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99화 (99/124)

< 또 한 번의 도약 (2) >

귀가 의심스러워서 다시 한 번 물었다.

“방금 누구라고 그랬어?”

“정선화요. 장선화. 여기 사진 있으니까 보세요.”

장요한이 얼마 전에 장만한 태블릿을 내밀었다.

그 폭탄 같은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건 역시나 인터넷 중독자 장요한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소식을 나에게 전파 중이다. 멤버들이 하나같이 눈이 동그래져서는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여기 옆에 남자 팔 보이시죠? 둘이 똑같은 팔찌하고 있는 거, 그리고 카페 차창 너머로 장선화가 어떤 남자랑 같이 마주앉아 있는 거. 그리고 장선화의 셀카 사진 뒤에 있는 전신거울에 웬 남자가 비치는 거까지. 이거 완전 빼박이라니까요.”

수사대 뺨치는 네티즌들이 이것저것 올려놓은 사진들을 종합하니, 장선화가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충분히 의심해 볼만 한 상황이다.

“와, 어쩜 이렇게 감쪽같이. 저번에 인터뷰할 때 분명 만나는 사람 없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남자 팬들 맨탈 다 깨지겠네.”

“인마. 너는 연예인이 연애할 때 누구 만난다고 광고하고 다니는 사람 봤냐? 있어도 다 없다고 하지?”

옆에 앉아 있던 박진우가 그 말에 혀를 내차며 대꾸했다.

“하긴, 뭐. 그건 그렇지만······.”

고개를 끄덕인 장요한이 돌연 의뭉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턱까지 괴며, 진지한 표정으로.

표정에 물음이 가득하다.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봐?”

“설마, 저 남자가 형은 아니겠죠?”

“나?”

녀석이 취조하는 형사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뭔 이야기를 하려나 싶더니.

나참, 어이가 없다. 뭐 그런 개똥같은 생각을 했지?

“가장 최근에 드라마도 같이 했고, 장선화랑 사이도 좋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형은 장선화랑 키스까지 같이 한 사이잖아요!!!”

“지, 진짜에요. 형? 형, 장선화랑 사귀어요?”

노아가 그 말에 충격을 바가지로 퍼 먹은 표정을 하고 있다.

맨탈이 머리 위로 빠져나가고 있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다.

얘는 평소에는 똑똑하다가도 나랑 관계된 일만 생기면 사고회로가 정지하는 모양이다. 초딩도 납득 못할 이런 엉성한 추론을 곧이곧대로 믿다니.

보다 못한 박진우가 또 다시 끼어들었다.

“멍청아. 키스가 아니라 키스신이었지. 그리고 그런 식으로 따지면 로맨스 작품 찍는 탑 배우들은 작품 한편 끝날 때마다 상대 배우랑 다 사귀게? 넌 도대체가 말이 되는 소리를······ 어휴, 됐다. 너랑 무슨 이야기를 하냐. 노아야 신경 쓰지 마. 저거 다 헛소리니까.”

박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지만, 장요한은 여전히 농도 짙은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 아니야.”

노아도.

“아니라니까? 그리고 장선화는 내 스타일 아니야.”

몇 번을 거듭 말하고 나서야 의뭉스러운 시선 둘이 떨어졌다.

여전히 네티즌들은 온라인공간에서 장선화의 남자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쳤다. 개중에는 내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장선화와 실낱같은 연관성이 있는 모든 남자 연예인들이 후보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무엇 하나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는 가운데.

그날 저녁. 장선화의 남자(?)가 누구인지는 어느 한 네티즌이 올린 사진에 의해서 밝혀졌다.

“기, 김준호?”

선글라스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려고 했지만, 누가 봐도 김준호스러운 모습의 남자가 장선화의 자동차에 올라타고 있는 모습이 발각된 것이다.

그리고 뒤를 잇는 경험담들이 속속 온라인에 올라왔다.

요즘 공개연애를 많이 하는 추세이기도 하고, 팬들도 자신들이 응원하는 연예인들의 연애를 무작정 막는 그런 시대는 아니지만, 이건 좀 다른 의미에서 충격이다.

세상에 맙소사.

그렇게 톰과 제리처럼 만나기만하면 으르렁대고, 티격태격하던 둘이 연인 관계라니.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다는 것이 남녀사이라더니. 그 말이 왜 나왔는지 이제야 알겠다.

-어···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기사가 터지고 다음날 김준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한테는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면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뭐··· 술이 원수죠. 티격태격하면서 정이 들기도 했고. 조심한다고 조심 했는데, 하필 그 장면이 딱 걸리는 바람에. 아무튼 강민씨한테는 미안해요. 강민씨한테는 미리 이야기를 해줄까 했는데, 너무 급작스럽게 사귀게 되는 바람에.

“아니에요. 별말씀을. 근데, 좀 당황스럽기는 하네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그건 나도 좀 얼떨떨해요. 우리 이제 사귀기로 한지 2주도 안됐는데, 벌써 열애설이 터지는 바람에. 집 앞에 기자들 찾아오고 아주 난리 난리 부르스가······ 하아.

짙은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영혼까지 실은 탄식소리가 아주 수화기를 뚫고 나올 것 같다.

곤란하겠지. 아주 많이 곤란할거다. 온갖 추측이 뒤섞인 소설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벌써부터 난무하고 있다.

벌써부터 장선화의 임신설 이야기까지 떠돌고 있으니 말 다한 셈이지.

이번 일을 보니 알겠다. 왜 연예인들이 그렇게 비밀연애를 고집하는 지를.

-아무튼 이 일 수습되는 대로 얼굴 한 번 봐요. 제가 밥 한 번 살게요.

“네.”

직접 전화를 받고나자 그제야 실감이 났다. 아, 두 사람이 진짜로 연인관계가 되었구나.

걱정과 염려, 우려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탑 스타들의 연예는 단지 두 사람만의 국한적인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문제는 당장 우리에게도 옮겨 붙었다.

이렇게 되면······ 당장 모레 있을 우리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되는 거지?

*

긴급회의가 열렸다.

플레어를 담당하고 있는 매니지먼트 2팀과 홍보팀이 한자리에 모였다.

“촬영 장소를 겨우겨우 허가받고 진행하는 거라. 연기는 안 된다네.”

박호영 팀장의 말에 모두가 참담한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한 줄기의 희망이 사라졌다. 이제는 대책을 강구해야할 때다.

“이제 어떻게 해요?”

홍보팀 여직원이 물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대체할 여자 주인공 섭외부터 해야지.”

“이렇게 갑자기요? 당장 내일 모레가 촬영인데요?”

“일단 여배우, 아니, 꼭 여배우가 아니더라도 마스크 깨끗하고, 청순한 이미지의 여자연예인으로 추슬러봐. 컨셉이 순수니까 그 이미지에 부합할만한. 잘 뒤져보면 그런 여자연예인 한 명쯤은 있지 않겠어?”

“아니, 하루아침에 갑자기 그런 연예인을 어디서 찾아요? 게다가 스케줄은요? 해주고 싶어도 대부분 스케줄 안 맞아서 안 될걸요? 뮤비 촬영하려면 아무리 빠르게 진행한다고 해도 하루 이틀정도는 스케줄 빼야 할 텐데. 그러지 말고 그냥 장선화로 가면 안 되는 거예요? 요즘 연예인들 연애하는 것쯤은 흠도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잠자코 듣고 있던 장선영 팀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지. 흠은 안 되지만, 지금 장선화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가장 먼저 뜨는 게 김준호인데, 플레어 이번 뮤비 컨셉이 뭐야. 여주가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빌었더니, 플레어가 눈앞에 나타난다는 그런 설정인데, 보는 사람들이 그게 집중이 되겠냐고.”

“하긴, 그것도 그러네.”

반박할 수 없는 대꾸에 여직원의 입이 쏙 들어갔다.

“그러면 서은채는 어때요?”

이번에는 다른 직원 하나가 나섰다.

“원래부터 서은채씨는 장선화씨랑 후보 물망에 오르기도 했고, 이미지도 청순, 순수한 걸로 어필되고 있잖아요. 제 생각에는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다리를 꼰 채로 앉아서 의견을 듣고 있던 장선영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었다.

“나도 그 의견은 찬성 한 표. 내가 혹시 몰라서 들어오기 전에 서은채 스케줄 확인해 봤는데, 대관행사 스케줄이랑 투자사 외부 미팅밖에 없더라고. 둘 다 어느 정도 조절 가능 한 스케줄이니까 부탁하면 가능하지 않겠어? 최강민이랑 친분도 어느 정도 있고, 같은 소속사 식구니까 말이야.”

곰곰이 생각해본 박호영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적으로 따져봤을 때 가장 좋은 대책 안이었다.

“음, 되기야 한다면 좋겠지만, 과연 서은채가 오케이 해줄까?”

“일단 최실장한테 전화 넣어보고, 의사 물어보면 되겠지. 내가 전화할까? 아니면 박팀장이 넣어볼래?”

*

도로 한쪽에 비상등을 켜놓고,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나온 최형식 실장이 한 손에는 생수병을,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쥔 채 운전석에 올라탔다. 누구와 통화를 하고 있는지 핸드폰 액정이 빛을 내고 있다.

“은채야.”

최형식 실장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서은채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네?”

“지금 회사에서 장 팀장님한테 전화가 왔는데 말이야.”

“회사요?”

“응. 혹시 너보고 플레어 뮤직 비디오에 출연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핸드폰으로 기사 댓글을 읽어보고 있던 서은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숨도 안 쉬고 대답이 나왔다.

“할래요!”

“한다고? 무슨 컨셉인지는 알고 말하는 거야?”

“그냥 할래요. 무조건 할래요. 한다고 해주세요. 아니다. 전화기 이리 줘 보세요.”

상체를 기울여 손을 쭉 뻗은 서은채가 핸드폰을 낚아채더니, 귀에 딱 붙였다.

“여보세요. 장 팀장님?”

-어, 은채니?

“플레어 뮤비라면 장선화씨가 하기로 했던 거 말씀하시는 거죠?”

-응, 맞아.

“저 그거 할래요. 시켜주세요.”

-혹시, 뮤비 컨셉에 대해서 이야기 들은 거 있어?

“떨어지는 별똥별보고 소원을 비는 착하고 순수한 여자 역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저 그거라면 자신 있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이 술술 나온다.

-어······ 잘 아네? 맞아. 그거야. 최실장한테 들었어?

서은채가 최형식 실장을 힐끔 쳐다보고는 입술에 침을 묻히며 말했다.

“네. 조금 전에 들었어요.”

-스케줄은 괜찮고? 최 실장이랑 이야기를 한번 해봐야······.

“괜찮아요.”

-응?

“별로 중요한 스케줄 아니에요. 뒤로 미루면 돼요. 그쵸. 최 실장니임?”

핸드폰을 내린 서은채가 최형식 실장을 노려보듯 쳐다보며, ‘빨.리.맞.다.고.해.요.’ 라며 입만 벙긋거리고 있다. 한숨을 쉰 최형식 실장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맞아.”

“들었죠? 들었죠? 실장님이 그래도 된대요. 그러면 저 하는 거예요. 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통화 너머에 있던 장 팀장의 떨떠름한 목소리로 그대로 들려온다.

-어? 어어어··· 알았어 일단. 그러면 지금 플레어 담당하시는 박 팀장님이랑 같이 있거든? 같이 이야기해보고 다시 전화 줄게. 아니, 그럴게 아니라 지금 대구에서 스케줄 끝나고 서울로 오는 길이지?

“어, 네. 어떻게 아셨어요?”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모르는 게 어디 있어? 아무튼 그러면 서울 도착하는 대로 회사에 들릴래? 어차피 오늘 일할게 많아서 퇴근도 늦게 할 거 같은데. 콘셉 회의도 다시 하고, 수정할 거 있나 체크도 좀 해야겠는데. 어때?

“좋아요. 그러면 회사로 바로 갈게요.”

-응, 그래. 조금 있다가 봐.

“있다가 봬요. 박 팀장님.”

통화를 끊고, 고개를 든 서은채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장선화씨 열애설 터졌다더니, 뮤비 촬영하기로 한 거 캔슬 났나 봐요. 그렇죠?”

왠지 모르지만 목소리가 잔뜩 들떠 있었다.

“아마도 그런 가 본데. 다른 것도 아니라 열애설이라······. 그나저나 괜찮겠어? 너무 갑작스럽게 들어가는 촬영이라 좀 걱정 되는데. 혹시 회사 전화라서 부담 되서 그런 거라면 지금이라도······.”

“아뇨!”

서은채가 말허리를 자르며 들어왔다.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어차피 뮤직비디오도 연기를 하는 거잖아요. 전 연기자니까. 그러니까 괜찮을 거라고요. 실장님도 그러셨잖아요. 진정한 연기자는 언제 어디서든 연기를 펼칠 수 있어야 하는 거라고. 기억 안 나세요?”

“그, 그러기야 했지. 헌데,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

“아뇨. 저한테는 연기한다는 의미에서 똑같아요! 그리고 강민씨가 위기에 빠져있다는 데, 명색이 절친인 제가 모른 척할 수 있나요? 안 그래요?”

“그다지, 심각한 위기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얼마든지 대체할 다른 배우를 찾으면······.”

백미러를 슬쩍 쳐다보니, 서은채가 잡아먹을 듯 눈을 잔뜩 치켜뜨고 있다. 최형식 실장이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빨리 출발해요. 회사에 가야죠. 다들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우리 때문에 회의가 늦어지면 안 되잖아요.”

“어······. 그렇지. 그렇지 않아도 지금 가려고 그랬어.”

재촉 섞인 말에 최형식 실장이 한숨을 쉬고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 또 한 번의 도약 (2) > 끝

ⓒ 윤민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