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전 천국 (2) >
도전 천국의 조연출이 서동휘 PD옆으로 다가가 속삭였다.
“피디님. 이러다가 진짜 오십 번째 문제까지 가는 거 아니에요?”
스튜디오 안을 노려보듯 쳐다보고 있던 서동휘 PD가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에이, 말도 안 되지. 문제 난이도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30번째 문제 정도 되면 전문 분야문제로 넘어간다고. 너 쿨롱의 법칙이 뭔지 알아? 전기력, 전하. 대전 현상 뭐 이런 거.”
순식간에 조연출이 꿀 먹은 표정이 됐다.
그걸 본 서동휘 PD가 혀를 내찼다.
“됐다. 너랑 무슨 이야기를 하냐. 그냥 잠자코 보고나 있어.”
30번째 문제를 돌파했을 때까지만 해도 스텝들과 도전자들이 설마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40번째 문제를 맞혔을 때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손에 땀을 쥐고, 퀴즈를 푸는 장면을 노려보듯 지켜봤다.
언제부턴가 MC들의 잡다한 농담과 사설은 쏙 들어갔다. 문제를 내는 이지애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정답을 맞히는 최강민의 목소리. 그리고 간간히 주위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만이 스튜디오 안을 가득 메웠다.
서동휘 PD는 거의 기도하는 심정이 됐다. 수능보기 전날 시험 잘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수험생의 심정이 이러할까. 첫사랑에게 프로포즈하던 때가 떠올랐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지금이 더 절박했다.
“제에에에발······. 맞혀라. 맞혀.”
“피디님. 지금까지만 해도 적립된 상금이 장난 아닌데요? 게다가 마지막 문제를 맞히면 특별상금 1억 원 더 나가잖아요. 이거······ 감당 되겠어요?”
서동휘 PD의 눈이 쭉 올라간다.
“인마. 생각을 해봐. 만약 최강민이 오십 문제까지 다 맞힌다면 우리 시청률이 얼마나 치솟을지는 상상이 안가? 역대 급일 거야. 역대 급! 온라인, 대중매체 여기저기에서 다들 우리 프로 이야기만 할 텐데, 지금 그까짓 상금이 문제야? 게다가 실검 순위는 또 어떻고. 이건 적어도 화제성으로만 따지면 이틀짜리야. 이틀. 거기서 얻을 수익성을 생각해보라고.”
“아······.”
이야기를 들은 조연출도 어느 샌가 PD옆에 붙어서 양손을 꽉 맞잡았다.
40번째 문제......
45번째 문제......
49번째 문제......
마지막 한 문제만을 남겨두고, 이제는 문제는 내고 있는 이지애 아나운서의 얼굴도 벌겋게 상기돼 있다. 어째 맞히는 사람보다도 문제를 내는 사람이 긴장한 표정이다.
이지애 아나운서가 오싹한 표정으로 작게 몸을 떨었다. 언제부턴가 온몸의 솜털까지 쭈뼛쭈뼛 서 있다. 그녀가 가만히 손을 들어 몸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50번째 문제. 마지막 한 개의 문제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거 저도 무척 흥분이 되는 상황인데요, 아마도 프로그램이 신설되고 여기까지 올 사람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
내가 담담하게 말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생각보다 더 침착함을 유지하고 계시네요. 어떤 문제가 나온다 하더라도 다 맞힐 수 있다. 하는 그런 자신감이 있으신 거죠?”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저도 실은 많이 떨고 있어요. 이것 보세요.”
입술에 침을 바르고 손을 들어 떨었더니, 여기저기에서 숨죽이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엄살처럼 말했지만 말과는 다르게 속은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흥분되고, 긴장되고 그러겠지만, 손안에 답안지를 쥐고 있는 기분이라 별 다른 감흥이 없다 랄까. 대신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자리했다.
이런 식으로 영삼이를 이용해서 상금을 벌어가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 단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죄의식.
마치 시험 보는 중에 혼자 부정행위를 하고 있는 기분.
하지만 그와 같은 것도 날아든 질문에 의해 흩어지듯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최강민씨, 지금까지 적립된 상금 액수만 해도 결코 적지 않은 액수인데, 상금을 타시게 되면 그 돈으로 무엇을 하실 생각입니까?”
이 돈으로 무엇을 하겠냐고?
이건 이미 대기실에서 멤버들과 상의를 한 문제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내가 대답했다.
“오늘 상금으로 획득한 돈은 전액 재단을 통해서 불우 이웃을 돕는데 기증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지막하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지애 아나운서가 재차 확인했다.
“마지막 문제까지 맞히시게 된다면 총 2억 8천만 원의 상금을 획득하시는 겁니다.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닌데. 그걸 전부 전액 기부하실 생각이시라고요?”
“네.”
“어······.”
김지애 아나운서는 물론 주위 사람들도 모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멤버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다. 마치 ‘이 형이 바로 우리 그룹의 리더 형이에요!’ 라고 소리치고 싶어 하는 그런 얼굴이다.
잠깐 동안의 박수소리가 스튜디오 안에 울려 퍼졌다.
이지애 아나운서가 마지막 문제를 내기 전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저 또한 꼭 마지막 문제를 맞히시길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 문제 드리겠습니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멤버들이 침 삼키는 소리다.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어째, 데뷔 첫 무대에 올라갔을 때보다 더하다.
“역류성식도염이 지속되어 평편상피가 원추상피로 변경된 상태를 칭하는 질병을 무엇이라 할까요? 주관식 문제입니다.”
문제가 나오자 모두가 침묵을 하고, 나의 표정을 살폈다. 정답을 알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다는 그런 기대감에 찬 표정들.
내가 빙긋 웃으며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댔다.
몸속에서 울려대는 울림이 여과 없이 그대로 목구멍을 통해 빠져 나갔다.
“정답은 바렛식도입니다.”
그와 동시에 잠깐 동안의 침묵이 맴돌았다.
김지애 아나운서가 되물었다.
“바렛식도······ 라고 대답해주셨습니다. 정답을 확신하나요?”
“네.”
“저도 처음 듣는 단어라 조금 생소한데요. 혹시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바렛식도는 식도의 하단, 즉 위식도 경계부 상단을 덮고 있는 중층편평상피가 화생성 원주상피로 대체된 것으로, 나중에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전암성 병변입니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답안지를 보던 이지애 아나운서의 얼굴이 이내 환해졌다. 쌍꺼풀 없는 귀여운 눈매가 반달모양으로 보기 좋게 접히더니, 이내 환한 웃음이 자리한다.
“바렛식도. 정답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플레어 여러분. 최종 50문제까지 모두 맞혀서 총 상금 수령 2억 8천만 원을 획득하셨습니다!”
빵빠레가 소리가 울려 퍼지고, 천장에 매달아놓은 색종이가 하늘에서 터졌다.
그리고 아드레날린이 한껏 분비된 듯한 목소리가 바로 양옆에서 들려온다. 멤버들이 지르는 괴성음이다.
“우와아아아!!!!”
달라붙어 껴안고, 뽀뽀를 하고 난리도 아니다. 누가 보면 올림픽에서 금메달이라도 딴 줄 알겠다. 너무 기뻐서 주체가 안 되는 그런 모습들.
도전자들의 뜨거운 박수가 한참동안이나 이어졌다. MC들은 물론 피디, 작가, 전 스태프들도 좋아서 미쳐 날뛰고 있고.
좋네. 꼭 잔치 집 같고.
그리고 곧 이어 나도 기꺼이 그 잔치에 합류를 했다.
*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9월 11일 어느 날의 오후.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플레어의 2집 앨범 ‘wish’와 뮤직 비디오 풀 버전이 공개됐다.
티저 영상 때부터 워낙 온라인 공간을 뜨겁게 달궈 놓아서 팝콘이 튀기듯 반응이 금세 휘몰아쳤다.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을 좀 길게 공개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대체적으로 올게 왔다는 그런 분위기였다.
발표와 동시에 wish의 타이틀곡인 별똥별이 모든 음반 차트 1위를 석권하고, 2위부터 4위까지 모두 줄을 세우는 기염을 토해 냈다.
플레어 팬클럽 회원 가입 수는 2집 앨범을 발표한 다음 날 2만 명이 더 추가돼 25만 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하루 동안 실검을 차지하고 있던 플레어의 이름이 내려올 무렵, 도전 천국 1vs100 녹화 분이 방영됐다.
-님들 도전 천국 봤어요? 플레어 최종 문제까지 맞힌 거?
-대박이죠. 2억 8천만 원 상금ㄷㄷㄷㄷㄷㄷㄷ 그런데 그거 상금 전액 불우 이웃 돕기 성금으로 기부했대요.
-헐, 진짜요? 그 프로 아직도 폐지 안됐어요?
-저 본방 봤는데, 진짜 꿀잼. 퀴즈 맞추는 프로그램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올림픽보다 더 재미 있더라니까요? 안 보신 분들은 꼭 보세요.
-그나저나 이번 플레어 앨범 진짜 다 좋지 않아요? 대부분 1집 반짝 뜨면, 2집 퀄리티는 엉망일 경우가 많던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왜 울어요?
-그냥, 이런 플레어의 팬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러워서요. 플레어 영원해라!
└2222222222222222222
└33333333333333333333
-세상에 이러다가 플레어교라도 하나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거의 팬들이 교주님 바라보듯 신앙심으로 강민씨를 바라보던데?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요. 그 중 절반은 플레어교에 입교할 것 같으니까. 절반만 하더라도 교도수가 대체 얼마야?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들려온다.
김준호다.
평소에도 실없는 소리를 잘 하기는 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그 강도가 더 세다. 가만 보니 평소보다 톤이 좀 높다. 묘하게 목소리가 흐트러져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혹시 술 드셨어요?”
-어··· 술 먹고 있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소오오오름. 역시 교주.
뭘, 소름까지야.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라도 알 것 같은데.
부럽다는 듯 김준호의 목소리가 이어져서 들려왔다.
-저번에 드라마 찍기 전까지만 해도 플레어 팬 회원 수가 10만 명밖에 안 된 거 같던데, 어떻게 1년도 안돼서 2.5배가 늘어요? 딱 3배네. 이렇게 차이가 나니까 이제는 뭐, 상대가 안 되서 질투도 못하겠어.
김준호도 남자배우치고는 10만 명이 조금 안 되는 팬 층을 거닐고 있는데, 남자 배우치고는 저 정도면 상당히 많은 숫자다.
그런데 우리 팬 회원 수가 언제 그렇게 늘었지?
-내가 강민씨랑 친하다니까 주변에 죄다 사인 받아 달라고 아주 난리에요. 와씨, 평소에 전화한통 없던 사촌들도 막 전화해서 친한 척 하고.
“사인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사인 좀 해서 드릴까요?”
내가 웃으며 대꾸하자 김준호의 대답이 바로 튀어나왔다.
-아니요. 됐어요! 생전 내 사인은 달라고 하지도 않던 사람들이 뭐가 예쁘다고. 근데, 나도 앨범 나오자마자 들었는데, 노래가 진짜 좋긴 하더라고요.
옆에서 뭐라 뭐라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익숙한 여자 목소리. 장선화다.
아. 장선화랑 같이 있었구나.
-어휴, 알았어. 알았어. 옆에서 그만 좀 떽떽거려.
귀찮은 듯 대꾸하는 김준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 떽떽? 너 진짜 죽어볼래?
-야, 너는 진짜 좀! 그리고 여자가 죽어 볼래가 뭐냐? 죽어 볼래가? 말 좀 곱게 안할래?
한참동안이나 티격태격 말 다투는 소리가 들려온다.
둘은 연예계공식커플이 됐음에도 여전히 저러는 구나. 어째 변한 게 하나도 없네.
한숨을 쉰 김준호가 말했다.
-강민씨. 선화가 앨범 대박난 거 축하한대요. 이제 그만 끊어요. 아··· 선화가 밥 좀 사라는데요? 비싼 걸로다가.
옆에서 장선화가 한우 한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한우요? 그럴게요.”
“약속한 거예요? 그나저나 이제 앨범도 나왔고 하니 한동안 바쁘겠네요. 아무튼 시간 나는 대로 전화 줘요. 얼굴 본지도 오래 됐으니까 밥 한 번 먹게.”
“네.”
할 말 다 했나 싶어 통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김준호가 질문 하나를 툭 던져놓았다.
“아참, 그리고 강민씨도 이제 슬슬 다음 작품 차기작 정해야 되지 않아요? 다음 차기작은 뭘 하실 건데요? 드라마? 영화? 아무튼 혹시 생각해두고 있는 작품 있으면 나한테도 언질 좀 해줘요. 괜찮으면 나도 좀 끼게.”
“네, 알겠어요.”
전화를 끊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 않아도 요 근래에 인터뷰 스케줄이 잡히면 빠지지 않고, 꼭 들어오는 질문 중 하나다. 첫 작품부터 보기 드문 대박을 터트렸으니, 차기작은 어떤 장르로 할까 궁금해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첫 작품인 꽃 미남 학교야 작가와 감독 이름만으로도 이미 반쯤은 흥행이 보증된 작품이었고, 박선우역도 연기 검증도 안된 생초보가 맡기에는 넘치는 배역이었으니까.
어찌 생각해보면 얼떨떨한 감도 있었다. 작가가 직접 찾아와서 우연찮게 촬영현장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들어 오디션 제안을 한 셈이었으니까.
뭐, 나에게도 딱히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이번에는 오롯이 내가 선택을 해야만 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박호영 팀장과 차조영 실장이 가지고온 시놉시스와 시나리오를 펼쳐 놨다. 그동안 틈틈이 읽으며, 재미있다고 모아놓은 것들이다.
뭘 하더라도 평타이상은 칠만한 그런 작품들.
이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제법 유명한 작가의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무명의 작가의 것도 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과연 어떤 작품을 선택해야할지.
< 도전 천국 (2)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