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가 필요하다면 (4) >
“자, 이리 모여 봐.”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멤버들이 스피커 앞으로 달라붙었다.
네 명의 멤버들이 노래를 듣기 전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며칠 전 김태현이 자신들에게 한 말이 떠올라서였다. 너무 기대감이 크면 형이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르고, 또 그게 잘 안됐을 경우 실망으로 올수도 있으니, 우리끼리 만이라도 그런 부담 없게 곡을 쓸 수 있도록 배려해주자는 그런 말들.
애들도 모두 동의했다.
“형, 우리는 진짜 형 곡 기대 하나도 안 해요. 뭐, 쓰는 곡마다 다 좋으면 그게 사람인가? 좀 별로여도 괜찮아요. 저희는 신경 쓰지 마세요.”
“멍청아! 너는 지금 그걸 말이라고······.”
옆에서 듣고 있던 박진우가 장요한의 정수리를 지그시 콱콱 누른다.
“형 얘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형 부담감 느끼실까봐 헛소리하는 거예요.”
목덜미까지 붉어진 장요한이 횡설수설한다.
“아. 내 말은 그러니까. 형 곡이 별로였으면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나는 그냥 단지······.”
내가 녀석의 어깨를 두들겼다.
“됐어. 말 안 해도 다 아니까. 우선 노래 듣고 이야기하자.”
음악이 재생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멤버들의 눈이 반짝반짝해진다.
리드미컬한 멜로디와 간간히 터져 나오는 EDM의 하모니. 그리고 정적이 감싸이고, 반복적인 반주와 함께 랩 파트가 시작된다.
멜로디만 듣기에 너무 밍밍한 것 같아서 대충 랩에 가사를 붙여 불러봤다.
랩이 흘러나오자 그걸 듣고 있던 멤버들의 눈이 커진다. 특히나 김태현 얘는 뒷통수를 툭 치면 눈알이 굴러 나올 것 같다. 장요한이 중얼거린다.
“와, 형, 이제 보니 랩도 완전 쩔었······.”
“쉿.”
랩 파티가 지나가고, 본격적으로 노래 부분이 시작됐다. 물론 이 부분에도 가사가 들어갔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의미 전달에는 충분할 정도의 가사.
처음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음악을 듣던 애들이 나중에는 저마다 고개를 흔들고, 리듬을 맞추고 있다.
“어때?”
어느새 3분 45초의 노래가 끝이 나고, 내가 물었다.
좀 긴장되기는 한다. 어떻게 들렸을 지가.
제일 먼저 노아가 대답했다.
“저는 멜로디 부분이 특히 좋았어요. 노래가 딱히 어렵지도 않은데, 뭔가 되게 중독성 있어요. 아직도 귓가에 맴돌아요. 근데 형, 혹시 이거 안무도 어려울까요?”
말을 내뱉은 노아가 이내 고갯짓을 힘껏 했다.
“아니에요. 아무리 어려워도 죽을힘을 다해서 연습할 거예요. 꼭 그럴 거예요. 꼭! 내가 노래를 망칠 수는 없으니까.”
이를 악물고 다짐하는 게 진짜 몇날 며칠을 밤샐 기세다. 하긴 얘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법한 애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진다. 노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가 말했다.
“아니, 어렵진 않을 거야. 내가 구상해 놓은 안무가 있는데,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그런 동작으로 할 거야.”
“아, 진짜요? 다행이다.”
노아가 봄을 목격한 개나리처럼 활짝 핀 얼굴로 웃었다.
노아가 떨어지고 나자 이번에는 김태현이 달라붙었다.
“어, 근데 형 랩하는 건 처음 봤는데, 상당히 잘하시는데요? 혹시 따로 배우시거나 그러셨어요? 저보다 더 나으신 것 같은데요?”
그거야 뭐, 미국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래퍼 J,테디의 라임을 한국말에 맞춰서 변형시킨 거니까. 당연할 수밖에.
영삼이랑 같이 리듬과 라임을 맞추기 위해서 온갖 유명한 래퍼들의 라이밍 기술을 죄다 갖다 붙여봤다. 김태현이 못한다기보다는 그냥 영삼이의 능력이 사기다. 헌데, 그걸 말할 수는 없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에이, 그냥 흉내만 내본 거야. 흉내만. 어쨌든 괜찮다는 거지?”
“네. 그냥 이대로 가도 문제없을 것 같아요. 아니, 훌륭해요.”
김태현은 벌써부터 하이라이트 부분이 얼마나 음이 높은지 따라 부르고 있고, 장요한도 신이 나서 다시 멜로디를 들어보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반응을 보니 나쁘지 않다. 다들 만족해하는 눈치다.
“아참, 형. 제목. 제목은 정했어요?”
박진우가 물었다.
모두들 한껏 기대감서린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별똥별.”
“별똥별이요?”
“별똥별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하잖아. 우리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노래를 듣고 소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바래는 뭐 그런 것들이 다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지어봤어. 어때?”
“플레어와 별똥별. 뭔가 라임도 착착 맞아떨어지는 거 같은데요?”
“좋아요. 뭔가 있어 보이고, 근사해요.”
“그러면 이제 우리 2집 타이틀곡은 별똥별인 거예요?”
애들이 다들 한마디씩 거든다.
근심과 걱정이 모두 싹 씻겨나간 얼굴이다. 간만에 거실이 시끌시끌하다.
왜 아니겠는가.
1집 활동을 마무리 하고, 어딜 가든 만나는 사람들마다 죄다 2집에 관한 질문이나 물음이 주를 이루던 터라, 신경도 쓰이고, 부담감도 있었겠지.
1집은 용케 성공했지만, 2집 앨범이 망하게 된다면 하늘로 올라가는 도중에 다시 밑바닥으로 쳐 박히는 그런 기분이 들 테니까. 꼭 성공해야한다는 압박감과 주위 시선의 기대. 운이 좋게 앨범 하나로 유명세를 얻은 가수들이 그 다음 앨범부터 줄줄이 말아먹고, 추락하는 건 이 바닥에서는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나도 사실 어느 정도는 신경이 계속 쓰이긴 했고.
“뭔데 이렇게 시끌시끌해?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대문이 열리고, 차조영 실장이 들어왔다.
“실장님. 방금 강민이 형이 신곡 발표했어요!”
“뭐? 곡 완성됐어?”
“네에!”
차조영 실장이 성큼성큼 거실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표정이 밝은걸 보니 곡이 잘나왔나 보네.”
“엄청요!”
“그러면 나도 좀 들어봐도 될까?”
차조영 실장의 말에 다시 파일을 재생시켰다. 애들도 모두들 입을 다물고, 또 다시 곡을 감상했다. 조금 전과는 더 여유 있는 표정으로 눈을 감고 흥얼거리기도 하고, 멜로디를 그림으로 그려보기도 하고.
멜로디가 끝이 나자 눈을 감고, 차조영 실장이 고개를 들었다. 애들이 모두 기대감에 부푼 얼굴로 차조영의 반응을 기다렸다.
“뭐야, 이거······?”
차조영 실장의 첫마디다.
뭐지? 생각보다 별론가 싶었는데, 차조영 실장의 입 꼬리가 보기 좋게 올라간다.
“······ 생각보다도 훨씬 좋은데?”
“아, 깜짝이야! 실장님!”
장요한이 차조영 실장 등에 매달려 찰싹찰싹 때렸다.
장요한을 떼어놓은 차조영 실장이 어디가 좋았는지 어느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는지 등의 감상평을 길게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뒤에 덧붙였다. 2집도 틀림없이 대박날 것 같다는 그런 기대감을 나타내면서.
*
R&N의 내부회의를 거쳐, 별똥별이 타이틀곡으로 정해지고 나자 2집 앨범 준비에 박차가 가해졌다. 2집 앨범이름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의견으로, ‘wish’로 정해졌다.
K-POP느낌이 물씬 나는 댄스곡 세 곡과 별똥별의 어쿠스틱버전 한 곡, 그리고 박진우가 부르고, 김태현이 피처링한 듀엣곡이 한 곡. EDM느낌이 나는 클럽 노래가 한곡. 총 여섯 곡의 곡이 트랙으로 들어간다.
이중 내가 작곡한 곡은 두 곡이다. 별똥별과 박진우와 김태현의 듀엣곡. 나머지 네 곡은 A&R팀에서 수집한 곡이다. 원래는 내 자작곡이 별로라면 차선책으로 밀까 준비 중이던 곡이 스타 작곡가로 유명한 강원도호랭이의 곡인데, 썩히기는 아깝다는 말에 이곡을 앨범에 넣고, 더블 타이틀로 갔으면 하는 의견도 많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돌고 돌아 나와 멤버들에게 돌아왔다.
“너희 의견을 솔직하게 말해봐. 결국은 너희들이 부를 곡이니까. 회사에서도 너희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기로 결정했으니까.”
차조영 실장의 말에 김태현이 잠시 망설이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끄집어냈다.
아마도 상황 상 내가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그렇고, 나를 제외한 멤버들 중에서는 가장 큰 형이니 총대를 멘 것처럼 보인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곡은 저희랑 좀 안 맞는 거 같아요. 곡은 좋은데, 뭔가 안 맞은 옷을 억지로 맞춰놓는 느낌이랄까?”
옆에서 노아가 끄덕거리며 덧붙였다.
“별똥별은 우리 멤버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며, 곡을 썼다는 강만이형의 마음이 느껴져요.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팬들의 마음까지도요. 그래서 편안하고, 부르기도 좋고, 왠지 우리 노래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이 분의 곡은 뭔가 우리에게 계속 강요하는 느낌이에요. 나쁜 곡은 아니지만, 태현이형 말대로 뭔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음. 그래? 하긴 나도 그런 느낌을 받긴 받았어. 나머지 멤버들도 다 비슷한 생각인거지?”
뒤이어 박진우와 장요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러면 별똥별을 타이틀곡으로 미는 걸로 하고, 회사 측에는 그렇게 전하도록 할게.”
“어, 그러면 그 곡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혹시 앨범에서 빠지게 될 수도 있는 건가요?”
“음.”
잠시 고민한 차조영 실장이 대답했다.
“글쎄. 이건 작곡가랑 이야기를 해봐야겠는데. 그래도 강원도호랭이라면 꽤 이름 있는 스타작곡가라 자신의 곡이 타이틀곡이 아니라 일반 수록 곡으로 들어간다고 하면 싫어하긴 할 거야. 일단은 플레어 타이틀곡으로 넣는다고 해서 가지고 온 곡이라······. 뭐, 너희들은 신경 쓰지 마. 회사에서 알아서 할 거니까. 우선은 너희들이 잘되는 거에 집중해야지.”
“네.”
“안무연습은 잘돼가고 있어? 강민이가 이번에는 안무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며? 안무가 선생님이 아주 네 칭찬을 그렇게 막 하던데?”
“그렇지 않아도 지금 연습실 내려가서 연습하려고요.”
“그래. 우리 한번 열심히 해서 이번 2집 완전 대박으로 만들어보자고!”
*
그리고 그 이야기는 정수연 전무의 귀에도 들어갔다.
“뭐? 다들 미친 거 아니야? 강원도호랭이면 작곡가중에서도 탑 급인데, 그 곡을 타이틀로 미는 것도 아니고, 더블 타이틀로 밀자는 걸 깠다고? 실력파 아이돌 그룹 이미지 구축도 좋지만, 그러다가 삐끗하면 한 방에 훅 가는 거 몰라? 애들이 생각이 없으면 어른들이 말려야지. 매니지먼트가 하는 일이 연예인들 잘 컨트롤해서 보기 좋은 상품으로 만드는 건데, 도대체가 다들······.”
할 말을 잃었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 누르던 정수연 전무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되겠네. 플레어 얘네 연습실에 있다고 그랬나?”
“네? 네네.”
앞에선 여직원이 쩔쩔매며 대답했다.
“전무이사님. 어쩌시려고······.”
“내가 직접 한 번 만나보려고. 도대체 어떤 애들이기에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오는 지를.”
*
디리링. 틱. 두둥.
디리링. 틱. 띠잉.
조용하면서도 잔잔한 어쿠스틱 선율이 연습실 안에 가득 울려 퍼진다. 수록 곡으로 들어갈 별똥별의 어쿠스틱 버전이다.
간헐적으로 울려 퍼지는 뮤트 소리와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가락의 선율. 그리고 그 위로 듣기 좋은 허밍음이 옷을 입듯 더해진다. 그리고 이내 부드러운 노래 가사가 떠돌 듯 사방으로 흩어진다.
-떨어지는 빛을 보아요. 선명하듯 반짝이는. 내 마음속에 들어와서 빛을 밝히는.
마치 꿈을 꾸듯 몽롱한 표정으로 노래에 심취해 있던 노아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형, 진짜 들으면 들을수록 더 좋은 것 같아요. 원래 곡도 좋지만 어쿠스틱 버전도 진짜 좋은 것 같아요. 완전 취향 저격이에요.”
땀에 흠뻑 절어 있던 애들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저마다의 얼굴에 몽실몽실한 웃음을 짓고 있다.
기타 한 대 가지고 부를 수 있는 우리들만의 곡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쿠스틱 버전으로 변형시켰는데, 그게 제대로 먹혀 들어간 셈이다.
이윽고 연주와 노래가 끝이 나고, 멤버들이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또 연습하자.”
내 말에 멤버들이 저마다 간격을 벌리고, 마루 위에 서서 자리를 잡는다.
1집 앨범 타이틀곡이었던 아임 더 베스트가 화려한 퍼포먼스와 자로 젠 듯한 절제미, 그리고 시시각각변하는 칼 군무가 관전 포인트였다면, 이번 곡은 편안함과 자유스러움이 컨셉이다.
중국 진출을 염두해 두고 있는 곡이라 K-pop특유의 칼 군무는 버릴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멤버들 개개인의 개성에 맞게끔 안무를 짜는 데 노력했다.
안무가 선생도 이걸 네가 혼자 다 짰냐며, 놀라워했다.
다행히도 내부평가는 긍정적이었고, 멤버들도 만족해하는 눈치다.
쿵, 쾅!
조금 전까지와는 비슷한 멜로디지만 시작점이 전혀 다른 강렬한 비트음이 때려대고, 춤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 같은 광경들을 아까 전부터 지켜보고 있던 두 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정수연 전무이사를 따라와 연습실 밖에서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직원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기, 전무님.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 보시는 게······.”
정수연 전무가 입술 위로 검지를 치켜세웠다.
“쉿.”
“네?”
“조금. 조금만 더 보고.”
못박히듯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정수현 전무의 목소리가 막 쪄낸 감자처럼 파근파근하다.
노아에게 춤을 가르쳐주는 김태현의 모습, 박진우가 장요한에게 장난을 거는 모습,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흐뭇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최강민의 모습. 멤버들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을 때마다 정수현 전무의 입가에 보기 좋은 미소가 그려진다.
이 여자가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는 여자였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돌연 정수현 전무이사가 돌연 걸음을 되짚어 밖으로 나갔다.
여직원이 얼른 꽁무니를 쫓으며 물었다.
“애들은요? 애들 만나보시러 온 거 아니에요?”
“굳이 만나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아, 그리고 다음 달까지 플레어에 잡힌 스케줄 표 있지? 그거 가지고 와 봐.”
“갑자기 그건 왜······.”
“앞으로는 소모적인 필요 없는 행사 같은 건 스케줄 잡지 말라고 해. 애들 앨범 내는데 최대한 집중할 수 있게. 방송 출연도 MC, 게스트들 확인하고 굵직굵직한 프로만 나가게 하고. 2집 앨범이 나와야할 중요한 시기에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해줘야지. 그런 걸 해주는 게 제대로 된 매니지먼트 회사지. 안 그래?”
< 변화가 필요하다면 (4)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