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다른 예능 (3) >
승합차에서 내리기도 직전인데, 벌써 카메라 몇 대가 마중 나와 있다. 문을 열자 발을 내밀기도 전부터 카메라 셔터 음이 들려온다.
카메라 성능도 좋다. 도대체 일초에 몇 방이나 찍히고 있는 거지?
당최 셔트 끊기는 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차에서 내렸더니 비디오카메라가 일정 간격을 유지한 채 계속 따라붙었다.
차에서 따라 내린 스타일리스트가 카메라를 의식한 채 가만히 속삭인다.
“애들아. 너네 지금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협찬인거 알지? 카메라 노출되게 신경 좀 써.”
“네에.”
멤버들이 마네킹처럼 끄덕였다.
“아참아참, 이거 스카프. 노아는 목에 스카프 둘러야지.”
스타일리스트가 가방에서 스카프 하나를 빼들었다. 그걸 보고 노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으, 이거 꼭 해야 돼요? 되게 갑갑한데.”
“너네들 내년 광고 연장이 되느냐 마느냐가 걸려 있는데도?”
그 말에 볼멘소리를 토해내던 노아의 입이 쏙 들어간다.
노아가 웃으면서 목을 길게 빼 내밀었다.
“빨리 매주세요. 누나.”
그 모습을 보고, 모두들 숨죽여서 웃었다.
“다들 시계는 찼지? 특별 협찬 받아온 거니까. 종종 카메라에도 비춰주고. 방위, 온도, 램프기능까지 다 있는 거라니까 거기 현지 가서 어떻게든 기능 한 번씩 사용하라고.”
떠나기 직전 스타일리스트가 잔소리를 엄청 늘어놓는다.
우리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패션스타들의 공항패션이니 뭐니 해서 종종 포털 사이트나 신문기사에 연예인들의 공항 스타일이 입방아에 오르곤 하는데, 실제로는 이중에서 자기 옷을 입은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구누구 공항 패션이다라고 하면 온라인은 물론 패션 잡지에까지 오르내리는 마당에 어느 협찬사가 이 좋은 기회를 놓치겠는가? 물불 안 가리고 어떻게든 회사에 푸시해서 자신의 제품을 입게끔 하지.
장요한 같은 경우는 티, 재킷, 바지, 신발. 하나 못해 장갑까지 풀 착용중이다.
조금 과하긴 하다. 누가 보면 에베레스트라도 정복하러 가는 줄 알겠다.
심지어는 입고 있는 속옷까지도 아웃도어 브랜드의 속옷이다. 이것 또한 협찬이다. 이번에 N사에서 새로 개발했다는 이중성기능 속옷인데. 험한 정글 생활에서도 2, 3일 안 빨아도 쾌적함을 지속할 수 있다나 모라나. 그거야 직접 가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문제고······.
“여기요! 이쪽 한번만 봐주세요!”
“오빠! 저 오빠 보려고 어제 막차타고 대구에서 올라왔어요. 꺄. 이쪽이에요! 이쪽!”
“뭐, 어제 왔다고?”
장요한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다. 그리고는 볼이 상기된 채 발을 동동 구르는 여자애한테 고마워요. 촬영 잘하고 올게요. 라며 장갑까지 벗고는 손을 잡아주고 있다. 다정한 말을 건네주니 여자애 볼이 풍선 터지듯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서 눈물까지 흘리고 있다.
멤버들도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배웅해주기 위해 나온 팬들에게 연신 손을 흔들어 주고 있다.
제법 선선해진 10월의 날씨지만 이토록 뜨거운 반응들을 받으니 몸이 달아 오는 기분이다.
그리고 멤버들과 나는 그 달아오르는 기분을 그대로 비행기 안에 실었다.
“형, 이러고 있으니까 또 두바이 때 기억이 나요. 그때도 진짜 재미있었는데.”
멤버들이 하나같이 기대감과 흥분에 휩싸여 있는 표정이다.
주머니에 놓아놓은 핸드폰이 울리기에 봤더니 서은채였다.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오늘 출국 날이죠? 몸 조심히 생존의 법칙 잘 찍고 돌아와요. 그리고 대체 감사의 표시로 사겠다는 고기는 언제쯤 쏘실 건데요!!!!!?
느낌표의 개수가 격하다.
고기가 그렇게 먹고 싶었나? 최형식 실장을 잠시 떠올렸다. 맡은 연예인이 뭐 먹고 싶다고 돈 아끼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는데······.
어쨌든 답장을 보냈다.
-한국에 돌아오는 대로 바로 쏠게요.
곧바로 10초도 안 되서 답장이 돌아온다.
-진짜죠? 진짜 약속한 거예요!
“누구에요?”
옆자리에 앉아 있는 김태현이 고개를 빼죽 내밀며 물었다.
“은채씨.”
“뭐래요?”
“생존의 법칙 잘 찍고 오래. 고기 먹고 싶다고 갔다 와서 고기 사 달라고 하는데?”
눈매를 가늘게 치켜뜨고서는, 녀석이 웃음 섞인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뭔가 말을 잔뜩 하고 싶은데, 참고 있는 그런 음흉스러운 눈빛이다.
“왜?”
“혹시, 서은채가 형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잠시 서은채의 모습을 떠올려본 나는 고개를 격하게 내저었다.
“나를? 에이, 은채씨가 뭐가 아쉬워서? 좋다고 따라다니는 남자들 쌔고 쌨을 텐데.”
그때 옆, 뒷좌석에 앉아 있던 멤버들이 상체를 내밀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은채 누나가 형 좋아한대요? 진짜? 진짜?”
“아마도 그럴걸?”
장요한의 물음에 김태현이 턱을 괴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우왓! 형은요? 혹시 형도 누나 좋아해요? 둘이 사귀어요!?”
“멍청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너 유언비어 유포 죄로 고소당하고 싶어?”
박진우가 서둘러 큰소리를 내는 장요한의 입을 막는다. 그리고 노아를 봤더니,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마구 흔들리고 있다. 충격을 양푼 그릇 채 껴안고 퍼먹은 표정이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믿었던 동료에게 칼침 맞고, 죽어가기 직전의 주인공 얼굴을 하고 있다. 아주 애가 넋이 나가 있다.
정작 엄청난 말을 던져놓은 김태현의 표정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한가로운 연못에 커다란 돌맹이를 던져놓은 개구쟁이 같은 얼굴을 하고서는.
그리고 궁금증이 가득 서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표정이 묻고 있다.
그래서 대체 형의 마음은 어떤 데요? 라고.
이제는 멤버들의 성격을 거의 다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김태현 녀석은 알 수 없는 놈이다. 도대체 저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기에······. 아니, 저 녀석은 평생을 봐도 모를 거다.
“노아야 정신 차려. 그런 거 아니니까!”
나풀나풀 삐져나오려는 노아의 영혼을 내가 붙잡아 머릿속에 억지로 구겨 넣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노아가 나를 쳐다보며 눈을 껌벅였다.
“아니에요?”
“어, 아니야.”
일말의 여지라도 주면 또 다시 영혼이 삐져 나올까봐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그 사이 비행기는 서서히 이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차창 너머로 활주로가 빠르게 뒤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붕.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
우리가 탄 비행기는 장장 두 번의 공항을 거쳐 14시간 비행을. 그리고 공항에서 내려 육로로 자동차를 타고, 3시간. 마지막은 배를 2시간 타고 나서야 목적지 근방에 도달했다.
망할 놈의 시에리 섬.
생존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가 빨리는 기분이다.
이래가지고 생존지에 도착하면 뭘 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형형. 저기가 저희 생존지인가 봐요!”
장요한은 아직도 체력이 팔팔한가보다. 하긴, 비행기타는 내내 기내식 먹고, 자고, 먹고, 자고만 반복했지. 아주 작정하고 꿀 숙면을 취했는지 얼굴이 반질반질하다.
녀석이 가리키는 대로 손가락 끝을 따라가 보니,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있는지도 쉬이 짐작이 안 되는 곳.
전방에 자그마한 섬이 하나 보인다.
U자 협곡처럼 굴곡진 하얀색 백사장과 갯바위들이한데 어우러져 멋진 광경. 손을 넣으면 그대로 물감처럼 번져 나올 것 같은 푸른 에메랄드빛 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보던 그런 모습을 상상했는데······.
개뿔.
그런 것이 일체 없다. 파도는 엄청 크고, 바람까지 모자를 날릴 만큼 불어온다. 하지만 애들은 그것만으로 좋단다.
사막, 화산지대. 뭐 이런 곳보다는 훨씬 살아가기 좋다는 등의 헛소리까지 늘어놓으면서. 어째 생존지와 가까워지면 질수록 애들의 흥분도가 상승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흥분도가 폭발할 무렵.
보트의 시동이 뚝하고 꺼졌다.
응?
시동이 왜 꺼졌지? 하는 의문이 들 무렵.
제작진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배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 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직접 걸어서 들어가셔야 합니다."
“네? 왜요?”
“여기서부터는 바다수심이 너무 낮고, 산호초들이 있어서 모터가 망가질 위험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기서 배에서 내려 걸어서 생존지까지 가시면 됩니다.”
“거리가 얼마나 되는데요?”
“약 500미터정도 됩니다.”
얼른 고개를 내밀어 바다 속을 살폈다.
물은 깨끗한지 그 속이 여과 없이 그대로 비춰진다. 크고, 작은 산호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작지만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는 것도 보인다.
“깊은 거 아니에요?”
“이미 사전 답사 해봤을 때 걸어서 들어가 봤어요. 허리춤 밖에 안와요.”
우리는 모두들 하도 이것저것을 많이 담아 터지기 직전인 각자의 배낭을 등에 메고, 하나, 둘 배에서 내려 바닷물 속에 몸을 담갔다.
제작진의 말처럼 물의 깊이는 생각보다 낮았다. 최대한 배낭이 젖지 않게 머리 위로 짊어지고, 우리는 미개척지 지역을 탐험해 나가는 콜럼버스의 정신을 이어받아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전진 했다.
보기에는 가까운데 물속을 걸어가는 게 보통 중노동이 아니었다. 20여분을 걸어서 해변에 도착하자 벌써부터 진이 다 빠졌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모든 스태프들도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해변으로 이동했는데, 미리 와 있는 스태프들은 미리 거치대에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가장 먼저 해변가에 서서 주위를 살폈다.
앞은 해변 가에 뒤는 적당히 밀림이 우거져 있고, 바닷바람이 제법 세게 해안가를 타고 들어온다. 곳곳의 야자수도 보이고, 잔 벌레들도 많이 없는 걸 보아 전반적으로 생존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환경이다. 일단은 땔감과 집을 짓는데 필요한 재료들을 빠르게 공수할 수 있어서 만족이다. 이곳은 비가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엄청 많은 양이 내리기 때문에 비를 피할 수 있는 거주지역을 만드는 건 필수였다.
어느 정도 기운 빠진 체력을 보충하고, 카메라 앞에 서자 김우영 피디가 물어왔다.
“플레어 여러분. 어때요? 막상 도착하니.”
“믿어지지 않아요. 이곳에 제가 와 있다는 것이.”
장요한이 대답했다.
“생존은 잘해낼 수 있겠어요!?”
“물론이죠. 이곳에 오기 전에 생존체험에 관한 서적을 보고 공부도 많이 했어요. 불 피우기 위한 부싯돌도 사가지고 왔어요!”
“그러면 도착을 했으니 배낭을 공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전에 말씀 드린 데로 생존에 관한 필요한 물품들은 가능하지만 그 외 먹거리는 일체 안 됩니다. 모두 압수할 거예요!”
제작진의 으름장에 장요한이 놀란 토끼 눈이 됐다.
“네!? 압수요!?”
어, 근데 놀란 건 장요한 뿐만이 아니다. 어째 멤버들이 전부 다 뒤 구린 강아지마냥 쩔쩔 맨다. 그리고 반 강요에 못 이겨 배낭을 오픈하는데······.
세상에 맙소사. 여기저기에서 나온 먹거리를 합치니 초코렛, 사탕, 휴대용 고추장, 심지어는 김치통조림까지 보인다. 먹을 거만 한 가득이다.
어이구야. 이런 걸 다 꾸역꾸역 무겁게도 들고 왔구나. 어차피 뺏길 거.
“이건 사전에 말씀 드린 대로 모두 압수하겠습니다.”
야속한 제작진의 말에, 장요한이 울상이 되어 쪼그라든다.
“아, 안돼요! 어떻게 고추장 하나만이라도······. 그거 엄마한테 만들어달라고 한 특제 양념인데.”
장요한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은 가차 없이 양념, 먹을 것을 압수해갔다.
“네, 좋아요. 그러면 플레어의 80시간 생존 카운트를 지금부터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생존 시작입니다.”
푯말을 해변 가에 세우고, 시간을 카운트 시키자 허탈해하는 표정을 짓던 멤버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생기가 실려 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본다.
“형형, 지금부터 우리 뭘 하면 돼요?”
< 또 다른 예능 (3)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