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105화 (105/124)

< 또 다른 예능 (2) >

제작진과의 사전 미팅 날.

“저희 이거 진짜예요? 저희가 정글에 간다고요!? 전부 다!?”

“어, 가. 전부인지 아닌지는 오늘 담당 피디님이랑 작가님 만나서 이야기해보기로 했어. 그러니까 제발 진정 좀 하고 앉아.”

벌써 10번째다. 토씨만 틀리고 계속 해서 비슷한 질문만 던지고 있다.

벌써부터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있는 장요한은 당장 망망대해 속으로 몸을 던지고 싶은가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는다.

“이거 몰카 아니죠? 만약 이래놓고 안 간다고 하면 진짜 저 화내요. 그러니까 저 화내기 전에 장난이었다면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말씀을······.”

보다 못한 박진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멍청아. 가만히 좀 있어. 그리고 쓸데없이 이런 걸로 몰카 찍는 프로그램 봤냐?”

“안 믿어지니까 그렇지! 우리가 정글에 간다니! 실장님 실장님. 저희 진짜 정글에 가는 거······.”

“어, 가.”

냉큼 말허리를 자르며 차조영 실장이 11번째 물음에 답을 했다.

“근데, 피디님은 왜 이렇게 안 오세요?”

“기다린 지 5분도 안됐어. 그리고 우리가 빨리 온 거야.”

그때 출입문이 열리고, 안경을 쓴 중년 사내와 단발머리의 여성 한명이 두리번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차조영 실장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떠올랐다.

“저분도 양반은 못 되시네. 저기 피디님이랑 작가님 오셨다.”

*

생존의 법칙 메인 피디 김우영 피디와 최현숙 메인 작가.

시청률 5%대에서 스타트해 지금의 생존의 법칙 시청률을 머리꼭대기까지 끌어올린 장본인들이다.

지금은 명실공이 SBN의 간판급 피디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고, 최현숙 작가 또한 방송작가로 경력이 꽤 쌓인 10년차 베테랑이다.

김우영 피디가 사람 좋은 인상을 하며, 손을 내밀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오는 길에 최현숙 작가 만나서 픽업 해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아니에요. 저희도 지금 막 왔어요. 그리고 늦지도 않으셨는데요. 앉으시죠.”

일일이 멤버들과도 악수를 모두 끝내고, 김우영 피디와 최현숙 작가가 맞은편에 자리했다.

간단한 근황과 앨범 잘 듣고 있다등의 인사치레가 오고가고, 카메라 한 대가 돌아가는 가운데 본격적인 미팅이 시작됐다.

형식적인 질문들과 궁금증 해소를 위한 질의 응답시간이랄까.

운동신경에 관한 질문이나 평소에도 생존의 법칙을 즐겨 보느냐. 거의 분단위로 바뀌는 변화무쌍한 기상변화에 잘 적응을 해내갈수 있느냐 등.

그리고 멤버들의 건강 체크도 빼놓지 않았다.

장요한이 아까부터 잔뜩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물었다.

“피디님. 저희 멤버들 몇 명이나 나가요? 혹시, 멤버들 전원 전부 나가는 건 아니겠죠?”

잔뜩 기대하는 듯한 장요한의 표정을 본 김우영 피디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네, 전부 다 갑니다.”

장요한은 물론 애들 눈도 동그래졌다.

“전부요?”

“네. 그것 때문에 저희도 원래 계획대로 해놓은 출연자 조정이 조금 필요하긴 했어요. 원래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플레어 멤버들 중 2분정도만 섭외를 할까 했었거든요. 2집 앨범도 나오셨고, 또 홍보활동도 다니셔야하니까 무척 바쁠 거라고 생각해서요. 그런데 팀장님께서 직접 전화를 주셨더라고요. 출연하는 대신에 플레어 전 멤버와 함께 가는 조건 승낙해주시면 오케이 한다고. 저희 측에서야 당연히 무한감사 땡큐죠. 꽃미남 청춘 두바이편 봤는데, 멤버들 간의 케미가 너무 좋아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거든요.

사실 아이돌 그룹이 각자 스케줄도 있고, 유닛 활동도 해야 해서 이렇게 완전체로 프로그램에 나오기가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깜짝 놀랐잖아요.”

차조영 실장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저희 대표님 특별 지시라서요. 멤버들도 그걸 원했고.”

“그러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특별히 이번에는 플레어 특별 편을 준비해볼까 해요.”

“특별편이요?”

“네. 다른 보조 출연자 없이 전원 플레어 멤버로만 구성해서 생존 캠프를 꾸려볼까 해요. 아, 물론 도움을 줄 생존 전문가 한명은 초빙할 거예요. 대신에 그분은 기존과는 다르게 생존에 적극적인 참여보다는 여러분들을 서포트 해주는 역할을 주로 할 거예요.

뭐, 일종의 가이드라고 생각해주시면 편하겠네요.”

생존의 법칙은 연예계 각층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부류의 연예인들과 생존 서바이벌에 특화된 전문가를 한명씩 매 회 차마다 초빙해 극지의 환경에 놓인 곳에서 생존을 같이 해나가는 프로그램이다.

척박한 사막, 혹은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오지의 섬등, 말 그대로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대 자연의 속의 경관을 보여주고, 그 대자연의 위용아래서 생존을 해나가는 것을 보여주는 거다.

현대인들은 늘 자연에 대한 탐구와 모험등에 대한 갈증이 항상 끊이질 않고 있으니, 그걸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다.

대체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는 이들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친숙한 연예인들로 총 6-8명 정도로 구성되며, 시청 연령들의 다양화, 혹은 안구정화 목적으로 아이돌 멤버들을 1, 2명은 꼭 끼워서 데리고 간다.

하지만 아이돌 같은 경우는 어려서부터 회사에 소속되어 춤, 노래를 배우기도 벅찬 실정이라 여행은 고사하고, 밥도 한 번도 안 지어본 이들이 태반이라, 생존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시청자들의 눈요기 거리 혹은 병풍으로 전락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전원 아이돌그룹으로 라인업을 짜겠다는 김우영 피디의 말은 그 의도를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설마 프로그램을 망하게 하려는 건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최현숙 작가가 추가 설명을 보태고 나섰다.

“그 아이디어는 제가 낸 거예요.”

“작가님이요?”

“네, 제가 최강민씨가 나온 프로그램은 전부 다 모니터링 해봤는데, 거의 못하는 게 거의 없으신 거 같던데요? 퀴즈대회 우승하신 걸 보니 상식이나 잡다한 지식은 엄청나신 것 같고, 게다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운동신경도 좋고. 아, 그렇다고 다른 멤버 분들이 뒤떨어지신다는 소리는 아니에요. 최강민씨가 워낙 그런 쪽으로는 워낙 탁월하신 것 같아서.”

그 말에 멤버들은 일말의 여지가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에 대한 지식도 머릿속에 엄청 들어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이 정도면 작가가 아니라, 점쟁이를 해도 되겠다.

나는 영삼이를 생각하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요.”

최현숙 작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문제는 최강민씨가 약간이라고 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기준을 넘어섰다는 거죠. 이번에도 저희의 기대대로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나를 쳐다보는 최현숙 작가의 눈이 반짝반짝 빛을 낸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김우영 피디의 눈도 신뢰로 가득 차 있고.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어쨌든 그렇게 플레어 특별 편을 준비 중에 있고, 미리 사전 답사를 해놓은 장소가 몇 군데 있는데, 이번에는 무난하게 남태평양에 있는 시에리 섬으로 할까 해요.”

“시에리 섬이요?”

정보가 금세 머릿속에 떠오른다.

남태평양 북동쪽으로 약 700km해상에 위치하는 화산군도.

연평균기온은 27도 정도나 무역풍의 영향으로 비가 많아 연강수량은 3000-4000mm 내외. 특히나 비가 11월에서 4월까지 집중적으로 오는데 산지에는 6000mm를 넘을 경우도 있다. 섬 전체는 열대식물로 뒤덮여 있으며 습도가 높고, 무더운 곳이다.

“생존 경험이 있는 멤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플레어 특별편의 목적은 극한 생존이라기보다는 멤버들끼리의 케미나 감성을 주 포인트로 잡았거든요. 너무 극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아무래도 배도 고프고, 사람이 좀 신경질적이 돼서 좋은 그림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비교적 먹을 게 풍부한 곳으로 생존지를 선택했어요. 아마 조금만 발품 파시게 된다면 적어도 굶지는 않으실 거예요.”

“네, 딱 좋네요. 기후도 적당한 것 같고. 따 먹을 열매도 있고.”

순간 최현숙 작가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어, 혹시 시에리 섬에 대해서 들어보셨어요? 거기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거든요. 저희도 현지답사를 통해서 알음알음 찾았는데······.”

아차 싶었다.

“아, 그럴 것 같다고요. 남태평양에 위치해 있는 섬이라면 기후나 환경도 비슷비슷 하겠죠.”

“아······.”

그제야 납득한 최현숙 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은 회사 측이랑 조율을 해보고, 날짜를 맞춰 보도록 할게요. 아, 그전에 혹시 모르니 병원에 들러서 꼭 건강 상태 체크하시고, 예방 차원에서 여러 가지 예방 접종도 미리 해놓으세요. 만일 하나라도 여러분들 중 한 명이라도 촬영 중에 건강에 문제 생기면 저희 진짜 프로그램 접어야할지도 몰라요.”

엄살 섞인 말에 옆에 앉아 있던 김우영 피디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이 몸을 떨었다.

“네. 그럴게요.”

“그러면 출발 전에 사전 미팅 한 번 더 하는 걸로 하고, 출연하시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오늘은 바쁘실 테니, 이쯤하고. 아······ 혹시 훈련 받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던가, 아니면 교육상 배워야하겠다 싶은 것들. 예를 들어 잠수 하는 법이나 스쿠버다이빙, 생존 훈련 같은 걸 배우시고 싶으시면 저희가 그에 관한 교육비 일체는 전부 부담하도록 하겠습니다. 연락만 주세요.”

“감사합니다.”

“저희가 더 감사하죠. 진짜 출연을 결심해준 것만큼 최대한 예쁜 장면 많이 찍어보도록 노력할게요. 아참, 그리고 출연에 관한 건 언제쯤 기사를 내보내도록 할까요?”

김우영 피디가 넌지시 물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홍보에 관련된 기사라면 빨리 나가면 나갈수록 좋다.

“저희 측에서도 스케줄 조정해보고, 홍보 기사도 준비해야하니까 그건 홍보팀이랑 상의해보시죠. 제가 미리 연락해놓겠습니다.”

“네, 그러죠.”

차조영 실장의 대꾸에 김우영 피디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 후로 며칠 뒤.

포털 검색어에 생존의 법칙 출연에 관한 플레어 기사들이 줄줄 올라왔다.

[위클리 연예정보] 전격 출연 플레어. 이번에는 생존의 법칙이다!

[TVN뉴스] 두바이에 이어 남태평양까지 진출한 플레어.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TODAY연예] 이번에도 플레어 효과? 생존의 법칙 제작진. 플레어 특집편 을 찍기로.

-오오, 레알 사실임? 다섯 명 전원이 생존의 법칙을 찍는다고요? 개 재밌겠다.

-두바이 편을 진짜 재밌게 본 시청자로서 이번 생존의 법칙 진짜 기대만땅요. 와, 진짜 김우영 피디. 어떻게 플레어 완전체를 소환할 생각을 했지? 섭외가 가능하긴 했나요?

-그런데 전 좀 걱정이네요. 그래도 여지껏 방송한걸 보면 정글 베테랑들이 꼭 몇 명씩 껴서 그나마 안정적으로 생존을 했는데, 이건 뭐, 벌거숭이들 다섯 명을 오지로 내모는 격이라. 대부분 역대 아이돌들은 출연했다 하면 다들 병풍이었잖아요?

-하긴, 솔직히 아이돌들이 생존의 법칙에 왜 나오는지 이해가 안감. 하는 것도 없고, 도움도 안 되고. 여자 멤버들이라도 끼면 간혹 안구 정화라도 되지, 남자 아이돌은 그냥 꿔다놓은 보릿자루들이라.

-저기요! 위에 분 말씀이 심한 거 아니에요? 여자들도 생존의 법칙 보거든요!? 그리고 우리 플레어 오빠들은 그런 아이돌이 아니에요. 뭘 알고나 떠들어야지.

└22222222222. 이분 최강민이 누군지 모르는가봄. 남자인 내가 봐도 최강민은 만능 재주꾼으로 인정. 정글가면 하드캐리 할 게 벌써부터 눈에 보임. 아, 졸라 꿀잼 예상 각.

각종 게시판과 기사 아래 달린 댓글들만 봐도 네티즌들이 플레어에게 거는 기대감이 어떤지 충분히 예상됐다. 다소 걱정 섞인 우려도 있었지만, 그건 극히 일부분일 뿐이었다.

그리고.

생존의 법칙을 찍기 위해 출국하는 당일 날.

공항을 가득 에워쌓은 팬들과 기자들 덕분에 이른 새벽부터 로비는 엄청난 인파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 또 다른 예능 (2)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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