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112화 (112/124)

< 또 다른 예능 (9) >

육해공. 육해공이라······.

육해공의 육은 육지, 해는 바다, 공은 하늘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즉, 걸어 다니든가 혹은 뛰어다니는 육류와 헤엄치는 혹은, 짠물에 담가져있는 갑각류, 물고기를 잡아야한다는 소리다. 이 두 가지는 문제가 딱히 없어 보이는데, 문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들이다.

내가 날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걸 어떻게 잡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스캔 결과 이곳에는 사냥할 할법한 꽤 많은 개체수의 조류들이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야생 닭이나 메추라기 등이······.

영삼이의 말에 눈이 번쩍 떠진다.

-닭이랑 메추라기가 여기에 있어?

순간 머릿속에 녀석들을 잡을 몇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가장 빠른 방법은 포위하듯 몰아서 직접 손으로 잡는 건데, 야생 닭은 집닭과는 달리 민첩하고, 본능적으로 도망가는 법을 잘 아는 놈들이다. 물론 이건 메추라기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방법이다. 그놈들은 다가가기도 전에 날아가 버릴 테니까.

그래서 덫을 만들까도 생각해봤지만, 성공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자정까지 뿐이라 시간이 촉박했다.

결국 나는 가장 빠르게 만들 수 있고, 효과적인 사냥도구를 제작하기로 했다. 주위를 살펴, 굵은 나뭇가지를 주워들고, 곁가지를 쳐내자 장요한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형, 뭐 만드세요?”

“어, 새총.”

“새총이요?”

그 말에 멤버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옹기종기 내 주변으로 모여들어 내가 하는 거를 쳐다본다.

Y형의 나뭇가지를 다듬어 모양을 만든 다음, 그 사이에 고무줄로 매듭을 지어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는 허리띠를 풀어, 그 끝을 조금 잘라 고무줄에 걸었다. 순식간에 뚝딱하니 새총에 만들어졌다.

조금은 엉성하기는 하나, 모양은 꽤나 그럴싸하다.

실제 전문가용으로 잘 만들어진 새총은 쇠구슬을 이용해 쏠경우 거의 엽총수준의 위력을 보이는데, 잘만 사용한다면 엄청난 살상무기로까지 이용될 수도 있다.

몇 번 고무줄을 잡았다가 놓았다를 반복하며, 내구성을 테스트하고, 작은 돌멩이를 끼워 고무줄을 잡아 당겨 30미터앞 나무기둥을 조준했다. 새총에서 떠난 작은 돌멩이가 정확히 나무기둥을 맞히고는 아래로 뚝 떨어졌다.

급하게 만든 것 치고는 꽤나 쓸 만했다.

그걸 본 장요한이 호들갑을 떨며 손을 내밀었다.

“우와아아! 형형, 저도 좀 쏴보면 안돼요?”

“물론, 되지.”

내가 웃으면서 새총을 건네주자 새총을 무슨 보물단지 다루듯 조심스럽게 받아 쥐고는 고무줄을 댕겼다 풀었다는 반복한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들면 네가 그거 써.”

“제가요?”

뜻밖의 소리를 들은 장요한의 눈이 동그래진다.

“응, 사냥 안할 거야? 그거면 충분히 새 정도는 잡을 걸? 아, 그리고 여기 듣기로는 야생 닭도 출몰한대. 새총으로 잡아서 우리 저녁에 치킨 해먹자.”

밀가루랑 식용류를 준다고 하니 닭을 못 튀겨먹을 것도 없지.

“치, 치느님!”

내 말을 들은 장요한의 표정이 비장해진다. 그리고는 마치 고려청자를 감정하는 감정사처럼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들을 신중하게 하나하나씩 주워 모이기 시작한다.

돌 줍는 요한은 내버려둔 채 멤버들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점심에는 능선 너머 있는 곳으로 사냥을 가보자. 내가 듣기로는 그쪽에 닭이랑 메추라기가 자주 출몰한다고 하던데, 새총으로 사냥해보고, 덫도 좀 놔보고.”

“다 같이 가는 거예요?”

노아가 눈이 반짝반짝 해져서는 묻는다.

어제 아무래도 바다사냥에 가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나보다.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그 어느 때보다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넘쳐흘러 보인다.

“그래, 다같이.”

내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많이 걷고, 달려야할지도 모르니까 다들 음식 든든히 먹어둬. 맛은 좀 없더라도 바나나랑 카사바가 탄수화물 덩어리니까 그거라도 어떻게······.”

말을 끝내기도 전에 멤버들 손이 분주해진다.

몇 입 먹고 질린 듯 내려놓은 바나나와 카사바가 빠른 속도로 애들 입속으로 사라졌다.

*

“잠깐.”

길을 헤치고 가고 있던 나는 뒤따라오는 일행들을 정지시켰다. 그리고는 몇 발자국 옆에 쓰러져있는 나무로 향했다.

“형, 왜요?”

“여기 봐봐.”

나는 정글도로 쓰러져있는 나무의 끝부분을 몇 번 쳐 내린 다음 나무껍질을 조심스럽게 뜯어냈다. 그러자 갈색빛깔이 나는 야자나무의 속살과 더불어 그 안에 중간중간 뭔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까꿍 하고 나왔다.

“우왁! 저, 저게 도대체 뭐에요!?”

멤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질색을 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생전 처음 보는··· 뭐 저런 생명체가 있다는 그런 표정들.

나는 그중 하나를 집어 장난스럽게 흔들었다.

솔직히 나도 징그럽기는 징그럽다. 크기가 거의 엄지손가락만 했다.

그래도 보기 드문 멤버들의 리액션이 계속해서 터져 나오자 방송을 위해 손가락 하나쯤은 희생하기로 했다.

“사구애벌레.”

내가 들고 있는 건 일명 사구나무라 불리는 사구나무속에서 부드러운 섬유질의 사구를 먹고 자라나는 애벌레다.

그냥 먹으면 크림 맛이 나고, 구워먹으면 베이컨 맛이 나는 고단백 저지방의 별미식품. 사구애벌레가 3-4개월 동안 자라 성충이 되면 야자나무 바구미가 된다.

“아······. 티비에서 본 적 있어요. 으으, 방송에서 보니까 막 그거 먹고 그러던데.”

이중에서 생존의 법칙을 가장 많이 본 장요한이 소리를 치며 나섰다.

“한 번 먹어 볼래?”

하지만 엄지손가락만한 애벌레를 가까이 들이댔더니, 바로 꽁무니를 빼며 도망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맨손으로 멧돼지라도 때려잡겠다고 의욕을 불사르던 녀석들도 나랑 시선이 마주치니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딴청 부리기에 급급하다.

혹시나 자기들 보고 먹어보라고 권유할까봐 알아서 몸을 사리는 거겠지.

하긴, 이런 걸 먹어보라면 나라도 질색이겠다.

“형, 그거 줘보세요. 제가 먹어볼게요.”

그 와중에 김태현이 태연한 표정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먹을 수 있겠어?”

“어렸을 때 논두렁 같은데서 개구리도 잡아 구워먹고, 메뚜기 같은 것도 튀겨 먹어봤어요. 뭐 이런 것쯤이야.”

그러더니 내 손에 있는 사구애벌레를 망설임 없이 입 안에 쏙 가져갔다. 천천히 음미하듯 사구애벌레를 씹어대더니, 음, 하는 오묘한 소리를 낸다.

도대체 맛이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그 광경을 멤버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뭐, 먹을 게 없어서 그런 걸 먹냐는 표정으로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묻는다.

“맛이 어때요?”

“의외로 괜찮은데? 버터구이 오징어를 크림에 찍어먹는 맛인데?”

“진짜요?”

“어, 한번 먹어봐.”

김태현이 속살을 벌리고 있는 나무 위에서 사구애벌레 한 마리를 집어 멤버들에게 내밀자 애들이 수류탄이라도 발견한 병사마냥 사방으로 재빨리 흩어졌다.

그걸 보며 김태현이 배를 잡고 웃으며, 불현 듯 나를 쳐다본다. 장난기로 번들거리던 까만 눈동자와 내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다.

“그런데 있잖아요. 형은 왜 안 먹어요?”

나, 나?

순간 당황했다.

저런 질문을 할 줄은 전혀 몰랐는데.

역시 종잡을 수 없는 놈이다. 김태현은.

“어, 나는 애벌레 알레르기가 있어서.”

입술에 침을 바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녀석의 얼굴에 물음표가 서린다.

“그런 알레르기도 있어요?”

“어, 있어. 이제 그만 가자.”

내가 녀석의 눈길을 피해 성큼 걸음을 내딛자, 기다렸다는 듯이 멤버들이 쪼르르 내 뒤로 붙는다. 김태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쉬운 듯 사구애벌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 일행들 맨 뒤로 붙었다.

나는 남 몰래 한숨을 쉬며 걸음을 빨리 했다.

*

-전방에 50미터 앞에 야생 닭 세 마리가 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지역에 산발적으로 사냥할만한 메추라기나 철새들이 있습니다.

오케이, 접수 했어.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 여기서부터 각자 흩어져서 수색 해 보자.”

다섯 명이 한꺼번에 떼로 몰려다니는 건 누가 봐도 비효율적이기에 우리는 흩어져서 닭을 찾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한가롭게 고개를 앞뒤로 열심히 까닥거리고 있는 야생 닭 한 마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고무줄을 당기고 돌을 잡고 있는 손끝에 자동적으로 힘이 들어간다.

생각보다 닭의 크기가 더 크다.

이 조그마한 돌멩이로 맞춘다고 한들 녀석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파고든다.

-목표물을 맞히기 위해 자동보정기능을 사용합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피융.

손에서 떠난 돌멩이가 허공을 가로 지으며 닭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는 정확히.

꽥.

닭의 머리통에 맞았다.

세상에 맙소사. 저 작은 머리통을 돌멩이로 맞혔다는 거야?

쏜살같이 닭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니 닭이 퍼드득거리며 도망을 가려고 하는데, 몸을 가누질 못해 옆으로 픽픽 쓰러지기를 반복한다. 나는 다가가 잽싸게 그것을 낚아챘다.

전담 VJ가 허겁지겁 쫓아오며 카메라를 대고 닭을 촬영한다.

“와, 여기 닭 잡았어요. 닭!”

“뭐!?”

VJ의 외침에 근처에 있던 vj들이 삽시간에 모여든다.

그리고 멤버들도 헐레벌떡 뛰어왔다.

내 손에 들려 있는 닭을 보고 다들 난리가 났다. 새총을 어떻게 쐈냐는 둥, 돌멩이는 뭘 사용했냐는 둥. 장요한이 이것저것 질문을 늘어놓고는 의욕이 불타더니 자신도 잡겠다며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나는 닭을 들고 다닐 수가 없기에 날개를 끈으로 묶고, 적당한 나무기둥에 매달아 놓고, 또 다른 사냥감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전방 100미터 지점이요.

나는 발기척을 최대한 숨기며 영삼이가 말해준 방향으로 걸어갔다. 역시나 야생 닭 한마리가 우두커니 서서 눈을 껌뻑이고 있다.

즉시 밴드에 돌멩이를 걸고, 고무줄을 힘껏 잡아 당겼다.

고무줄이 순식간에 팽팽해지자 나는 신중하게 닭을 겨냥하며 줄을 놨다.

피융.

엄청난 속도로 돌멩이가 날아가더니.

꽥, 꽥, 꽥, 꽥, 꽥.

도축장에서 닭 잡는 소리가 삽시간에 울려 퍼졌다. 명중한 거다.

또 다시 닭 한 마리를 잡아내자 따라붙은 VJ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도저히 자신이 보고도 믿질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하긴,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맙소사. 새총으로 야생 닭을 잡고 있다니.

그것도 연거푸 두 마리나!

어쨌든 야생 닭을 두 마리나 잡았으니, ‘육해공’중 공은 해결된 듯 싶은데, 문제는 육이다. 한국에서 육해공 요리중 육에 들어가는 건 보통 돼지고기나 소고기인데, 엄연히 닭도 지상동물이니 한 번 우겨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영삼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멀지 않은 곳에 대왕 도마뱀 한 마리가 보입니다.

뭐? 도마뱀?

“얼마나 떨어져있는데?”

-80미터쯤 떨어져 있습니다.

“알았어.”

지체할 여유가 없다. 도마뱀이라면 육고기임이 분명하니 잡기만 한다면 순식간에 미션 중 두 가지를 성공하는 거다. 나머지 ‘해’는 코코넛 크랩을 잡아서 충당하며 되니, 그야말로 오늘밤에는 잘만하면 최고의 만찬을 즐길 수가 있을 거다.

나는 신이 나서 영삼이가 일러준 곳으로 황급히 뛰어갔다.

그리고.

약 3미터 정도 높이에서 야자수 나무에 붙어있는 도마뱀을 발견했다. 시뻘겋고, 기다란 혀를 낼름거리는데, 순간 몸에서 닭살이 돋았다.

도마뱀이라기에 손바닥, 혹은 조금 더 큰 도마뱀을 상상했는데, 몸통길이만 거의 70, 80cm는 돼 보인다.

왜 도마뱀 앞 글자에 대왕이라는 글씨가 붙었는지를 알겠다.

와씨······. 그런데 저걸 대체 무슨 수로 잡지?

-혹시 쟤가 사람을 물거나 하진 않지?

-사람이 물렸다는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입을 크게 벌릴 수가 없어, 아주 작은 동물이나 열매 등을 주식량으로 삼습니다.

어쨌든 물릴 염려는 없다는 거네.

그렇다면 뭐 고민할 필요가······.

-어어, 움직입니다.

도마뱀이 나무 위로 더 올라가려고 하기에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새총을 꺼내 돌멩이를 발사했다.

저 덩치에 이 조그마한 돌멩이를 맞고 떨어지려나? 싶었는데,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도 도마뱀이 아래로 뚝하고 떨어졌다.

떨어진 직후, 꿈틀거리며 움직이려고 들기에 재빨리 발로 머리 부분을 찍어 눌렀다. 그런데도 녀석의 힘이 보통이 아니다. 게다가 발밑에서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그 무언가의 느낌이 마치······.

으, 이상해.

에라, 모르겠다.

나는 녀석의 꼬리를 잡고 풀스윙으로 나무 기둥에 두어 번 쳐버렸다.

녀석이 기절했는지, 혀를 빼물고 축 늘어졌다.

< 또 다른 예능 (9)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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