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춘을 즐겨라 (10) >
“플레어! 플레어!”
“K-POP. K-POP!”
함성소리가 요란하다. 사람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반쯤은 호기심으로 뭔가 싶어 잠시 구경 하던 관광객들도 막판이 돼서는 소리를 지르며 난리법석이 아니었다.
마치 우리를 환호하는 함성이 덴버파크를 집어 삼킬 것만 같았다.
머나먼 낯선 타국 땅에서 K-POP이 울려 퍼지고, 또 그것을 환호해주는 관객들을 보자 왠지 모를 희열감과 뿌듯함이 멤버들 얼굴에 가득 차올랐다. 없던 애국심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네 번째 곡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본투비가 뒤쪽 대기실에 도착했다.
준비 된 공연을 모두 마치고, 인사를 위해 무대 위에 올라갔다.
“조금은 길었던 우리의 오프닝 무대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부터 본 공연이 시작될 겁니다. 마음껏 즐기시다 돌아가시길 바라겠습니다.”
무대에서 내려가려고 하자 관객석에서 앵콜을 외쳐댄다.
“그러면…….”
힐끔 진행자의 표정을 살폈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조금 더 끌어달라고, 벙긋거리고 있다. 무대 아래 본투비의 담당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예전에 저희 케이팝 리그 챌린지라는 한국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불렀던 미션 곡이 있습니다. 그것을 한곡 더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함성이 커졌다.
“와아아아!!!!”
*
“정말 고마워. 이 은혜는 내가 한국가서도 잊지 않을게!”
대기실로 들어가자 정 실장이 격하게 어깨를 두들긴다. 듣자하기로는 우리와 차조영 실장과 마찬가지로, 본투비 데뷔 때부터 담당했던 실장이라는데, 거뭇거뭇 자란 턱수염위로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고마워요. 다들. 진짜 이거 공연 늦으면 어떻게 하나 불안하고 초조했는데, 덕분에 이렇게 위기를 모면하게 되네요.”
“한국가면 진짜 근사하게 밥 한번 살게요.”
“우와, 우리 후배님들 보니까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요? 잠깐 봤는데, 갑작스런 공연이었을 텐데도, 잘해도 너무 잘하는데?”
본투비 멤버들도 다들 달라붙어 한 마디씩 거든다.
같은 회사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스케줄이 바빠서 스치듯 잠깐씩 만난 이외는 본적이 없는데, 이런 머나먼 이국땅에서 만나니 마치 형제라도 만난 듯 반가운 기분이었다.
“자자, 인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다들 어서 올라가! 관객들 계속 기다리게 할 거야?”
정 실장의 말에 본투비가 인사를 마무리하고, 우르르 무대 위로 올라갔다.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잠시 후, 진행자의 소개와 함께 관객석에서 요란한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자, 긴장했던 몸에 힘이 쭉 빠진다.
이제야 끝난 기분이다. 잠시 대기실에서 무대 후의 여운을 즐기며 퍼져있는데, 양복 차림의 말끔하게 생긴 20대로 보이는 남자가 천막 안으로 들어와 두리번거린다. 행색이 관광객 같지는 않았다.
뭐지 했는데, 우리 쪽을 힐끔 쳐다보더니, 두바이 관광청 직원에게 손짓 한다.
직원이 가까이 다가가자 작은 소리로 쑥덕거렸다.
뭐지? 우리 이야기를 하는 건가?
잠시 후, 관광청 직원이 커진 눈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머리를 긁적였다.
“저기, 괜찮으시면 여기에 공주님 두 분이 와 계시는데, 노래 잘 들었다면서 인사를 하고 싶으시다고 하시는데요?”
“공주님이요?”
“아타바리드의 왕족 가문의 공주님들이십니다. UAE의 정치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주는 부통령의 따님들이시죠.”
내 질문에 두바이 관광청 직원이 슬쩍 귀띔을 준다.
“아마도 방금 전의 무대를 인상 깊게 본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들은 멤버들의 얼굴에 형용하기 힘든 갖가지 표정들이 떠올랐다.
놀람, 황당함, 뿌듯함, 뭐, 그런 표정들.
대한민국 토박이들이 먼 낯선 타국 땅에 왔는데, 갑자기 왕국의 공주가 만나 달라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거겠지.
내가 관광청 직원에게 물었다.
“이런 경우가 흔한가요?”
“아뇨.”
직원이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만나 뵙게 된다면 여러분이 손해 보실 건 전혀 없으실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멤버들의 얼굴을 확인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헌데, 공주라는 말에 얼어붙었는지 어쩐지 평소와는 다르게 경직되어 있다.
“그러죠.”
승낙을 하고, 살필 맵시도 없는 옷을 괜히 매만졌다. 갑자기 공주님이라고 하니까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해야 할 것 같은 기분.
잠시 후, 수행원이라고 밝힌 남자가 두 공주를 데리고 들어왔다.
공주라기에 사극에서나 나오는 그런 기품 있고, 우아한 공주를…… 생각했는데, 그냥 이국적으로 생긴 자그마한 여자애들이었다.
어색하게 마주보며 서 있던 장요한이 내 옆구리를 툭툭 건들며 복화술을 하듯 입을 달싹였다.
“형,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해요? 그냥 악수를 하면 되나?”
“아니, 여기서 이성간의 악수는 무례한 행동이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
내 말에 장요한이 쭈뼛거리며 내밀던 손을 황급히 거둬드린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국에서 온 플레어의 최강민이라고 합니다.”
나는 공주들에게 한명씩 멤버들을 차례대로 소개시켜줬다. 한국이라면 그냥 손을 잡아주든가, 미소를 지어주든가 하면 바로 반응이 올 텐데, 그런 것도 아니니 뭔가 어려운 기분이랄까.
짧은 인사가 오고 가고, 첫째인 나타샤 공주가 친절한 웃음과 함께 말을 건네 왔다. 유창한 영어였다.
“반가워요. 오늘 공연 잘 봤다고 꼭 전해드리고 싶어서요. 그냥 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둘째 마라타 공주가 언니를 툭툭 건드리며, 귀에 대고 아랍어로 속삭인다.
“언니, 사인. 사인.”
“알았어. 기다려.”
소리가 다 들린다. 못들은 게 바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 귀여운 모습에 멤버들이 웃음을 참느라 아랫입술을 꾹 물고 있다.
나타샤가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바라본다.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렇게 품위 있고, 정중한 사인 요청은 처음 본다. 나와 멤버들이 종이에 정성을 기울여 사인을 해주자 그걸 받아든 두 공주의 입가가 실룩거린다. 한국에서 흔히 보던 여느 중고생 팬들과 다를 바가 없다.
“편안한 여행이 되시기를 바랄게요.”
인사를 하며, 사인이 적힌 종이를 받아들고, 나가는 여자애… 아니, 공주들을 보자 왠지 흐뭇한 웃음이 입가에 걸렸다. 왠지 조금은 신기한 기분이 됐다. 불과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우리라는 존재를 아예 몰랐을 법한 공주들이 음악을 듣고, 우리의 팬이 됐다는 게.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명언이 떠올랐다.
음악에는 경계가 없다. 음악에는 인종도, 피부색도 또한 국경도 존재하지 않으며 민족을 가리지도 않는다. 음악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이게 한다. 모두 즐기자.
그 말이 맞다.
그래서 음악이 즐거운 걸지도.
*
잠시 후, 공주와 함께 나갔던 관광청 직원이 들어왔다.
“공주님들께서 버즈 알 드림 호텔에서의 숙박과 식사를 하게끔 베풀어주셨습니다. 그 호텔이 아타바리드 가문의 소유거든요.”
“네, 뭐라고요?”
그 말을 들은 김태현이 눈이 커졌다.
얘가 어지간해서 잘 안 놀라는 앤데.
“왜, 거기 엄청 좋은 데야?”
“거기 무려 7성급 호텔이에요. 엄청나게 비싸요. 게다가 이곳에 유명한 버즈 알 드림해변이라고 있거든요? 두바이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인데, 거기 입장하려면 호텔에 투숙하든가 레스토랑을 이용해야지만 가능하거든요. 일반인들은 입장조차도 안돼요.”
김태현이 반쯤은 흥분한 상태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마치 눈앞에 벌어진 일이 꿈만 같은 것 마냥.
“봐봐요.”
내밀어진 핸드폰 화면에는 영화에서나 보아오던 새하얀 모래가 펼쳐져 있는데다가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 해변을 거닐고 있는 비키니 입은 미녀들의 사진이 보인다.
뒤늦게 멤버들이 양옆으로 다닥다닥 달라붙어 손바닥만 한 핸드폰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7성급? 세상에 맙소사. 그런 호텔이 있기는 있었어?”
“우리가 묵었던 곳이 5성급 아니야? 7성급이면 얼마나 더 좋다는 거야?”
애들이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이번에는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모든 서비스를 꼭 다 즐길 거라고 다짐하면서.
그런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나 피디는 표정이 점점 기괴해진다. 조연출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속삭였다.
“촬영 허가 날까요? 거기 듣기로는 엄청나게 깐깐한 곳이라던데.”
“그걸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호텔 측에 전화해서 촬영 가능한지 조율해보고, 정 안되면… 아니다. 지금 얼른 호텔 측에 찾아가서 사정 설명하고, 촬영 허가 가능한지 여부부터 체크해봐. 뭐해? 빨리 움직여.”
조연출의 행동이 분주해진다.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 가로 전화를 하는 듯 하더니, 이내 통화를 위해 천막 밖으로 사라진다.
옆에 붙어 있던 메인 작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떻게, 첫날부터 예측대로 나가는 법이 없네요. 우리 그동안 일정에 대해서 회의 엄청나게 했는데, 도대체 그건 왜 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예측 안 되는 출연자들도 또 처음이네. 하루하루가 아주 다이나믹해.”
나 피디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시청률은 잘 나올 것 같지 않아요? 누가 플레어가 여기 와서 공연을 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건 어제도 마찬가지야. 호텔 숙박 이벤트라니. 짜고 치는 고스톱도 아니고.”
나 피디가 고개를 흔들자 메인 작가가 말을 보탰다.
“그러게요. 오늘일 만 해도 그래요. 공연한건 둘째 치고, 공주님들이라니……. 아참, 공주님들 찍은 장면 그거 내보내도 된대요? 만약 그게 안 되면 찍은 거 전부 허사…….”
“된대.”
나 피디가 말허리를 자르며, 대답했다. 메인작가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된대요?”
“어, 내가 물어봤어. 된대.”
메인작가의 얼굴에 기쁨의 표정이 잠시 머물렀다 사라진다.
“그러면 우리 완전 대박이지 않아요? MSG 살짝만 첨가해서 티저 영상 걸어놓고, 홍보 기사 쓰면 반응이 폭발적일 것 같은데. 이러다가 최고 시청률 갱신하는 거 아니에요?”
잠시 생각에 잠긴 나 피디가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저번에 최고 시청률 얼마 찍었지? 10.2였나?”
“10.5요. 분당 최고시청률은 11.7이고요.”
“잘하면 넘을지도 모르지. 버즈 알 드림 호텔이랑 해변가 촬영만 가능해도 끝내줄 것 같은데. 워낙 럭셔리한 곳들이라 일반인들도 궁금해 하는 사람들 엄청 많을 거라고.”
“하긴 그건 그래요. 그래도 뭐…. 사실, 지금 찍은 것만으로도 충분하긴 해요. 너무 써먹을게 많아서 편집을 어떻게 해야 할 지가 고민 될 정도니까. 진짜 이번 두바이 편은 버릴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그때 천막 밖으로 나갔던 조연출이 다시 들어왔다.
“왜 벌써 들어와? 호텔에 안 가봐?”
“어… 그게요. 피디님. 총 지배인이랑 통화를 했는데, 아타바리드 가문의 초청으로 온 손님들이니 모든 편의를 봐주라는 지시가 이미 내려와 있다고 하던데요?”
얼떨떨한 표정이다.
“진짜? 어쨌든 그래서 촬영은 가능하다는 거지?”
“네. 가능하답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스텝들의 입에서 저마다 자그마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나 피디의 시선이 뭘 하고 놀지 떠들썩하게 상의하고 있는 플레어에게 향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저쪽이랑 이야기를 해봐야겠네.”
< 청춘을 즐겨라 (10) > 끝
ⓒ 윤민우