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다른 예능 (6) >
뜨겁게 내리쬐던 햇볕이 점점 사그라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슬슬 밤바다 사냥을 나서야할 시기가 다가온 거다.
낮보다는 밤에 물고기 사냥을 하기가 더 용이한데, 그것은 대부분의 물고기들은 주행성이라 낮에 활동하고, 밤이면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반대로 야행성 어종들도 있는데, 그것들은 대체적으로 뱀장어, 곰치, 상어등 대체적으로 몸통
이 둥그렇고, 상대적으로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먹는 어종들이다. 어차피 그것들은 사냥대상어종에서 제외라 사냥에 편한 야간을 택한 것이다.
내가 장요한이 가지고 온 미니 우산을 집어 들며 물었다.
“요한아, 이거 내가 좀 사용해도 될까?”
“우산이요? 그건 왜요? 비도 안 오는데.”
“물고기 잡을 작살을 만들어보려고.”
“어? 그거라면 제가······.”
말을 잇다만 장요한이 자신의 배낭을 뒤적거리더니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꼭 한 뺨 크기만 한 거였는데, 놀랍게도 셀카봉처럼 3단으로 접혀서 휴대가 용이하게끔 만든 작살이었다.
별걸 다 파네.
저런 건 도대체 어디서 산거래?
그걸 찬찬히 살펴봤지만, 작살봉의 내구성이 형편없다. 작살봉을 가볍게 플라스틱으로 만든 건데, 저래서는 물속 수압을 가로 지르며, 표적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내지르지도 못할 뿐더러, 몇 번 충격을 가하게 된다면 금방 부러질 거다. 전문가용 작살이라기보다
는 아동 놀이용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았다.
뭐, 굳이 사용하라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실전 효율성은 많이 떨어지는 정도?
헌데, 장요한은 마치 신무기라도 개발한 과학자마냥 뿌듯한 얼굴로 그걸 들고 서 있다. 저걸 들고 삼차대전이라도 일으킬 기세다.
“좋네. 그런데 그건 네가 사용할거니까 내건 내가 만들어서 사용할게.”
저런 표정을 짓고 서 있는데, 저걸 달랄 수는 없지.
“형이 원하시면 제거 드려도 상관없는데.”
장요한이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나와 들고 있는 작살을 번갈아 쳐다본다. 내가 격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그건 네가 써!”
저걸 들고 나갔다가는 남태평양 물고기가 나를 보고 비웃을지도 몰라.
순간 장요한의 얼굴이 환해졌다.
“대신에 작살 끝에 매달게 우산살 좀 떼어서 써도 될까? 어차피 여기서 우산은 별 필요성이 없어서.”
“네, 그러세요.”
장요한이 냉큼 대답했다. 무슨 생각으로 미니우산을 이곳에 가지고 온지는 모르겠지만, 그 우산의 희생으로 근사한 작살을 만들면 그걸로 된 거지.
나는 우산을 해체해서 우산살 두 개를 쭉 뽑은 다음에 나무를 깎아 그 끝에 그 앞에 매달고 테이프로 둘둘만 다음 작대기 끝에 고무줄을 매달았다.
10분도 안돼서 근사한 작살이 하나 만들어졌다.
성능테스트를 해본다고 나무 밑둥에 대고 그걸 몇 번 쏴보자, 멤버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몰려들었다.
내가 웃으면서 그걸 던져줬다.
“너희들도 사냥 나가야하니까 이거 보고 한번 만들어봐.”
그걸 받아든 멤버들이 분주해진다. 자신들도 작살을 만든다고 나무를 깎고, 우산살을 뽑고, 난리법석이다.
역시나 그중에서 가장 손재주가 있는 건 김태현이었다. 취미가 프라모델 조립이라서 그런지 완성품만 놓고 보자면 내 것보다 더 잘 만들었다.
장요한은 자신이 들고 온 3단 작살봉을 테스트해본다고 나무 밑둥에 대고 몇 번 쏴보다가 울상을 지었다. 내구성이 약해서인지 봉 중간이 뚝하고 부러진 것이다.
그걸 본 박진우가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푸하하하. 너 혹시 아동용 사가지고 온 거냐?”
“시, 시끄러워. 멍청아!”
어떻게 할지 몰라 벌겋게 볼이 달아오른 장요한에게 김태현은 자신이 만든 작살을 던져주고, 급히 하나를 더 제작했다.
다행히 김태현이 만들어준 작살이 더 마음에 들었는지 그것을 들고 한참동안 매만지다가 그제야 환하게 웃는다.
단순한 녀석.
“어, 너는 왜 안 만들어?”
노아는 작살대신 나뭇가지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저는 물이 무서워서요. 어렸을 때 물에 빠진 적이 있어서······.”
“아······.”
그건 또 처음 듣는 사실이네.
내가 표정이 어두워지자 노아가 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저 괜찮아요. 사실 물에 들어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춥기만 하고. 대신에 형들 사냥 갔다가 올 동안 저는 불 지키고, 젓가락 만들고 있을게요. 저는 요리담당이잖아요.”
“그래. 형들이 물고기 많이 잡아올게.”
“그러면 저도······ 그냥 여기 남아 있을게요.”
그걸 본 김태현이 슬그머니 노아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걸 보고 노아가 의문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어, 왜요? 형은 수영도 잘하잖아요.”
노아의 물음에 김태현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노아의 머리위에 손을 얹어 놓는다. 그리고는 마구 헝클어트리며 대답했다.
“그냥······ 오늘은 물에 들어가기가 싫네. 형들이 저 비글 두 마리 데리고 다녀와요. 특히 저 장 비글은 혼자서도 케어하기 힘드실 텐데.”
김태현을 보고 있는 노아의 눈이 웃고 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내 눈도 똑같아지고 있다.
아무리 어른인 척 해도 아직은 미성년자인데, 이런 휑한 곳에 혼자 내버려두기가 마음 쓰였나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저렇게 김태현이 자청하고 나서주니 고맙기가 그지없다. 우리 팀이 여지껏 큰소리 없이 화목하게 지낼 수 있었던 건 김태현이 저렇게 티 안 나게 묵묵히 맏형 역할을 해주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형형! 뭐해요? 빨리 출격해요.”
장요한이 저만치서 손을 흔들고 있다. 지손으로 물고기를 잡는다니 몸이 벌써부터 달아 올랐나보다.
“알았어!”
내가 대답을 하고 뒤돌아서자 노아와 김태현이 당부하듯 이야기한다.
“못 잡아도 좋으니까 조심히만 다녀오세요.”
“그래, 알았어. 금방 다녀올게.”
*
칠흑 같은 어둠 속. 철썩이는 파도소리만이 요란하게 들려온다. 파도치는 소리가 꼭 귀신이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원래 바다는 낮에 보면 장엄하고, 아름답고 경이롭게 보이지만 밤이 되면 안면을 바꾸고 매서워지는 게 바로 밤바다다.
미처 어두워서 보지 못한 산호초에 피부가 쓸릴 수도 있고, 날카로운 바위나 갯바위를 밟아 발이 까질 수도 있다. 혹은 바위틈 같은 곳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곰치, 바다 뱀에게 물릴 수도 있다.
바다는 인간에게 풍요롭고 많은 것을 베푸는 곳이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위험이 항시 도사리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내가 스노쿨링 수경을 쓰면서 신신당부를 했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나와. 그리고 욕심낸다고 잠수를 오래해서도 안되고. 잠수를 할 때는 뭔가를 잡거나 줍기 위해 들어가느라 숨 딸리는 지 몰라도, 너무 깊이 들어가면 올라올 때 힘들 수도 있으니까.”
“네, 걱정 마세요. 저 별명이 물개예요. 물개.”
장요한이 가슴팍을 탁탁 치며 호언장담을 한다.
그러니까 더 무섭다.
“형, 얘는 제가 옆에 붙어 다니면서 감시할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뭐? 나 따라다니려고?”
“어. 싫어?”
싱글거리는 박진우의 대답에 장요한이 질색을 한다.
“옆에서 계속 잔소리 떽떽 거릴 거면 떨어져서 다녀!”
“싫은데? 누구 좋으라고?”
밉상 맞기도 하다. 헌데, 그런 박진우가 그렇게 듬직해 보일수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확실히 장요한의 안전장치는 박진우가 제격인거 같다.
-영삼아. 어때? 식량으로 삼을 만한 것들은 좀 보이는 것 같아?
영삼이에게 주위 50m이내를 전부 스캔해 달라고 했다.
1km 밖에 있는 낙엽 떨어지는 소리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캐치해낼 수 있게 영삼이다. 보이지는 않더라도 바다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생물들의 동태라면 얼마든지 파악이 가능했다.
-이곳은 작은 어패류와 손가락만한 물고기가 전부고, 조금 더 큰 사냥감을 잡으려면 더 깊은 곳으로 나가야합니다.
-어쨌든 이곳에도 잡을 건 있다는 소리네. 좋았어. 어패류가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좀 안내해줘.
나는 장요한과 박진우를 끌고, 영삼이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는 어패류 밭으로 인도한 다음 소라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요한아, 저기저기.”
시치미를 딱 떼고,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어느 지점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어째 갈수록 시치미 떼는 연기만 느는 것 같다.
“엇!”
내가 가리키는 곳을 랜턴을 비춰본 장요한이 화색이 돼서 물속에 얼굴을 담근다. 그리고 이내 제법 큼지막한 소라를 건져내며 포효 했다.
“우와아아아! 소라다 소라! 형형, 이거 소라 맞죠?”
“응, 맞아.”
그걸 잽싸게 가지고온 그물망에 넣은 장요한이 투지가 불타서는 또 다시 물속에 고개를 쳐 넣는다. 그리고는 뽈뽈거리며 주변을 수색한다. 그야말로 눈에 불을 키고 있다.
가만히 그것을 보고 있던 박진우가 웃으며 내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형, 우리는 얕은 곳에서 조개나 소라 같은 거 줍고 있을 테니까. 형도 사냥하세요. 얘는 제가 따라 다닐게요.”
“어, 그럴래?”
박진우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저희 때문에 형 사냥도 못하고 계시잖아요. 수심이 얕으니 저희 둘 다 빠져죽을 일은 없을 테니 형도 하고 싶은 거 하세요. 게다가 생존 전문가분도 옆에 계시잖아요. 카메라 감독님도 계시고. 저희가 뭐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도 아니고.”
카메라 앵글 속은 비치지 않지만 이곳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줄곧 생존 전문가와 현지인이 스태프와 같이 움직이며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위급한 상황이 온다면 아마 그들이 알아서 잘 조취를 해줄 것이다.
하긴, 너무 감싸고돌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좋지도 않지.
“알았어. 그러면 맛있는 거 많이 잡아가지고 올게.”
나는 대답을 한 후, 조금 더 깊은 바다로 향해 헤엄을 쳐서 나갔다.
나로 인해 멤버들이 물고기를 먹느냐 못먹느냐의 기로에 서있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어깨가 무겁다.
가정을 일군 가장이 돈을 벌기 위해 직장 나갈 때 기분이 꼭 이렇겠지?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그토록 멀게 느껴졌던 아버지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이래서 옛 말 틀린 게 하나 없다.
남자는 어렸을 때는 어머니를 더 좋아하지만, 커서는 아버지를 더 좋아한다는 말.
어렸을 때는 그 말의 속뜻이 뭔지 몰랐는데, 그것은 아마도 점점 성장함에 따라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면서, 이전에는 갖지 못했던 공감대를 형성 했기 때문이 아닐까?
정신을 번뜩 차려보니 벌써 꽤 오랫동안 헤엄을 쳐서 들어왔다.
우리가 처음 배로 들어오기 전 깊은 수심에서부터 갑자기 얕아지는 구간이 있는데, 불과 1m를 두고 수심이 허리춤에서 7-10미터정도로 급격하게 변화했다.
그 경계선 끄트머리에 도달한 거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다음, 물속으로 잠수했다.
등에 산소통을 매고, 수중 카메라 감독이 나를 따라 들어온다.
실시간으로 레이더를 가동시키고 있던 영삼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헤엄치고 있는 2시 방향으로 10미터정도만 가면 25cm정도 크기의 놀래미가 바위틈에 숨어 있습니다.
오케이.
나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물속을 유영해나갔다.
확실히 이런 면에서 보자면 오리발이 효율성이 좋았다. 발길질 몇 번만으로도 몸이 쭉쭉 앞으로 나갔으니까.
한 손에 든 랜턴으로 여기저기를 비춰 봤다. 마치 바다가 잠을 자고 있는 듯 고요하고, 조용하기 그지없다. 다행히 시야가 혼탁하진 않았다. 들고 있는 랜턴이 잠수부들이 사용하는 고성능 랜턴이라 전방 5m정도까지는 시야가 확보됐다.
나는 유영을 하며 영삼이가 말한 물고기를 찾아냈다. 그리고는 카메라 감독에게 손짓을 한 다음 신중하게 작살을 겨눴다.
비록 낮에 과일을 충분히 많이 따놓은 상태라 굶주림걱정은 없지만 열매는 어디까지나 열매일 뿐이다. 카사바를 비상식량으로 남겨놓기는 했지만, 맛 보장은 못한다.
구워놓으면 밤고구마 혹은 감자 맛이라고 말하고는 하는데,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맛없다. 게다가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야영을 하며 3일 동안 지내려면 단백질 공급은 꼭 필요했다.
조주우우운.
발사.
턱.
보기 좋게 철사가 고기의 몸통을 뚫고, 바닥에 박힌다.
고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재빨리 철사 끝을 다른 손으로 막고, 그것을 감싸듯 들어올렸다. 파닥거리는 고기의 힘이 장난이 아니다. 철사가 휠 정도다.
옆에서 그것을 찍고 있던 수중 카메라 감독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보기 좋게 나의 수중 첫사냥이 성공을 한 셈이다.
그것을 들고, 나는 유유히 수면위로 올라갔다.
“푸핫.”
물을 뱉고, 수경을 벗자 수면위에 떠다니는 배 한 척이 보인다. 수중 사냥을 간다기에 야간 촬영을 위해 따라온 스텝 두 명과 김우영 피디다. 환한 조명아래 날벌레들이 득실득실하다. 김우영 피디가 배 위에서 고개를 비쭉 내밀며 물었다.
“우와, 최강민씨. 지금 물고기 사냥에 성공 하신 거예요?”
“네.”
“단번에?”
“물고기가 가만히 있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휙.
내가 잡은 물고기를 배위에 던져주자, 파닥거리는 물고기를 보고 다들 놀라서 피하기 급급하다. 그리고 나는 여유 있게 손을 흔들어준 다음 다시 물속으로 향했다.
< 또 다른 예능 (6)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