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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 나노머신-92화 (92/124)

< 청춘을 즐겨라 (12) >

또냐.

대부분 나 피디 프로그램들을 보면 방송분량 중 게임분량이 상당한데, 왜 그러는지 이제야 알겠다.

이건 파리지옥이 아니라 게임지옥이다.

결코 게임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이번에도 팀전으로 한 게임 하시죠.”

나를 쳐다보는 나 피디의 눈이 왠지 모르게 도전적으로 이글거리고 있다. 이번에는 꼭 이기겠다는 그런 의지가 엿보인다. 조금 전까지 옆방에서 그렇게 연습을 하더니,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나 보다.

“어제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플레어 대 제작진 팀. 이번에 제작진 팀을 이기시면 열기구를 태워드리고, 거기다가 사막에서 즐기는 조식까지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어때요?”

“만약 저희가 지게 되면요?”

“음. 만일 하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게임이라는 게 뭐가 걸려있어야 재미가 있을 테니까, 가볍게 어제 걸었던 그거 한 번 더 거시는 건 어때요?”

“어제 걸었던 그거요?”

그게 뭐지?

“아, 왜 있잖아요. 그거.”

옆에서 지켜보던 메인작가가 답답했는지 끼어들었다.

“차요. 차. 나 피디님이 사준다고 했던 3000cc차. 이번에도 이기면 외제차로 업그레이드 시켜주신대요. DMW로. 그거 걸고 한판 더 할 거라고 아까부터 잔뜩 벼르시던데.”

아. 또 차빵을 하자는 거지?

나 피디를 쳐다봤더니, 얼굴은 물론 목덜미까지 붉어져있다.

부끄럽겠지. 굳이 상품으로 안 걸어도 시켜줬을 투어 상품을 자꾸 게임 내기용으로 걸고 있으니.

“어······. 피디님. 이거 저희가 너무 손해 아니에요? 160만원 상당의 열기구 투어를 걸고, 차를 까달라니요. 형편성에 어긋나는 것 같은데요.”

“이기면 되잖아요. 이기면. 설마 지실까봐 그러는 거예요?”

노아의 물음에 나 피디가 도발을 한다.

누가 봐도 억지다. 초딩들도 저렇게 유치하진 않겠다. 헌데, 예능 프로그램 특성상 이런 장면이 나오면 시청자들 반응은 늘 좋았다.

리얼리티의 ‘극’을 만들어내길 좋아하는 나 피디식의 예능이 이젠 하나의 예능 트랜드로 자리잡은 까닭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상황을 일부러 연출한 것은 아니겠지만, 연출자답게 나 피디는 지금의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예능적인 요소를 뽑아낼 줄 아는 그런 능력자였다.

그렇다면 또 따라줘야지. 나 피디의 말 그대로 이기면 되는 문제니까.

이번 게임에도 이기고 나면 또 혹시 알아? 차가 포르쉐급으로 변해 있을지?

“좋아요.”

“진짜죠? 딴 소리하기 없기에요.”

도장이라도 찍을 듯 확답 받은 나 피디가 옆방에서 대기 중인 어벤져스를 다시 소환했다.

*

“게임 종목은 온몸으로 말하기 게임을 할 거에요. 속담 맞추기. 이게 팀원들끼리 호흡이 얼마나 잘 맞나 알아보기에 좋거든요.”

우리는 선선히 승낙 했다. 예능프로그램에서 곧잘 하는 게임이기에 하는 방법은 잘 알고 있었다.

가위 바위 보를 한 다음 순서를 정했다. 우리 팀이 이겼다. 상대팀에게 먼저 하라고 순서를 넘겨준 다음 우리는 느긋이 상대팀이 하는 것을 구경했다.

게임의 공정성을 위해서 속담은 상대편측에서 쓰기로 했는데, 김태현이 핸드폰으로 검색해 빈 여백에 열심히 속담을 채워 넣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등등.

게임 룰은 간단했다. 스케치북에 속담을 써놓고, 그것을 차례대로 넘기며 3분 동안 최대한 많이 맞추는 팀이 승리하는 거다.

“자, 준비하시고.”

어벤저스가 나란히 등을 돌리고 서 있고, ‘시작.’이라는 외침과 함께 첫 번째 주자가 재빠르게 등을 돌리며, 뒷사람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예상보다 어벤저스의 스피드가 빠르다. 확실히 연습한 티가 난다. 어렵다고 생각한 것은 빠르게 통과를 외치며, 지나가고 쉬운 것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데, 보고 있자니 퍼포먼스가 기가 막힌다.

특히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는.’ 그냥 손가락으로 둥근 모양을 표시하는 것만으로도 맞춰 버렸다. 15초도 안 걸렸다.

그걸 본 나 피디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멤버들이 한 목소리로 아우성을 질렀다.

“이거 미리 연습하고 오신 거 아니에요? 빨라도 너무 빠른데?”

“스텝들이랑 아주 잠깐 해봤어요. 테스트 겸. 그걸 연습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죠.”

입술에 침도 안 묻히고 거짓말을 한다.

아까 옆방에서 연습시키는 거 다 봤구만 뭘.

3분 동안 네 문제를 맞춰버린 어벤저스팀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나 피디 연출 프로그램 사상 통틀어서 역대급 성적이다.

애들이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굳이 해보지 않아도 게임을 시작한 후에 애들의 모습들이 훤히 눈에 그려진다. 보나마나 허둥지둥 우스꽝스러운 동작들을 해대다가 시간 다 까먹고, 좌절 하고, 뭐 그런 수순을 밟겠지.

속담 뜻이나 제대로 다 이해하고 있을 런지 모르겠다.

이런 가혹한 어른들 같으니라고. 우리 팀은 평균연령 21살밖에 안됐다고!

내가 최후 주자로 서고, 김태현, 장요한, 박진우, 노아 순으로 섰다.

“자, 시이이이이작!”

스텝의 외침과 함께 김태현이 뭔가를 몸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장요한과 박진우가 차례대로 받아 똑같이 흉내 낸다. 그걸 보고 있던 구경꾼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박진우가 노아의 등을 톡톡 건드리자 노아가 재빨리 뒤를 돌아 행동을 받는다. 헌데, 설명을 듣고도 노아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도대체 이 형이 뭘 설명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물음표가 나한테까지 고스란히 전달됐다.

노아의 얼굴에 딱 이렇게 쓰여 있다.

미안해요. 형.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인가 봐요.

카메라가 내 얼굴을 클로우즈 업해서 잡는다. 당황하든가 우물쭈물하는 내 표정을 크게 잡고 싶은 모양인가본데······ 일 없다.

“네, 정답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입니다.”

툭하고 내뱉는 내 대답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다들 저승사자라도 만난 듯한 표정이다.

뒤늦게 정답을 외쳐주는 스태프의 외침이 허공을 갈랐다.

“정답!!!”

“뭐해? 다음 문제. 어서어서.”

내가 손짓하자 애들이 급히 뒤로 돌아서서 다음 문제를 준비했다.

두 번째 문제는 더 가관이다.

우는 아이 잼잼해주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저게 뭐하는 짓이지? 주먹만 계속 움켜쥐었다 풀었다를 반복한다. 그리고 손으로 뭔가를 그리는 게 어떤 물체를 표현하는 거 같은데, 도대체 저게 뭐지?

노아 얘도 지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눈치다. 그냥 형들이 하니 열심히 따라한다.

영삼이에게 슬쩍 물었다.

-영삼아, 지금 이거 뭐야?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이 들려온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 입니다.

아······. 그래서 손으로 뭘 그렇게 열심히 잡았구나.

나는 그것을 받아 외쳤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

동시에 스태프들의 눈이 커졌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하긴, 그도 그렇겠지. 잼잼하는 동작을 보고, 누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라고 맞추겠는가.

“저, 정답입니다!”

스태프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개떡같이 줘도 찰떡같이 알아듣네. 어떻게 저걸 보고 설마가 사람 잡는다를 맞힐 수가 있는 거지?”

“혹시 지금 컨닝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저걸 보고 맞춰요?”

현장에 있던 스텝들이 나를 보며 수군거린다. 그리고 그들의 눈이 또 다시 게임을 하고 있는 나에게로 향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정답!”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채운다.”

“정답!”

“손톱 밑에 가시 드는 줄은 알아도 염통 안이 곪는 것은 모른다.”

“또 정답!”

“아는 길도 물어 가라.”

“저, 정답!”

정답을 외치는 스텝도 기가 질린다는 표정이다.

문제를 낸 애들도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나 노아 표정이 제일 볼만했다.

나를 쳐다보는 눈이 반짝반짝 한 게 전쟁터에서 혼자 적장 열 명은 베고 온 듯한 장군 보듯 한다. 충성이라도 외칠 것 같다. 반면에 나 피디는 떨떠름한 눈으로 꼭 간신 보듯 쳐다보고 있고.

“시간 다 됐습니다.”

총 여섯 문제를 맞히고, 게임이 종료됐다.

뒤늦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이겼다!”

반응이 극명하게 반으로 나뉜다. 우리 쪽은 축제 분위기고, 반면에 제작진 측은 제삿집 분위기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나 피디의 얼굴이 제일 볼만했다. 지구의 종말 소식이라도 들은 것처럼 처참하게 구겨져있었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뭔가 할 말 있는 표정으로 다가 왔다.

“하, 한번만.”

“네? 뭐라고요?”

“한 번만 더해요. 다른 게임 한 번만 더 하자고요. 네?”

우리가 전쟁에서 막 이기고 돌아온 개선장군들이라면, 나 피디는 꼭 사약을 코앞에 둔 죄인 몰골이다. 꼭 임금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리고 있는 것 같다. 여기저기에서 소리죽인 웃음이 들려온다. 그걸 카메라에 담았더니, 나 피디가 더 울상을 짓는다.

“원래 게임이라는 게 삼 세 판이 미덕이잖아요. 세 번해서 두 번 이기는 쪽이 이기는 걸로 해요. 시청자들이 보기에도 그 편이 더 재미있지 않겠어요? 안 그래요?”

“에이, 피디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요?”

“대신에 삼판 이승제로 바꿔서 이기시면 상품 추가해 드릴게요.”

상품?

“어떤 거요?”

“내일 어차피 버즈 알 드림 해변에 가실 거잖아요. 썬텐이나 수영, 뭐 그런 거 즐기시면 목이 마르시겠죠? 그런데, 상류층만 간다는 그 비싼 해변가에서 품위 떨어지게 물만 마시고 있기는 조금 그러잖아요. 그래도 명색이 한국을 대표하는 톱 가수인 플레어 여러 분인데. 그래서 저희가 특별히 칵테일이나 음료, 원하시는 걸로 한 잔씩 사 드리도록 할게요. 시원하게. 어때요?”

“에게, 고작 음료 한잔 씩요?”

“거기 음료 엄청 비싸요.”

나 피디의 엄살 섞인 목소리에 잠시 고민한 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 예상했다 이거겠지.

“차는요? 차는 어떻게 해요?”

내가 물었다.

어색하게 기침을 토해내던 나 피디가 검지 끝으로 턱을 긁적이며 내 눈치를 살핀다. 이리저리 눈동자가 굴러다니는 게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뭐, 게임의 연장선이니 계속 걸려있는 걸로 하는 게······.”

“좋아요. 그러면 그렇게 해요.”

시원스러운 대답에 나 피디가 쾌재를 질렀다.

“진짜 고마워요. 그러면 바로 두 번째 게임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행여 말을 바꿀 새라 나 피디가 급히 다음 게임으로 넘어갔다.

“다음 게임으로 뭘 할 건데요?”

“저희 제작진 측에서 특별히 한국 고유의 전통적인 놀이로 준비를 해봤어요. 두바이에 왔으면 이런 것도 한번 씩은 해줘야 제 맛이죠. 윷놀이 어때요?”

누군가가 대형 윷놀이판과 윷, 말을 가지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방바닥에 윷놀이가 세팅됐다.

나 피디가 시작 전 룰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다.

“규칙은 간단해요. 다들 윷놀이 하시는 법은 알고 있죠? 바닥에 깔아놓은 러그 밖으로 윷이 나가면 낙이고, 순서는 상대에게로 넘어가는 거예요. 단판으로 말 다섯 개를 모두 골인지점까지 통과시키면 이기는 거예요. 열 명이 윷을 던지는 건 너무 복잡하니까 각 팀에서 세명씩 차출해서 하는 걸로 할게요. 삼 대 삼. 괜찮죠?”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작진 측의 어벤저스 중 세 명이 소환 돼 바닥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나와 김태현과 노아가 대표가 되어 앉았다.

“그냥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제가 한 가지 제안을 드릴게요. 만약에 플레어 팀에서 말을 다섯 개 합쳐서 한 번에 들어오면, 제작진 측에서 야식을 쏘는 걸로. 어때요? 여기 앞에 진짜 시원한 팥빙수 집이 있거든요. 바닐라아이스크림이 잔뜩 들어간 팥빙수 다섯 그릇. 어때요?”

게임 시작 전 나 피디가 우리를 보며, 군침 넘어가는 제안을 했다.

다섯 개 말을 어부바해서 한꺼번에 들어오면 팥빙수를 사준다고?

저건 누가 봐도 개수작이다.

말 다섯 개를 합치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지. 그냥 폭망하라는 거다.

그런데 그 말도 안되는 말에도 얘들 눈이 반쯤은 돌아가 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폭염주의보 같은 날씨에 달콤하고, 시원한 팥빙수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부터 애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특히나 더워 죽으려던 노아는 여지껏 없던 전투의지를 불태우며, 윷판을 노려보고 있다.

“자, 그러면 시작하겠습니다.”

가위 바위 보를 한 다음 상대팀이 먼저 선공을 가져갔다.

그리고 윷이 돌아갔다.

< 청춘을 즐겨라 (12)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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