 맛있다고 하던데.”

“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

역시 척하면 척이구나. 슬쩍 흘려준 것만으로도 노아는 정답을 찾아내는 재주가 있다. 센스가 탁월하다고 해야 하나.

노아가 코코넛 과즙을 커다란 통에 받아 그 안에다가 닭을 잠기게 놓아두었다.

“이제 그거는 잠깐 담가 놓고, 반죽을 만들자. 그냥 밀가루에 묻혀서 튀겨도 맛있기는 하지만, 조금 더 감칠맛을 더해주려면······. 아, 그래.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봐.”

“어. 형 어디가요?”

어디가긴.

재료 찾으러 가지.

“금방 다녀올 테니까 우선 다른 것 하고 있어. 코코넛 크랩은 그대로 찌기만 하면 되니까 도마뱀 꼬치 해먹게, 꼬치 좀 만들고 있어줄래? 닭도 튀기기 적당한 크기로 좀 썰어주고.”

“네.”

도끼를 챙겨 캠프에서 벗어난 나는 영삼이에게 물었다.

-근처에 가장 가까운 사구나무가 있을까?

-네. 가는 방향으로 쭉 직진하세요.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영삼이의 말대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구나무를 찾아, 도끼로 적당한 크기만큼 잘라 생존 캠프로 되돌아왔다.

노아가 뭔가 싶어 신기한 눈으로 잘라온 사구나무토막을 쳐다봤다.

“낮에 봤지? 사구나무. 이걸 잘게 쪼개서 즙처럼 짜면 하얀 수액 같은 게 나오는데, 이걸 저으면 응어리가 지면서 전분기가 생기거든? 이곳 사람들은 밀가루 대신 이걸 사용해서 요리를 해먹기도 한대. 이걸 밀가루에 조금 섞어서 써보자. 아마 더 쫀득쫀득한 반죽이 될 거야.”

노아가 감탄성을 내뱉으며 묻는다.

“형, 도대체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거예요?”

“그냥 어깨너머로 들었어.”

그 어깨가 영삼이 어깨인 게 문제지만.

어쨌든 노아의 주도 하에 치킨 만들기가 차근차근 진행됐다. 나는 일부러 카메라 앵글에서 빠져 노아에게 일러주고, 보조만 하는 형식으로 그림을 만들어갔다.

소금과 사구, 밀가루와 물을 섞어 반죽을 만들고, 코코넛과육에 담궈 놓은 닭을 빼서 반죽 칠을 한 다음 달궈진 식용유에 투척했다.

금세 사방으로 튀김 냄새가 진동 한다.

불과 이틀뿐이었지만 간이 안 되어있는 음식만 먹다보니 이 튀김냄새가 그토록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지 몰랐다.

애들 눈이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다.

누가 할 것 없이 하나, 둘씩 기름 주위로 모여든다.

“와, 냄새.”

원래부터 치킨이라면 환장하는 장요한이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다. 쟤는 혼자서도 1인 1닭을 하는 녀석이긴 하지.

그뿐만이 아니라 평소에 식탐이 없던 김태현의 눈동자도 식탐으로 번들거리고 있다.

“형, 기다려요. 10분은 튀겨야 해요.”

노아의 말에 멤버들이 정신없이 끄덕인다.

닭 한 마리 분을 무사히 잘 튀겨내고, 그걸 건져낸 다음, 또 다시 닭 한 마리 분을 투척했다.

지글지글 기름 끓는 소리가 사람 애간장을 녹인다.

그 사이 나는 노아가 만들어놓은 꼬치에다가 도마뱀을 토막 내서 꽂아 모닥불 주위에 빨래감 널 듯 널었다.

코코넛크랩은 제작진이 가지고 온 대형 솥을 빌려 그 안에다가 삶기로 했는데, 워낙 크기가 커서 안 들어갈 줄 알았던 코코넛크랩의 다리를 조신하게 접어 넣었더니, 다행히 딱 들어갔다.

육해공이 한자리에서 요리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흐뭇하기가 그지없다.

오늘 저녁은 제대로 먹방이구나.

그리고, 그토록 기다리던.

치킨이 완성되고, 1차 먹방을 시작했다.

치킨은 식으면 맛이 없으니까 얼른 먹어야지.

닭을 거침없이 쭉 찢어 한입씩 입안에 넣으며 우물거렸다. 순간 눈이 확 떠진다.

배가 고파서인가 시중에서 파는 닭보다 훨씬 맛있다.

껍질은 달콤, 바삭하고 속살은 적당히 탄력이 있으며 엄청 쫄깃했다. 야생 닭이라기에 근육이 많아서 질길 줄 알았는데, 적당히 쫄깃한 게 식감이 예술이다. 튀긴 것이 아무래도 신의 한수인 것 같다.

아마 백숙을 해먹었으면 고무 같이 질겨서 안 씹혔을지도 몰라.

순식간에 치킨 한 마리가 입속으로 사라지고, 번들거리는 입가로 또 다시 남은 한 마리를 가져갔다.

세상에, 맙소사!

치킨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어?

십만 원에 판다고 해도 사먹겠다.

닭고기가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순식간에 치킨 두 마리를 해치운 우리는 이제는 잘 익어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코코넛 크랩을 꺼내 개봉했다. 게딱지를 따자마자 내장의 향긋한 냄새가 코를 확 찔러온다.

집게 다리를 돌맹이로 부숴 속살을 보이게 한 다음 김태현과 노아에게 한 입을 먹게 했다.

속살이 어찌나 많은지 한입 가득 베어 문 것으로도 볼이 빵빵해진다. 둘 다 입에 몇 번 넣고 우물거리더니, 표정이 노골노골 해진다. 특히 노아 얘는 리액션이 멤버들 중 가장 부족한 애인데도 불구하고, 먹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린다.

“형, 이거 진짜 맛있어요. 태어나서 먹어본 것 중 제일 맛있어요!”

“그래?”

멤버들에게 한입씩 먹여준 다음 나도 코코넛 크랩의 다리를 하나 떼어 껍질을 까고, 속살을 입에 가져갔다.

와, 이것도 진짜 거짓말이 없는 맛이구나.

입에 넣는 순간 그냥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특히나 내장에 찍어먹으니 다른 소스가 필요가 없었는데, 왜 그토록 생존의 법칙을 찍은 멤버들이 코코넛 크랩을 크레이피쉬와 더불어 가장 맛있는 음식 베스트에 올려놓았는지 알게 됐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는 대답하기 쉽기라도 하지, 이건 진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정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도마뱀 구이.

솔직히 앞서 먹은 둘보다는 맛이 떨어졌다. 맛이 꼭 훈제육포와 닭고기를 섞어놓았는데, 그래도 양이 넉넉해 배를 채우기엔 그만이었다.

계속해서 손이 가는 그런 맛.

한참동안이나 도마뱀구이가지고 씨름하던 멤버들은 그야말로 올챙이 배가 되어 떨어졌다.

식사를 성공적으로 모두 끝내자 김우영 피디가 다가와 말했다.

“김족장님. 내일은 참치 사냥에 한 번 도전해보시는 게 어떠십니까?”

“참치요?”

“오늘 육해공성공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냥은 거의 다 보여주신 거 같은데. 마지막 날 깔끔하게 참치 한 마리를 딱 잡으면 그림 좀 살지 않겠습니까? 요트는 이미 저희가 섭외해놨습니다. 어떠세요?”

참치라.

그동안 생존의 법칙에서 참치를 잡기 위해 무수히 많은 출연자들이 낚시에 도전을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참치 낚시는 전문 낚시꾼들도 출조를 하면 조과를 기대할 수 없을 만큼, 힘든 낚시로 장비, 운, 물 때,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멤버들을 쳐다봤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다.

굳이 먹고 싶다기보다는 뭐든 해볼 거리가 있다면 경험해보고 싶다는 뭐, 일종의 그런 거겠지.

멤버들 중 특히나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몇 번 해봤다던 김태현은 거의 연인을 보며 애타게 갈구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같이 생활을 한지 1년 정도가 다됐지만 저렇게 뭔가에 안달 난 녀석의 모습은 3개월 전 한정판으로 나온 건담T81를 구입에 성공한 이후 처음 본다.

“그래요. 그럼.”

내가 수락을 하자 김태현이 조용히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또 다른 예능 (11)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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