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111화 (111/124)

< 또 다른 예능 (8) >

생존캠프에 두 번째 날이 밝았다.

남태평양의 기운을 받은 햇볕이 오전부터 극성이다. 새벽에는 추위에 의해 몸이 오싹거리더니, 아침이 되자 기온이 가파르게 올라 벌써 30도를 넘어섰다.

내가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눈을 비볐다.

이마에 벌써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어제도 느낀 거지만 남태평양의 기온은 진짜 미친 게 틀림없다.

주위를 둘러보자 멤버들은 여전히 숙면 중이다. 노아의 자리가 비어있는 걸 보니, 벌써 일어나서 밖으로 나간 모양이다.

다른 멤버들은 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잠만 잘 자고 있다.

아예 지네들 안방이 따로 없다. 물론,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잠자리가 불편하긴 해도 이미 멤버들은 1년 전의 그들이 아니다. 방송 1년차에 벌써 쪽잠의 달인이 됐다. 생존환경에 맞춰서 진화를 했다고 해야 할까? 머리만 댈 수 있는 곳이면 분장실, 차안, 아마 화장실 변기 위에서라도 얼마든지 잘 잘 수 있을 거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34분.

일반인들 입장에서 본다면 늦잠을 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연예인들. 특히나 가수들은 올빼미형 인간들이 많다.

녹화 방송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케줄은 저녁 시간이 피크 타임이고, 지방 행사나 국외 행사를 다니는 시점에서는 숙소에 일찍 도착한다 해도 자정이 넘기 때문에 생활 패턴이 자연스럽게 야간 생활로 맞춰지는 거다.

숙소에 돌아와서 씻고, 꼼지락 거리다가 티비라도 켜게 되면 새벽 3, 4시가 넘어가는 건 기본이고.

밖으로 나갔더니 노아가 얼굴에 숯댕이를 묻히며, 모닥불에 뭔가를 열심히 굽고 있다. 숙소에서도 멤버들 중 노아가 가장 아침잠이 없는데, 여기서도 그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일어난 나를 보며 노아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형. 일어났어요?”

“응, 뭘 그렇게 하고 있어?”

“아, 이거요?”

뭘 그렇게 열심히 하나 싶어봤더니, 어제 따놓은 바나나랑 카사바를 굽고 있었다.

“형들 아침 먹어야 하잖아요.”

얘는 숙소에서도 요리사더니, 여기까지 와서도 고생이네.

모닥불 주변에는 어제 전쟁처럼 해치운 만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생선가시들과 크레이피쉬의 껍질 흔적들. 수박씨처럼 널 부러져 있는 조개껍질까지.

정말 어제는 난리도 아니었지.

직화로 구운 생선구이도 물론 맛있었지만, 어제의 하이라이트는 당연 크레이피쉬였다.

크레이피쉬가 맛있다맛있다 말만 들었지, 그처럼 맛있는 건 나도 생전 처음 먹어봤다. 물론 배도 고팠고, 여러 가지 환경적인 요인도 작용했겠지만, 분명 한국에 돌아가서도 두고두고 생각날 그런 맛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생존의 법칙에서 크레이피쉬말고 또 맛있다고 극찬을 했던 게 있었던 거 같은데······.

-코코넛 크랩 말씀이세요?

영삼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맞다.

그거네 그거.

코코넛 크랩은 다자란 성체의 몸길이가 약 30cm-40cm, 몸무게가 약 10-15kg정도로 주로 태평양, 인도양의 여러 섬에서 발견되는 절지동물의 갑각류다.

주로 야자나무 위에서 생활을 하며, 야행성이고, 몸 빛깔은 검은빛을 띤 보라색이며, 몸 전체가 단단한 석회질이여서 거칠고 단단하다.

다른 집게류와는 달리 성체는 조개껍데기 속에서 생활하지 않고, 집게다리는 크고 억센 편이며 지름 2cm 정도의 대나무를 집어서 끊을 수 있다.

낮에는 어두운 곳에 숨고 밤에 나와 먹이를 찾는데, 야자나무를 비롯한 식물의 씨와 열매를 먹는다.

생존의 법칙에서도 김족장이 몇 번 잡아 요리를 한 게 방송이 됐는데, 출연자들이 꼽는 가장 맛있는 음식 중에서 크레이피쉬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

코코넛크랩을 먹고 자란 녀석을 쪄놓으면 살에서 그렇게 달콤한 코코넛냄새가 난다고 하던데, 당최 상상이 가질 않는다.

-혹시 여기서도 코코넛 크랩이 살고 있을까?

-물론입니다.

좋네.

영삼이한테서 딱 원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많던 적든 살고만 있다면야 잡는 건 문제가 안 되니 있다는 것만 증명되면 충분했다.

“형형, 이거 이정도면 다 익은 거 아니에요?

노아가 이제는 거의 숯덩이가 돼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바나나와 바나나 잎으로 둘둘 말아 직화로 굽고 있는 카사바를 모닥불에서 꺼내들며 물었다.

겉보기에는 거의 다 익은 것 같다.

“한 번 까서 먹어볼까?”

일단 바나나를 한 개 떼어 껍질을 벗겨 노아에게 내밀고 나도 하나 꺼내 씹었다.

근데 맛이 좀 오묘하다.

분명히 방송에서는 감자맛 뭐, 그런 맛이 난다고 했는데 실제로 먹어보니 식감이나 맛이 생각보다 별로다.

그렇다고 못 먹을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막 계속 먹고 싶은 맛은 확실히 아니다.

하지만 오늘도 이곳에서 생존 활동을 하려면 탄수화물을 먹어줘야 에너지원이 생기니, 나는 바나나 한 개를 먹어치우고, 한 개 더 껍질을 까서 입속에 쑤셔 넣었다. 바나나와 카사바는 그야말로 탄수화물 덩어리니까.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코코넛 크랩으로 가득했다.

“형, 그런데 우리 오늘은 뭐 먹어요? 오늘도 사냥해요?”

“어. 해야지.”

“뭐 사냥하실 건데요?”

그리고 머릿속의 생각이 그대로 여과 없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코코넛크랩.”

“네? 뭘 먹어요? 코코넛이요?”

대답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김태현이 움막집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 뒤로 장요한과 박진우의 모습도 보이고.

“우선은 이걸로 요기부터 좀 해. 노아가 아침부터 열심히 구운 거야.”

먹을 거라는 말에 장요한이 화색을 하며 달려든다.

생존의 법칙을 보면서 바나나 구운 것을 꼭 먹어보고 싶었다는 둥, 카사바가 완전 밤고구마 맛이라는 둥, 온갖 호들갑을 다 떤다.

거치 카메라를 제외한 모든 카메라 앵글이 장요한에게로 몰빵된다.

다른 멤버들의 반응은 그냥그냥 먹을 만하다 정도인데, 장요한이 워낙 호들갑이니 혼자 네 명치의 리액션을 모두 떠맡아서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고는 지 혼자 바나나 3개와 주먹만 한 카사바 하나를 먹고 나서야 배를 두들기며 떨어졌다. 어째 서울에 있을 때보다 이곳에서 더 잘 먹는다.

기다란 나뭇가지를 꼬챙이 삼아 모닥불을 휘적거리던 김태현이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형, 근데 좀 전에 코코넛 크랩 잡자고 했잖아요. 그거 여기서도 잡을 수 있는 거예요?”

“있지. 코코넛크랩은 코코넛을 주 식량으로 삼으니까 코코넛열매가 많은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잡을 수 있어.”

“아······.”

“밤에 한번 나가보자. 코코넛 크랩이 야행성이니까 밤에 찾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

멤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김우영 피디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쉽게? 코코넛 크랩을 쉽게 찾는다고?”

옆에서 있던 조연출도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되죠 그건. 아무리 최강민이라도 힘들지 않을까요? 김족장도 마음먹고 몇 시간씩을 찾아야 겨우 1, 2마리 발견할까 말까하는 건데. 더군다나 코코넛크랩이 보호색을 띠고 있어 밤에는 잘 보이지도 않잖아요.”

“그런데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쉽게 말을 하는 거지?”

“그러니까요. 그런데 왠지 최강민이라면 잘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가만 보니까 뭐 찾는 거는 거의 신들린 듯 다 찾아내던데. 어제 수중카메라 감독님이 녹화해온 거 같이 보셨잖아요. 무슨 눈에 레이더를 단 것 마냥. 저 어제 그거보고 완전히 지렸잖아요. 소오오름이. 아주 그냥.”

몸을 흠칫 떤 조연출이 몸을 쓸어내며 말을 이었다.

“피디님. 아예 이참에 플레어 특집 찍는 거, 최강민을 메인으로 살려서 포커스를 맞추는 건 어때요?”

“지금도 충분히 그러고 있잖아! 혼자 다 해쳐먹고 있는데, 여기서 뭘 더 이상 어떻게 포커스를 맞춰!?”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십분 살리게끔 아예 판을 깔아주자고요.”

“능력? 뭔 능력?”

김우영 피디가 지난 하룻밤 사이 길게 자란 턱수염을 매만지며 물었다.

“생존의 법칙을 보는 시청자들이 가장 재미있어하고, 좋아하는 부분이 뭡니까?”

“음. 여자아이돌이 나와서 레쉬가드 입고 잠영할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튀어나온 대답에 조연출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피디님이 좋아할 때고요! 시청자들이요. 시청자들!”

“아. 으음······. 그거야 당연히 사냥을 하거나 먹방을 할 때지. 분당시청률이 그때가 가장 많이 오르니까.”

“그렇죠! 그런 그림들이 많아야 리드기사 뽑기도 쉽고, 금세 화제가 되잖아요. 후속 기사들 따라오기도 좋고. 그러니까 이참에 특집답게 레전드 편을 만들어버리는 거죠. 미션을 줘서, 육해공을 한자리에 모아 진수성찬으로 즐기게끔. 혹시나 성공한다면 상품으로 식재료를 조금 주고요. 초장이나 식용류 같은 걸로요.”

“아예 먹방을 찍자?”

“네. 요즘 트렌드가 먹방이잖아요. 생존의 법칙에서는 다들 쫄쫄 굶고 돌아가는 줄만 알고 있는데, 먹방으로 시청자들의 허를 찌르는 거죠. 생각만 해도 시청자들이 좋아하지 않겠어요? 전 대박칠 거라고 보는데.”

“음. 좋기는 한데, 너무 둘째 날에 먹거리를 다 보여주면 마지막 날에 보여줄 그림이 없지 않겠어?”

“요트도 섭외 해놨는데, 마지막 날에는 참치나 잡으러 가면 되죠. 혹시 또 알아요? 최강민이 거대한 참치를 한 마리 떡 하고 잡아서 우리들의 숙원을 풀어줄지?”

“으음.”

김우영 피디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식, 생물들 자료 사전에 조사해놓은 것 있지? 그것들 좀 가지고 와봐. 그리고 사냥해서 얻을만한 것들이 뭐, 뭐 있는지 리스트 좀 뽑아서 가지고 와보고.”

*

김우영 피디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한 얼굴이다.

“최강민씨. 오후에는 뭘 하실 생각이세요?”

“식량 해결하러 나가야죠.”

“그러면 이왕 잡는 거 저희가 미션을 드릴 테니 그것을 한 번 해보는 건 어때요? 그냥 하면 심심하잖아요.”

“미션이요?”

그 말을 들은 멤버들 눈이 동그래졌다.

“미션이 뭔데요?”

장요한의 물음에 김우영 피디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이른바 육해공 만찬입니다.”

“육해공이요?”

“말 그대로 육해공에 관련된 음식들을 준비하시는 게 미션이에요. 헌데, 애써 구한 식재료를 그냥 불에 굽거나 삶기만 해서는 별로 맛이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맛있게 드실 수 있게 몇 가지 양념이랑 재료를 드리고자 합니다. 아, 물론 공짜는 아니에요. 미션에 성공했을 때만 드리는 겁니다.”

김우영 피디가 손짓하자 스태프 한명이 박스 하나를 들고 왔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밀가루와 소금, 초장, 식용류가 들어 있었다.

“육해공만찬이 될 만한걸 잡아오면 이걸 전부 드리겠습니다. 어때요?”

“만약에 성공 못하면요?”

내가 의심 섞인 눈초리로 김우영 피디에게 물었다.

그동안 겪은 바에 의하면 예능 프로그램에서 뭔가 달콤한 것이 있으면 뒤에는 항상 쓴 것이 따르기에.

“성공을 못하셔도 여러분에게 해가 될 건 없어요. 그냥 저희는 여러분들이 조금 더 음식을 맛있게 드셨으면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준비한 거니까. 그런데 그냥 드릴 수는 없으니 상품으로 내거는 거예요. 이걸 보시는 시청자들도 납득을 해야 하니까.”

실패해도 패널티도 없단 말이지?

그렇다면 당연히 해야지.

멤버들의 의사를 묻고, 내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동안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건 소금 같은 양념이 음식을 할때에는 진짜 중요하다는 거다.

막말로 카사바에 소금만 쳐도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다.

“그러면 승낙을 하셨으니 지금부터 카운트에 들어갑니다. 카운트는 지금부터 시작해서 오늘 자정까지로 할게요.”

“네!? 그렇게나 빨리요? 하루 만에 그걸 어떻게 다 잡아요!?”

장요한의 볼멘소리에 김우영 피디가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미션이죠. 너무 쉬우면 재미없잖아요. 어쨌든 여러분. 카운트는 시작됐습니다. 자정까지입니다!”

< 또 다른 예능 (8)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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