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93화 (93/124)

< 청춘을 즐겨라 (13) >

1시간 후. 시내로 가는 길.

이따금씩 마주치듯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그럴 때마다 멤버들이 기분 좋게 손을 흔들어준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좋기도 하겠지. 팥빙수 먹으러 가는 길이니까.

“하이.”

간혹 얼굴에 히잡을 둘러 쓴 여성들도 있었는데, 눈만 꺼내고 있던 그녀들에게 웃는 낯으로 인사를 건네자 시선을 돌리며, 자기들끼리 눈웃음을 지으며 지나간다. 둘이 하고 있는 내용들이 내 귓가로 고스란히 들려온다.

-잘생긴 저 남자들이 나한테 인사를 했어.

-아시안 남자들인가? 무슨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지?

역시 국적 불문하고, 잘생긴 얼굴은 어딜 가도 먹힌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다소 동떨어진 나 피디가 혼자 뚱한 얼굴을 지으며 따라오고 있다.

그럴 수밖에.

내 차례에서 내 손을 떠나간 다섯 개의 윷이 총 일곱 번 돌아갔는데, 모가 다섯 번 윷 한번, 걸 한번이 나왔으니까. 도에 말 2마리가 합쳐져 있는 걸 끌어다가 합친 다음 단번에 게임을 끝내버렸다. 아주 깔끔하게.

다들 사기라고 난리도 아니었지.

“저녁은 날씨가 제법 시원하네요.”

그토록 뜨겁게 내리쬐던 햇빛이 들어간 두바이의 밤은 제법 선선했다.

하늘에 별도 많고, 달도 떠 있다. 팥빙수를 한 그릇씩 해치운 우리들은 잠시 야외테라스에 앉아 밤하늘의 경치를 감상했다.

끝내주게 아름답다.

이렇게 사방이 탁 트인 공간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를 얼마 만에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

“형들이랑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꿈꾸고 있는 것 같아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노아가 몽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그냥 다요. 여기 이렇게 와있는 것도 신기하고. 제가 진짜 가수가 돼서 이렇게 예능 프로그램을 찍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팔뚝에 앉은 모기를 철썩하고 내려친 노아가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그런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간혹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모든 게.”

“인마. 이건 꿈 아니고. 그리고 네가 스스로 노력해서 이뤄낸 거야. 이건 노력에 대한 보상쯤이라고 해두자.”

“아뇨.”

노아의 시선이 나에게로 곧장 향했다. 유난히 까만 눈동자가 껌뻑거린다.

간혹, 뜬금없이 나를 저런 눈으로 쳐다볼 때가 있는데, 이제는 저 눈빛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모르는 수가 있나. 저렇게 눈을 반짝이고 있는데.

저건 굳건한 신뢰가 담긴 눈이다. 그 어떤 비바람이나 폭풍우가 온다고 해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형이 없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그건 오바지.”

내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노아가 아랫입술을 꾹 다문 채 단호하게 고개를 내 젓는다.

“만일 강민이형이 우리 팀에 안 왔으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나도 이렇게 데뷔를 할 수 있었을까. 또 부모님들은 어떻게 설득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봤는데요 그때마다 결론은 하나였어요. 사실 형이 오기 전까지 저는 그냥 짐 같은 존재였거든요. 매일같이 구박이나 당하고. 욕이나 먹고. 뭐······ 사실 지금도 별로 달라진 건 없지만.”

노아가 고개를 푹 숙인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잇던 장요한이 거의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야! 네가 왜 짐이야! 네가 우리 팀 중에서 강민이형 다음으로 팬이 제일 많은데!”

노아가 꾹 눌러 담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여기서 춤과 노래가 제일 안 되잖아요. 랩도 겨우 라임이나 맞추는 정도고. 뭐, 하나 뚜렷하게 잘하는 것도 없고.”

“그건······.”

뭔가 대꾸하려면 장요한도 입술만 달싹일 뿐 말을 잇지 못한다.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으니까.

“형들은 안무도 몇 번 보면 곧잘 따라하고, 외우기도 잘하는데, 저는 특별하게 잘하는 것도 없고, 뭐든 다 어중간하잖아요. 그러니까 서브 래퍼에 서브 보컬. 춤은 아예 엉망이고. 지금도 춤 배우는데 시간도 제일 오래 걸리고, 형들이 일일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따라가기도 버겁고 그래요. 사실 그것 때문에 몇 번이나 그만둘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장요한이 울컥 목이 멘 소리로 소리쳤다.

“야, 너는 무슨 그런 생각을······. 그리고 우리는 다 같은 팀이잖아! 팀! 서로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

“사실, 나도 그만 두려고 했었는데 뭐. 이상할 건 없지.”

김태현이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김태현에게로 돌아갔다. 노아의 발언이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져놓은 거라면, 김태현은 수류탄을 꺼내 집어 던진 겪이다. 워낙 평소에 말도 없고, 표정변화가 적은 김태현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뭐!? 형은 또 왜?”

“그냥. 전에 있던 승우형이랑 너무 안 맞는 것 같아서. 아무리 비즈니스 관계라지만 몇 년씩 같이 붙어 다니기 고역일 것 같았거든. 너희들도 알다시피 내가 붙임성이 좀 떨어지잖아. 비비는 건 체질상 못하겠고, 그러면 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아, 지금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하긴, 그건 나도 좀 그랬어.”

“노아한테 제일 심하게 하긴 했지.”

애들이 저마다 하나씩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리고는 그 끝에 어김없이 한 번씩 시선이 내게 닿는다.

뭐지, 단체로 진실토크라도 하자는 건가?

그렇게 따지면 나야말로 둘째가라면 서럽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러운 세월들을 소설로 써놓는다면 대하 드라마 한편 분량쯤은 나오지 않을까. 5년을 내리 꿈도 미래도 없는 B반 연습생으로 썩었으니까.

새삼 영삼이가 고맙게 느껴지네.

“우리 오래오래 이렇게 다 같이 지냈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요.”

해맑은 미소와 함께 노아가 한 명 한 명 시선을 마주치며 말했다. 마치, 다짐이라도 받아 놓으려는 것처럼.

그 시선을 받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그리고 새삼 느껴진다.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벌써 우리의 관계가 이 정도까지 발전했구나 하는 느낌?

하긴, 거의 24시간 붙어 있다 보니 이 정도면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지.

웃고 있는 멤버들을 하나씩 쳐다봤다. 모두가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그런 포근포근한 얼굴을 짓고 있다. 그러다 내 시선이 어느 순간 김태현에게 고정됐다.

불현 듯 녀석의 처지가 떠올라서.

지금 저렇게 웃고는 있어도 보육원 문제로 속이 말이 아닐 텐데.

순식간에 몇 가지 돈을 벌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영삼이의 능력을 발휘해서 볼 수 있는 그런 불법적인 일들.

허나,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만일 그렇게 번 돈으로 김태현에게 준다 한들, 녀석이 그걸 반겨줄까?

내가 가만히 녀석을 불렀다.

“태현아.”

“네? 형, 왜요?”

김태현이 고개를 돌렸다.

늘 평상시와 같은 침착하고, 고요한 표정이다.

나는 목 끝까지 올라온 질문을 삼켰다. 어떤 우회적인 표현을 한다 해도 지금의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서. 그래, 이 문제는 아주 잠시 동안만 넣어두자. 한국에 돌아가면 내 방식대로······.

“왜 불러놓고 말을 안 해요?”

“어? 아냐··· 아무것도. 지금처럼 오래오래 같이 지내자고.”

피식 하고 웃은 김태현의 얼굴에 자그마한 웃음꽃이 핀다. 그리고 전염병처럼 웃음꽃이 번진다. 그 옆으로, 옆으로. 이내 어깨동무를 하듯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지금 이 행복한 순간을 머릿속에 각인시켜놓기라도 할 것처럼.

“우리 한번 최대 장수 아이돌 그룹으로 역사를 써 봐요!”

장요한이 요란하게 소리를 쳤다.

그리고 카메라에 그 다정한 모습들이 차례대로 담겼다.

숙소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애들이 골아 떨어졌다. 피곤할 만도 하지. 잠자리는 어제 묵은 호텔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불편했지만, 얼굴은 뭔가 마음의 짐을 한 꺼풀씩 벗어놓은 사람들처럼 편안해 보인다.

그리고 그날 새벽.

우리는 일출을 상공 1200m위에서 목격했다. 자연이 주는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기분? 열기구에서 맞이하는 상쾌한 아침.

아주 끝내주는 경험이었다.

*

버즈 알 드림 호텔.

두바이에서 자랑하는 최고의 건축물이자 호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텔로 손꼽히기도 하는 곳.

돛대 모양의 독특한 외관 디자인은 벽과 기둥장식에 금을 사용했고, 롤스로이스 여덟 대와 헬리콥터가 공항에서 호텔까지의 이동수단으로 쓰인다. 방 갯수는 202개 밖에 안 되지만 모든 방이 2층으로 된 스위트룸이고 나머지는 로얄 스위트룸으로 되어 있다.

200미터 상공에는 고급 레스토랑이 위치, 잠수함을 타고 가야하는 물밑 레스토랑도 있다.

로비는 60층짜리 수족관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안에는 500여 종의 희귀 동, 식물이 살고 있다.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호화로움을 완전히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는 버즈 알 드림 호텔은 주로 왕족이나 각 자치정부의 총독이 주최하는 만찬이 열리고, 각국의 최상급 국빈들이 주로 머문다. 가장 작은 객실이 디럭스 스위트로 1박에 7930디르함(약230만원), 로얄 스위트는 1박에 51700디르함(약1500만원)정도다.

우리가 묶기로 한 방은 디플로매틱 스위트룸으로 침실 3개에 26200디르함(약760만 원) 호가하는 방이다.

“세상에, 형 여기는 진짜 별천지 같아요.”

“우와, 여기 신기한 거 겁나 많아요. 우리 다 구경해 봐요. 호텔 안에서만 놀아도 하루가 후딱 가겠다!”

뭔 놈의 호텔에 가이드북까지 있다. 그것은 그만큼 모든 것이 호텔 안에 갖춰져 있다는 거겠지.

발코니에서 내다보니 해변 앞 주차장이 보이는데, 뭔 차들이 알록달록 난리도 아니다.

롤스로이스, 벤틀리 같은 건 보이지도 않는다. 죄다 람보르기니, 페라리, 포르쉐다.

저 먼발치로 police라고 쓰여 있는 경찰차 한대가 지나간다. 람보르기니다. 경찰차도 슈퍼카인 국가라더니 그 말이 사실이구나.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던 김태현이 한마디 툭 내 뱉었다.

“저 차들 꼭 달리다가 로봇으로 변신할거 같지 않아요?”

“응?”

“꼭 또빗 같네. 한국 돌아가면 사서 조립해봐야지.”

누가 프라모델 매니아 아니랄까봐 쇼핑 거리를 발견했다는 듯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확실히 얘도 정상은 아니다.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어있는 걸까.

호텔을 둘러보고 있던 스텝들이 감탄을 토해내고 난리도 아니다.

막내 스텝들에게 호들갑 떨지 말라며, 우리는 관광 온 게 아니라며 기합을 주던 고참 스텝들이 금칠해져 있는 욕조를 보며, 눈을 치켜뜬다.

“설마 이거 진짜 다 금이야?”

“어어, 진짜 금이라는데요? 가이드북에도 나와 있어요!”

“진짜? 대박!”

“우리 빨리 해변에 나가요!”

발코니에서 하얗게 펼쳐진 백사장을 본 탓인지 장요한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우리는 본투비 선배들에게 뺏은 반바지로 갈아입고, 해변으로 돌진했다. 비록 세계 각국에서 온 미녀, 미남······ 들은 없었지만, 버즈 알 아랍해변은 우리의 에너지를 발산하기에는 충분했다.

무료로 대여 가능한 스노쿨링을 끼고, 어린아이처럼 인조 산호초 주위를 뱅글뱅글 돌아다니며 놀다가 힘이 들면 야자수 나무아래 마련된 썬베드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나 피디가 시켜준 칵테일도 마셨는데, 음료가 비싸다는 나 피디의 말은 사실이었다.

음료 한잔 가격이 가장 싼 것도 무려 60디르함(평균 17000원)이나 했으니까.

공짜여행이니까 올만했지, 내 돈 내고 가라고 하면 절대 오고 싶지 않을 그런 곳이랄까?

생각해보니 조금 그러네. 나 피디 이 양반은 이 물가 비싼 나라에서 고작 100만원 돈을 주고 3박 4일을 지내라고 그래?

오후 때까지 물놀이로 시간을 보낸 우리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차를 타고 알 콰드라 호수로 이동했다.

사막 위에 만들어진 인공 호수라는 이곳은 플라밍고, 백조, 오릭스 등 170여종의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마치 작은 생태계를 축소시켜놓은 곳이랄까?

동물들을 구경하다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다.

열 기구위에서 본 일출 광경도 장관이었지만, 호숫가에서 보는 일몰 광경도 한 폭의 예술그림 같았다.

다들 넋을 놓고 바라봤다.

“형, 우리 다음에 꼭 여기 다시 와 봐요.”

감수성이 터졌나보다. 지는 태양을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장요한이 말했다.

“그래.”

그 다음이 언제가 될 런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자그마한 약속 하나를 서로의 가슴 속에 묻어 두었다. 이곳에 되돌아올 때쯤에는 그 싹이 트고, 열매를 맺어, 크고 단단한 신뢰라는 이름으로 얽혀 있을 거다.

어쩌면 인기도 더 많아지고, 팬덤 규모도 훨씬 커져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진짜 운이 좋다면 공연이나 팬미팅을 추진하기 위해 이곳을 되찾을 수도 있고.

본투비와의 합동 공연을 통해서 중동에서의 K-POP성공을 어느 정도 점쳐볼 수 있었으니까.

“진짜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비록 상상 뿐이었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공통된 염원이 떠올랐다.

어제보다는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는 내일을 위해 발전해 나가고 있다. 아예 가능성 없는 일은 아니다.

하루라도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며······.

그렇게 두바이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 청춘을 즐겨라 (13)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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