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101화 (101/124)

< 뮤직 비디오 (2) >

뭔가 한 가지 목표 의식을 가지고 달리는 폭주 기관차처럼 우리는 공동으로 2집 앨범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시간이 유수와 같이 흐른 다는 말이 뭔 말인지 절로 실감이 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하루가 지나가 있었고, 또 달력을 보니 이틀이 지나가 있었다. 뭔 시간이 그렇게 휙휙 지나가는지.

나는 제자리, 같은 장소에 서 있는데, 마치 주변 환경과 날짜만 계속 바뀌는 그런 기분.

본격적인 2집 앨범 준비를 한다는 소문이 나도니,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1집보다는 2집이 더 잘돼야 될 텐데, 그저 반짝 뜨고 소리 없이 파묻히는 그런 일회성 그룹이 안 돼야 할 텐데. 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우리는 2집 앨범에 대해 차곡차곡 단계 밟듯 준비를 끝마쳤다.

그리고 마침내.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이 온라인상에 공개됐다.

[연예 뉴스 데일리]

플레어 무려 1분 10초짜리 뮤직 비디오(MV) 티저 영상을 공개!

실력파 보이그룹 플레어가 오는 11일 오후 6시, 2집 타이틀곡인 별똥별의 뮤직 비디오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신곡 '별똥별'은 감성적인 어쿠스틱 기타 반주와 심플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리듬과 댄스 리듬이 더해진 매력적인 곡으로, 노래 후반부로 갈수록 분위기가 격정적으로 고조되며, 감미롭고, 애틋한 감성을 극대화로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은 보통 15초짜리 영상을 공개하는 반면, 이번 플레어의 2집 뮤직비디오 티저영상은 총 1분 10초짜리로 공개되며, 많은 분들이 플레어의 2집 앨범(wish)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갈증을 잠시나마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플레어 측 관계자가 전했다.

플레어의 2집 앨범인 ‘wish’는 이번 달 29일 날 공식 앨범발매와 음원을 공개하기로 했다.

플레어는 이전보다 한층 남성적인 매력과 성숙한 모습을 뽐내 시선을 사로잡으며, 이번 2집 앨범을 통해서 그동안에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감성들을 보여줄 것이라고 전했다.

*

사무실 임대업을 해주는 최홍만이 대여 상황리스트를 체크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응? 303호 대형 세미나 실 누가 대여했네? 누구야? 이 큰 곳을 빌리다니? 누가 여기서 초청강연이라도 한대?”

“아니요.”

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직원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

“보니까 대부분 다 어리던데요? 교복 입은 애들도 보이고.”

“그래? 뭘 하려고 이 큰 곳을 빌렸지?”

“글쎄요. 저야 모르죠. 무슨 스터디 모임이라도 하나보죠 뭐.”

홍대에 위치한 대형 세미나 실.

[티저 영상 공개 30분 전]

체구가 작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가 눈을 치켜뜨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예쁘게 파인 보조개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매서운 눈초리가 좌우로 움직인다. 그녀는 다름 아닌 코로나의 팬클럽 마스터인 한빛나였다.

“큼큼.”

헛기침을 한번 토해낸 한빛나가 강연대 위에 올랐다. 거기서 세미나 실에 앉아 있는 이들을 쭉 훑은 뒤, 입술에 침을 바른 뒤 입술을 달싹였다.

“회원님들! 잘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 다들 알고 계시죠?”

“네에!”

우렁찬 대답이 들려온다.

강의식 의자에는 족히 사십 명은 넘어 보이는 앳된 얼굴의 회원들이 저마다 강의를 들으러온 학생마냥 다소곳하게 앉아 있다. 좌중을 한번 쭉 둘러본 한빛나가 마치 강연대위에 서 있는 초청 강사처럼 연설이 이어갔다.

“뮤직 비디오 오픈 일은 일종의 떡잎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뮤비가 공개되면 아, 이곡이 뜨겠다. 반짝거리고 말겠다. 롱런하겠다가 거의 결정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요즘에는 뮤직비디오를 통한 해외진출 사례도 많고. 유투브에서 화제가 돼서 10억뷰 이상을 달성한 강북스타일아시죠? 그게 왜 그렇게 갑자기 히트를 친 걸까요?”

앉아 있는 이 한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했다.

“뮤비를 잘 찍어서요?”

“맞아요.”

한빛나가 눈웃음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전부 뮤직 비디오를 잘 찍어놔서 그렇게 된 거예요. 요즘 같은 미디어 시대에 음원만 가지고는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질 않잖아요? 더군다나 K-POP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개개인의 피지컬과 칼 군무인데. 그것을 대중들에게 어필하면서 충족시키기에는 뮤비만한 게 없죠. 그러면 이쯤에서 우리 플레어 오빠들의 뮤비도 그렇게 되게끔 하려면 저희가 뭘 해야 할까요?”

누군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떡잎을 잘 가꾸어줘야 합니다.”

“네, 맞습니다. 바로 그거에요.”

만족스러운 표정이 한빛나의 얼굴에 스치듯 떠올랐다.

“식물이 잘 자라게 하려면 토양도 좋아야하고, 물도 제때 잘 줘야하고, 처음부터 신경 써서 관리를 잘해줘야 합니다. 플레어 오빠들이 해외로 쭉쭉 뻗어나가게 해주기 위해서는 바로 우리가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토양과 물 같은 존재들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뭐가 있을까요?”

잠시 동안의 웅성거림이 들려온 뒤 누군가 조심스럽게 말을 끄집어냈다.

“뮤비 티저 홍보요?”

한빛나가 손뼉을 쳤다.

“바로 맞혔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앨범이 나온 거는 아니지만, 플레어 오빠들 뮤비 티저 영상뜨면 타 팬덤에서 가만히 있겠어요? 어떻게 해서든 깎아 내리고, 물어뜯으려고 난리를 칠겁니다. 저희의 역할은 바로 그런 빠순이들로부터 우리의 가수를 지키는 겁니다. 티저라고 안심하지마세요. 그게 공개되는 순간 벌써부터 전쟁은 시작된 거니까.”

“네에!”

“저희 코로나(플레어 팬명칭)의 모토가 뭐였죠?”

“열 오덕 천팬 안 부럽다입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비록 사십 명 정도의 인원밖에 안되지만, 4천명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명 한 명이 천명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정예요원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때 앉아 있던 부 팬마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팬마님, 팬마님! 지금 막 티저 영상 공개됐습니다!”

그와 동시에 한빛나의 표정이 반짝하고 빛났다.

한빛나의 매서운 눈빛이 허공을 갈랐다.

그녀는 마치 전쟁터 선두에서 장군처럼 입술을 꽉 깨물었다. 허리춤에 칼이라도 있었으면 칼이라도 뽑아들 기세였다.

“시작됐습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우선 티저 영상 감상평 500자에서 800자 내외로 적어서, 각 커뮤니티 게시판 돌아다니면서 100개씩 복사해서 붙여 넣으세요. 아예 타 팬덤들은 발도 못 붙이게 우리가 먼저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겁니다. 100개 붙여 쓰신 분은 특별 활동점수 +15점 가산 점 드리겠습니다. 정회원분들은 우수회원으로 등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 절대 놓쳐서는 안 되겠죠?”

“네에!!!”

“자자, 그러면 이제 모두들 시작해주세요. 전쟁은 시작됐습니다.”

한빛나가 나지막하게 전쟁을 선포했다. 그와 동시에 앉아 있던 이이 입술을 꽉 다물린다. 얼굴에는 하나같이 결연의 의지로 빛이 나고 있다.

“우리들의 덕력을 보여줍시다.”

자그마한 구호가 웅성거리듯 세미나 실을 잠식해나갔다.

그리고 그 열기가 세미나 실을 가득 메울 무렵, 사십 명의 인원이 일제히 책상위에 놓여 있는 노트북과 태블릿 위로 손을 올렸다.

*

티저 영상이 공개됨과 동시에 플레어에 관한 기사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아니, 그와 같은 표현도 모자랐다. 막아놓은 댐 둑이 터진 듯 숫제 콸콸 넘쳐흘렀다. 온라인은 순식간에 플레어에 관한 것들로 점령됐다.

실시간 검색어에 플레어, 플레어 뮤직비디오, 플레어 MV 티저, 최강민 자작곡, 서은채등. 이번 뮤직 비디오와 관련된 단어가 올라갔다.

[연예란 커뮤니티 게시판]

-헐, 이번 플레어 뮤비 대박! 다들 보셨어요?

-그러게요. 저도 지금 보고 봤는데, 아예 R&N에서 작정을 하고 만든 것 같은데요? 이번 앨범으로 중국 진출한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그 말이 진짠가 봐요. 딱 봐도 신경 엄청 썼네.

-서은채 완전 여신이지 않나요? 대체 여주인공이라 어떻게 나오나 싶었는데, 장선화보다 나은 것 같은데요? 여리여리한게 진짜 여고생 같음.

-이번 타이틀곡도 최강민 자작곡이죠?

-네. 이번 타이틀 곡 안무까지 직접 다 짰다고 하던데요? 진짜 이쯤 되면 최강민이 뭘 못하는지가 궁금함. 최소 음악 천재이지 않을까 싶음.

-예능 나와서 하는 거 보니까 상식도 풍부하고, 모르는 것도 없던데요? 꽃 미남 청춘 보고, 진짜 소오오름이.

-그래서 정식 앨범은 언제 나온다는 데요?

-일주일 있다가요. 지금 예약하면 플레어 한정판 브로마이드도 줘요.

-헐, 진짜요?

-근데 이미 늦었어요. 이미 사전 신청과 동시에 끝났어요. 플레어 팬덤에서 싹 쓸어 간 거 같은데, 대동단결 장난 아님. 지금도 아주 커뮤니티 게시판마다 난리난리도 아님.

R&N 홍보팀 사무실.

“자자, 다들 커피 마시고 합시다.”

박호영 팀장이 홍보팀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1층 커피숍에서 사온 커피를 흔들었다. 직원들이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다닥다닥 달라붙으며, 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커피를 한 잔씩 쏙쏙 빼간다.

“고마워요. 박 팀장님.”

“땡큐요. 잘 마실게요.”

“아, 그리고 이건 오늘도 열일하시는 우리 장선영 팀장님거. 시럽 다섯 번. 맞지?”

박호영 팀장이 따로 빼놓은 테이크아웃 잔을 장선영 팀장에게 내밀었다.

“고마워요. 그렇지 않아도 달달한 커피 한 잔 생각났는데······.”

수화기를 들고, 누군가를 상대하던 장선영 팀장이 고개를 이리저리 꺾으며, 커피 잔을 받았다.

홍보팀 사무용 의자 하나를 차지한 박호영 팀장이 자신도 들고 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에 물었다.

“분위기는 어떤 것 같아?”

“분위기야 아주 최고죠. 티저를 공개했을 뿐인데도, 본방 보는 것처럼 뜨거워요. 벌써부터 전화도 수십 통도 넘게 들어왔고. 아주 걸려오는 전화 받느라 업무가 안 될 지경이라니까요?”

“그 정도야?”

“벌써 인터뷰 요청 건으로 온 전화만 스무 통이······.”

때마침 앞에 놓인 전화기가 말허리를 자르며 울렸다.

장선영 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네, R&N홍보팀 팀장 장선영입니다. 아, 네. UV매거진이요? 인터뷰 요청이요? 지금 당장은 어렵겠고요, 스케줄 보고······ 네네, 인터뷰 요청이 워낙 많이 들어와서요. 담당자와 스케줄 표를 보고, 확인한 다음 연락드리겠습니다.”

장선영 팀장뿐만이 아니라, 그 짧은 시간동안 다른 팀원들도 한 번씩은 수화기를 들었다 내려놓고 있었다.

박호영 팀장이 기분좋은 미소를 지은 다음 다시 넌지시 물었다.

“노래 별로다, 뭐 그런 반응은 없고? 타 팬덤에서 가만히 안 있을 텐데?”

장선영 팀장이 커피를 호로록 마시고 내려놓으며 대꾸했다.

“그거야 그렇죠. 하여간 우리나라 애들은 대체 왜 그런지 몰라. 가만 보면 아주 정치판이 따로 없다니까요? 아주 서로들 못 잡아먹어서 안달들이지. 워낙 우리나라 음반 시장이 작은 탓도 있겠지만, 서로 으샤으샤 하는 분위기로 세계로 뻗어나가면 좀 좋아요?”

“말이야 쉽지. 뭐, 중국진출만 성공적으로 된다고 해도······ 아, 그래서 반응이 어떤데?”

장선영 팀장이 입 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그 위에 푸근한 미소가 더해진다.

“걱정 마세요. 아주 우리 애들이 각 커뮤니티 게시판을 죄다 점령해서 방어를 철저히 하고 있으니까. 진짜, 아무리 생각해봐도 코로나 팬마는 기가 막힌 애로 뽑아놓은 것 같아요. 빛나 걔. 진짜 회사에서 상이라도 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주 게시판마다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는데, 타 팬덤 애들이 달려드는 족족 그냥 다 떨어져나가요. 덕분에 나쁜 글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요.”

박호영 팀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 참 다행이네.”

“아참, 그나저나 얘들은 지금 뭐하고 있어요?”

“오늘 마이 버킷리스트에 특별 게스트 초청 받았잖아. 지금쯤 방송국 도착해서 준비 중일걸?”

< 뮤직 비디오 (2)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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