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가 필요하다면 (2) >
[위클리 연예정보] 이제 종영을 코앞에 둔 꽃미남 청춘의 시청률이 33%를 돌파! 이대로 35%를 돌파할 것인가!?
[MTY] 중국에서도 꽃미남 돌풍. 꽃미남 신드롬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온라인 게시판이 연일 뜨겁게 달아올랐다.
22부작으로 계획된 송희연 작가, 하윤성 감독이의 꽃미남 학교가 이제 마지막 2회 분량만을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벌써 꽃 미남 학교가 벌써 막방을 눈앞에 두고 있다니. 누가 이게 현실이 아니라고 말 좀 해줘요! 네!?
-어떻게 연장 안 된대요? 4화, 아니 단 2화만이라도ㅠㅠ
-박선우(최강민) 격하게 사랑한다!
-아니, 주인공인 고용태(김준호)를 사랑해야죠. 웬 박선우?
-어, 이전에 김준호씨가 인터뷰한 거 못 보셨어요? 연기가 많이 늘었다는 질문에 ‘나는 그저 최강민의 연기를 쫓아갔을 뿐이다. 이 작품이 잘된 것은 최강민이 견인차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라고 한말?
-에이, 최강민이 그 정도는 아니죠. 그래봤자 조연인데.
-그 정도 맞거든요? 님은 모르면 그냥 외우세요. 그리고 최강민이 조연이라고 누가 그래요? 오프닝 타이틀에 올라가 있는 거 보면, 공동 주연이라고 딱 써 있구만!
-제가 촬영 스텝 중에 아는 분이 있어서 살짝 들었는데, 결말에 완전 반전이 있을 거라고 하던데요? 지금은 한이슬(장선화)이 고용태(김준호)한테 목매고 있지만, 끝에는 박선우(최강민)과 이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함.
-어, 진짜요? 막방 꿀잼 예상 각.
꽃 미남 학교 야외 촬영 현장.
계속해서 이어지는 밤샘 촬영과, 예상치 못한 딜레이. 급한 수정 대본을 현장에서 외우느라 배우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현장 분위기는 그 어떤 때보다도 훈훈했다. 매회 최고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우고, 역대 최고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고 있으니 분
위기가 좋지 않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다.
내부에서는 이대로라면 연말 시상식은 꽃 미남 학교의 잔치가 되겠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자연 그러다보니 피로와 고단함이 찌든 얼굴에도 늘 현장 사람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강민씨, 괜찮아요?”
캠핑 의자에 앉아 있던 내게 김준호가 짓궂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벌써 20시간째 지속된 촬영에 지친 기색이었지만, 나를 보고 있는 얼굴이 마치 가뭄에 단비 맞은 콩나물 같다. 생기가 가득하달까.
“뭐가요?”
“왜 있잖아요. 그거.”
고개를 슬쩍 돌리며 턱짓을 하는데, 그 방향을 쫓아가보니 그 끝에 장선화가 앉아 있다. 다리를 꼰 채로 의자에 앉아 대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아직도 감을 못 잡아 하자 이번에는 김준호가 입술을 오므리며, 츄 소리를 낸다.
입 꼬리에는 잔망 맞은 웃음을 매달고는.
“키스씬 말이에요. 키스씬.”
아, 그거. 한숨이 새어 나온다. 이제야 뭔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네.
놀려대고 싶은 거다. 급작스럽게 진행된 나와 장선화의 키스씬을.
하긴, 나도 처음에 그 소식을 접했을 땐 나도 나름대로 충격이었지.
키스신이라니. 그것도 장선화랑.
송희연 작가가 드라마 촬영 중반쯤에 주연들을 모아놓고, 진지하게 결말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렴풋이 나와 장선화를 이어줄 거라는 언질은 받았지만, 그것을 이런 식으로 풀어 나갈 줄은 몰랐다.
혹시 대본이 잘못 뽑힌 게 아닐까 확인까지 했지만, 송희연 작가는 단호박처럼 선을 그었다.
생각보다 대본이 기가 막히게 나왔다면서.
아마 키스씬 장면에서 분당 최고 시청률을 찍을 거라며 기대감까지 나타냈다.
“내가 수정본 대본을 보고 얼마나 설렜는지 알아요? 막 밤에 잠도 안 오더라니까?”
헛웃음이 났다.
“김준호씨가 왜요?”
“이게 안 재미있어요? 강민씨랑 장선화가 키스를 한다는데?”
“그냥 연기일 뿐이에요.”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지금 기분이 어때요? 양치질은 했어요? 안했으면 절대 하지 마요. 제가 마늘이라고 가져다줄까요? 입 냄새라도 좀 풍기게?”
이쯤 되면 아예 작정을 한 모양이다.
나는 그냥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준호라면 충분히 놀려도 될 자격이 있으니까.
갈수록 드라마에서 내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김준호의 역중 비중도 점차 줄어들고, 급기야는 마지막 여주인공인 장선화와 내가 이어지게 스토리가 바뀌었다. 원래의 드라마의 처음 구성과는 완전히 다른 결말을 맺게 된 거다.
그걸 두고 주위에서는 왈가불가 말들이 많았는데, 가장 기분 나빠해야 할 김준호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를 독려했다. 드라마의 흥행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한 몸을 불태워도 상관없다나. 뭐라나.
“강민씨. 우리 마지막 키스씬 말이에요. 강민씨가 내 얼굴을 살포시 감싸며 한다고 나와 있는데, 키 차이가 나니까 그러지 말고, 차라리 계단에서 하는 게······.”
아씨, 깜짝이야.
바로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더니,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장선화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런 장선화를 김준호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야! 너는 여자가 무슨···.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 먼저······.”
“뭐, 뭐!”
장선화가 발로 김준호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너랑은 할 얘기 없으니까 저리가.”
“어휴, 진짜 이 말괄량이. 장차 누가 너를 데려갈지 갑갑하다. 갑갑해.”
“걱정 마. 너보고 데려가 달라고는 안 할 테니까. 그리고 배우가 연기하는데 대해서 논의하는 게 뭐 어땠다고? 시간 별로 없으니까 강민씨랑 이야기하게 좀 꺼져줄래?”
김준호가 눈을 흘기며, 사라지고 난 다음 그녀와 하이라이트 씬에 대해서 한참동안이나 상의했다. 단지 가볍게 입만 댔다가 떨어지는 장면이라고 해도, 키스씬은 종영을 한 후에도 두고두고 회자가 될 정도로 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이기도 하니까.
밀착 정도와, 카메라에 잡힐 각도, 눈을 감을 것인가 뗄 것인가 하는 것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하는데, 입술과 입술이 닿는······ 그런 단어들을 막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오히려 의식을 했던 내가 더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잠시 후.
마지막씬 촬영을 위해서, 전 스태프가 한자리에 모였다. 대미를 장식해야하는 그런 장면인 만큼 그 같은 기대감과 관심은 당연한 거였다.
“자, 준비하시고, 한 번에 갑시다. 한 번에!”
슬레이트가 올라가고, 딱 소리와 함께 연기가 시작됐다.
감독의 사인이 울려 퍼지고, 장선화가 등을 보인 채 걸어간다.
고즈넉한 골목길, 해가지는 일몰을 배경으로 비틀진 언덕길로 올라가는 계단 위로 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가지 마. 이젠 나··· 너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계단 위로 걸음을 내딛던 장선화의 걸음이 어느 순간 정지한다. 그리고는 천천히 뒤로 얼굴을 돌린다.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다. 눈가에는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눈망울로 눈물을 대롱대롱 매단 채.
허공에 흩날리듯 뿌려진 긴 옅은 머리카락이 차분하게 어깨위로 내려앉는다.
서럽고, 슬프고, 세상 다 밉고. 할 말은 많지만, 차마 입 밖에 끄집어낼 수는 없고. 마치 벼랑 끝에서 내 몰린 사람의 표정이다.
그런 복합적인 표정들이 나타나 있는데, 그걸 본 순간 내 눈에서도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이··· 바보야!”
성큼성큼 장선화에게 다가가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눈가를 문질렀다.
“방황하지 말고, 이제 내게로 와.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지 갈수 있으니까.”
내 품속에 울음을 터트린 장선화의 울음소리가 잦아지고, 내 어깨가 그녀의 눈물로 흠뻑 젖을 무렵, 장선화가 천천히 얼굴을 떼며, 나를 올려다봤다.
후련하고, 개운한, 그리고 신뢰가 담긴 눈으로.
크고, 까만 눈동자가 눈앞에서 깜빡거린다.
곧 이어 두 개의 입술이 천천히 가까워지고······ 숨을 꼴깍 삼키며, 뒤에 이어질 상황에 대한 기대감 섞인 시선들이 덕지덕지 붙는다.
“와, 진짜 이 커플 완전 감동이지 않아요? 너무 잘됐다.”
“한결같은 해바라기 같은 남자지. 박선우는. 어디 진짜 이런 남자 어디 없나? 쉿! 한다한다. 으~”
잠시 동안의 정적이 주변을 감쌌다. 그 아름다운 장면을 전 스텝들과 배우들이 숨을 죽이며 쳐다봤다. 몇 초의 순간이 마치, 몇 분처럼 길게 느껴질 무렵.
감독의 외침이 하늘을 갈랐다.
“그, 그··· 그렇지! 오케이. 컷!”
뒤 이어 스태프들의 외침이 뒤따랐다.
“좋았어요! 최강민씨! 장선화씨!”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성황리에 꽃 미남 학교 촬영이 끝이 났다. 마지막 촬영을 위해 폭주 기관차처럼 몇 날 며칠을 달려온 스태프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아쉬움과 후련함을 담은 그런 외침이었다.
스태프 한 명이 샴페인이 가득 담긴 박수를 들고 와 샴페인하나를 꺼내 흔들며, 감독에게 돌진 했다.
뒤질세라 조연출, 카메라 감독도 광기어린 눈으로 샴페인을 한손에 들고, 흔들며 병마개를 딴다. 마치 전쟁터에서 수류탄 핀을 뽑고 있는 병사들 같다.
그리고 대다수의 샴페인 병의 주둥이가 하윤성 감독에게로 향했다. 처음에는 옷을 적시는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숫제 샴페인으로 머리를 감고 있다. 그러면서도 좋다고 연신 싱글벙글이다.
좋을 수밖에. 시청률 35프로의 벽을 넘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화 되어 역대급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고 있으니까.
송희연 작가와 장선화가 안 보인다 싶더니, 이미 멀찌감치 떨어져 대피 중이다. 김준호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이 순간을 위해 모두가 달려온 이들의 머리 위로 샴페인이 떨어졌다.
미적지근한 샴페인이 옷 안으로 흘러내리고 끈적끈적했지만 기분만큼은 최고다.
어느 정도 장내가 진정되자, 온몸에서 달짝지근한 냄새를 풍기며 하윤성 감독이 다가왔다.
“최강민씨, 그동안 진짜 수고 많이 했어요.”
“수고는요. 무슨. 현장에 있는 스태프 분들이 더 수고했죠.”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고요. 며칠 후에 포상 휴가 함께 가실 거죠? 때마침 휴가철이고, 타이밍도 기가 막힌데.”
워낙 잘나온 성적 덕에 KBN 드라마국 국장의 전폭적인지지 하에 가까운 제주도로 가기로 했다. 원래는 괌이나 세부로 가려고 했으나, 다들 스케줄 조정이 어려운 관계로 제주도로 가기로 한 것이다.
물론 나도 간다. 스케줄일정이 빡빡하긴 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못갈 것도 없다. 무엇보다 작감, 주연배우들이 모두 간다는데 나만 빠져서 초를 칠 수도 없지 않은가. 나만 바쁜 것도 아니고.
“같이 가야죠. 다들 가신다는데.”
내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더니, 하윤성 감독이 한발 더 가까이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나저나 다음 작품은 혹시 생각해둔 거 있어요? 만약 없다면 나랑 한 작품 더 할래요? 괜찮은 형사물 시놉 들어온 게 있는데, 그걸 보는 순간 강민씨가 딱 생각났지 뭐에요? 원탑 주인공으로. 어때요?”
그때 팔 하나가 내 어깨위로 쭉 뻗어 들어왔다.
“하 감독. 이러는 건 반칙이지. 강민씨는 나랑 로코물 한 작품 같이 하기로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다고. 안 그래요. 강민씨?”
나를 뒤에서 껴안다시피 한 송희연 작가가 밍크털 같이 부드러운 말투로 속삭였다.
“그 소리를 들은 하윤성 감독의 눈이 가늘어졌다.
“진짜요? 진짜로 그랬어요?”
생각해 본다고는 했지 한다는 대답은 안했는데.
“그거, 저어······.”
샌드위치 속에 끼어있는 치즈 꼴이 되기 전에 여길 어떻게 빠져나가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차조영 실장이 핸드폰을 흔들며, 나를 불렀다.
“강민아! 전화!”
“네에!”
실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뒤로 한 채 내가 성큼 다가가 핸드폰을 받았다. 입을 벙긋거리며 소리 없이 물었다.
“누군데요?”
“대표님.”
대표? 설마 정도운 대표?
나한테 개인적으로 통화를 할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닌데. 왜지?
일단 건네주는 핸드폰을 받아 쥐었다.
“여보세요?”
-음, 드라마 촬영 끝났다고 해서. 축하 겸 전화한통 해봤어.
굵고 나지막한 목소리. 진짜 정도운 대표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전화까지 주시고.”
나지막하게 웃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시간 괜찮으면 내일 나랑 점심이나 같이 할까?
< 변화가 필요하다면 (2)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