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107화 (107/124)

< 또 다른 예능 (4) >

그때 그것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김우빈 피디가 나섰다.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고 서 있는 멤버들을 돌아보며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그동안 생존의 법칙은 매번 생존지가 바뀔 때마다 부족원을 이끌 족장님을 한분씩 뽑는 게 원칙이었거든요? 여러분들도 여러분을 이끌 족장님을 뽑으시는 건 어떠십니까?”

그 같은 질문에 자연스럽게 시선들이 나에게로 모인다.

김태현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어······. 저는 강민이 형을 족장으로 추대합니다.”

“저도요.”

“저도.”

멤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넙죽 받았다. 순식간에 표가 쏠렸다.

그걸 본 김우빈 피디가 웃으면서 말했다. 예상했다는 눈치다.

“그러면 부족민들의 의견에 따라 최강민씨를 만장일치로 족장님으로 임명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최강민 족장님. 그리고 이거.”

스텝 한명이 족장이라고 쓰여 있는 노란색 완장을 내게 내밀었다.

족장을 의미하는 일종의 징표 같은 거다.

그것을 받아들면서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뭔가 어색하다. 난데없이 족장님이라니.

그래도 취임사 인사는 해야할 것 같아서 카메라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열심히 여러분들과 함께 이곳에서 잘 생존해보겠습니다.”

간단한 취임사 인사가 끝이 나고, 김우빈 피디가 물었다.

“그러면 족장님. 지금부터는 뭘 하실 생각인가요?”

그 질문을 들은 멤버들이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마치 어린 꼬마들을 놀이동산에 데려놨을 때 짓는 표정이다. 눈이 빛나다 못해 반짝 거린다.

음, 가만있어 보자. 뭐부터 해야 하지?

내가 영삼이에게 물었다.

-우선은 집부터 지어야겠지?

-네. 수평선 너머로 먹구름이 조금씩 생성 되서 몰려오는 거보니까 1-2시간 내외로 비가 내릴 것 같습니다. 이 지역은 소나기 같은 굵은 빗방울이 시시 때때로 내리기 때문에 지붕도 꼭 지으셔야 합니다.

-알았어. 여기 섬에 대한 지형 정보는?

곧이어 섬 지역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집을 짓기에 적합한 장소는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좋은 곳이 있습니다. 벌레도 별로 없고, 적당량의 바람이 불어 통풍도 어느 정도 되고, 위로는 굵은 나뭇가지들이 뻗어 있어 어느 정도 비도 막아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섬 뒤쪽 해안가 쪽에 천연동굴이 존재하는데 그곳도 생존하기에는 적합한 환경입니다.

-음, 그래도 이왕이면 동굴보다는 집을 직접 지어보고 싶은데.

-그러시면 집 짓는데 필요한 정보들을 업데이트 해드리겠습니다.

영삼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머릿속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며, 필요한 정보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직도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애들을 돌아보며 내가 말했다.

“우선은 집을 먼저 짓자. 저쪽 수평선 너머 구름이 좀 몰려 있는 게, 꼭 비가 올 것 같으니까. 여기 말고 안쪽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지형상 괜찮은 공터가 나올 것 같아.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 집터를 찾아보자. 어때?”

멤버들이 거의 무한 신뢰에 가까운 눈으로,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린다.

“가요, 형.”

300미터쯤 걸어 들어가자 영삼이가 말한 그 공터가 나왔다. 영삼이가 말한 대로 누가 봐도 아, 여기네. 하고 감탄성이 나올만한 그런 최적의 장소였다.

“음, 우선은 집터바닥을 좀 고르고, 필요한 목재들을 공수해야하니까 그동안 누가 주변 탐색 좀 해줄래? 뭐, 먹을 만한 게 있나 찾아보고, 지형도 파악하고. 땔감으로 쓸 장작거리 같은 것도 구해오면 더 좋고.”

뭐라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해 보이는 장요한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저요! 형. 제가 돌아보고 올게요!”

“그럴래?”

“먹을 거 찾으면 갖고 오면 되죠? 티비에서 보니까 파인애플, 바나나. 막 그런 것도 따먹고 그러던데.”

“좋지. 그런 게 있으면. 혹시 돌아다니다가 그런 거 있으면 꼭 챙겨와.”

“네, 네!!! 저만 믿으세요.”

팽팽해진 활시위에 올려 진 화살마냥 장요한이 정찰을 위해 튀어나갔다. 아주 의욕이 충만하다. 의욕이 충만한 것은 물론 좋다.

하지만 저러다가 금방 지칠까봐 그게 걱정이다.

더군다나 제일 무서운 게 귀신보다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없는 이런 정글 속에서는 가장 조심해야할 것이 바로 독충, 뱀 등이다.

특히나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은 작은 독충들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데, 처음에 멋모르고 그것을 만졌다가 호되게 당하는 경우도 생긴다.

더군다나 콩가개미 같이 작은 곤충들을 얼핏 보면 개미라고 괄시하는 수가 생기는데, 이 녀석 같은 경우는 입모양이 톱날처럼 생겨 물리면, 물린 부위가 벌겋게 부어오르며, 땀이 나며 몸이 떨리거나 메스꺼움을 느낄 수 있으며, 불에 댄듯한 고통이 하루이상동안 지속된다.

심지어는 알레르기 반응으로 식도까지 부어오르며 호흡곤란 증세까지 겪을 수가 있다.

옆에 서 있던 박진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전장치 역할을 자청했다.

“쟤, 혼자 두면 사고 칠지도 모르니까 제가 따라갔다가 올게요.”

내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박진우와 장요한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김태현이 다가왔다.

“형, 그동안 우리는 집 짓고 있으면 돼요? 도대체 어떻게 집을 지으시려고요? 도통 감이 잘 안 오는데.”

“음.”

나는 잠시 생각했다.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고, 쉽고, 간단하고 빠르게 지을 수 있는 집 모양의 형태를.

그리고 이내 결론에 도출했다.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움막처럼 짓자. 제일 간단하고 빠르고 쉬우니까.”

“움막처럼요? 아! 뭔지 알겠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지었던 움막 같은 거 말하는 거죠?”

“응, 맞아.”

노아의 외침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내 머릿속의 구상은 이랬다.

기둥이 될 만한 굵은 나무를 세우고, 적당히 손쉬운 나뭇가지를 꺾어서 나뭇가지를 걸쳐 돌려쌓는 방법이다. 그리고 잎이 많은 나뭇가지를 주위로 덮어 움막처럼 짓는 것이다. 쉽고, 빠르게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그리고 바닥은 습기를 막아주고, 보온효과를 높이기 위해 나뭇잎이나 풀등을 깔면 된다.

“음, 그러면 뭘 구해오면 돼요?”

“대나무 같은 휨이 좋은 나무가 있으면 좋고, 기둥으로 대체할 만한 나무도 찾고, 크고, 두꺼운 잎사귀 같은 것도 있으면 좋겠는데. 일단은 집 재료가 될 만한 게 있는지 좀 흩어져서 찾아보자.”

내 말에 따라 남은 인원은 각자 집 짓는데 필요한 재료들을 구하러 흩어졌다.

잠시 후 김태현과 노아가 끙끙 거리며, 기둥으로 쓸 만한 큰 나뭇가지를 주워오고, 내려놓기가 무섭게 또 다시 왔던 곳으로 질주했다.

노다지 밭을 발견했는데, 그곳에 나뭇가지들이 잔뜩 쌓여있어 그것들을 죄다 주워올 거라 했다. 나는 그동안 끈으로 사용하기 위해 잔 나무껍질을 벗겨 줄기를 벗겨냈다.

이곳에서 자라나는 야자수들은 줄기가 질기고 탄탄해서 얇게 벗겨놓으면 충분히 끈 역할이 가능했다.

“강민씨. 이런 거는 다 어디서 보고 배우셨어요? 어디가서 해보신적 있으세요?”

능숙하게 나무줄기를 벗겨내고 있는 걸 보고 있던 카메라 감독이 물었다.

벌써 20회차나 생존의 법칙을 따라다니던 카메라 감독이 깜짝 놀란 눈치다. 놀란 건 그 뿐만이 아니라, 외부초청으로 같이 따라들어온 서바이벌 전문가도 놀란 표정이다.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냥 티비보고 배운 거죠. 책에서도 봤고.”

“그래도 이 플레시아 나무를 끈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모른다고 하던데요? 게다가 능숙하게 나무를 찾아내고, 줄기까지 일사천리로 벗겨내는 게 꼭 이런 경험이 많은 베테랑 같다고 하네요. 옆에 있는 생존 서바이벌 전문가께서.”

나는 대답대신 웃어 보이며 묵묵히 줄기를 벗겨냈다.

그 사이 김태현과 노아가 가지고온 나뭇가지가 수북하게 쌓일 무렵, 커다란 기둥을 세우고, 굵직한 가지들을 연결해서 땅에 박았다. 그리고 교체시켜놓은 기둥사이사이에 잔 나뭇가지들을 얹어 움막형태의 모양을 잡자, 그럴싸한 뼈대가 완성됐다. 그리고 근처

에 보이는 커다란 나뭇잎들을 죄다 끌어 모아 그 위에 덮어줬다.

비가 올지도 모르니 움막 주변에 물고랑을 파서 둔덕을 만들고, 그 앞쪽에 흙을 적당히 쌓아 빗물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만들었다.

그걸 보고 있던 노아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도대체 형은 이런 걸 언제 다 배웠어요?”

“내가 어려서부터 생존에 관한 만화책 같은 걸 많이 봤거든.”

집짓기 시작한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그럴싸한 움막이 완성 됐다.

주변을 정리하고, 조금은 휑한 듯한 지붕 보수를 위해 노아와 김태현이 나뭇잎을 딴다며, 빨빨 거리며 돌아다녔다. 양손에 커다란 바나나 잎을 몇 장씩 들고 온 둘이 그것을 내려놓으며 잠시 휴식을 위해 바닥에 주저앉았다.

“형, 아직 애들은 아직 안 왔죠?”

“응.”

“뭐 이렇게 시간이 걸리지? 혹시 길 잃어버린 건 아니겠죠?”

섬 전체의 크기가 지름 10km정도 밖에 되질 않은 작은 섬이기에 해변가만 따라 걸어도 길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내가 웃으며 대꾸했다.

“걱정 마. 게라도 발견해서 그거 줍느라 늦나보지.”

*

“야야! 저기 저기 저기!!!”

엄청난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이 장요한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는 첫 눈을 본 강아지마냥 맹렬한 기세로 어디론가 돌진한다. 뭔가 싶어 봤더니, 뱃 사장 위를 뽈뽈 거리며 기어가는 게를 발견한 거다.

“엄청나게 커! 야야! 빨리 와 빨리!”

박진우도 처음에는 뭔가 싶어 서둘러 따라갔다.

장요한은 그 사이 게가 가는 길목을 운동화로 이리저리 차단시전하고 있었다. 그걸 본 박진우가 한숨이 내셨다.

“야, 이게 큰 거냐?”

게 크기가 딱 한 손가락 마디였다.

“이 정도면 큰 거 아냐? 어렸을 때 시장에 가면 이만한 게로 무쳐놓은 거 엄마가 사주고 그랬는데. 한 백 마리 잡아서 먹으면 배부르지 않겠어?”

“됐다.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냐.”

그 사이 장요한이 그 작은 게를 잡아들고서는 엄청나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야야! 잡았어. 잡았어! 야, 나 지금 게 잡았다고! 살아있는 게를 잡았다고!”

누가 보면 금덩이라도 발견한줄 알겠다.

“너 게 처음 보냐?”

그 광경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본 박진우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어. 처음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건 처음 만져봐. 야야, 그런데 이거 어떻게 하지? 어디 담을 대 없나? 담을 대.”

“호주머니에 넣어가.”

“아······.”

박진우가 툭 던진 말에 감탄성을 내뱉은 장요한이 바지 호주머니에 주섬주섬 게를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이번에 또 뭔가를 발견했다는 듯이 소리치며 갯바위 쪽으로 뛰어간다.

“야야, 이것도 먹을 수 있는 것 맞지? 이거 여기 엄청 많은데? 좀 챙겨갈까?”

이번엔 또 뭔가 싶어 봤더니 엄지 손톱만한 고둥이다.

“야, 어차피 이길 되돌아와야 하니까 필요하면 그때 챙기고, 우선 가던 길이나 마저 가. 그리고 이렇게 조그만 거 가지고 배나 차겠냐? 한 백 개 먹어도 간에 기별도 안 오겠다.”

“그런가? 그러면 우리 야자수 따가자. 저기저기 위에 달려 있는 거 코코넛 맞지?”

조금 떨어진 곳 나무위에 코코넛 열매가 대롱대롱 달려있다.

높이가 꽤 된다. 한 15m쯤 되려나?

거리를 가늠 지으려고 위를 쳐다보는데, 뭐가 이마위로 툭하고 떨어졌다.

“어?”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물방울이 이내 빗줄기로 변했다.

비다. 비가 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굵어진 빗방울을 보며, 장요한이 호들갑을 떨었다.

“야야, 비 온다. 어떻게 하지?”

박진우가 대답했다. 당황스럽기는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안되겠다. 우선 돌아가자. 아씨, 갑자기 웬 비야? 아직 형들 집도 다 안 지었을 텐데······.”

“빨리 가서 집짓는 거 도와주고 비 그치면 다시 나오자. 비 오는 줄도 모르고 우비도 안 챙겨왔단 말이야.”

“그래.”

둘은 서둘러 왔던 길을 되짚었다.

< 또 다른 예능 (4) > 끝

ⓒ 윤민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